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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114,791
추천수 :
1,166
글자수 :
581,133

작성
22.07.29 09:00
조회
887
추천
7
글자
10쪽

썩은 열매엔 아쉬움을 두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DUMMY

백수의 전음엔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한 자신감이 묻어있었다.

효령과 문 소 또한 그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비급의 존재조차 몰랐던 백수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에 엄청난 마기를 이겨내고 오히려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그렇게 연구해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바로 해냈다.

여기서 더 이상 무슨 설명과 이해가 필요할까.

하지만 결국 그들을 붙잡고 있는 건 알량한 자존심과 시기심이었다. 중간에 포기하고 중원에서 조용히 살기로 결심한 운 효령과 달리 끝까지 연구와 실패를 거듭했던 문 소는 도무지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이루고자 했던 목표가 너무나 허무하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생사를 함께 했던 동료들에게 버림받았던 순간만큼이나 문 소에게 지금의 상황은 견디기 힘든 절망과 수치심을 안겨주었다.


문 소의 고민을 끝내준 건 어느새 밝은 표정으로 돌아온 하마드였다.

그는 특유의 능글거리는 목소리로 효령과 문소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너희들의 사정은 모르겠으나 정 싸우고 싶으면 나의 성스러운 보물 창고에서 멀리 벗어나 주길 바란다.

사실 너희들의 집안 싸움을 조금 구경하면서 나중에 끼어들어서 이득을 챙겨볼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저기 있는 계집애 같은 녀석의 분위기가 살벌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라 나한테 별로 이득이 될 것 같지 않구나.

뒤를 치진 않을 테니 지금 당장 이 곳을 떠나라. 시간을 더 주진 않겠다."


하마드의 말에 파산은 또 한번 목숨을 구했다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백수도 하마드의 분위기로 대충 상황을 짐작했는지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이제 자신의 욕심을 버리지 못한 건 남의 몸을 가지고 사막까지 와서 끝이 보이지 않는 연구를 연구를 계속했던 침선 문 소 뿐이었다.

그의 고뇌를 지켜보던 효령이 다가와 문 소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우리가 정파의 간신배들에게 당해 이런 꼴이 되긴 했지만, 피비린내 나는 전쟁 속에서도 항상 지켜왔던 정의와 공정을 향한 곧은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되지 않겠냐?

이미 혈교의 비급은 우리의 손을 떠났어. 남의 것에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자고."


수십 년간 자신과 함께 전장을 뒹굴었던 전우의 위로에 악에 받쳐있던 문 소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 때 백수가 두 사람에게 다가와 조용히 포권하며 고개를 숙였다.


"정파의 기둥이신 두 분의 은덕으로 한참 모자란 제가 제 몸에 있어야 할 기운을 되찾고 갈망하던 큰 뜻을 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은혜는 반드시 잊지 않고 갚겠습니다.

두 분 대인께서도 항상 강녕하시고 마음의 평안을 찾으시게 되길 기원하겠습니다."


효령은 백수의 정중한 작별 인사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가슴 한 켠이 시리기도 한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이 저 청년을 보낼 최적의 시기라는 사실이었다.

약선과 백수, 그리고 마적들은 모두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다.

여기서 누군가 과한 욕심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더 이상의 살생 없이 모두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문 소도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자신의 몸을 되찾은 이상 엄청난 전투력을 가진 마적떼와 굳이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일 이유가 없었다.

마적들 또한 자신들의 보물 창고를 되찾은 것으로 목적을 달성했고, 조금 전 백수의 신묘한 술법을 본 후라 굳이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모든 것이 분명해지니 더 이상의 분쟁은 의미가 없었다.

사막을 지배하는 마적단의 수장 하마드는 부하들에게 보물 창고의 보수를 명령하고는 자신의 말을 타고 자리를 떠났다. 부하들도(자신의 쓸데없는 호승심으로 하나 뿐인 형제를 잃은 마적은 가장 늦게 자리를 떴다) 두목을 따라 쏜살같이 저주받은 전장을 벗어났고, 남은 건 백수 일행과 파산 그리고 효령과 문 소였다.

