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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舶 님의 서재입니다.

흑응회

웹소설 > 자유연재 > 일반소설, 대체역사

완결

金舶
작품등록일 :
2015.04.20 05:42
최근연재일 :
2015.07.09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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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02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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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자료>과감한 추측

DUMMY

역사는 승자의 손으로 조작되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후세에서 역사적 진실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어쩌다 만나는 진실의 편린을 보고 짐작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초특권이 당연했던 군주제 시대에는 지난 역사 마저 군주를 위하여 다시 만들어야만 했던 것이지요. 삼국지라는 명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소설을 읽고서, 실제로 후한 시대에 조조, 손권, 유비가 그렇게 전쟁을 했다고 믿는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저는 조금 더 과감하게 과거를 바꿔서 추측해 보았습니다.


인류문명은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로 변화되면서 시작되었다 합니다. 농경생활이란 무엇일까요? 씨앗을 뿌리고, 비를 맞춰서 싹을 티우고, 키우고 열매를 맺게하여 추수를 하는 과정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날짜 계산 즉 역법(曆法)일 것입니다. 역법이 있다면 농경생활이 있다는 말입니다. 역법은 하늘을 관찰하여 얻은 지식을 축적한 것이지요. 동양의 천문학(天文學)은 하늘을 해석하는 원칙을 정립함으로써 시작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원칙이 바로 음양오행이며, 천간지지(天干地支)입니다. 천간 지지에 의하여 날자를 세는 방법은 갑골문에서 이미 나오고 있으며, 이것은 음양 오행 사상의 이론이 이미 주나라 이전에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음양과 오행에서 어떤 사람들은 오행이 훨씬 나중에 정립된 이론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거의 동시에 확립된 이론이라 여깁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두손이 음양이며, 손가락이 다섯 개씩 오행이어서 십진법이 만들어진 그 때에 음양과 오행은 함께 원칙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저는 농사법이 단군조선 그 이전 아니 문명의 처음부터 만들어졌을 것으로 봅니다. 즉 역법은 년월일시를 표시하여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는 법을 말하며, 음양오행에 근거하여서만 출발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당시의 역법은 음력이며, 음력의 오차를 보정하기 위해서, 태양의 움직임을 조사하여, 24 절기를 가미하여 농사에 맞도록 하였습니다.


역법은 시대가 지남에 따라 다음 왕조로 전승 발전되어 갑니다. 환국(晥國 = 밝은 하늘나라의 뜻)에서 달국(達國 = 배달나라, 이어받은 땅나라의 뜻)으로, 달국에서 단군국(檀君國 = 대조선, 고조선, 단군이 다스리는 나라)으로 단군국에서 다시 하, 은(상), 주로 전승되었을 것입니다. 나라가 이어져 오면서, 농사법이 전승되었으나, 달라져야할 부분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지형 기후의 차이, 주로 하는 농작물의 종류 등에 따라 바뀌는 것이 필요하지요. 하, 은, 주 세 나라는 역법에 서로 다른 점이 있어서, 오늘날 우리는 이것을 각각 하력(夏曆), 은력(殷曆), 주력(周曆)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셋의 가장 큰 차이는 정월 즉 1 월의 시작이 다르다는 것이지요. 1 월은 봄의 시작을 뜻함으로 사람들이 따뜻함을 느끼는 체감 온도가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봄이 왔다는데 날씨가 계속 춥다면 누구나 이상하게 여길 것이며, 각종 미신이 많았던 고대에서는 그것이 어떤 나쁜 징후로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에 봄은 정말 봄다워야 했을 것이지요. 하력에서 1 월은 은력에서 2 월이고 주력에서는 3 월입니다. 즉 주나라의 봄이 은나라의 봄보다 한 달이 빨랐으며, 하나라의 봄보다는 두 달이 빨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주력이 지금까지 3000 년 이상 계속 사용되어져 왔습니다.


