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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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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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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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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모용 세가 침투(3)

안녕하세요.




DUMMY

"모용 선화는 유세 표국의 본채에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무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일행 중 누구보다 모용 선화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십 년 넘게 그녀의 밑에서 일을 해 온 무빈이었고, 그는 이 한 마디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비밀리에 이 곳으로 온 것 같아. 왜 이렇게 도둑놈처럼 몰래 거처를 옮겼는지는 아직 몰라. 하지만 달라질 건 없어. 모용 선화가 보초를 서는 것도 아니고 그 여자도 목적이 있어서 왔을 테니 우리의 야습을 예상하고 있지는 않을 거야. 일단 예상하기로는 내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으니까."


이 무빈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여전히 인상은 찌푸려져 있었다.


"모용 선화도 두렵지만 더 큰 문제는 아가씨 뒤에 딱 붙어다니는 구 숙정이라는 여인입니다. 나이는 서른도 안 되었지만 교활하고 영악하기가 백 살 먹은 노파같고, 무공 또한 뛰어납니다. 절 이렇게 만든 것도 그 여자입니다. 구 숙정이 있을 때는 본가의 경비 태세가 달라질 정도로 여러 가지를 꼼꼼히 살피는 통솔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그 여자는 생각 못 했는데... 여러 가지로 난이도가 높아진 건 사실이군. 아무튼 여기서 떠들어봐야 아무 소용 없고 난 계획을 정했으니 무빈과 무명은 그대로 따라주면 돼. 특히나 이 대협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일 테니 더욱 긴장해주길 바래."


이 무빈은 백수가 자신을 대협이라고 불러주는 것에 기분이 묘해졌다. 평생을 그림자 속에 숨어서 밀정으로 살던 그는 모용 가에서도 밖에서도 뚜렷한 호칭이 없었다. 그래서 한 때는 모용 가의 무술 사범이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는데, 모두 자식들 앞에서 '이 사범'이라는 떳떳한 호칭으로 불리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용 세가에서 그는 영원한 밀정이자 자객일 뿐이었다.

그랬던 그가 한 때 적이었던 청년에게 대협이라는 호칭으로 불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을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아버지는 강호의 이 무빈 대협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해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일단 처와 자식들을 모용 선화의 손아귀에서 구해내는 것이 먼저였다. 무빈의 눈에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불꽃같은 의지가 타올랐다.

그것을 가장 먼저 살핀 무명은 슬쩍 미소를 짓고는 마차에 준비한 짐을 실었다.


"저 자도 준비가 된 것 같으니 출발하겠습니다. 그럼 서녕에서 뵙지요."


"그래, 이 대협은 아직 몸이 성치 않을 테니 그와 가족들을 잘 모셔와."


"내리신 명 받들겠습니다."


무명 또한 이 무빈 만큼이나 온 몸에 차가운 투지가 가득했다. 비겁한 술수로 자신과 어린 주인을 잔인하게 살해하려 한 모용 선화의 목을 당장이라도 단칼에 잘라 백수의 눈 앞에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때로는 지나친 투지가 일을 망치는 법이라는 걸 그는 백수와 함께 다니면서 배워왔다. 지금까지 자신의 주공이 계획한 대로 따라가서 일이 잘못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확신이 그에게 있었다. 혹여 잘못되더라도 백수는 본인의 안위를 먼저 챙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무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 강한 의지와 투지에 휩싸인 두 사람이 마차를 몰고 길을 나서자 항 량이 백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두 사람으로 충분할까요? 무명 대협의 무공이야 제가 익히 알고 있지만, 모용 가의 본가에는 훈련된 무사들만 수 백은 될 겁니다."


"괜찮아, 한 명씩 줄 세워놓고 싸우러 간 게 아니니까 일이 잘 안 풀리면 도망가면 그만이야. 그래도 이렇게 공을 들여 계책을 세웠는데 이 무빈의 가족들을 구하지 못하면 그에게 함께 가자고 할 명분이 없지. 이 계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모용 선화의 눈을 속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고, 그건 하늘에 맡겨야 할 일 같아."


백수답지 않은 자신없는 말투에 항 량도 덩달아 힘이 빠졌다. 술을 그렇게 먹고도 기운이 남아도는 자호만이 쉬지 않고 마차에 짐을 실으며 투덜거렸다.


"항 선생은 협동심이... 없어!"


"아, 자호만 일을 하고 있었네. 우리도 한시바삐 이 곳을 멀리 벗어나야 하니 서두르자고."


