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최근연재일 :
2020.05.02 00:21
연재수 :
154 회
조회수 :
782,314
추천수 :
25,197
글자수 :
786,849

작성
17.09.24 10:51
조회
1,958
추천
75
글자
10쪽

128회

DUMMY

그 뒤로도 계속해서 방문객들을 받던 우리는 마침내 쓸만한 동맹을 찾을 수 있었다. 너무 작지 않은 세력의 주인이고, 현 상황의 심각성을 잘 알고있는 플레이어. 게다가 자신의 욕심을 너무 내세우지도 않는다.


나를 비롯한 신도들은 들뜬 표정을 애써 숨기며 그를 환영하려 했다. 하지만 카엘이 레니아의 앞으로 대뜸 나서서 생각지도 못한 돌발행동을 하는게 아닌가.


"여러분들의 방문에 감사드립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는건 너무 성급한 듯 하니, 오늘은 이만 물러가주십시오."


그녀가 꺼내든 것은 완곡한 거절의 표현이었다. 아슬론은 아무런 상의도 없이 단독으로 결정을 내리는 그녀를 보고 대검을 만지작거렸다. 방문객들의 앞이 아니었다면 대번에 불호령이 날아들었을 것이다.


이미 말이 나와버렸으니 이제와서 되담을 수도 없는 노릇. 나는 일단 그대로 손님들을 돌려보내곤 알현실을 폐쇄시켰다. 그러자 동맹을 위한 회의는 순식간에 청문회로 변해버린다.


"카엘 자매님. 어째서 독단적으로 이런 짓을..."


레니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묻자, 카엘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내쪽을 향했다. 그녀의 행동에 의문을 품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 만큼 내게 직접 설명하는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레니아도 딱히 그것을 불편히 여기지는 않았다.


"알룬님. 알룬님께서는 신성제국과의 전쟁 당시 아린이 보여주었던 것을 잊으셨습니까?"


"... 신성제국과의 전쟁이라고?"


잠시 기억을 뒤지던 나는 오래지 않아 그녀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깨달았다.


신성제국에게 대항할 동맹을 모으던 아린은 자신이 주도권을 쥐기 위하여 일부러 뜸을 들였다. 자유 교역 도시의 깃발 아래에 모인 맹주들은 절박한 나머지 그녀에게 자신들의 권한을 대부분 양도했다.


내가 그녀의 의도를 이해했다고 느낀 카엘은 몸을 돌려서 다른 신도들을 돌아봤다. 사실 앞서서 찾아온 후보들이 너무 병신들이라 그렇지, 방금 전에 방문한 이들은 최소한의 조건을 갖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레니아는 아슬론에게서 그때의 일을 전해듣곤 방금 전의 회담을 되돌아봤다.


"확실히 이쪽이 지나치게 서둘렀던 감이 있네요. 저희가 더 급한 것도 아니니 주도권을 위해서 조금 여유롭게 대답했어도 됐을텐데..."


"어차피 근방에는 우리 말곤 달리 마땅한 구심점도 없으니까요. 앞선 후보들의 상태가 너무 충격적이라서 냉정히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한 발짝 떨어져있던 로웬 마저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자, 아슬론이 노기를 거두곤 얌전히 구석으로 물러났다. 그것을 보고있던 라르고가 슬쩍 웃으며 놀리듯 말했다.


"왜 그래? 한 마디 안 하냐?"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카엘 자매님이 제대로 한 것 같습니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아슬론이었지만, 그래도 분위기를 읽을 줄은 알았다. 나는 그 뒤로도 카엘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뜸 들이기에 들어갔다. 방문객들도 이 정도는 대충 예상하고 있던 모양인지 실망이나 불쾌함을 표하지는 않았다.


아린이 성왕국과의 전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소리가 들려올 즈음, 낯익은 방문객이 영지를 방문했다. 일전에 얼굴을 익혀두었던 그녀는 다름이 아니라 다르몬드의 주교였다.


아슬론은 그녀를 보고 배신자라며 이를 갈았지만, 나는 기꺼이 그녀와 독대했다. 다르몬드는 자신의 주교를 통해 간만의 담소를 나눈다.


"형,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말도 없이 먼저 도망쳐서 죄송해요."


