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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舶 님의 서재입니다.

흑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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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金舶
작품등록일 :
2015.04.20 05:42
최근연재일 :
2015.07.09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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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5.06.18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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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
16쪽

누르하치 딸을 시집보내다

DUMMY

"그럼요, 걱정마세요. 비밀을 지켜야 함은 두말할 필요없을 것이고요, 우리가 도움이 되어 잘 정리 되셨다니 큰 다행입니다. 이렇게 만남 김에 개인적으로 한 가지 궁금한 것을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예, 너무 어려운 것만 아니라면요?"


"운남성(雲南省) 세사 양영(楊榮) 태감의 소식이 궁금합니다. 지난 5 월에 죽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그 후로 어떻게 일이 흘러갔는지요?"


[만력 34년(丙午年, 서기 1606년임) 운남성 임안부(臨安府 : 현재 운남성의 건수현 建水縣 지역)에서 만성들이 반항하여 광감세사의 수행원 6 명을 때려죽인 사건이 일어남, 이에 세사태감 양영은 운남 도지휘사사에 소속된 군병 2000 명을 동원하여 임안부 만성 수백 여 명을 체포하여 전원 사형에 처하였다. 이중에 한인은 없었고 여러 남만족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만족 만성들이 다시 반발하여 만여 명이 아문 근처에 모여들었으며, 일부 군병들도 세사 태감들의 횡포에 반발 가세하여 민란(民亂)과 병란(兵亂)이 함께 일어나게 되었다. 그들은 양영 태감과 세사 징수원 일행 50 여 명을 타살하였으며, 결국 인근 3 개 성, 사천성, 귀주성, 광서성의 군병을 동원하여 난리를 제압하고, 만성들을 위무(慰撫)하여 해산시킨다.]


"그건 우리 동창이 조사해보니 좀 어이없는 사고였습니다. 만성들이 세사 수행원들을 너무 두려워하다 보니 처음에 과잉 반응으로 6 명을 죽이게 되었고, 양영 태감은 군병을 동원하여 살인자들을 징치하려고 했으나 수백 명이나 되는 만성들의 떼거리에 놀라 군병들에게 진압명령을 내려서 그들이 모두 죽이게 되었으며, 다시 더 많은 만성들과 일부 운남의 군병들까지 난리에 끼어들어서 양영 태감 등 50 여 명을 죽이자, 사천성, 귀주성, 광서성의 군병들을 동원하여, 모여든 남만족 만성 만 명을 위무하여 해산시켰습니다. 너무나 어이없는 일이었지요. 세사들이 아랫 사람들을 잘 가르치지 못하여 생긴 문제였지요. 임안부는 남만족들이 많이 살고 있으나 중원의 문물이 일찍부터 많이 스며들어서 위무하는 일이 좀 쉬었다 할 것입니다. 임안부는 원나라 이전 송나라의 남쪽 도읍지였습니다. 그래서 중원 문물을 일찌기 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남송의 도읍지는 현대 항주의 서쪽 임안이 아니라, 운남성 동남쪽의 건수현 지역이다. 명나라 시대에는 그곳에 임안부가 설치되어 있었다.]


"예, 그만하기를 다행이라 해야겠지요. 양영 태감이 죽고서 그 일가족들은 남아 있을텐데 혹시 그들의 소식은 알 수 없나요? 동창에서 그들까지 챙기지는 못할거라 생각하지만 혹시나 하고 묻습니다. 저는 양영 태감과 친분이 좀 있었습니다."


"그 양영태감의 가족들은 낙양에 사는 정수훈 추관이라고 그 신사가 돌봐주었을 것입니다. 정 추관이 3 년 전 자기가 모셨던 세사 진증(陳增)태감이 돌아가시자 그 때부터 태감들이 죽게 되면 그 뒤를 돌봐 주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우리 환관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고마운 일이지요. 왕태감님도 줄을 찾아 부탁을 해놓으시면 괜찮을 것입니다."


"그것 참 다행이군요. 낙양성의 추관 정수훈이라고요?"


"예, 낙양에서 몇 대째 오래 살고있는 대지주 신사(紳士)라고 합니다. 까다롭게 손익 따지지 않고 어려운 점을 순수하게 도와주려한다 그럽니다."


"우리 태감들에게는 정수훈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한 편이지요. 나도 한번 연락해 보아야겠네요."


"동창에서는 국경 밖 소식도 두루 수집 할텐데 저는 제독님께 동서남북 돌아가면서 국경 밖 소식을 분위기만 간략하게라도 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병부에도 소식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그것은 주로 도지휘사들 내부의 정보뿐인지라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동창에서 접하는 정보는 아직 불확실한 것들이 많아서 그대로 공개하기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확실한 거 몇가지 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상서님의 말씀이 도움이 많이 되었으니 저도 그 값을 내야할 판입니다. 하 하 하."