세 사람은 마차에 짐을 싣고 노을이 지는 흙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모용 세가의 가주 모용 훤은 천성이 조용하고 침착해서 집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불호령을 내렸기 때문에 해가 진 후의 본가는 항상 사람이 안 사는 폐가처럼 고요했다. 그래도 한창 떠들고 뛰어놀 아이들을 매번 윽박지를 수는 없기에 아이들이 머무는 처소는 본가의 외곽 끝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이 무빈과 무명은 인적이 드문 골목 사이사이를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여 한 시진도 안 되어 모용 세가의 길다란 벽 앞에 서 있었다. 이십 년을 사람 눈에 띄지 않도록 훈련받으며 살아온 무빈에게 요령 성과 모용 세가는 내 집 앞마당을 다니는 것처럼 편안했다. 민가의 골목 골목을 다니는 무사들의 순찰 경로와 모용 세가 외곽의 경비들이 움직이는 동선 또한 그의 시야 안에 있었다. 무명은 인구가 적지 않은 요령 성을 한 시진 넘게 다니면서도 사람 그림자 한 번 보지 않은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무빈은 본가의 뱀처럼 길게 늘어선 담 앞에 서서 한참을 서성였다. 답답해진 무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


"더 어두워지길 기다리는 건가?"


"한밤중이 되면 이 곳의 경비는 더욱 삼엄해지네. 해가 지기 시작한 이 때가 침투하기엔 가장 좋은 때지. 하지만 이 곳을 지나는 무사는 눈치가 아주 빠른 사람이라 신중을 기해야 되네. 석군이라는 자인데 나이는 오십 쯤 되었고 모용 세가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지.

무공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기척을 기가 막히게 잘 잡아내고, 성격도 꼼꼼해서 본가에서도 믿고 맡기는 파수꾼이야."


"그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거로군."


"그의 순찰 시간은 삼십 년간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지. 그리고 저기 작은 문을 지나기 전, 큰 아름드리 나무가 하나 있는데, 이 사람이 오줌을 잘 못 참아서 저 나무 앞에서 꼭 소변을 본다네. 그의 경계가 허술해지는 유일한 순간이지. 우린 석군이 나무에 숨어 소변을 볼 때 담을 넘을 걸세."


"저 나무를 말하는 거라면 여기서 너무 가깝지 않은가? 그것도 굳이 순찰 무사가 지날 때 넘어가겠다니..."


"자네는 석군을 못 봐서 그러네. 보지 않고도 낌새를 느끼는 눈치가 보통이 아닌 사람이지. 그의 정신이 아예 딴 곳에 있을 때 침투하는 게 최선이야. 여긴 우리 집 같은 곳이니 날 믿어도 되네."


"의심을 한 건 아니야. 그럼 당신 말대로 하지."


무빈은 벽에 귀를 가까이 대고 벽 안쪽의 상황을 살폈다. 잠시 후 무빈의 귀에만 들리는 스슥하는 사람의 기척이 있었고, 무빈은 무명에게 눈짓을 보냈다. 두 사람은 마치 나뭇 가지를 넘어가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담을 넘었다.

그렇게 무림에서 가장 삼엄한 경계 태세를 자랑하는 모용 세가 안으로의 침투가 시작되었다.



한 편 모용 선화는 본가의 가장 안 쪽 모용 가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는 연못 위의 정자에서 선이 고운 청년과 타를 마시고 있었다. 청년의 이름은 모용 학, 무림 5대 세가인 모용 세가의 가주 모용 훤의 장남이자, 현재 모용 세가의 모든 것을 관장하고 있는 실질적인 지배자였다. 작은 움직임조차 없는 연못의 수면을 바라보던 모용 학은 찻잔을 집어 들고 살짝 입에 댔다가 인상을 찌푸리며 내려놓았다. 찻잔은 그가 원하는 온도보다 약간 더 뜨거웠고, 모용 가의 장남은 그런 실수를 그냥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평생을 자신을 위해 완벽하게 맞춰진 것들만 보고 대접받으며 살아온 그에게 눈 앞에 있는 자신의 동생은 수수께끼 그 자체였다. 딱히 자신에게 거역을 한 적도 없으나 돌아보면 언제나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서 있는 아이. 선화는 어느샌가 자신과 비슷한 키를 가진 처녀가 되어 있었다.

또랑 또랑한 눈망울로 자신에게 비무를 청하던 여섯 살 꼬마 아이가 언니, 오빠보다 먼저 혼인을 하고 이젠 어른의 눈빛을 하고서 자신의 앞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상황이 모용 학에게는 익숙치가 않았다. 그는 찻잔에 손을 대려다 다시 손을 내려놓고 동생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름 사람을 볼 줄 안다고 자부하는 그도 어린 동생의 눈에서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타지에서 고생이 많았겠구나. 그렇게 가버리고선 내내 편지 한 장 보내질 않아서 어머님의 상심이 깊으셨다."


"송구합니다. 손을 댈 곳이 많은 상단이라 조금 바빴습니다. 낙양 천도에 쓰일 물건들은 차질없이 보내두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음... 솔직히 차질없이 진행되어 조금놀란 것도 사실이다. 본가에서 보낸 재물들로는 많이 부족했을 텐데 유세 표국이 그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더냐? 넌 그것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이냐."


학은 눈을 내리깔면서 슬쩍 모용 선화를 살폈다. 동생에게서는 어떠한 당황이나 긴장도 느껴지지 않았다.


"예전에 아버님께서 모용 가의 세를 넓히기 위해 주변 상단의 재정 상태를 알아보라 하신 적이 있지요. 그 때 하는 김에 중원에 퍼져 있는 모든 상단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었습니다. 유세 표국은 규모 대신 내실을 키워온 쓸만한 상단이고,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도 높아보여서 그 때부터 주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듣자 하니 혼인 전에 약간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던데... 너하고는 관계없는 일이겠지?"


