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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최근연재일 :
2020.05.0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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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1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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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아린의 신도들이 대부분 그렇듯, 자유 교역 도시의 관문장 또한 풍부한 실전 경험을 지닌 베테랑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다짜고짜 배수진을 취하는 상대를 만나본 것은 처음이었다.


"음, 이건 아무리 초보자라고 해도 다짜고짜 범할만한 실수가 아닌데... 설마 함정인가?"


그가 성벽의 위에서 고민하며 중얼거리고 있자 꽤 젊은 축에 속하는 부관이 걱정스레 말했다.


"그럼 이대로 요새 안에서 수비합니까?"


"아니. 저쪽의 마법사는 굉장히 강력하다. 지금은 돌아가신 애버론 영감님보다 더하다고 봐도 되겠지. 제대로 도강한 다음 공격을 퍼부어대면 우리쪽 애들이 많이 상할거야."


관문장은 너무 늦기 전에 결정을 내리곤 병사들을 일으켰다.


"저렇게 매력적인 미끼로 낚으려고 하는데, 안 걸려주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전원 출격! 숲 속 촌놈들을 강 속으로 수장시켜줘라!"


"서둘러라 이것들아! 아린님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장교와 하사관들이 병사들을 재촉하는 사이, 관문장은 부관에게 조용히 명령했다.


"아까부터 그 용인족 대주교가 안 보여. 혹시 모르니까 요새 안에다 정예들을 대기시켜라."


"알겠습니다."


"자, 그럼 가자. 저놈들은 도망칠 곳도 없다!"


그로부터 잠시 뒤. 공격을 명령한 관문장은 좀처럼 밀리지 않는 적군을 보고 난색을 표했다. 강 앞까지 내몰린 연합군은 방진을 펼친 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이 이상 물러나지 못한다고 봐야 될 것이다.


강의 앞쪽은 퇴로를 잃은 병력들로 꽉 차 있었다. 발 디딜 틈 조차 없이 뭉쳐있는 그들은 수장되지 않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버텼다. 관문장은 그 맛 좋은 먹잇감에다 포격과 사격을 명령했으나, 이쪽의 공격은 상대측 마법사가 손 한 번 휘저으면 사라진다.


좀처럼 끝날 기미가 없는 전투에 질린 듯한 부관이 물었다.


"그냥 기병대를 투입시킬까요?"


"저 빽빽한 방진에다 비싼 기병대를 털어넣으라고? 적측의 최전선을 맡고있는건 튼튼한 중갑보병이다. 저번에 상대한 징집병들하고 똑같이 보면 안 돼."


관문장은 철 없는 부관의 의견을 탓하면서도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도 이 국면이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보통 때였다면 기병대를 측면이나 후면으로 우회기동시켜서 방진을 격파했겠지만... 이번에는 그게 안 됐다.


상대측 진영의 측면과 후면을 강물이 지켜주고 있는지라 이쪽의 공격로가 극히 제한된다. 저렇게 정면만 지킨다면 아무리 누덕누덕 기워붙인 군대라도 한 세월을 버틸 수 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배수진을 친건 아니었군. 상대쪽 지휘관은 책상물림인 계집이라 들었는데, 보기보다 제법이야. 그래도 이대로 가면 말라죽을 뿐이다."


연합군은 죽지 않기 위해서 버티고 있을 뿐이다. 투구를 눌러쓴 기사와 대주교급 마법사가 분전하고 있긴 하지만, 이대로는 승리할 수 없다. 관문장은 혀를 살살 씹으며 고민했다.


"지금 이 국면에서 벗어나려면 상대쪽 대주교가 요새를 점령해야겠지. 이쪽을 쳐봤자 우리의 병력이 너무 많으니까... 부관, 뒤에서 놀고있는 병력들을 요새로 돌려보내라!"


"저,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래. 공격로가 제한되는건 저쪽도 마찬가지야. 여기서 병력을 좀 빼도 단숨에 밀리진 않을거다. 그 용인족 대주교는 얕잡아보면 안 돼."


"알겠습니다."


