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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최근연재일 :
2020.05.0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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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25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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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회

DUMMY

자유 교역 도시를 방문한 카스트로는 애버론의 무덤에 꽃을 바친 뒤 무거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아린의 신도들을 도시에서 몰아내긴 했지만, 도시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유공자 전용 묘지는 전과 같이 깨끗하게 관리되었다.


뒤쪽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아슬론이 아버지와 함께 묘지에서 걸어나왔다. 두 사람이 도시의 심장부를 향해 다가가자 망치와 모루, 그리고 장인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이 귀를 울렸다.


현재 자유 교역 도시는 내 명령에 따라 용족과의 전쟁을 준비하는데에 총력을 다하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몇 백년 동안 만반의 준비를 갖춘 용족 사냥꾼이 있었다. 파룡대에 합류한 알레디우스는 자신이 직접 설계한 대 용족 병기를 우리에게 공개했다.


"이건 내 동족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설계된 대공용 발리스타다. 도시의 성문 위에 배치하는건데, 사격 각도가 굉장히 높고 3발까지 미리 장전해둘 수 있지."


"으음... 이 설계대로라면 재장전에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겠는데요?"


난쟁이 족 장인이 조심스럽게 소견을 제출하자 알레디우스가 산뜻하게 대답했다.


"걱정마라. 3발을 다 사격할 즈음에는 너희 성벽이 이미 불타고 있을거다. 애초에 재장전 할 필요가 없는거지."


"... 성벽이 불타면 안 되는거 아닌가?"


용족의 낙천적인 생각에 질려버린 카스트로가 한탄하듯 내뱉었다. 그러자 알레디우스가 코웃음을 쳤다.


"이건 내 동족들을 조금 귀찮게 하는 용도라고 생각해라. 단순히 크고 무거운 화살을 쏜다고 용족을 추락시킬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그럼 이 비싸고 복잡한 물건을 왜 만들어야하는겁니까."


파룡대 안에서도 간이 큰 탈리고라가 투덜대듯 불평했다. 알레디우스는 그간 파룡대의 인원들과 상당히 친해졌는지라 그를 크게 나무라진 않았다.


"그야 없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을테니까. 솜씨 좋은 사수에게 맡긴다면 간혹 운 없고 머리 나쁜 동족을 떨어뜨릴 수도 있을테고... 이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너희 백성들이 불타는걸 손 놓고 구경해도 된다만."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지금 당장 제작을 시작하죠."


내 명령을 받은 카엘이 도시의 장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아린의 덕으로 이 도시에 정착했었지만, 시장이 바뀌어도 자신들에 대한 대우가 바뀌지 않으면 불만이 없는 모양이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있어 도시의 주인이 바뀌는 것은 광장에 세워진 동상의 종류가 바뀌는 것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레니아와 카엘이 고심해서 새로운 법령 등을 만들긴 했지만, 원래 쓰고있던 아린의 것이 워낙 좋아서 크게 손 댈 것도 없었다.


나는 그 점이 다행스럽게 생각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꽤나 씁쓸했다. 아린이 그래도 이곳을 잘 통치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노력했었는데, 정작 사람들은 그것을 기억해주지 않는 듯 했다.


하기사 그걸 너무 잘 기억하고 아린을 그리워해서 반란 같은걸 일으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다.


알레디우스가 설계한 대 용족 병기는 빠르게 완성되어 하나둘씩 배치됐다. 아슬론은 그새 요정의 숲으로 돌아온 뒤,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검을 수련한다.


아린과의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지라 용족들이 쳐들어오진 않았지만, 그건 그들의 시간관념이 조금 느긋하기 때문이었다. 로웬은 물론이고 알레디우스도 그들의 공격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지 않았다.


"용족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탐욕입니다. 그런 놈들이 적동용왕의 마력과 신력을 가만히 놔둘리 없지요. 아마 어떻게든 빼앗으러 올겁니다."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이대로 가만히 기다리는 것 보다는 먼저 공격을 해서..."