문 소는 마지막까지 미련이 남은 듯 흔들리는 시선을 감추지 못한 채 자리를 떠났다.

남은 건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에 감격한 파산과 백수, 무명 뿐이었다.

무명은 약선과 침선이 떠난 자리를 한참 동안이나 더 노려보다 낙타를 가져왔다.


"다른 길을 이용해서 우릴 추격하진 않을까 염려됩니다."


"그 정도로 협객의 자긍심을 내려놓았다면 우리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야."


무명은 백수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긍심이 무엇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것이 없다 하여 무공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약선과 침선은 한 명씩 따로 찾아와 덤빈다 해도 백수 일행에게는 버거운 상대였다.


"무인은 자신이 반드시 해내야 할 명분과 가치가 있을 때 진정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지. 저들에게 유일하게 남은 게 바로 정의로운 정파 오협이라는 자부심인데, 그걸 내려놓으면 저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무공이 센 낭인일 뿐이지."


무명의 눈에 비친 지금의 백수는 그 전까지와는 약간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무명은 언제나 그랬듯 백수를 믿기로 했다. 파산이야 그걸 알 리가 없으니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지만 무명은 일찍이 수많은 위험을 함께 헤쳐 나왔던 전우이자 뛰어난 지략가인 백수를 잘 알고 있었다.

백수의 말대로 약선과 침선은 백수 일행이 느릿느릿 파산의 부락으로 돌아가는 길에 추격을 하거나 정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고민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문 소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몇 번이나 울분을 토해냈다. 입은 거칠어도 항상 침착하고 냉정을 잃지 않던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반응이었다.

효령은 그것이 오랫동안 비급의 마기에 노출된 탓이라는 걸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만큼 비밀에 싸인 혈교의 대가가 남긴 비급은 그들에게 새롭고 신비한 세계였다.

그들이 보고 배워 온 그 어떤 절세 무공도 저렇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게다가 효령에겐 혈교의 비급 만큼이나 신비한 존재인 백수가 있었다.

수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다는 활인혈의 소유자, 지금 그 자를 놓치면 자신의 생에서는 다시는 볼 수 없을 가능성이 높은 하늘이 내린 인재였다.


'그를 조금 더 연구하고 싶다. 활인혈은 대체 어떻게 발현되며 약점은 없는지, 발현되면 그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알아내고 싶다.'


그것이 강호를 떠난 효령이 백수를 따라나서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이제 백수가 중원에 돌아가 세력을 키우고 자신의 무공을 극대화시킨다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그래도 아직 그녀에겐 백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주저없이 던졌던 정파의 영웅 약선의 의기가 남아 있었고, 그것이 침선과 약선의 명예를 지켜주었다.

침선 또한 곧 자신의 의지를 잠식한 마기를 떨쳐낼 것이다.

두 사람은 이보다 더 심한 유혹들을 수십 번 이겨내며 강호의 도리를 지키고 이 자리까지 온 사람들이었다.

효령은 시선의 끝에 아지랑이처럼 보이는 네바드란의 폐허를 몇 번이나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파산의 부락에 돌아온 백수는 파산에게 약속한 보수의 두 배를 챙겨주고 중원으로 떠났다.

그저 사막에서 오래 살았고 남들보다 말이 조금 더 많았던 파산은 괜한 욕심으로 위험한 길잡이 노릇을 자처한 대가를 두둑이 받고 자신의 기량에 맞지 않는 일에 뛰어들어서는 안된다는 삶의 지혜까지 얻었으니, 백수 못지 않게 유용한 여정이 된 셈이었다.

녹색의 숲과 높은 산이 보이는 중원에 들어서자 백수와 무명은 더 가볍고 빠른 말로 갈아탄 후, 사천의 동료들을 향해 말을 달렸다.

마음은 급했지만 지나치게 서두를 필요는 없었기에 허기가 지면 쉬고 해가 지면 근처의 마을에서 잠을 청했다.

