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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114,819
추천수 :
1,166
글자수 :
581,133

작성
22.07.21 09:00
조회
854
추천
6
글자
10쪽

고치 속에 든 것은

안녕하세요.




DUMMY

백수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효령의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았다.

'이 사람이 바로 약선' 이라고 분명히 들은 것 같은데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었다.

효령은 분명 자신의 입으로 자신이 약선이라 말했고, 지금까지 약선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무공과 현명한 지략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여인을 보고 또 약선이라 칭하고 있는 것이다.

눈 앞의 여인은 이 세상 사람같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긴 하지만 중원인 모두가 생각하는 약선이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동네 노는 한량처럼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서 아무 곳에나 침을 캬악거리며 뱉어대는 모습에 목소리는 마치 죽기 직전의 왜가리가 지르는 괴성과도 같았다.

백수는 현재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약선 어른. 죄송하지만 저는 방금 어른께서 하신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효령은 가래를 뱉으려고 한창 모으고 있던 여인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갈기고는 의자에 앉았다. 여인이 눈을 흘기며 소리를 질렀다.


"이 망할 년이 하루 종일 정리한 머리를 건드려?!"


"입 다물어.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기 전에..."


기세등등하던 여인도 효령의 얼음장같은 경고에 입을 다물었다. 효령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 후 겨우 입을 열었다.


"두서없이 얘길 해서 이해가 안 됐을 거라 생각해요.

사실 정파 오협중 한 명으로 알려진 약선은 한 사람이 아니에요. 저기 앉아있는 저 놈과 저를 함께 일컬어 약선이라고 불렀답니다.

저기 있는 문소는 침술에 능통하며 여러 투척기를 잘 다루고, 저는 약제술과 권술을 곧잘 썼어요. 다른 네 명과는 달리 우리는 속한 문파도 없고 무림의 최고가 되겠다는 욕심 같은 것도 없었기에 되도록이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활동했지요.

저희를 보시고 어느 정도 눈치를 채셨겠지만, 지금 저희는 혈교의 더러운 수법 때문에 모습이 바뀌어있는 상태입니다.

저 놈의 원래 모습이 지금 제 모습이란 말이지요."


백수는 자신의 귀로 들었지만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 그런 일이 정말로 가능하단 말입니까, 사람의 몸이 바뀐다는 게?"


"벌써 이십 년 가까이 되었네요. 당시 마교와 혈교를 통일한 마교 교주 악불군(惡佛君)을 몰아내고 정사 대전의 승리를 눈 앞에 두고 있던 무림맹의 연합군은 여기저기에 숨어있는 마교와 혈교의 잔당들을 쫓고 있었어요. 문 소와 저는 식혼괴마(食魂怪魔)라는 혈교의 장로를 쫓아 장백산 근처에 있는 봉혼동 동굴까지 갔어요.

그 곳에서 식혼괴마를 처치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저희의 피해도 커서 한동안 그 곳에 머무르면서 내상을 치료하기로 했지요.

그런데 그 봉혼동 동굴이라는 곳은 단순한 동굴이 아니었어요. 음습한 마기가 가득찬 마공의 결정체 같은 장소였고, 예로부터 마교나 혈교의 마인들이 그 곳에서 끔찍한 끔찍한 마술과 사람에게 해로운 술법을 연구하던 장소였던 거에요.

우리는 그 곳을 탐색하다 탈혼술과 추혼술에 대해 기록된 비급을 발견했습니다.

그 비급의 내용에 따르면 탈혼술을 사용하면 몸에서 혼을 뽑아낼 수 있고, 추혼술을 사용해서 다시 그 혼을 붙잡을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정말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우리는 그 내용이 사실인지 너무나 궁금했어요.

다행히 그 곳에는 식혼괴마를 비롯한 여러 시신들이 있었기에 연구 재료는 충분했지요. 여러 번의 연구 끝에 우리는 마지막 실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두 사람의 혼을 빼내서 서로의 몸에 집어넣는다면, 그대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건지 직접 알아보기로 한 거에요.