알레디우스가 자신있게 본인의 전략을 밝히던 찰나. 옆에 있던 레니아가 기침을 하며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녀는 실수로라도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었던지라, 나는 적잖게 당황하며 알레디우스의 안색을 살폈다. 그런데 이 오만한 용족은 불만스런 표정을 지으면서도 얌전히 말을 멈추는 것이 아닌가.


단순히 기분이 상해서 이야기를 그만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엘리자베스가 싸늘해진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하여 고개를 저었다.


"자세한 방책은 나중에 논의하죠."


"어... 진짜? 이거 미루면 안 되는 일 아닌가?"


내가 정말 이래도 되나 싶어서 다시 묻자 로웬이 웃었다.


"저희가 먼저 손을 쓴다고 해도 하루이틀만에는 안 됩니다. 일단 여유를 두고 생각을 해보죠."


오늘의 회의는 그대로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하기사 요새 이런저런 안건이 많아서 회의가 너무 잦기도 했다.


회의에 참석한 간부들은 내 집무실을 나가서 각자의 업무로 돌아갔다. 나도 숨을 조금 돌리려고 하자, 레니아가 묘하게 생글거리며 내게 요청했다.


"알룬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알룬님께서는 지금부터 성물을 제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성물? 그거 아직 만들게 남아있었나?"


성물 제작에 사용할 신앙점수와 재료야 이래저래 넘칠 정도로 모였다지만 정작 교단의 인물들은 대부분 성물로 무장한 상태였다. 그래도 용족과의 싸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여분이 좀 필요할지도 모른다.


내가 그대로 공방으로 향하자 레니아가 나를 공방의 안쪽까지 졸졸 따라온다. 내가 의문을 가득 담은 시선으로 그녀를 보자 그녀가 웃으며 대꾸했다.


"왜 그러신가요?"


"아니... 일 하러 안 가도 되겠어?"


다소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레니아가 밤잠을 줄여가며 업무에 매달리는 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녀는 걱정 말라는 듯, 옆구리에 끼고있던 서류들을 보여줬다.


굳이 내 공방에서 같이 작업을 하려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부러 쫓아내는 것도 좀 아닌 듯 했다. 나는 뒤통수에 꽂히는 시선을 참아내며 조용히 성물제작에 매진했다.


특별한 이변 없이 성물 제작을 끝내고 공방을 나서자, 이번에는 아가르타가 나를 붙들곤 신수들의 관리와 충원을 부탁했다. 나는 확실히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곤 아가르타에게 물었다.


"그거 지금 꼭 해야돼?"


"죄송하지만 조금 서둘러주셨으면 좋겠는데요... 하루빨리 신수들을 뿌려서 용족들의 침입을 감시해야하니까요."


"그, 그래."


수 시간에 걸쳐서 신수들의 관리를 끝낸 뒤에는 미처 쉴 틈도 없이 로웬이 들이닥쳤다. 나는 내 신도들에게 감시당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신도들에게 뭔가 단단히 잘못한게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이렇게 나를 괴롭혀댈리가 없다. 나는 로웬에게 휴식을 요청했으나, 그녀는 내 손목을 붙잡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피로도 못 느끼고 잠도 못 주무시는 몸이 아닙니까. 이 사안도 좀 서둘러주실 필요가 있어서..."


"그래..."


나는 이제껏 로웬을 이겨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녀는 나를 붙들곤 밤새도록 내 화신체를 조사하고 실험했다.


마침내 첫 닭이 울고 동이 틀 즈음. 나는 로웬의 공방을 뛰쳐나가듯 나서며 해방감을 만끽했다. 비록 피로를 느끼지 못하는 몸이었지만 내 찐따 소울이 자꾸만 자극당해서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일단 바람을 좀 쐬기 위하여 영주성을 나가자 웬 음악이 사정없이 귀를 때렸다. 잘 청소된 영주성의 앞에는 교단의 모든 신도들이 일렬로 도열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 뭐야?"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품위를 지키는 것도 잊고 얼빵한 소리를 내버렸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머리 위에서는 꽃잎이 떨어지고 단상 위에 자리잡은 성가대가 노래를 시작한다.


