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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舶 님의 서재입니다.

흑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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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金舶
작품등록일 :
2015.04.20 05:42
최근연재일 :
2015.07.09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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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6.2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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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미필적 고의(故意)

DUMMY

초겨울에 들어서면 제남 선착장의 하루는 진시무렵에 시작되며, 사시 무렵에는 멀리 떠나는 배들로 한차례 붐비게 되었다. 다시 오시(午時)가 지나면 이제는 가까운 곳으로 떠나는 배들로 인해서 다시 한차례 붐비게 되며, 이어서 가까이에서 도착해오는 배들로 혼잡을 더해가는 것이다. 그리고 신시 경부터 멀리서 온 배들이 도착하면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다. 물론 도착하는 배들은 사정에 따라 해질무렵까지 좀 늦어지는 수도 있었으며, 흑돈들은 이 시간대에 맞춰서 제남부성과 선착장들을 오가며 열심히 사람들을 실어날랐다. 초겨울 무렵에는 배 척수(隻數)로 칠 할 가량이 화물선이었으며, 나머지가 여객선이었다.


화물선들은 갖가지 물목 들로 가득 채워져서 부두에 대어져 있었으며, 각부들은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며, 강물이 얼기 전 한해의 마지막 대목을 구가하는 것이다. 이 때가 선착장 근처의 창고들이 연중에 가장 많은 물목들을 고방(庫房)에 품게 되는 시기였으며, 그 중 가장 많은 부분은 등주부나 래주부에 있는 군병들의 보급 물목 들로써, 이때에 창고에 들어가서 내년 5 월 경까지 산동성의 동쪽으로 조금씩 주둔 군의 형편에 따라 풀려나가는 셈이었다. 게다가 제남 인근에서 생산되는 가지가지의 물목들 중 아직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물목들은 제남부의 창고에 들였다가 처분되는 대로 다시 이동해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해마다 다르지만 11 월이 되면 강물이 얼어붙는 날이 언제일지 알 수 없어서, 자연히 수로 이용은 줄어들게 되고, 선착장 역시 한산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년 1월이 다 가기까지 약 두 달간 비룡방 녹수방은 한가해지며, 각부들에게도 일거리가 줄어서, 혹독한 추위가 몰려오는 셈이었다. 그래서 각부들은 이 마지막 성수기를 이용하여 돈을 조금씩이라도 모아두어야만 겨울을 날 수가 있었으며, 녹수방과 비룡방은 이 때에 자방(自幇)에 소속된 각부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많이 저축해둬야 한다고 독려하여 자기 조직에서 겨울나기 이탈자들이 많이 나오지 않도록 하였다.


비룡방의 상향주와 녹수방의 정향주 역시 년말을 맞아 폭주하는 물목들을 어떻게 보관해야 창고를 보다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데에 연구를 하면서 어떤 때는 비룡방의 창고를 녹수방이 빌리기도 하고, 때로는 녹수방의 창고를 비룡방이 빌리기도 하면서 서로가 양측의 이익에 도움이 되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물목이 많고 적음에 따라서 각부들의 운영 역시 수시로 서로에게 도움이 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벌써 오래 전부터 관행처럼 그렇게 해왔던 일이었기에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며칠 전 회의에서 있었던 흑응회와의 문제로 상향주가 정향주에 대해 좀 서운함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예년과는 다른 점이었다. 지난 회의에서 정향주가 좀더 강경하게 나서 주었다면 임향주도 중립에서 자기들 편으로 기울었을 가능성이 커졌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흑응회주 역시 굴복할 수도 있었을텐데, 수십여 년을 서로 돕고 살아온 녹수방이 비룡방을 좀더 적극 지지하지 않았음에 그 서운함이 쉽게 물러가지 않았다. 물론 그 서운함을 내색하지는 않고서 평년과 같이 협조를 해나가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상향주 자신은 자기가 그 처리를 잘못하였음에 근본적 책임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비룡방, 녹수방, 오지회 세 방회가 이 일을 같이 시작하였다면 모르되, 처음에는 혼자 독식하려는 것처럼 비룡방 혼자서 추진하다가, 잘 되지 않음에 그 때에서야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협조를 받아야 할 사람들로부터 원활한 협조를 끌어내지 못할 태도였다. 상향주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현재의 흑돈사업의 규모가 혼자 먹기에도 그 덩어리가 작았던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3 방회가 상의를 하였다면 아마 두 향주는 상향주에게 그냥 털어버리고 미련을 버리라는 올바른 조언을 하였을지도 몰랐다.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曹操)의 계륵(鷄肋)처럼 누구에게나 살다보면 아쉽지만 그냥 털어버릴 것들이 있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상향주는 왜 이것에 연연하였던 것인가는 본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굳이 이유를 찾아본다면 용쟁호투가 활발하게 진행되던 그 때가 청룡파도 잘나갔던 전성기였던 셈이며, 그 화려한 한 때의 추억에 너무 집착한 것은 아닐지? 청룡파 관원으로 자기 아들 집어넣어달라고 상향주에게 메달리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는데, 정말 자기 평생에서 최고의 인기였었다. 그러나 청룡파라는 무관(武官)의 영화(榮華)는 자체발광이 아니었고, 보인판매라는 도박사업의 후광 덕으로 함께 반짝 거렸던 것인데, 도박사업이 없어지자 함께 빛이 꺼져버렸는데, 상향주는 이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던 것이 아닐까? 상향주가 청룡파에게 미련을 끊지못하는 진짜 이유는 다름 아니라 용 보인을 많이 샀다가 큰 피해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상향주의 말못하는 가슴 속이었다.