봄의 시작이 다르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농사법에서 파종의 시기가 다르다는 뜻이지요. 현대의 우리는 지구의 공같은 생김새와 공전, 자전을 아주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북반구에서 위도가 낮은 곳부터 높은 곳으로 순차적으로 봄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경우에도 남해안과 서울은 봄의 시작에서 거의 한달의 차이가 나게 됩니다. 이런 기본 지식에서 보자면 하나라는 가장 북쪽에 위치하였으며, 은나라는 중간에 위치하였고, 주나라는 가장 아래에 위치하였을 것이란 추측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거리는 한달 시간차를 고려하면 위도(緯度) 상 약 500(어쩌면 400) 킬로미터 쯤이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주나라의 서울이었다고 하는 장안(현재 서안)의 위도는 북위 34.5 도 이며, 이것은 한반도에서는 남해안 부근에 해당됩니다. 봄에 꽃이 피는 시기를 비교해보니, 한반도의 개성 쯤 즉 위도 4 도 정도의 차이가 한달의 시간과 얼추 맞지않는가 생각하며, 이것으로 볼 때에 은나라는 주나라보다 위도가 4 도 정도 높은 곳이며, 다시 하나라는 위도가 8도 정도 높은 곳에 위치하였다고 추측해봅니다.) (하, 은, 주의 시대 차이가 각 천년 씩이라 보고, 그 사이에 기후가 한랭화되는 과정이었다 감안하면, 위도의 차이는 좀 더 줄이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또 한가지, 역사에서 주나라는 서주(西周)와 동주(東周)로 나누게 됩니다만, 서주의 사료(史料)에서는 계절을 나타내는 춘하추동(春夏秋冬) 중에 하와 동 두 글자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공자가 지었다는 춘추(春秋)라는 책도 어쩌면 춘하추동을 의미하고 있을 것입니다. 즉 그 때에는 계절이 춘추만 있었다는 뜻이지요. 이것이 무얼 말하는 것일까요? 처음에는 계절이 봄, 가을 두 개만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요즈음으로 치자면 우기와 건기가 있었다고 추측해봅니다. 즉 온대성 기후가 아니라 열대성 또는 아열대성 기후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즉 주나라의 기후는 처음에는 우기와 건기만 있는 아열대 기후였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그리고 그것에 발맞춰주듯이 다른 사료에서 지금 더운 지방에 살고 있는 악어나 물소, 코끼리, 또 파충류일 것으로 생각되는 괴수 등의 이야기도 다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나라 근처의 지역에서도 이런 동물이 많이 살았으며, 흔히 볼 수 있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저는 과감하게 추측하여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봅니다.


아시아 대륙은 일만삼천 년전에는 지금보다 기온이 년 평균 5 - 10 도 더 높았으며, 강우량도 두 배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륙의 땅 중에 저지대는 많은 부분이 물 속에 잠겨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건조한 사막지대도 그 때에는 많은 물과 하천이 있었고, 수목이 우거졌으며, 다양한 동물들이 살았을 것이다. 또 북쪽 바이칼 호수 근처에도 수목이 울창하고, 지금의 온대적 기후였을 것으로 추정하며, 그곳이 진정으로 어떤 문명의 시발점 이었으리라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잠깐 지구에 있었던 빙하기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이미 상식이 되었지만, 지구의 온도는 변화하였고 남극의 얼음을 분석하여 알아낸 지구의 지상 온도는 남극에서 영상 3 도에서 영하 7 도 사이를 왕래했다는 것입니다.

