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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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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133

작성
22.07.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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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무명과 효령의 담판

안녕하세요.




DUMMY

백수가 마음의 결정을 내린 후로 단원들은 쉴 틈도 없이 움직여야 했다.

청무회와 모용 세가의 추적대 가느이 혈투가 벌어진 것 처럼 현장을 꾸미고, 산채에 있던 이 무빈의 가족들과 단원들의 흔적을 싹 치운 뒤, 행선지를 알 수 없도록 산을 최대한 멀리 돌아 길이 없는 곳까지 온 후 말도 없이 도보로 길을 떠나야 했다.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백수의 마음은 편치 않았으나, 가족끼리 소풍을 나온 것 같다며 나비를 잡으며 뛰어다니는 이 무빈의 아이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현명한 결정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나중에 이 선택으로 받아들이게 될 결과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구나.'


수 년 간 입은 내상과 오늘 입은 큰 상처들 때문에 온 몸의 찢어지고 터진 구멍에서 피고름이 흘러나오고 있음에도, 이 무빈의 얼굴은 세상 모든 걸 얻은 사람처럼 밝고 행복해 보였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의협단의 단원과 그 가족들도 백수가 지켜야 할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전과 행복이 보장될 때 단원들도 안심하고 강호의 정의를 지키는 데 목숨을 바칠 것이다.

힘겨운 전투를 마치고 급박하게 시작된 산행이었으나 일행 중 누구도 힘겨워 보이지 않았다.

일행의 후미를 맡은 효령은 최대한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산세의 굴곡에 자신의 다리를 맡겼다.

해가 저물고 피곤에 지쳐 칭얼대던 아이들이 자호와 항 량의 등에 업혀 세상 모르고 잠이 들었을 무렵, 효령은 산채 근처에 횃불과 비슷한 불빛이 잠깐 반짝이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산 하나를 사이에 둔 거리였기에 이걸 볼 수 있는 사람은 효령과 태생적으로 시력이 좋은 무명 정도였지만, 무명은 선두에 있었기에 산채의 변화를 발견하지 못했다.


'청무회겠지. 모용 가에서는 해가 뜨고 나서나 도착할 것이다.'


선발대에게서 아무런 보고가 없으니 모용 세가에서는 지금 쯤 정예 제자가 포함된 원정대를 보냈을 것이다.

그에 반해 청무회는 추적해야 할 대상이 있을 경우 절대 한 무리만 보내지 않는다. 강호엔 언제나 숨은 고수들이 있었고, 선발대가 사냥감에게 오히려 제압당하는 경우는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으니 청무회는 만약에 상황에 대비한 해결사들을 준비시켜 두었다.

청무회에서 가장 빠르고 조용하며 가장 확실한 살인 기술을 가진 그들은 청무회가 벌이는 모든 임무를 뒤에서 지켜보고 성패를 보고한다.

청무회의 해결사 중 한 명인 극광(戟光)은 그 답지않은 얼굴로 산채 앞에 서 있었다.

서른 구의 시신. 다양한 병장기에 살해당한 시체 중에는 청무회의 실력있는 중진인 도연무가 있었다.

작은 상처가 없고 목뼈만 깔끔하게 잘렸다는 건 기습이거나 상대가 어느 정도는 도 연무를 가지고 놀았다는 뜻이었다. 다른 시신들도 도 연무와 같은 이유로 죽은 자들이 많았다.

목을 잡은 손가락의 길이와 상처의 깊이로 판단하건데 이들은 같은 사람에게 죽었다.

상당한 고수일 뿐 아니라 이 정도로 현장을 정성들여 꾸며놓았다면 큰 부상없이 체력을 비축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극광은 수 년 만에 도끼를 쥔 손에 미세한 떨림을 느꼈다. 일부러 사지를 찾아다니는 괴팍한 성격을 가졌음에도 몇 년 간 자신을 이렇게 흥분시키는 상황은 만나지 못했던 극광이었다.


'모용 세가의 사냥개들과 도 연무가 제대로 저항도 못 해보고 당했군. 지형 지물을 이용했다 해도 모용 가의 개들에게 꼬리를 물리면 나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데...'


극광은 공기 중에 아주 미세하게 남아있는 낯선 입자를 발견했다. 독도 아니고 미약도 아니었지만 전투에 사용된 건 확실해 보였다.

처음 보는 약 성분에 호기심이 동한 극광은 가지고 있는 비단 주머니에 침을 살짝 바른 후 가루에 접촉시켰다. 침에 묻은 가루는 녹아들면서 묘한 자색을 띠었다.

