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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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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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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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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44회

DUMMY

예상치 못했던 강림일 행사가 끝난 뒤.

약한 숙취에 시달리는 참모진은 요정의 숲 왕궁에서 작전회의를 재개했다.

파룡대의 인원들과 나란히 선 알레디우스가 어제 못 다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내 동족들의 가장 큰 약점은 자기들이 똑똑한 줄 안다는거다. 그저 나이가 많아서 얕은 꾀가 많아진 것을 현명하다고 생각하지."

"음, 확실히 그런 것 같군."


대검을 짚고 선 아슬론이 알레디우스를 쳐다보며 말하자 그가 입을 비죽인다.


"왜 나를 보면서 말하는거냐."

"별거 아니다. 신경쓰지 마라."

"... 아무튼, 놈들은 머지않아 공격을 시작할거다.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움직이도록 하자. "

"놈들에게 정면으로 덤벼들자는 것은 아닐테고, 혹시 생각해둔 수가 있으신가요?"


총지휘관 역할의 레니아가 묻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알레디우스.

수백년 넘게 용족들을 잡아죽인 그가 꿍쳐둔게 없을리 있나.

인간으로 변신한 그의 손가락이 테이블 위의 지도를 누빈다.


"우리가 노릴 곳은 대륙 서쪽의 끄트머리다.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곳에는 아주 오래된 유적이 하나 있지. 먼 옛날 내 동족들이 강력한 흑마법사를 봉인해둔 곳이다."

"강력한 흑마법사? 죽음의 군주 같은 녀석이야?"


파룡대의 리더인 카스트로도 이번 이야기는 처음 듣는 듯, 의아한 목소리로 묻는다.

마법 왕국의 마지막 왕족인 죽음의 군주를 떠올린 좌중이 몸을 살짝 떤다.

그러나 알레디우스는 그것을 듣곤 피식 웃었다.


"죽음의 군주? 그 되먹지 못한 얼간이 말이냐? 그 따위 년과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다. 그자는 혼돈신 루그레스의 제일가는 종복이요, 마법신의 파편들 중 가장 큰 조각이다. 이미 불멸성을 얻은 탓에 용족들도 완전히 죽일 수 없었지."

"설마 그렇게 위험한 놈을 풀어주자는건 아니죠?"


카스트로의 옆에 있던 탈리고라가 불안하게 묻자 알레디우스가 고민없이 긍정했다.


"당연히 풀어줘야지. 그 정도조차 하지 않으면 용족들에게 대적 할 수 없다."


알레디우스가 제안한 것은 일종의 천하삼분지계였다.

용족과 우리들, 그리고 해방된 흑마법사가 불러낼 지옥의 군세.

이렇게 세 개의 세력을 형성해서 적들끼리 싸우는 사이에 이득을 본다는 생각이다.


흑마법사는 자신을 봉인시킨 용족들에게 크나큰 원한을 품고 있을테니, 기꺼이 놈들을 공격할 것이다.

용족들도 우리보단 흑마법사가 훨씬 위험하니까 그쪽부터 해치우고 싶겠지.


그러자 남들보다 한 발짝 물러나있던 엘리자베스가 가까이 다가왔다.

성직자인 그녀는 흑마법사라는 단어에 남들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작자가 괜히 봉인된 것은 아닐텐데요?"

"무고한 자들의 피해가 없진 않을거다. 하지만 이대로 용족들과 맞붙는 것에 비하면 아주 싸게 먹히는거지."

"알레디우스. 괜히 빙빙 돌려서 말하지 마. 너 그렇게 말하니까 용족 같아."


용족에게 용족 같다고 욕하는 카스트로.

그런데 알레디우스는 그것을 듣고 정색했다.


"좀 더 노골적이고 무례한 쪽이 좋다면야 뭐... 놈은 역사상 최강의 흑마법사다. 만약 봉인에서 풀려나면 피가 강을 이루고, 시체의 산이 쌓이겠지.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거냐. 어차피 용족들이 승리하면 더욱 처참한 일이 일어날텐데."

"알레디우스님..."


안 그래도 불안한 표정이던 레니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작전을 폐기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갑자기 로웬이 나서며 대안을 제시한다.


"잠깐만요. 흑마법사를 꼭 풀어줘야 할 필요는 없지요. 놈은 마법신의 파편들 중 가장 큰 조각이라고 하셨죠. 그게 맞습니까?"

"그래. 틀림없다. 봉인당하기 직전의 놈이 5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가장 큰 조각이 될 수 밖에 없지."

"5할 이상? 그럼 사실상 차세대 마법신이나 다름없잖아?"


이 방에서 유이하게 그 뜻을 이해한 탈리고라가 경악스런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나는 모두를 위해서 알레디우스에게 물었다.


"그럼... 여기 있는 로웬보다 대충 얼마나 더 강하다는거지?"