[그림 (오른쪽) 남극얼음분석 결과 지구 온도변화]


저는 바이칼 호수 북쪽에 환국이 있었다고 추측합니다. 환국( = 밝은나라)는 바이칼 호수 북쪽에 위치한 나라이며 최초로 문명이 시작된 나라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 12 연방이 환국의 연방국을 이루었습니다. 이때에는 현재 중국 지역은 대부분 열대우림지역으로 사람살기에 적합하지 않았고 즉 공지나 황지였을 것입니다. 환국은 밝은 나라라는 뜻이며, 밤에도 아주 어두워지지않는 나라이기에 환한 나라라고 부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림 (중간) 일만 년전의 동아시아 지형도]


환국이후 몇 천년 지나자 점점 기온이 내려가고 강우량이 적어져서 북쪽에서부터 사막화가 진행되며, 매 2000 년마다 위도 4 도씩 온대 기후 지역이 남하하게 됩니다. 북극은 얼어붙고 바다의 물은 줄어들며 땅이 많이 드러납니다. 어느날(기원전 4500 년 경) 환국은 바이칼 호수의 근처에 있는 나라에게 통치권을 넘겨준 후 사라져버립니다. 이 나라가 배달나라이며, 배달이란 땅을 이어받다라는 뜻입니다. 즉 하늘나라에서 밝은 땅을 물려받은, 이어받은 나라입니다.


다시 몇천 년이 지나고 기후가 한랭 건조화 진행에 따라 문명 중심지는 점점 남하하게 되며, 농경지대도 점점 남하하게 됩니다. 마침내 배달나라도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지며, 기원전 2500 년 경 배달나라의 뒤를 이어 단군나라가 세워집니다. 단군나라는 한랭건조화 기후에 맞춰, 흑룡강에서 서남방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황토지대를 따라서 남하하며 농경을 계속합니다. 한랭건조화 속도가 빨라지고, 인구증가에 따라 산림황폐가 오며, 홍수를 자주 겪게 됩니다.

[그림 (왼쪽) 동아시아 대륙의 황토고원지대]


단군조선(대조선, 고조선)에서는 농경효율화와 함께 홍수통제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됩니다. 또한 인구증가로 이때부터 각 부족들끼리 전쟁이 시작되며, 통치의 개념에 의한 나라가 정립됩니다. 이때에 역법이 정립되고 만성들에게 농사법을 가르칩니다. 문명의 중심지 황토지대는 점점 남하하며, 문명이 더 멀리까지 퍼져나가게 됩니다. 이때를 서기 전 삼천 년(BC 2500년) 하나라 성립시기 정도로 추정해봅니다.


한랭화가 진행 됨에 따라 살던 문명의 중심지가 내려오고, 문명의 중심권을 기점으로 하여 먼저 내려온 사람들은 남만족과 동화하여 남만족이 되며, 늦게 내려온 사람들은 북적이 되며, 동쪽과 서쪽으로 내려온 사람들은 동이와 서융이 됩니다. 동이 할 때의 이(夷)자는 큰 활이라는 뜻 이전에 큰 사람을 뜻하는 글자였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즉 큰 활을 들었던 덩치가 큰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하, 상, 주, 나라는 어쩌면 현재 추정되는 것보다 훨씬 더 북쪽에 중심지역이 있었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하나라는 현재 내몽고 치치하얼이나, 하얼빈이나, 장춘 지역이 중심이어야 하고, 은나라는 통료나 적봉지역이, 주나라는 황하가 북행으로 가다가 동행으로 바꾸는 그 지역(오르도스 근처)이 중심지역이었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제가 좀 높은 위도로 추측하는지도 모릅니다만.) 주나라 시절까지도 산동반도 서쪽에도 거대한 바다(발해라는 이름이었지요. 발해는 바다가 줄어지고 작은 호수가 되자 그 이름을 지금의 요동반도 아래의 바다에게 넘겨줍니다.)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근처는 아직도 호소, 늪지대 같은 것이었을 테지요.