부관은 관문장의 명령에 따라 병력들을 돌려보내기 위하여 뒤로 빠졌다. 하지만 그는 상관의 명령을 완수하지 못했다. 그들이 나온 요새 쪽에서는 이미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문장님! 상대측의 대주교가 쳐들어옵니다. 병력은 약 500 정도!"


"고작 500? 괜찮아. 당황하지 말고 막아라. 용인족 대주교를 마크할 팀도 출동하고."


관문장은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졌음을 알곤 실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요새쪽에서 굉음이 울려퍼지며 성벽의 파편과 흙더미가 비처럼 날아들었다. 그는 웃음을 완전히 잃은 채 물었다.


"무슨 일이냐! 어떻게 된거야? 젠장."


직접 말을 타고 요새로 돌아간 관문장이 그제서야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다. 아슬론을 마크하기 위해서 요새에 놔둔 정예들은 보고를 할 틈도 없이 무참하게 썰려나가는 중이었다. 500명의 선두에 선 아슬론이 성벽보다 높게 뛰어오르더니, 거대한 마력의 칼날을 휘둘렀다.


"극대 실장검!"


푸르게 빛나는 마력의 대검이 요새의 성문 위로 내리꽂혔다. 귀가 먹먹해지는 굉음과 함께 성문이 터져나가듯 무너져내린다. 아슬론이 든 마력의 대검은 어지간한 대신전의 기둥만한 사이즈였다.


그것을 본 부관이 조용히 탄식했다. 비교적 후방에 위치해있던 병사들도 아슬론의 무력을 보고 벌벌 떤다.


"뭐 저딴 기술이 다..."


"원래는 저렇게까지 강하지는 않았는데... 그 사이에 뭘 주워먹은거지? 요새는 이미 틀렸다. 남은 병력들을 데리고 뒤쪽의 요새에서 합류하라."


결국 관문장은 황급히 남은 병력을 수습하여 뒤로 후퇴했다. 상대측의 작전을 거의 다 읽은 것 치곤 비참하기 짝이 없는 패배였다.


@


전장의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전투가 끝났음을 확인하곤 레니아의 곁으로 돌아왔다. 요새를 점령하고 수 많은 패잔병을 붙잡은 전과에 비하여 아군의 피해는 경미하기 짝이 없었다.


레니아의 본대는 시작부터 철저하게 수비적으로 전투에 임했고, 아슬론이 이끄는 별동대는 요새에 남아있던 소수의 정예들만 상대했다. 그러니 피해가 클래야 클 수가 없었다.


"시작을 좋게 끊었군. 괜찮은 작전이었다."


대부분의 전공을 독차지하게된 아슬론이 드물게 레니아를 칭찬했다. 레니아는 살짝 우쭐해하면서 조용히 웃는다.


"별 말씀을요. 상대가 우리를 어설피 알았는지라 그리 어렵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우리를 아예 몰랐다면 좀 힘들었을까?"


내가 궁금한 나머지 조용히 묻자 레니아가 자세를 고치며 대답했다.


"이기는거야 당연히 이겼겠지만 이렇게 쉽게 해내진 못했으리라 봅니다. 1만 5천씩이나 되는 병력이 다 모여있었으면 아슬론님께도 상당한 부담이 되니까요."


"흥. 그 따위 놈들은 얼마가 있어도..."


우리는 아슬론이 코웃음 치는 것을 익숙하게 넘기며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예상보다 훨씬 쉽게 승리를 거둔 병사들은 이전보다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레니아의 명령을 받는 참모들의 태도도 훨씬 공손해졌다.


레니아가 굳이 배수진을 고집했던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으리라. 자신들이 결사코 반대하던 전략으로 가뿐히 승리를 거뒀으니, 그들에게 할 말이 있을리가 없다.


관문 지휘관은 패배한 와중에도 병력을 잘 보존해서 철수했으나, 이 너머의 땅은 넓찍한 평야다. 요새를 가지고도 이기지 못한 상대를 평야에서 막아낼 수 있을리가 없다.


결국 우리의 군대는 파죽지세로 진격하게 됐다. 나는 보급선이 살짝 걱정됐으나, 레니아는 가져온 물자 만으로 끝을 보려는 모양이다. 하기사 성왕국 측의 병력이 돌아오면 우린 끝장이다. 이 전쟁에는 처음부터 빠듯한 시간 제한이 걸려있었다.