"조각의 크기만 대충 다섯 배 이상? 놈은 마법신의 파편인 동시에 루그레스의 사도이니 실제 실력차는 그보다 더 크겠지."


그럼 로웬은 지금껏 조각의 10%조차 회수하지 못한건가?

내가 새삼 마법신의 위용에 놀라고 있자 로웬이 흥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주장을 이어나갔다.


"그럼 아예 놈을 죽이죠. 그리고 제가 그 파편을 흡수하겠습니다."

"자, 잠시만요. 놈은 이미 불멸성을 얻었다고 들었잖습니까. 용족과 용왕들도 죽이지 못한 놈을 저희가 어떻게 해치우나요."


다소 황당하게 들리는 계획에 열심히 반박하는 레니아.

그러나 정작 작전의 입안자인 알레디우스는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이다.


"그렇군... 만약 네가 놈의 파편을 흡수한다면 완전히 죽여버리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겠어. 어차피 놈의 불멸성은 파편의 힘으로 얻어낸 것이니까."


연중이 너무 길어져서 거의 다 까먹으셨겠지만, 마법신의 파편들은 서로를 흡수하는 성질이 있었다.

실제로 132회에서 로웬이 늑대 형태의 파편을 흡수했다.

나는 그 때의 일을 아주 힘겹게 떠올리며 딴지를 걸었다.


"잠깐. 상대는 로웬보다 다섯 배 이상 큰 파편이라며. 그럼 오히려 로웬이 먹히게 되는거 아냐?"

"무턱대고 덤벼든다면 그렇게 되겠지요. 하지만 놈을 잘게 조각내버리면 괜찮을겁니다."


태연한 표정으로 잔인한 소리를 해대는 로웬.

레니아는 자신의 질문이 살짝 이상하게 들린 것을 눈치채곤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애초에 저희가 덤빈다고 이길 수 있는건가요? 죽음의 군주 때도 그렇게나 고생했는데, 그보다 훨씬 강한 흑마법사를..."

"용족의 봉인은 강력하다. 아무리 놈이라도 봉인에서 해방되자마자 자신의 모든 힘을 발휘 할 수는 없을테지. 내가 그 정도도 생각하지 않고 이런 제안을 했을리가 없지 않느냐."


알레디우스는 로웬의 작전에 상당히 만족한 듯, 레니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보충 설명을 덧붙인다.


"진짜 문제는 봉인을 지키고 있는 수호자다. 그놈을 쓰러뜨리는게 마악 봉인에서 풀려난 흑마법사 따위보다 훨씬 어려워."

"그게 누군데요?"

"고귀한 백룡왕. 이미 멸종된 백룡족의 마지막 생존자이자, 용왕들 중에서도 굴지의 실력을 자랑하는 놈이다."


용족들과 싸우기 전에 용왕과 한 판 붙자는건가?

이전에 숲에 찾아왔던 적동용왕의 존재감을 떠올린 좌중이 마땅찮은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알레디우스는 그런 그들을 잽싸게 안심시켰다.


"백룡왕의 영토에 쳐들어가는건 위험한 도박이지. 하지만 운이 좋다면 대화로 해결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응? 혹시 백룡왕이랑 친해요?"


눈에 띄게 낮은 연령을 내세워서 눈치 없이 묻는 아가르타.

그녀의 질문에 살짝 질겁하면서도 성실히 대답하는 알레디우스.


"그런 소리는 농담으로라도 하지 마라. 나는 이 세상의 모든 동족들을 증오한다."

"아, 네. 죄송해요. 그래서요?"

"백룡왕은 흑마법사의 봉인을 수호하기 위해서 수천년 동안 그곳에 틀어박혀 있었지. 그 동안 놈의 백룡족은 용왕의 비호를 받지 못해서 멸종당했어. 간악한 동족들에게 천천히, 차례차례 물어뜯긴 탓이다."


그렇게나 중요한 봉인을 맡겨두고 뒤통수를 쳐버리다니.

용족들은 정말 아름다운 심성을 지닌 것 같다.

알레디우스는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띄며 자신의 기대를 내뱉는다.


"하지만 백룡왕은 아직 그것을 모르고 있어. 놈은 자신의 의무 때문에 한시도 유적을 떠나지 못했거든. 내가 그걸 가르쳐주면 놈의 표정이 아주 볼만해질거다. 어쩌면 적동용왕처럼 우리에게 협력할지도 모른다."

"유적을 떠나지도 못하게 만들어놓곤 동족을 멸종시켜버리다니. 역시 용족들은 쓰레기같군."

"동감이다."

"이제 그놈들의 구차한 명줄도 얼마 안 남았어요."


파룡대가 자기들끼리 전의를 돋우고 있자 심란한 표정의 레니아가 손뼉을 쳤다.