자신이 모를 정도면 남궁 세가의 학사들에게 가져간다 해도 아는 사람이 없을 건 분명했다. 전투에 쓰이는 독과 미약에 관해서 극광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남궁 세가에는 없었다.

극광은 손에 쥔 도끼의 날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 추적을 시작하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인가. 만약 따라잡는다면 내가 상대할 만한가. 만약 적이 하나가 아닐 경우엔? 상대를 제압한다 해도 뒤이어 도착한 모용 세가의 제자들이 나를 의심할 가능성도 있다.'


장고 끝에 내린 극광의 결정은 일단 자리를 피한 후 보고를 하는 것이었다. 최근 무림맹 내부에서는 남궁 세가와 모용 세가의 신경전이 알게 모르게 벌어지고 있었다.

사건의 진상을 알 수는 없으나 청무회의 실력자인 자신이 여기 왔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용 세가는 무림맹에 대한 지원을 줄일 핑계거리를 하나 찾는 것이 된다.

무림맹은 지나치게 비대해진 조직의 운영 비용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최근에는 전에 없던 황실의 압박까지 거세지면서 하부 조직들에 대한 몸집 줄이기와 돈줄 만들기에 사활을 걸고 있는 분위기인데, 남궁 세가와 함께 무림맹의 2대 세력이자 매년 가장 많은 재물을 지원하는 모용 세가를 건드린다면 청무회로 시작되어 무림맹에까지 번지는 큰 불길이 될 수도 있었다.

극광은 팔다리를 사방으로 뻗고 쓰러진 도 연무의 주검을 발로 툭툭 건드리며 혀를 찼다.


"나름 중진 중에서는 검 깨나 쓴다고 들었는데... 청무회의 명성이 십 년을 못 가는구나.

시신을 거둬주고 싶으나 이 자리에서는 네가 희생양이 돼야 할 것 같으니..."


극광은 전장을 이렇게 꾸며놓은 자의 의중을 알 수 있었다.

모용 세가의 추적대와 청무회 간의 분쟁으로 인한 참극으로 보이도록 현장을 만들어놓았다.

모용 세가에서 속아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는 있을 터, 그 시간동안 그는 도망을 치고 자신은 조용히 이 자를 쫓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렇다면 잠시동안 네 꼭두각시 놀음에 장단을 맞춰주마."


극광은 손에 든 도끼를 슬쩍 휘둘렀다. 그러자 도끼에서 작은 회오리 바람이 일어나 바닥에 있는 극광의 발자국을 사정없이 흩뜨려 놓았다.

그리고 회오리 바람이 사라졌을 무렵엔 극광의 모습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었다.


효령의 예상대로 청무회의 극광이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모용 세가의 원정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오대산을 뒤흔들었다.

수십 명의 무사들이 산을 훤히 밝히며 수색을 시작했을 무렵에 백수 일행은 이미 반대편으로 산을 빠져 나간 후였다.

산을 멀찍이 벗어난 후에야 근처 마을에 들러 마차와 말을 구한 백수 일행은 마차 안에서 앞으로의 일정을 논의했다.


"원래의 계획은 사천에서 안 량 아저씨를 모신 다음에 대업을 도모할 근거지를 마련하려 했는데, 여기 계신 약선 어른을 만나면서 더 중요한 일이 생겼습니다.

난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내공이 쌓이지 않는 특이 체질을 가지고 태어난 줄 알았는데, 사실은 오히려 누구보다 강한 극강의 내공을 쌓을 수 있는 체질이었다는군요.

알 수 없는 이유로 그것이 지금까지 봉인되어 있었던 것인데 약선께서 그 봉인을 풀어줄 수 있는 은인을 아신다 하니 그 분을 찾으러 가야겠습니다."


숨을 고른 백수가 곁에 있는 무명을 돌아보았다.


"무명 또한 아저씨와 친분이 있으니 사천에는 무명과 항 량, 자호가 가서 아저씨를 모시고 우리 의협단의 근거지가 될 만한 곳을 찾아봐줘.

그리고 의협단과 뜻을 같이 할 만한 인재를 찾는 것도 게을리 하면 안돼."


"모용 세가와 남궁 세가의 추적이 시작될 지도 모르는 판국에 주공만 보내는 건 좋은 생각 같지 않습니다."


"나도 아직 힘이 없는 우리가 흩어져 있다가 각개 격파의 위험에 노출되는 건 좋지 않다고 보지만 첫째로 지금은 시간이 너무 촉박하고, 둘째로 지금 내 곁엔 약선 어른이 계시잖아. 내 체질을 고칠 수 있는 방법만 찾으면 바로 돌아올 테니 남으신 분들은 의협단의 기반을 잘 닦아 주시기 바랍니다."