"아니... 괜찮아. 어차피 나는 같이 도망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아린이 내 부모님들의 소재를 알고있는 이상, 다르몬드와의 도주는 선택지에 끼어들 수도 없었다. 녀석도 아마 그것을 알고 혼자서 도망친 것이리라.


다르몬드는 예상보다 담담한 내 반응에 안도하는 기색이다. 비록 주교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대답의 간격을 통해서 대충 읽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형은 길드에서 어떻게 탈출하신거에요? 아예 로그아웃을 안 하기로 하신거에요?"


"... 이야기를 못 들은거야? 소문도 안 나는걸 보니까 아린이 정보통제를 잘 했나보네."


"네? 그게 무슨..."


"나 자살했어."


경악한 기색의 다르몬드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이 이어지고 나서야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겨우 한숨을 돌린 녀석은 대놓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시종일관 내 눈치를 살피는 신도들 사이에 둘러쌓여 살아온 나로서는 반가운 반응이다.


"형도 정말이지 은근히 막 나가네요... 아슬론한테 나쁜 것만 배운건가."


"그나저나 너는 요즘 어때? 안전한 거처는 구했어?"


"그 저택에서 지내는 사이에 브로커랑 접촉해서 안전가옥을 구했어요. 저택 관리인에게 들키지 않았는지 확신은 못 하겠지만..."


"확신하지 마. 그 사람 진짜 장난 아냐."


"그렇죠? 그래서 계속 숙소를 옮기려고요."


지구에서의 다르몬드가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한국은 미국보다 치안이 훨씬 좋으니 미성년자가 혼자서 다녀도 괜찮을 것이다. 행색을 깨끗이 하고 번화가로 다닌다면 당분간은 문제가 없겠지.


나는 슬슬 안부인사를 끝내고 본론으로 들어가고자했다.


"너는 이제부터 어떻게 할거야? 아린이 성왕국을 끝장내면..."


"그 다음은 우리 차례겠죠. 이렇게 일을 벌려놓은걸 보면 성왕국을 집어삼킨 것 만으로 끝낼리가 없어요."


다행히 다르몬드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러니까 그의 주교와 나는 두말없이 손을 맞잡았다.


"저는 서부에서 최대한 세력을 불리고 동맹을 모아볼게요. 형은 그동안 남부를 견제할만한 아군을 찾아봐주세요."


"그런 세력이 주변에 남아있을까?"


동부는 마땅한 구심점 조차 없어서 중소규모의 세력들이 설쳐대는 난장판이고, 북부의 성채도시는 집 밖으로 좀처럼 나오지도 않는다. 다르몬드는 내게 로웬의 조언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지금 아린의 독주를 막고싶은건 저희들 뿐만이 아니에요. 성왕국 정벌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숨어있던 세력들도 점점 모습을 드러내겠죠. 형은 그때를 기다리기만 하시면 돼요."


"그래. 사실 우리가 급하게 움직인다고 뭐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신속함이 아니라 신중함이다.


만에하나 강력한 동맹군이 나타난다 해도, 이쪽이 이끌려다니게 되면 말짱 도루묵.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이쪽의 덩치를 불려놓아야한다.


다행히 다르몬드와 내 교단, 그리고 동맹군 합류를 원하는 이들이 모인 세력은 결코 작지 않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동맹을 약속하곤 그대로 헤어졌다. 카엘을 다르몬드의 임시 신도로 삼았으니 이제부터는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


다르몬드의 주교가 돌아간 뒤. 로웬은 내 몸을 이용한 외계신 연구 실험을 요청했다. 나는 별 생각없이 그것을 받아들었으나, 실험의 진행이 영 시원찮은 모양이었다. 로웬은 하루에도 몇 시간씩 내 앞에서 끙끙대며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했다.


"이번 실험 결과, 알룬님께서는 정령석의 마력을 흡수할 수 없었어요. 명색이 신성을 가진 몸인 만큼 적성은 충분할텐데... 아무래도 정상적인 생명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이 몸은 어디까지나 알룬님의 대리일 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옥좌의 방에 있는 영성을 직접 건드려야합니다."


"... 정확히 뭘 하려고 하는건데? 외계신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나는 심각하기 짝이 없는 태도에 뻘쭘함마저 느끼며 물었지만, 로웬은 무거운 목소리로 애매한 대답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외계신의 비밀, 생명의 신비... 뭐라고 부르셔도 괜찮습니다. 분명 방법이 있을거에요."