"그럼 작전을 정리하겠습니다. 저희는 준비가 끝나는대로 서쪽의 끝에 있는 유적에 침입해서 백룡왕과 교섭. 만약 교섭이 통하지 않으면 놈을 해치우고 흑마법사의 봉인을 풀어서 마법신의 파편을 흡수합니다. 이의가 있으십니까?"


뚜렷한 대안이 없으니 이의가 있을리 없다.

모두의 뜻을 확인한 그녀가 세부 사항으로 넘어간다.


"힘든 싸움이 될테니 쓸만한 전력은 전부 끌어모으겠습니다. 파룡대와 아슬론님, 로웬님, 용인족 부대 중 일부, 베아트리체님도 동행해주세요. 하늘은 감시당하고 있을테니까 비공정은 사용 할 수 없습니다. 육로를 통해서 빠르고 은밀하게 이동합니다."


다소 불만스런 기색이 남아있긴 했지만 총사령관답게 능숙한 솜씨를 보여주는 레니아.

하지만 열심히 설명한 보람도 없다.

그녀의 실력을 잘 아는 이들은 하나둘씩 회의실을 떠나기 시작했다.


"원정을 준비하고 있겠다. 다 정리되면 말해다오."

"세부사항 같은건 굳이 의논할 필요도 없지. 어차피 레니아가 알아서 잘 할테니까."

"다들 푹 쉬어둬. 시간은 금이다. 내일 동이 트기 전에 출발하자."


열 명이 넘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회의실은 순식간에 한적해졌다.

신뢰를 받는다는 것이 이리도 쓸쓸한 일이던가.

나는 살짝 황당한 표정의 레니아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확실히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 하는게 편하긴 한데..."

"내가 도와줄게."

"저도요."


그나마 교단의 양심인 나와 아가르타가 그녀의 곁에 남았다.

우리는 방해 밖에 되지 않을게 뻔하지만, 레니아는 그것이 무척 기쁜 듯 미소를 보인다.


그대로 밤을 새가며 작전을 수립한 우리는 다음날 아침에 아슬론 일행을 배웅했다.

파룡대와 용인족, 그리고 내 교단에서 고르고 고른 전사들.

숫자는 적지만 전력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이 요정의 숲을 나섰다.


유적은 제법 멀리 있지만, 전원이 신수를 타고 있으니 일주일 안에 도착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떠난 줄도 모르겠지.

내가 불안한 심정으로 화신체를 해제할까 고민하고 있자 레니아가 내 손을 잡아줬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에는 알레디우스도 있으니 다들 무사히 돌아올겁니다."

"응. 그랬으면 좋겠네."


어차피 유적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어수선한 마음을 애써 진정시킨 뒤, 업무에 집중한지 얼마나 됐을까.

휘하 영주들 사이의 갈등을 고민하던 나는 집무실 밖에서 들려온 노크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저... 알룬님. 잠시 나와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아가르타 자매님..."


이제 그녀의 말투를 지적하는 것도 지쳐버린 듯한 레니아.

나는 아가르타의 눈 안에서 심한 동요를 발견하곤 지체없이 일어났다.

이 녀석은 어리긴 해도 나름대로 배짱이 있는지라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다.

사실 내 신도로 살아가다보면 자연히 담대해질 수 밖에 없다.


내가 왕성의 복도로 나가자 용인족 병사들과 의장대가 부리나케 따라붙는다.

그들 중 아슬론의 대역을 맡은 녀석이 대검을 들고 내 뒤에 섰다.

혹시라도 아슬론이 떠난 것을 들킬까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역시 레니아의 일처리에는 빈틈이 없다.

나는 대역에게 대축복을 걸어줘서 위장을 마치곤 내성을 나선다.


"아가르타. 이제 뜸 들이지 말고 말해봐. 내가 요정궁 밖으로 나갈만한 일은 거의 없을텐데?"

"성왕국의 국왕이 찾아왔어요. 알룬님께 무조건 항복한대요."

"뭐어?"


아가르타의 요약은 나무랄데가 없었지만, 가끔씩은 군더더기도 좀 필요하다.

반면 레니아는 그것을 곧바로 알아들은 듯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보인다.


"으음. 성왕국에서 힘든 결정을 내렸군요. 아무리 적게 잡아도 1달 정도는 더 버틸 줄 알았는데... 제 예상보다 결단력이 있는 남자였던 것 같습니다. 알룬님께 나쁠 것은 없으니 일단 나가보시지요."

"그래. 레니아, 너만 믿는다."

"맡겨주십시오."


농담 삼아서 말한 것인데 무척 진지한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우리는 성왕을 만나기 위해서 도시의 성문으로 향했다.

내가 다가서자마자 최대한 개방된 성문의 사이로 무릎을 꿇은 사내가 보였다.


작가의말

살아있어서 죄송합니다.


자결은 완결까지 봐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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