"오고가는 정, 주고받는 정이라는 말씀이지요?"


"군(軍)의 일로는 북방의 달단족과 여진의 누르하치 소식이 전부입니다. 근자에는 누르하치가 단골로 입에 오릅니다만."


"여진의 누르하치는 벌써 군세가 5 만이라면서요?"


"군세는 병부의 보고가 거의 맞을 것입니다. 첫 번째 소식은 달단족 중에 할하만인대라고 대흥안령산맥 서편 기슭에 유목을 하는 부족들입니다만, 그들이 누르하치에게 칸(Khan)이라는 명칭을 올렸습니다. 동창에서는 이것이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이라 판단했습니다. 징기스칸 이후로 달단족들은 칸이라는 호칭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황금씨족이라 해서 징기스칸의 직계 후손 중에서도 쿠빌라이칸의 직계 후손들에게만 칸 명칭을 사용하였습니다. 즉 황금씨족만 칸이 될 수 있다 그것이 묵계로 된 것이지요. 그런데 누르하치에게 칸 호칭을 추증(推贈)한 것은 달단족의 어떤 율법이 깨진 것이니 대사건이라 할 것입니다."


"예, 그건 정말 큰 사건이군요."


"그렇습니다. 삼 년전 리그덴 칸이라고 차하르만인대에서 할아버지에 이어 칸에 오른 13 살 먹은 아이가 징기스칸 처럼 해보겠다고 하였다가, 신뢰를 잃고서 다시 달단족들은 분열되었습니다. 이틈에 달단족 서쪽에 자리한 오이라트(와라족) 부족들이 할하부를 공격하였는데, 할하부는 가까운 차하르부에게 원병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또 여진부족 중에서 가까운 해서여진에도 원병을 구하지 않았고요, 거리가 먼 누르하치에게 요청을 하였던 것입니다. 누르하치는 기마병 2500 명을 보내서 할하만인대를 도와주고, 그 덕에 할하부는 오이라트에게 밀려서 동남쪽으로 무사히 피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감사 표시로 누르하치를 칸으로 인정한다는 문서를 보낸 것입니다."


[만력 34년(丙午年, 서기 1606년임) 2월 - 8 월, 몽골 할하만인대(칼카부)는 몽골 오이라트족(와라족)의 침공을 받고, 거리가 먼 누르하치에게 원병을 요청하였다. 누르하치는 2500 명의 기마병을 파견하여 할하부를 도와주며 오이라트군을 물리친다. 이로써 할하부는 대흥안령산맥의 서남쪽 기슭으로 바짝 쫓겨나게 되었다. 할하만인대는 징기스칸의 동복(同腹) 동생인 카사르와 징기스칸의 충신 제장(諸將) 들이 징기스칸에게 대흥안령산맥 동서를 영지로 받아서, 그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왔으며, 이들이 할하부의 구성원이었고, 황금씨족은 아니었으나 자부심이 아주 강한 부족이었다. 몽골에서의 칸은 황제이며, 칸의 명의는 몽고의 40 부족이 모두 모여 인정하거나, 칸의 후손으로 물려받거나, 칸이 직접 인정을 해주는 방법으로만 칸(= 이것이 명예 칸임)이 될 수 있었다.]


"파병비로 은자를 내기 어려우니 그 대신 명예를 준 것이라 볼 수도 있겠군요."


"예, 그러나 이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게, 그동안 달단족들은 여진족들을 져르첸 또 져르첵이라 불렀습니다. 져르첸, 져르첵 이 말은 달단족 말로 신하국, 노예국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실제로 여진은 할하부의 오래된 신하국으로 징기스칸 때부터 공물을 바쳐왔었습니다." [숙신이 여진의 어원이란 주장이 있지만, 져르첸, 져르첵이 여진, 여직의 어원이라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명에서는 여진 또는 여직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달단과 여직의 관계가 대등하게 변하는 것인가요?"


"아니지요. 할하부는 누르하치를 위로 모신다는 것입니다. 할하부가 다른 곳이 아닌 누르하치에게 원병을 요청한 이유는 누르하치야말로 신의도 있고 그들을 구원해줄 능력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할하부 내의 세력 중심인 카사르의 후예 커얼친부는 13 년 전 일어난 전투, 즉 만력 21년, 계사년(癸巳年, 서기 1593 년 임)에 해서여진 에허부가 주동이 되어 해서여진과 달단족들 9부 연합으로 3 만 군병을 내어서 누르하치 군병 1만 여 명을 기습할 때에 왕이 직접 참전을 하였습니다. 그 때에 9부 연합군은 절반의 병력을 살상당하고 패퇴합니다. 커얼친 부는 그 때에 누르하치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다시 누르하치를 기억하게 된 것이지요."