선화가 소매에 달린 옷고름을 움켜쥐었다. 학은 자신이 물어뜯을 부위를 드디어 찾았다는 생각에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동생의 울먹이며 풀어놓은 이야기의 전말은 자신의 상상 이상이었다. 일개 상단의 부단주가 감히 대 모용 세가의 여식을 희롱하고 겁탈까지 하려 했다는 이야기는 모용 학의 상식으로는 선뜻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옥구슬같은 눈물을 흘리는 동생에게 더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이 문제는 자신이 따로 알아보기로 하고 일단 슬픔에 빠진 동생에게 비단 손수건을 건넸다. 형제들 중 가장 아름다운 눈을 가진 선화가 학을 보며 생긋 미소를 지었다.


"이런 이야기를 할 사람은 큰 오라버니 뿐이라 다른 형제들에게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한 남자의 부인이 된 시점에 그런 흉한 일을 다시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구요."


"걱정 마라. 이 일이 새어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니. 내가 말한 대로 되지 않은 일이 지금까지 한번이라도 있었느냐?"


'그건 네가 아니라 모용 세가의 모든 식솔들이 목숨을 바쳐 해냈던 거지. 이 세상 물정 모르는 두꺼비 같은 놈아.'


선화는 속마음을 감추고 다시 한번 오빠에게 살짝 미소를 보여주었다. 학은 알고 싶었던 유세 표국의 재정 상황을 묻지 못한 것에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캐물을 때가 아닌 것 같아 선화를 보내주었다. 가족을 포함한 그 누구도 믿지 않는 그는 따로 사람을 보내 유세 표국을 샅샅이 캐보기로 마음먹고 찻잔에 손을 대 보았다. 찻잔은 그가 원하는 온도보다 조금 더 식어 있었다.

자신의 방으로 향하려는 모용 선화의 앞을 구 숙정이 막아섰다. 그녀답지 않게 가쁜 숨을 쉬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이냐?" "본가에 침입자가 있습니다."


모용 선화는 헛웃음이 나왔다. 왠만한 좀도둑이라면 담벼락만 보고도 오줌을 지리는 곳이고, 강호에서는 모용 세가보다 더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세력들이 있지만 그들조차도 모용 세가의 본가로는 쉽사리 침입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데 감히 누가?


"이 무빈인 것 같습니다. 무사의 가족들이 머무는 처소에서 그 놈의 아이들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모용 선화의 눈이 커졌다. 이 무빈의 존재는 그녀에게 손가락 끝에 박힌 작은 가시같은 존재였다. 아프지도 않고 느낌조차 없지만 계속 신경이 쓰이는 이름이 지금에서야 다시 등장한 것이다. 선화는 눈에 서늘한 살기를 담고 구 숙정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번엔 확실히 목을 가져와라. 우리 집까지 들어온 놈을 그냥 보낸다면 그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잘 알 게다."


"본가의 무사들이 눈치채지 않게 잘 처리하겠습니다."


구 숙정의 눈에도 모용 선화 못지 않은 얼음장같은 살기가 떠올랐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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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부정하지만 강한 수단 22.07.27 879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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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탈혼(脫魂)과 추혼(追魂) 22.07.23 914 7 12쪽
54 나를 만나다 22.07.21 862 7 11쪽
53 고치 속에 든 것은 22.07.21 854 6 10쪽
52 사막의 꽃은 썩었다. +2 22.07.20 888 9 15쪽
51 사막의 꽃 +2 22.07.18 889 8 12쪽
50 사천의 괴수 +2 22.07.16 910 8 12쪽
49 무명과 효령의 담판 +2 22.07.15 912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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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어떤 죽음에 명분이 있는가 +4 22.07.12 960 10 12쪽
45 피로 물든 손 +2 22.07.09 984 10 15쪽
44 강호의 천지안(天池眼)(2) +2 22.07.08 985 11 10쪽
43 강호의 천지안(天池眼)(1) +2 22.07.07 1,006 11 12쪽
42 새로운 길을 찾다 +1 22.07.06 1,013 11 12쪽
41 약선(藥仙) 운 효령 +2 22.07.05 1,042 12 13쪽
40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2) +2 22.07.02 1,030 12 12쪽
39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1) +1 22.06.30 1,032 12 15쪽
38 충성을 맹세하다 +2 22.06.29 1,029 9 15쪽
37 모용 세가 침투(4) +2 22.06.28 1,014 11 13쪽
» 모용 세가 침투(3) +2 22.06.25 986 11 13쪽
35 모용 세가 침투(2) +2 22.06.25 1,005 10 12쪽
34 모용 세가 침투(1) +2 22.06.23 1,052 11 11쪽
33 요령성 잠입(2) +2 22.06.21 1,065 10 14쪽
32 요령성 잠입(1) +2 22.06.20 1,097 11 11쪽
31 무사와 건달을 얻다 +2 22.06.18 1,129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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