청해성의 한 객잔에서 말을 세운 백수와 무명은 고소한 향이 나는 돼지고기에 차를 기울이며 여독을 풀었다. 무명이 백수를 보며 슬쩍 물었다.


"약선과 침선이라면 의협단에 엄청난 힘이 되었을 텐데 아쉽지 않으십니까?"


차로는 뭔가 아쉬웠는지 백주를 한 잔 주문한 백수가 커다란 고기 한 점을 씹으며 대답했다.


"많이 아쉽지. 이런 기연이 두 번 오지는 않을 텐데 말이야.

아니, 스승님을 만났으니 이미 두 번이나 온 건가? 앞으로 사람들을 모으다 보면 비슷한 상황이 많이 생길 거야.

버리긴 아까우나 곁에 두기엔 뭔가 찜찜한 사람이나 물건들 말이지.

예로부터 큰 일을 해낸 강호의 대협들은 썩은 열매를 알아보는 눈이 탁월했다고 하던데, 난 아직 그런 혜안을 갖지는 못한 것 같으니 그냥 열매에서 안 좋은 냄새가 난다 싶으면 썩은 열매라 여기고 미련을 두지 않으려고 해.

너도 그런 선택을 하게 될 상황이 오면 아쉬움을 갖지 말고 과감히 놓을 줄 알아야 할 거야.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동료로 삼아야 할 것이고."


"제가 그런 선택을 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내 생각엔 얼마 안 있어서 그럴 일이 생길 것 같은데?"


무명은 백수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세상 일은 농담처럼 던진 말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웬만하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차를 마셨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바램대로 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무명은 왠지 뒷목을 스치는 불길한 기운을 느끼며 속이 부대끼는 식사를 해야만 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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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괴수같은 인간, 인간같은 괴수(1) 22.07.30 898 8 9쪽
» 썩은 열매엔 아쉬움을 두지 않는다 22.07.29 888 7 10쪽
58 부정하지만 강한 수단 22.07.27 878 9 12쪽
57 잃었으나 손해는 없다. 22.07.27 920 9 13쪽
56 죽음을 넘어서다 22.07.26 885 9 11쪽
55 탈혼(脫魂)과 추혼(追魂) 22.07.23 913 7 12쪽
54 나를 만나다 22.07.21 862 7 11쪽
53 고치 속에 든 것은 22.07.21 854 6 10쪽
52 사막의 꽃은 썩었다. +2 22.07.20 888 9 15쪽
51 사막의 꽃 +2 22.07.18 889 8 12쪽
50 사천의 괴수 +2 22.07.16 909 8 12쪽
49 무명과 효령의 담판 +2 22.07.15 912 9 11쪽
48 결정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2 22.07.14 893 9 13쪽
47 이리떼는 호랑이를 죽일 수 없다. +2 22.07.13 929 10 12쪽
46 어떤 죽음에 명분이 있는가 +4 22.07.12 960 10 12쪽
45 피로 물든 손 +2 22.07.09 984 10 15쪽
44 강호의 천지안(天池眼)(2) +2 22.07.08 984 11 10쪽
43 강호의 천지안(天池眼)(1) +2 22.07.07 1,006 11 12쪽
42 새로운 길을 찾다 +1 22.07.06 1,013 11 12쪽
41 약선(藥仙) 운 효령 +2 22.07.05 1,042 12 13쪽
40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2) +2 22.07.02 1,030 12 12쪽
39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1) +1 22.06.30 1,032 12 15쪽
38 충성을 맹세하다 +2 22.06.29 1,029 9 15쪽
37 모용 세가 침투(4) +2 22.06.28 1,014 11 13쪽
36 모용 세가 침투(3) +2 22.06.25 985 11 13쪽
35 모용 세가 침투(2) +2 22.06.25 1,004 10 12쪽
34 모용 세가 침투(1) +2 22.06.23 1,052 11 11쪽
33 요령성 잠입(2) +2 22.06.21 1,065 10 14쪽
32 요령성 잠입(1) +2 22.06.20 1,096 11 11쪽
31 무사와 건달을 얻다 +2 22.06.18 1,128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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