[9부 연합 기습 공격은 누르하치 군이 잘 조련이 되어 있었으므로 실패하였다. 이 전투에서 총 지휘자인 해서여진 예허부 수령은 전사하였으며, 누르하치는 그 시신을 반으로 잘라서 상체만 예허부로 보낸다. 이것은 강력한 경고였다. 예허부 수령을 이어받은 아들 부양구(布揚古) 족장은 누르하치에게 화해선물로, 동가(東哥)라는 이름의 자기 누이동생을 시집보내겠다고 말하고 화해를 요청하였다. 그런데 당시 11 살 짜리 동가는 누르하치가 아버지를 죽인 원수이기 때문에 시집갈 수 없으며, 누구든 누르하치를 죽인 사람에게 시집가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부양구는 할 수 없이 자기의 고모를 누르하치에게 시집 보내는 것으로 양해를 얻는다. 이것은 예허부에서 누르하치에게 두 번째로 왕족여인을 시집보낸 것이다. 첫 번째는 누르하치의 8 남인 홍타이지를 낳은 여인으로 예허부 출신이었다. 누르하치를 이어 황제에 오른 홍타이지의 어린 시절은 자기의 친모 즉 외가가 자기의 아버지와 계속 적대관계에 있었으므로 마음 고생을 아주 많이 하였다.]


"누르하치가 점점 강성해진다는 말씀이군요?"


"예, 누르하치는 계속 힘을 뻗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창에서는 앞으로도 더욱 달단족과 여직의 움직임에 신경을 쓸 예정입니다. 참 누르하치의 또다른 소식입니다. 누르하치가 자기의 딸을 해서여진 휘파부의 수령 보인다리(拜音達理)에게 시집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지금쯤이면 이미 시집을 갔겠지요. 누르하치 군대는 야인여진을 이미 대부분 굴복시켰으며, 하다부족은 7 년 전에 합병당했고, 이번 혼인으로 해서여진의 휘파부족이 누르하치에게 넘어간 것입니다. 이제 예허부족 중에 남은 것은 예허부족과 우라부족 뿐입니다."[ 여진은 건주여진, 해서여진, 야인여진으로 나뉘며, 다시 해서여진은 하다부, 휘파부, 우라부, 예허부 4 부로 이루어졌다.]


"딸을 시집 보낸다는 것은 정략결혼을 시킨다는 말이겠지요."


"딸을 시집보낸다는 것은 일종의 굴복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굴복의 일종입니다. 아쉬운 게 있으니 좀 봐달라 그런 뜻이 있지요. 누르하치는 강한 군병을 보유하였는데도 뭘 아쉬워 했을까요? 이것은 두 분에게 문제로 낼테니 한번 알아맞춰 보십시오. 누르하치는 휘파부 수령 보인다리에게 무엇이 아쉬워 딸을 시집보내야 하였을까요?"


"잘 모르겠지만 누르하치는 아쉬울 게 없으니 진정으로 서로 화해를 하자는 뜻으로 딸을 시집보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만."


"우리 동창에서 확인한 것은 누르하치는 정말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누르하치는 각 부족들을 합병을 할 때에도 어떻게든지 싸우지 않고, 또 싸우더라도 싸움이 끝난 후에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뭉쳐서 하나가 될 수 있게 그런 노력을 한다는 사실을 조사해서 알았습니다. 건주여진 내에서도 그랬고 야인여진이나 하다부족을 합병할 때에도 그랬지요. 이번에 보인다리에게 딸을 시집보낸 경과를 자세하게 말씀드리자면 두 분 다 좀 놀라실 것입니다."


"......"


"휘파부의 보인다리는 할아버지가 죽자, 숙부들을 모두 죽이고, 아버지도 제치고, 자기가 수령이 된 자입니다. 어떻게 보면 잔인무도한 자이고, 어찌보면 일대의 효웅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렇게 잔인한 일을 저질렀으니 문제가 생기지요. 숙부를 따르던 세력들 다수가 휘파부를 몰래 떠나서 예허부로 귀순해 가는 사건이 생깁니다. 그래서 보인다리는 예허부에게 도망간 자기의 부족을 돌려달라고 합니다만 거절당합니다. 보인다리는 누르하치에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누르하치는 승낙을 하며, 자기의 군대를 보내 함께 예허부와 싸우자고 말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예허부의 태도가 바뀝니다. 예허부는 보인다리에게 미안하다며 도망온 부족들을 모두 돌려주겠다고 말하고, 그에 더하여 자기의 여동생 동가를 보인다리에게 시집 보내겠다고 말하면서 먼저 누르하치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말합니다. 동가는 예허부가 9부 연합 기습이 실패한 후에 화해의 선물로 누르하치에게 시집보내기로 했었다가 취소가 되었는데, 바로 그 동가를 보인다리에게 주겠다고 그런 것입니다. 당시 누르하치에겐 동가 대신 동가의 고모를 시집보냈지요."