아린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하여 숲이나 산이 가까워 질 때 마다 게릴라전을 시도했으나 큰 효과를 보진 못했다. 내가 드넓은 평야를 지켜보며 그녀를 마주할 걱정을 하던 때. 마침내 궁지에 몰린 아린이 극단적인 수를 던졌다.


처음 동요를 보인 것은 구 신성제국의 병사들이었다. 남모르게 끙끙 앓고있던 그들은 돌연 레니아에게 찾아와서 이탈 의사를 밝혔다. 레니아는 급히 당황했으나, 뒤에 있던 엘리자베스 때문에 쓴소리도 하지 못했다.


나는 허겁지겁 전장에서 이탈하는 구 신성제국을 보며 황급히 물었다.


"잠깐. 저놈들 지금 어디 가는거야?"


"알룬님. 그것이..."


"저들을 잘 보십시오. 무언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땀을 뻘뻘 흘리는 레니아 대신 엘리자베스가 내게 말했다. 나는 그녀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구 신성제국의 병사들을 자세히 관찰한다. 엘리자베스는 내가 몸을 움찔한 것을 보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들의 은총이 사라졌습니다."


"뭐야? 어떻게 그런게 가능하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동요를 감추지 못하던 나는 다른 세력들도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한 것을 목격했다. 단순히 신성제국의 이탈에 당황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몸에 어려있던 은총도 어느샌가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뿐이랴, 탈주병들은 대부분 다른 플레이어들의 신도들이다.


"설마."


나는 내 머리에 떠오른 추측을 부정하기 위하여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레니아는 한숨을 내쉬며 그것을 막는다.


"설마가 맞습니다. 아무래도 아린측에서 이쪽과 동맹을 맺은 플레이어들에게 무슨 수를 쓴 것 같습니다."


단순히 가디언 소울에 재접속하는 것을 막기만 했다면, 은총이 사라지거나 하진 않았으리라.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카엘이 탄식한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아린은 연합군 측 플레이어들의 본체를 살해한 것이리라. 물론 그들도 나름의 세력을 지닌 플레이어들인지라 그쪽에 대한 대처를 안 해두진 않았겠지만... 아린의 부하인 저택 관리인의 솜씨를 봤을 때, 그것이 제대로 먹혔으리라 생각하긴 힘들었다.


그는 내가 보고를 올린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먼 이국의 땅에 있던 다르몬드를 찾아낸 실력자다. 그러니 다른 플레이어들을 암살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당분간 로그아웃 하지 말라고 해야겠어. 본체가 사망한 상태로 로그아웃을 해버리면..."


"지금처럼 은총이 사라지겠지요."


레니아는 살짝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까지 잘만 이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런 장외전술에 당해서 연합군이 와해되게 생겼으니 너무도 허탈한 것이리라.


불행히도 우리의 경고는 아군의 탈주를 가속시킬 뿐이었다. 머리를 잃지 않은 교단들도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여 하나둘씩 몸을 빼기 시작한다. 나는 그나마 보고를 하고 떠나는 다르몬드와 인사를 나눴다.


"너도 몸 조심해라. 잘 숨어다니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그러게요. 이 나라에서는 저 같은 백인이 지나치게 눈에 띄이네요. 일단 어떻게든 한국을 벗어나 볼테니까 그 동안 제 신도들을 마음대로 써주세요."


"뭐야? 그래도 되겠어?"


다르몬드의 신도들은 연합측 전력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지라,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있던 레니아가 대번에 반색했다. 하지만 나는 큰 부담을 느낀 나머지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제가 말을 해두고 갈테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다른 사람의 신도들을..."


"형은 믿을 수 있어요. 애초에 다른 사람 신도라고 막 굴릴 수 있었으면 일이 이렇게 되지도 않았겠죠."


녀석은 내게 슬쩍 웃어보이더니 곧장 자리를 떠났다. 결국 다음날 아침에 남게 된 것은 어제에 비하면 한 줌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병력이었다.


작가의말

일본 여행 다녀오느라 시간이 좀 걸렸네요.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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