그래서... 이렇게 된 거랍니다."


"호기심 때문에 이런 끔찍한 혼종... 아니, 이렇게 된 거군요."


아직 이해가 잘 되지는 않았지만 백수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사실이던 아니던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백수에게 중요한 건 그들이 자신의 체질을 고쳐줄 수 있는가 하는 것 뿐이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바뀌었든 목소리가 바뀌었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현재 효령은 의협단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위치에 올라서 있었다.

어찌 될 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체질이 고쳐져서 내공을 회복하고, 거기에 설득이 잘 되서 침선이라는 사람까지 의협단에 합류한다면 최상의 결과가 되는 셈이었다.

약선 한 사람 만으로도 엄청난 전력이 되고 있는데, 그와 비슷한 실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침선까지 합류하면 의협단은 순식간에 웬만한 문파는 건드릴 수도 없는 힘과 이름값을 얻게 된다.

백수는 약선과 침선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두 분의 사정 잘 들었습니다. 약선 어른의 이야기를 들으니 두 분이 다시 본 모습을 되찾는데 제 도움이 필요한 것 같은데, 어떤 일이든 힘 닿는 데까지는 돕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어린 아이보다도 체력이 약한 상태입니다. 일단 제 활인혈을 풀어주셔야 두 분이 원하시는 실험을 도울 수 있을 것 같군요."


"지금 활인혈이라고 했냐?"


문 소가 걸걸한 목소리로 물으며 백수에게 다가와 손가락 끝과 정수리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구만. 죽기전에 활인혈의 소유자를 보게 될 줄이야. 용케도 이런 녀석을 찾았네?"


"그래서 중원을 떠나지 말라고 했잖아. 무슨 수를 써서든 우리 단주님의 활인혈을 다시 살려내. 그래야 우리도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어."


문 소는 갑자기 크게 웃으며 자신의 애완 전갈이 들어있는 술병을 거꾸로 잡고 들이켰다.


"드디어 이 비쩍 말라빠진 계집의 몸에서 벗어나 고대하던 내 몸을 되찾을 수 있게 되는 건가? 그렇다면 기다릴 게 뭐 있냐, 당장 시작하자고!!"


이리 하여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침선 문 소의 처소에서 백수의 몸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한 위험한 실험이 시작되었다.

먼저 문 소는 자신의 가진 수백 개의 침을 모두 사막의 강한 햇볓 아래 말려놓았다.


"벌레 한 마리라도 침에 닿으면 바로 꺼내서 다시 말려야 돼! 부정한 기운이 조금이라도 묻는 날엔 너희 단주의 생명을 보장 못하니 알아서들 해라, 크헤헤헷!!"


말하는 것부터 웃음소리까지 맘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문 소는 조그만 침을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놓느라 낑낑대는 백수 일행을 보며 더러운 침을 한 번 뱉고 사라졌다.

이 쯤 되니 어지간하면 화를 내지 않는 백수라 해도 단전에서부터 올라온 뜨거운 울분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 지 모르는 상황에 침선의 성질을 건드는 건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참고 참았다.

무명은 그래도 사막에서 태어난 사람이라 백수보다는 조금 더 잘 견디는 편이었다.

그는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 침을 정리하면서도 집에 있는 문 소와 운 효령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 곳은 저 자들의 본거지와 같은 곳이다. 게다가 우리는 길잡이가 없으면 여길 빠져나갈 수도 없으니 저들이 딴 맘을 먹으면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

정면으로 상대하면 대적하기 힘드니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루가 꼬박 걸려 침의 소독을 끝마친 후, 문 소는 수많은 침들을 금색으로 치장된 보자기에 한데 모았다.

그리고 집 한 가운데 양탄자를 들추니 지하로 내려가는 비밀 통로가 있었다.

문 소가 따라 내려가려는 무명을 급히 막았다.


"안이 좁기도 하고 사람의 침 안에는 미세한 독이 있으니 자네 주인에게 좋지 않을 수도 있어.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밖에서 기다려."


효령 또한 뒤에서 문 소를 거들었다.