무명은 무엇인가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노숙을 하기 위해 마차를 멈추고 불을 피운 백수 일행은 새와 물고기를 잡아 간단히 요기를 하고 아무 곳에나 누워 잠을 청했다.

근처의 구릉에 올라 주위를 감시하던 무명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인영을 보며 검을 집었다가 내려 놓았다.

백수일 거라 생각했던 무명의 예상과는 달리 나타난 이는 효령이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그냥 잠도 안 오고 해서요." "......."


잠시 동안의 침묵을 깬 건 효령이었다.


"제가 단주님과 둘이 길을 나서는 것이 불안한가요?"


"약선이라 불리던 영걸의 기량을 불안해하는 게 아닙니다만."


달빛도 없는 밤하늘 아래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혔다. 안광이 칼날처럼 공기를 찢고 서로의 얼굴에 박힐 듯한 무명의 시선을 효령이 가만히 받았다.


"강호에서 발을 뺀지 오래인 제가 의협단에 참여한 저의가 의심되나보군요."


"첫 만남에서 주공께 독을 먹인 사람이니 과한 걱정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무명의 차가운 살기를 피하지 않던 효령이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바위 위에 앉았다.

무명은 자신의 시선도 자세도 고치지 않고 효령을 노려볼 뿐이었다.

독고구검을 배웠다는 자신감도 맨 손의 중년인을 상대한다는 허세도 아니었다.

약선의 무공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무명이지만, 눈 앞에 있는 누구든 백수에게 위협이 된다면 베어야 하는 것이 지금 자신의 유일한 사명이었다.

효령은 구름에 가려진 달을 보며 허공에 이야기하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난 단주의 반듯하고 꼿꼿한 정의감과 의협심을 존경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여기 있는 건 아니에요. 사실 지금 내 몸에 큰 문제가 있는데 그걸 해결할 방법을 지금까지 찾을 수가 없었지요. 단주라면 그 해결책을 알려줄 수 있을 겁니다."


"또 독을 먹여서 말입니까."


"필요하다면 그 방법도 쓸 거에요. 하지만 하나는 약속하죠. 단주는 눈썹 한 가닥 다치지 않고 돌아올 겁니다. 그리고 그의 몸에 갇혀 있는 활인혈의 비밀도 풀 수 있을 거에요. 지금까지 싸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단주가 이제 강호에 다시 나오기 힘든 절대 무공을 갖게 되는 거죠.

이 정도면 해 볼만한 도전이 아닐까요?"


"당신의 말만 믿고 뛰어들기엔 불안한 도전이라고 생각됩니다."


효령이 미소를 지었다. 이 답답한 무인은 전혀 물러설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면 어떻겠어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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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나를 만나다 22.07.21 863 7 11쪽
53 고치 속에 든 것은 22.07.21 855 6 10쪽
52 사막의 꽃은 썩었다. +2 22.07.20 888 9 15쪽
51 사막의 꽃 +2 22.07.18 890 8 12쪽
50 사천의 괴수 +2 22.07.16 910 8 12쪽
» 무명과 효령의 담판 +2 22.07.15 913 9 11쪽
48 결정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2 22.07.14 894 9 13쪽
47 이리떼는 호랑이를 죽일 수 없다. +2 22.07.13 930 10 12쪽
46 어떤 죽음에 명분이 있는가 +4 22.07.12 961 10 12쪽
45 피로 물든 손 +2 22.07.09 984 10 15쪽
44 강호의 천지안(天池眼)(2) +2 22.07.08 985 11 10쪽
43 강호의 천지안(天池眼)(1) +2 22.07.07 1,007 11 12쪽
42 새로운 길을 찾다 +1 22.07.06 1,014 11 12쪽
41 약선(藥仙) 운 효령 +2 22.07.05 1,043 12 13쪽
40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2) +2 22.07.02 1,030 12 12쪽
39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1) +1 22.06.30 1,033 12 15쪽
38 충성을 맹세하다 +2 22.06.29 1,030 9 15쪽
37 모용 세가 침투(4) +2 22.06.28 1,015 11 13쪽
36 모용 세가 침투(3) +2 22.06.25 986 11 13쪽
35 모용 세가 침투(2) +2 22.06.25 1,005 10 12쪽
34 모용 세가 침투(1) +2 22.06.23 1,053 11 11쪽
33 요령성 잠입(2) +2 22.06.21 1,066 10 14쪽
32 요령성 잠입(1) +2 22.06.20 1,097 11 11쪽
31 무사와 건달을 얻다 +2 22.06.18 1,129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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