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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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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133

작성
22.07.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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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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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강호의 천지안(天池眼)(2)

안녕하세요.




DUMMY

백수에게 간단히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운 효령의 낯빛이 매우 어두워졌다.


“사정이 그렇다면 한시바삐 출발해야겠군요. 모용 세가의 추적대도 까다롭지만 청무회에게 꼬리를 잡힌다면 떼어내기가 쉽지 않아요. 쌓아둔 기반이 없는 의협단은 최대한 힘을 모아 우리가 원하는 시점에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 유리한데, 아직 기반을 다지지도 못한 이 시기에 온 무림에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지요.”


백수가 걱정하는 것도 그 부분이었다. 촘촘한 정보력을 가진 그들이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유세 표국과 자신에게까지 그들의 칼끝이 닿을 것이고, 큰 뜻을 펴보기도 전에 그들의 막강한 재력과 인력에 팔다리가 꺾여나갈 수도 있었다.


“약선 어른, 방법이 없겠습니까?”


“어떻게든 발각될 가능성을 줄여야겠지요. 그러려면...”


효령은 자신도 별로 내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먼저 오대산에 발을 들인 자들을 모두 없애야 할 겁니다.”



백수 일행은 마차를 타려던 계획을 바꾸어 모두 날랜 말을 잡아타고 오대산을 향해 달렸다. 백수는 주변의 공기를 가르며 바람처럼 달리는 말 위에서도 고민에 잠겨 있었다. 수 년 사이 많은 일이 있었지만, 아직 그는 자신의 손으로 사람의 생명을 거둔 적은 없었다.

물론 강호에서 정파의 거두들과 싸우려면 살생을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은 그도 잘 알고 있었지만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럴 때마다 백수는 아버지 유 환명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예전에 무림맹에서 갑자기 찾아와 돈을 뜯어간 적이 있었는데, 분통을 터뜨리는 백수에게 그가 했던 말이었다.


-령아야, 너도 봤겠지만 강호에서 정파와 사파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 정파에도 돈만 밝히는 더러운 인간들이 있고 사파에도 정의로운 협객이 있지. 그런데 사람들은 언제나 정파에 의지하고 정파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왜 그러는지 아느냐?


힘이 세기 때문이겠죠, 뭐.


정파에는 백성을 지키고 무의미한 살생을 금한다는 대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백성들도 정파를 전부 다 믿진 않겠지만, 그래도 정파 사람이라고 하면 대부분 그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사파의 협객이 자신의 의협심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키기는 참으로 힘들지. 그래서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그리고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 번 부정하다고 악인이 되는 게 아니고, 하루 정의로웠다고 협객이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지. 한두 번의 실수에 자신을 책망하지 말고 항상 바른길을 향하려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야. -


‘꼭 필요한 일이라면 주저하지 말자. 내 약한 마음 때문에 단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


백수는 표정 없이 말을 달리는 데만 열중하고 있는 무명의 옆모습을 슬쩍 보았다. 덤덤한 얼굴의 호위 무사는 주인을 지키기 위해 몇 번이나 사선을 넘나들었고, 다른 이의 목을 베었다. 주인을 지킨다는 목표 아래 그는 단 한 번도 주저하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껏 백수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제 내가 저들을 지켜낼 것이다. 이번 일이 해결되면 반드시 내공을 되찾아 강호에서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강자가 되겠다.’


백수의 눈에 전에 없던 굳은 결의가 떠올랐다.



한 편, 오대산의 거처에 머물고 있던 이 무빈은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바삐 보냈다. 식사 때 사용할 땔감을 마련하고 주변 길을 정리하면서 혹시나 있을 외적의 침투로와 비상시 도주로를 찾아두었다.

오랜 시간 처마와 지붕이 없는 곳에서 잠을 청하며 터득한 생존의 기술이었다. 한량의 기본 자세인 늦잠을 방해받은 자호는 궁시렁거리면서도 무빈을 곧잘 따라다니며 일을 도왔다.

점심으로 산나물이 들어간 탕과 고기 국수를 먹은 무빈은 소화가 잘 되지 않았는지 속이 계속

불편했다.