황하는 수로를 사오백 년 마다 크게 바꾸었으며, 즉 산동성을 기준으로 북과 남으로 바뀌고요, 작게는 몇 십 년마다 바꾸었습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강우량이 많았었기에 류량에 섞인 황토의 량도 많아서, 하류에 퇴적물로 많았을 것이며, 고대로 갈수록 수로를 크게 바꾸는 주기가 빨라졌을 것이며, 수로를 바꾸는 지점도 상류지역으로 올라가서, 현대의 삼문협 가까이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지요. 즉 시대가 후대로 올수록 홍수가 나서 황하가 범람하는 지점은 점점 하류 쪽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또 토사량의 퇴적으로 주나라 때의 동해 해변과 현대의 해변은 아마도 크게는 수십 킬로에서 수 킬로 만큼 차이가 있을 것이며, 처음의 산동성은 거의 섬이었다가 점차 연결 부위가 많아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야택(수호지의 배경이 되는 지금의 미산호이지요, 과거 한 때에는 발해라고 불리웠던 적이 있지요.)이 바다에서 호수가 됩니다. 과거에는 중원대륙의 호수가 지금보다 훨씬 많고 넓었으며, 바다라고 부르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과거의 자료를 읽으면서 거짓인 것이 너무 확실한 것들도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고구려를 공격했다는 수나라의 백만 대군을 생각하자면, 그 백만 대군이 움직인다는 것을, 사람과 무기와 말과 군량미 들을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바로 엉터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백만 명이 걸어서 2500 킬로미터를 가서 전투를 했다면 하루에 이동거리 30 킬로미터로 치면 걸어가는 데에만 석달 걸리고 그 동안 먹을 미곡 량만 따져도 왕복을 치면 군량미 백만 석을 가져가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백만 명은 군대가 아니라 거대한 식량운반대가 되고 맙니다. 말을 타고 움직인다고 가정하자면 백만 필의 말이 필요해지고 그 말들이 먹을 건초까지 가져가야 하니 더 복잡한 결과가 나오게 되며 거짓말인 것을 알 수 있지요. 예컨데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하면, 돌하나를 깍아 옮겨서 성벽을 쌓을 것을 구체적으로 작업량 따져보면 진시황 재위 15 년에, 도로와 성곽 등 그 많은 토목 공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게 됩니다. 즉 후세의 조작이란 것입니다.

093황토고원지대.jpg


작가의말

필독자료는 소설의 밑바탕 개념이 되는 것이기에 필독을 권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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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아린총관 자리잡다 15.07.04 991 1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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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속죄은(贖罪銀)을 내시오 15.07.02 1,040 15 13쪽
91 거산(巨山)에서 일어난 참사(慘事) 15.07.01 1,099 1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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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전쟁준비 +1 15.06.29 1,186 12 15쪽
88 칼을 뽑으면 칼이 주인노릇한다 15.06.28 973 17 12쪽
87 배반하지 못하는 이유 15.06.27 961 14 12쪽
86 기사회생(起死回生) +2 15.06.26 1,130 13 11쪽
85 포박그물에 잡히다 15.06.25 1,079 1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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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흑응회 전토 500 무를 갖추다 15.06.23 1,119 13 11쪽
82 천가 둘째 공자 15.06.22 1,084 14 9쪽
81 선아의 눈물 15.06.22 1,129 16 11쪽
80 소산(小山)의 비밀(秘密) +1 15.06.20 1,228 17 10쪽
79 미필적 고의(故意) 15.06.20 865 15 10쪽
78 <필독자료>중원대륙에 있었던 고려제국 +2 15.06.18 1,456 14 16쪽
77 누르하치 딸을 시집보내다 15.06.18 1,192 13 16쪽
76 조선국(朝鮮國) 병탄을 상주(上奏)하다 15.06.17 1,159 17 16쪽
75 누명(陋名)을 쓰다 15.06.16 1,129 15 14쪽
74 자릿세를 내라 15.06.15 938 15 16쪽
73 난정의 소풍(逍風) 15.06.13 1,228 18 15쪽
72 아기씨 받기 실패 15.06.13 691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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