얼핏 듣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달아오르는 성가는 나와 교단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나는 이 사태에 대한 설명을 조금도 듣지 못했던지라 그저 멍청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난데없이 왕궁 무도회 한복판에 떨어지게 된 원숭이도 나보다는 덜 놀랐을 것이다. 내가 너무 멍청한 표정을 짓고있자 보다못한 아슬론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알룬님의 강림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강림일?"


"그렇습니다. 오늘은 알룬님께서 저를 거두신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입니다."


"아..."


나와 같은 외계신들은 역사가 짧은지라 이런저런 기념일들을 휴일로 지정해서 신도들을 쉬도록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가디언 소울을 시작한 날짜인 강림일은 신의 생일이나 마찬가지인 날인지라 무척 성대하게 축하를 한다.


아니, 외계신들 뿐만이 아니라 다른 교단에서도 신의 생일은 교단 최고의 휴일이다. 내 신도들은 오늘을 무척 열심히 준비한 듯, 무척 고무된 표정이었다.


레니아와 아가르타, 그리고 로웬이 어제 내도록 나를 붙잡아 둔 것은 이걸 위해서였으리라. 나는 뒤늦게 그들의 속내를 파악하곤 부담스러운 심정으로 꽃잎이 뿌려진 길을 따라갔다.


분에 넘치는 호사를 겪느라 당장이라도 심장이 멎을 것 같았지만, 신도들의 준비가 워낙 정성스러웠는지라 화신체를 해제할 수도 없었다. 요정의 숲에 머물던 주민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길가에 나와서 축하 행렬을 구경하고 음식과 술을 잔뜩 받았다.


되도록 검소하게 살아가던 우리 교단이었지만 오늘은 절약 비슷한 것 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이제까지의 검소함을 보상받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수도 없는 시선을 받으며 걸어가던 나는 머지않아 광장의 한복판에 마련된 자리로 안내받았다. 광장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말쑥한 인상의 배우들이 나와 아슬론의 만남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재현하고 있었다.


군데군데에 좀 과하게 미화가 들어가서 당사자로서 조금 괴롭긴 했지만 신도들은 그럭저럭 재밌게 보고있는 모양. 하기사 이 세계에는 영화 따위가 없으니, 이런 것도 나름대로 볼만할 것이다.


얼굴을 찌르는 시선들과 수치심에 슬슬 익숙해지자 이 부담스러운 축하연도 그럭저럭 버틸만해졌다. 나는 옆 자리의 아슬론에게 솔직한 감상을 털어놓았다.


"벌써 1년이나 됐을 줄은 몰랐어. 이래저래 다니는 사이에 진작 지난 줄 알았는데."


"제가 잘 기억하고 있었으니 괜찮습니다. 급하게 준비했는데 마음에 드신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네요."


"아까 많이 부끄러워 하시던데요."


옆에 있던 아가르타가 짓궂게 거들자 내가 쓰게 웃으며 대꾸했다.


"연극 정도야 뭘... 동상만 안 세우면 괜찮아."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광장의 중앙에 커다란 동상이 들어섰다.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다소 미화가 심한 동상은 솜씨 좋은 장인들이 달라붙어서 만든 티가 났다.


하긴. 내 부담스러운 얼굴을 보다는 저게 훨씬 보기 좋을 것이다. 나는 이제껏 동상을 기피하긴 했지만 기껏 만들어둔 것을 다시 녹이라고 하는 것도 좀 아닌 것 같다.


지구쪽의 기독교 종파 마냥 우상숭배를 금지할 수도 없는게, 동상이란 것은 포교를 할 때에 적잖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성대한 축제는 해가 저물어도 끝 없이 이어졌다. 나는 축연을 얌전히 즐기며 앞으로도 무사히 지낼 수 있도록 기도하려다가, 내가 신이라서 달리 기도를 못한다는 것을 깨닫곤 조용히 각오를 다졌다.


작가의말

본격 현실보다 느릿느릿한 소설...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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