부인에게는 산책을 다녀온다 하고서 가벼운 차림으로 길을 나선 그는 오대산의 가장 가까운 봉우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걷다가 점차 속보로 바꾸면서 다리의 움직임과 내공을 끌어올리는 빠르기를 점검했다.

무빈과 같은 무사에겐 속도가 곧 생명이라 순간적으로 내공을 끌어올렸다가 바로 숨기는 능력이 곧 능력의 전부라 할 수 있었다.

산채 근처의 봉우리까지 오른 그는 옅은 숨을 내쉬었다. 호흡이 거칠어지긴 했으나 작은 나무 하나도 뛰어넘지 못했던 얼마 전의 자신에 비하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었다.

무빈이 오른 봉우리에서는 머물고 있는 산채와 산채로 이르는 길이 훤하게 보였다.


“가끔씩 이 곳에 올라 주변을 살펴야겠구나.”


항상 매사에 철저함을 추구했던 무빈인데, 특히나 지금은 가족들과 함께 있다 보니 더 조심하고 경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조심성이 가족과 단원들을 구하는 단초가 되었다.

봉우리의 바위 아래 몸을 기대고 물을 마시던 그는 산채에서 멀찍이 떨어진 진입로에서 몇몇의 인영이 움직이는 모습을 발견했다.

셋 아니면 넷. 질서있는 걸음걸이. 그 중 한 명은 경사로를 오르면서도 보폭이 일정하다.

무사들이다.

무빈은 마시던 호리병을 내던지고 산을 오르는 자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능선의 뒤편으로 급히 경공을 펼쳤다.

무빈과 산채 식구들에게는 천만 다행으로 급히 내려가느라 몇 번이나 추적자들에게 발각될 만한 실수를 범했음에도 무빈은 발각되지 않고 산채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이것 또한 무빈과 산채 사람들에게는 천운이라 할 수 있는데, 바로 도 연무의 길 안내를 맡은 청무회의 길잡이가 부처도 성질을 낼 만한 수다쟁이였기 때문이었다.

마 송 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신출내기 무사는 무공을 입으로 쌓았는지 산을 오르면서 숨도 제대로 쉬지 않고 떠들어대서 어지간해선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도 연무의 성질을 돋구는데 성공하고야 말았다.


“우린 지금 맹주님이 내리신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네. 이걸 기억했으면 좋겠군.”


“아, 그럼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흥분한 것 아니겠습니까? 평민들이 관광이나 하러 오는 오대산에 배치를 받았을 땐, 나도 평생 관광이나 하다가 환갑이 다 돼서야 본가에 한 두 번 불려가서 땅이나 조금 하사받은 후에 작은 무관 하나 차려서 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청무회의 기둥이신 도 선배님과 맹주께서 직접 내리신 임무라니...!

역시 세상의 일에는 모두 뜻이 담겨 있다는 옛 성현의 말씀이 맞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 말이 맞으니 이제 좀 조용히 하지. 거의 도착한 것 같은데.”


“엇, 초행이시라면서 어떻게 아셨습니까? 조금만 더 가면 얕은 구릉이 나오고 산채가 하나 있습니다. 역시 선배님께는 처음 보는 산이라 해도 단번에 모든 산세가 보이시는가 봅니다.

신묘하다, 신묘해.”


‘더 높은 봉우리가 안 보이니 올라갈 곳이 없다는 뜻이고, 바람을 타고 음식을 데운 냄새가 나니 인가가 있다는 것 아닌가. 이젠 청무회에 이런 밥버러지도 들어오는가...’


도 연무는 적과 만나기도 전에 한숨부터 나왔다. 그와 동시에 등골을 스치는 한기가 느껴졌다.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적의 기운은 없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수많은 싸움을 거쳐온 자들에게 주어지는 훈장 같은 날이 선 감각이었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 연무는 검집을 다시 살폈다. 언제 가도 아쉬울 것이 없는 자신과는 달리 앞에 있는 멍청이는 아직 장가도 못 가본 애송이였다. 지금은 한참 모자라지만 남은 앞길이 창창한 것도 사실이다.