"저 망할 놈, 어차피 제 놈이 가진 유일한 기술이라 안 보여주려고 저러는 게지.

그래도 저 놈 말대로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 저를 믿고 좀 기다려 봐요."


'널 제일 못 믿겠다.'


무명은 하고 싶은 말을 목구멍에서 삼킨 채, 효령과 함께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깊은 지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문을 닫으면 약한 비명 정도는 묻어버릴 수 있을 만한 공간이었다.

무명은 청각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조용히 탁자에 앉았다.

곁에 앉은 효령이 물을 한 잔 따라주며 무명의 긴장을 풀어주려 했다.


"단주님은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분이에요. 단주님이 없으면 우리는 평생 다른 사람의 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저희가 단주님께 해를 입히는 일은 결코 없을 테니 그것만은 믿어주세요.

지금은 허세나 부리는 늙은이로 보일 지 몰라도 한 때는 단주님 못지 않게 의협심에 불타고 정의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이랍니다."


절대로 둘 다 늙은이의 외모는 아니긴 하지만, 효령의 말은 사실이긴 했다.

백수와 주변인들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는 정파 오협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모든 무림인들이 존경하는 훌륭한 무림인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들이었다.

수십 년 간 무림인들 사이에서 오르내린 이름이라면 분명 헛소문은 아닐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렇게 믿는 수 밖에 없었다.

백수와 문 소가 들어간 후 지하실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정파 오협의 한 명인 침선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긴 백수가 과연 화려한 날개를 펼친 나비가 되어 나타날지, 아니면 파리가 되거나 애벌레 상태로 삶을 끝마칠 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운명의 실타래는 지금 침선이라는 사람의 두 손에 달려 있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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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괴수같은 인간, 인간같은 괴수(1) 22.07.30 899 8 9쪽
59 썩은 열매엔 아쉬움을 두지 않는다 22.07.29 888 7 10쪽
58 부정하지만 강한 수단 22.07.27 879 9 12쪽
57 잃었으나 손해는 없다. 22.07.27 920 9 13쪽
56 죽음을 넘어서다 22.07.26 886 9 11쪽
55 탈혼(脫魂)과 추혼(追魂) 22.07.23 914 7 12쪽
54 나를 만나다 22.07.21 863 7 11쪽
» 고치 속에 든 것은 22.07.21 855 6 10쪽
52 사막의 꽃은 썩었다. +2 22.07.20 888 9 15쪽
51 사막의 꽃 +2 22.07.18 889 8 12쪽
50 사천의 괴수 +2 22.07.16 910 8 12쪽
49 무명과 효령의 담판 +2 22.07.15 912 9 11쪽
48 결정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2 22.07.14 894 9 13쪽
47 이리떼는 호랑이를 죽일 수 없다. +2 22.07.13 930 10 12쪽
46 어떤 죽음에 명분이 있는가 +4 22.07.12 960 10 12쪽
45 피로 물든 손 +2 22.07.09 984 10 15쪽
44 강호의 천지안(天池眼)(2) +2 22.07.08 985 11 10쪽
43 강호의 천지안(天池眼)(1) +2 22.07.07 1,006 11 12쪽
42 새로운 길을 찾다 +1 22.07.06 1,013 11 12쪽
41 약선(藥仙) 운 효령 +2 22.07.05 1,043 12 13쪽
40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2) +2 22.07.02 1,030 12 12쪽
39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1) +1 22.06.30 1,033 12 15쪽
38 충성을 맹세하다 +2 22.06.29 1,030 9 15쪽
37 모용 세가 침투(4) +2 22.06.28 1,015 11 13쪽
36 모용 세가 침투(3) +2 22.06.25 986 11 13쪽
35 모용 세가 침투(2) +2 22.06.25 1,005 10 12쪽
34 모용 세가 침투(1) +2 22.06.23 1,053 11 11쪽
33 요령성 잠입(2) +2 22.06.21 1,065 10 14쪽
32 요령성 잠입(1) +2 22.06.20 1,097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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