"아 동가라는 여동생이 십삼 년이 지나도록 아직 시집을 가지 않았나 보군요?"


"금년 동가는 24 살이며, 그 동안 여러차례 혼삿말은 있었지만 아직 시집을 가지 않았습니다. 보인다리는 누르하치와 단교합니다. 왜냐하면 동가라는 여인은 9 살 때부터 여진 제일의 미녀로 이름을 떨쳤으니까요. 누구든 한번만 보면 정신이 오락가락 한다고 합니다. 사실 여부는 모르지만 하여튼 그런 미녀라니 보인다리는 누르하치 열 명 하고라도 단교를 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이쁘길레......"


"휘파부 수령 보인다리는 누르하치와 단교한 후 동가를 보내라고 말하지만 예허부는 들은 체도 하지 않습니다. 물론 도망온 부족을 돌려주지도 않았고요. 사기당한 것이지요. 그래서 보인다리는 다시 누르하치에게 도와달라고 말합니다. 예허부족 놈들이 천하 미녀 동가를 내세워서 유혹하는 바람에 넘어갔다며, 실수를 했다고 용서를 빌지요. 그래서 누르하치는 보인다리를 용서하고, 군병을 보내 도와주는 것도 승락하고, 또 자기의 딸을 시집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천하미녀 동가 대신에 부족하나마 자기의 딸로 위안을 삼으라고요. 그렇게 시집을 보내는 것이지요."


"아하, 누르하치가 정말 보통 내기는 아닙니다."


"그렇지요? 누르하치는 인물은 인물입니다."


이날 이야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에, 병장국 병필태감과 병부상서는 제독태감이 누르하치 이야기를 자세히 말해준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이성량 장군이 강성한 군병을 갖고 있는 여진 누르하치를 손보겠다고 해야 옳을 것인데 그 대신에 군병이 없는 조선국을 병탄하겠다고 하다니 그것은 바로 딴마음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었던 것이다. 누르하치가 뛰어난 인물인 것을 그리 자세하게 말할 이유가 그 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로써 이성량 장군은 얼마 못가서 군모를 벗게 될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 동창제독이 누르하치를 견제할 어떤 강력한 수단을 만들어낼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이후 예허부족은 누르하치가 딸까지 시집보내 휘파부와 친교를 회복함을 알고, 다시 휘파부 보인다리를 회유한다. 동가를 보내지 못했던 적당한 핑게를 대며 미안하다고 말하고 다시 동가를 시집보내겠다고 말하며, 그러니 누르하치와 재차 단교를 해달라고 요청한다. 보인다리는 예허부족의 꼬임에 다시 넘어가고 누르하치와 단교한다. 그러나 예허부족은 도망간 부족을 돌려주지도 않았고, 동가를 시집보내지도 않았다. 이번에는 누르하치도 휘파부 보인다리를 용서하지 않는다. 만력 35 년(丁未年, 서기 1607 년임) 누르하치는 휘파부를 공략, 보인다리와 그의 아버지를 잡아 죽이고 휘파부를 합병하였다. 휘파부족들 중에 다수는 누르하치에 합류하며, 휘파부는 이렇게 멸망하였다. 누르하치는 휘파부의 민심을 얻었던 것이다.]

[그림 명말 동북지방 세력도]

077명말동북방지도.jpg


작가의말

딱딱한 역사 이야기 가급적 줄이려 합니다만 꼭 필요한 것이어서 애독자님들께 인내심을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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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칼을 뽑으면 칼이 주인노릇한다 15.06.28 974 17 12쪽
87 배반하지 못하는 이유 15.06.27 963 14 12쪽
86 기사회생(起死回生) +2 15.06.26 1,132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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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미필적 고의(故意) 15.06.20 866 15 10쪽
78 <필독자료>중원대륙에 있었던 고려제국 +2 15.06.18 1,458 14 16쪽
» 누르하치 딸을 시집보내다 15.06.18 1,193 13 16쪽
76 조선국(朝鮮國) 병탄을 상주(上奏)하다 15.06.17 1,161 17 16쪽
75 누명(陋名)을 쓰다 15.06.16 1,130 15 14쪽
74 자릿세를 내라 15.06.15 940 15 16쪽
73 난정의 소풍(逍風) 15.06.13 1,229 18 15쪽
72 아기씨 받기 실패 15.06.13 693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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