십 년 후면 자신보다 뛰어난 무공을 갖출 수도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곳이 강호고, 무림인 것이다.

만약 그리 되지 못한다 해도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청무회에 어울리지 않는 녀석이라 해도 엄연한 자신의 후배다. 최악의 상황이 닥치더라도 마 송은 살려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대충 위치도 알았으니 자네는 내려가 보게.”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대 선배님께서 이 곳까지 와 주셨는데 끝까지 보좌하고 도움은 안 되더라도 곁에서 무엇이든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신 자세까지 모자란 놈은 아니군.

도 연무는 약간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원해서 들어온 것은 아니었지만 청무회는 자신이 정사 대전 후 평생을 몸 담아온 정파 무림의 숨겨진 검이었다.

지금은 햇병아리라 해도 언젠가는 마 송도 청무회를 이끄는 날 선 검이 될 것이다.

도 연무는 마송의 어깨에 손을 얹고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맹주님의 비밀 지령이라 하지 않았나. 이건 내게만 내려진 밀명이니 자네는 산을 내려가 주변의 상황을 세심하게 탐색하고 기록해서 나중에 청무회 사람들이 오면 소상히 보고하게.

자네의 능력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걸세.”


감격한 마 송은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지금껏 무사로 살면서 제 앞가림에 혈안이 된 사람만 봤던 그는 처음 보는 후배를 챙겨주는 노선배의 따뜻한 마음에 목이 메었다. 도 연무의 후배 사랑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수다를 멈추지 못하던 수다쟁이의 입 마저 다물게 했다.

마 송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도 연무를 향해 고개 숙여 포권했다.


“청무회의 마 송은 도 선배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부디 강녕하십시오.”


“고맙네, 자네도 쉼없이 정진하여 훌륭한 무사가 되시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검 든 자들의 짧은 인사가 끝나고 두 사람은 각자의 길로 향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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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괴수같은 인간, 인간같은 괴수(1) 22.07.30 898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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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죽음을 넘어서다 22.07.26 886 9 11쪽
55 탈혼(脫魂)과 추혼(追魂) 22.07.23 914 7 12쪽
54 나를 만나다 22.07.21 862 7 11쪽
53 고치 속에 든 것은 22.07.21 854 6 10쪽
52 사막의 꽃은 썩었다. +2 22.07.20 888 9 15쪽
51 사막의 꽃 +2 22.07.18 889 8 12쪽
50 사천의 괴수 +2 22.07.16 909 8 12쪽
49 무명과 효령의 담판 +2 22.07.15 912 9 11쪽
48 결정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2 22.07.14 893 9 13쪽
47 이리떼는 호랑이를 죽일 수 없다. +2 22.07.13 929 10 12쪽
46 어떤 죽음에 명분이 있는가 +4 22.07.12 960 10 12쪽
45 피로 물든 손 +2 22.07.09 984 10 15쪽
» 강호의 천지안(天池眼)(2) +2 22.07.08 985 11 10쪽
43 강호의 천지안(天池眼)(1) +2 22.07.07 1,006 11 12쪽
42 새로운 길을 찾다 +1 22.07.06 1,013 11 12쪽
41 약선(藥仙) 운 효령 +2 22.07.05 1,042 12 13쪽
40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2) +2 22.07.02 1,030 12 12쪽
39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1) +1 22.06.30 1,032 12 15쪽
38 충성을 맹세하다 +2 22.06.29 1,029 9 15쪽
37 모용 세가 침투(4) +2 22.06.28 1,014 11 13쪽
36 모용 세가 침투(3) +2 22.06.25 985 11 13쪽
35 모용 세가 침투(2) +2 22.06.25 1,005 10 12쪽
34 모용 세가 침투(1) +2 22.06.23 1,052 11 11쪽
33 요령성 잠입(2) +2 22.06.21 1,065 10 14쪽
32 요령성 잠입(1) +2 22.06.20 1,096 11 11쪽
31 무사와 건달을 얻다 +2 22.06.18 1,128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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