내가 거듭된 실험과 알아먹지 못할 이야기에 지쳐가던 찰나. 레니아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리며 나를 구원해줬다.


"알룬님. 동맹 후보들의 알현 시간입니다. 이번에는 좀 이색적인 손님들이 있네요."


"그래? 그럼 그 사람들 부터 보자고."


내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서자 레니아가 너무 즐거워하지 말라는 듯 한 마디 추가했다.


"끝나면 바로 실험을 재개해주세요."


"... 너까지 왜 그래?"


"외계신의 비밀을 빨리 파헤칠수록 저희들의 승산이 높아집니다. 어쩌면 아린에게 대적할만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글쎄? 아린이 이런저런 연구들 좀 한다고 쉽게 물리칠 수 있을만큼 만만한 상대는 아닌 것 같은데... 아니다. 이 여자들에게 거슬러봤자 괜히 피곤해질 뿐이다. 내 신도들은 유능하기 짝이 없으니, 고집을 부리는건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삼가야한다.


레니아의 말대로 새로운 방문객들은 상당히 이색적이었다. 그들은 먼 길을 온 듯 지친 행색이었는데, 외계신을 모시는 이들 특유의 개방적인 느낌이 없었으며, 그러면서도 성직자의 복장을 입고있었다.


카엘이 기도를 통해 내게 그들의 정체를 알렸다.


"원주민 신을 모시는 사제들입니다. 지금은 외계신들에게 밀려나서 대부분이 동부의 외곽에 은둔해있는 이들이지요."


"... 원주민 신의 교단이라."


플레이어들이 원주민 신들을 몰아낸 것은 동부나 남부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들이 내려주는 은총이나 심판은 원주민 신들의 것 보다 훨씬 직관적이며, 교리는 융통성이 있는 동시에 새롭다.


오래된 나머지 여러모로 굳어버린데다 가디언 소울 시스템의 보조도 받지 못하는 그들로선 우리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물론 이곳저곳에 충성스러운 신도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대세를 뒤집는건 힘들다. 대부분의 민중들은 원래 갈대와 같지 않던가.


그런데 그런 원주민 신들의 시종들이 무슨 의도로 이곳을 찾아온 것일까. 나는 긴장을 유지하며 조심스레 그들을 맞았다.


작가의말

정오에 올라오는...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군주의 정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군주의 정오 용어 및 등장인물 소개 +2 20.05.01 3,185 0 -
154 154회 +20 20.05.02 2,729 35 12쪽
153 153회 +10 20.05.01 822 21 13쪽
152 152회 +10 19.03.25 1,908 35 12쪽
151 151회 +14 19.03.17 966 31 13쪽
150 150회 +4 19.03.14 931 29 13쪽
149 149회 +5 19.03.13 841 30 13쪽
148 148회 +5 19.03.12 955 28 12쪽
147 147회 +8 19.03.12 852 30 12쪽
146 146회 +5 19.03.11 920 28 13쪽
145 145회 +5 19.03.09 918 41 13쪽
144 144회 +22 19.03.07 1,153 36 12쪽
143 143회 +8 18.04.25 1,608 55 11쪽
142 142회 +5 18.04.14 1,266 53 13쪽
141 141회 +5 18.04.09 1,235 54 13쪽
140 140회 +3 18.04.08 1,317 51 12쪽
139 139회 +7 18.04.07 1,330 57 12쪽
138 138회 +5 18.04.05 1,280 44 10쪽
137 137회 +6 18.04.02 1,320 51 12쪽
136 136회 +5 18.03.30 1,343 50 12쪽
135 135회 +9 18.03.27 1,376 49 12쪽
134 134회 +5 18.02.13 1,652 54 11쪽
133 133회 +6 18.02.07 1,439 49 10쪽
132 132회 +11 18.02.06 1,496 54 12쪽
131 131회 +17 18.02.04 1,675 57 13쪽
130 130회 +9 17.10.17 2,014 64 12쪽
129 129회 +5 17.10.07 1,799 62 11쪽
» 128회 +8 17.09.24 1,959 75 10쪽
127 127회 +13 17.09.14 2,105 62 10쪽
126 126회 +7 17.09.12 2,006 74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