제남 3 방회가 친밀해진 덕분으로 각 회의 중견간부들 사이에서 친구를 맺고, 두어 달에 한번씩 술자리를 만들어 얼굴을 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술자리에서 비룡방 제남향 소속 경비대 보수 한 명은 오지회 임향주 밑에서 일하던 친구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술안주로 듣게 되었다. 이야기는 까만돼지라고 불리는 흑돈회주의 특별한 재주에 대한 것인데, 바로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것이었다. 오지회의 보수는 뱀장어 구이 이야기를 말하지 않기로 하였지만 술 몇 잔을 마신 다음에는 그 약속까지 삼키게 되는 것이니, 잘못한다는 의식도 없이 자기 나름의 신기한 경험을 털어놓게 되었다. 그래서 바로 어제 대청하변에서 머리털 난 후 처음으로 맛있는 뱀장어구이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누구에게는 이런 일들을 말하지 않고 참기가 꽤 어려운 법이다.


듣는 사람이 좀 믿기 어려워하자, 다시 지난 해에도 까만돼지는 대청하에서 물고기를 구워서 둘째 딸에게 먹여주었으며, 그 때에 둘째 딸은 까만돼지에게 몸을 더럽혔다고 본인 입으로 말하였으며, 그것 때문에 파혼을 하였다고 말하게 되었다. 나중에 까만돼지를 불러 확인하여 둘째 딸의 몸을 망쳤다는 말이 거짓말임이 밝혀졌다는 것도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두 사람은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까만돼지의 초능력에 감탄하며 술 한잔을 잘 먹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이야기는 상향주의 귀에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임향주의 둘째 딸이 몸을 망쳤다는 거짓말은 중요한 내용이 아니기에 거짓말인 것이 밝혀졌다는 사실도 굳이 강조될 필요가 없었다.


상향주는 다시 그 이야기를 부향주와 보수들 서너 명이 있는 데에서 풀어놓았으며, 이로써 소문은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것이 소문의 주가 아니라 작년에 까만돼지가 임향주의 둘째 딸을 범했다는 것이 소문의 주가 되었던 것이다. 상향주는 이 때에 임향주의 둘째 딸이 이미 머지않아 혼인을 한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들었던 그 이야기가 소문이 퍼지면 좋지 않을 것임도 알고 있었다. 만일 이 이야기를 상향주가 처음 들었을 적에 즉시 보수의 입을 닫게 만들고, 임향주를 만나서 흑돈 사업에 대해 자기의 뜻에 맞도록 협조하라고, 소문을 내지 않을 것과 조건부 거래를 하였다면 아마도 임향주는 굴복했을지도 몰랐다. 임향주에게는 매달 은자 20 량 짜리 자릿세 일과 딸의 혼사를 감히 비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향주는 그만 그러지 못하였던 것이다.


며칠 후 그런 소문이 이미 많이 퍼져서 자기에게 다시 메아리 되어 들어온 후에야 상향주는 후회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될 것이었는데, 내가 왜 그렇게 했을까 하고 자책을 하였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상향주가 5자 회의를 하고 돌아온 날, 임향주에게 느꼈던 서운한 감정을 부하들 앞에서 그대로 노출하였으며, 부하들은 상향주의 오래된 충복들이어서 함께 임향주에게 섭섭해 아였으며, 그래서 그들 역시 임향주에게 끼칠 악영향을 다소간 기대하는 심리가 있었다 할 것이다. 상향주는 부하들을 모아서 늦게나마 아예 그 소문을 못들은 척, 말하지도 않은 것으로 입단속을 철저하게 하였다.


10 월 중순이 지난 며칠 후 임향주의 파혼 소식이 들려왔을 때에 상향주는 가슴이 덜컥하였다. 이것은 상향주에게는 고의가 거의 없는 우발적 실수였다. 그러나 이제 어떻게 수습할 방도도 없이, 임향주의 둘째 여식이 파혼을 당하는 복구불가능의 피해를 일으켰던 것이다. 상향주는 - 나는 그 소문을 몰랐었다 - 고 혼자 우격다짐을 하다가 한편으로는 그 반점 점소이 놈 때문에 임향주도 결국 피해를 보는구먼 하고 고소하다는 생각도 하였다. 이제 상향주는 마음을 다시 잡았다. 자기가 그 말을 퍼트려서 꼭 그것때문에 파혼이 된 것이라 할 수는 없으며, 또 자기 아닌 다른 누가 그 소문을 동시에 퍼트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로 하며, 스스로의 입장을 정당화 하였다. 상향주는 다시 한번 부향주와 보수, 갑수들을 불러서 입들을 단단히 동여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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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필독자료>중원대륙에 있었던 고려제국 15.07.09 1,280 7 17쪽
98 절현(絶絃)의 고사(古事) 15.07.08 1,094 13 15쪽
97 그냥 덮어두어야 하는 이유 15.07.07 1,072 14 14쪽
96 고소(告訴) 보다는 협상(協商) 15.07.06 793 14 12쪽
95 아린총관 자리잡다 15.07.04 991 15 15쪽
94 비룡방의 보고서(報告書) 15.07.03 1,151 13 14쪽
93 <필독자료>과감한 추측 15.07.02 1,101 13 13쪽
92 속죄은(贖罪銀)을 내시오 15.07.02 1,040 15 13쪽
91 거산(巨山)에서 일어난 참사(慘事) 15.07.01 1,099 15 15쪽
90 호구(虎口)에 들어서다 15.06.30 970 14 14쪽
89 전쟁준비 +1 15.06.29 1,186 12 15쪽
88 칼을 뽑으면 칼이 주인노릇한다 15.06.28 973 17 12쪽
87 배반하지 못하는 이유 15.06.27 961 14 12쪽
86 기사회생(起死回生) +2 15.06.26 1,130 13 11쪽
85 포박그물에 잡히다 15.06.25 1,079 16 13쪽
84 분노의 수레바퀴 15.06.24 1,005 15 15쪽
83 흑응회 전토 500 무를 갖추다 15.06.23 1,119 13 11쪽
82 천가 둘째 공자 15.06.22 1,084 14 9쪽
81 선아의 눈물 15.06.22 1,129 16 11쪽
80 소산(小山)의 비밀(秘密) +1 15.06.20 1,229 17 10쪽
» 미필적 고의(故意) 15.06.20 866 15 10쪽
78 <필독자료>중원대륙에 있었던 고려제국 +2 15.06.18 1,456 14 16쪽
77 누르하치 딸을 시집보내다 15.06.18 1,192 13 16쪽
76 조선국(朝鮮國) 병탄을 상주(上奏)하다 15.06.17 1,159 17 16쪽
75 누명(陋名)을 쓰다 15.06.16 1,129 15 14쪽
74 자릿세를 내라 15.06.15 938 15 16쪽
73 난정의 소풍(逍風) 15.06.13 1,228 18 15쪽
72 아기씨 받기 실패 15.06.13 691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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