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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114,803
추천수 :
1,166
글자수 :
581,133

작성
22.07.16 09:00
조회
909
추천
8
글자
12쪽

사천의 괴수

안녕하세요.




DUMMY

"어떻게 말입니까?"


"난 단주와 함께 사막에 가야 하고 당신은 단주와 떨어질 수 없으니 결국 당신도 사막에 가야 한다는 거잖아요.

단주가 일행을 둘로 나눈 건 시간이 촉박하다 여겼기 때문이니, 지금 바로 사천으로 떠나세요.

사천에서 데려오려는 안 량이라는 자는 단주가 믿을 만한 사람으로 보이니 그에게 의협단의 기반을 세우는 일을 맡기면 단주도 안심할 것이고, 당신은 단주와 함께 사막으로 떠날 수 있겠죠."


듣고 보니 효령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사실 자신이 사천에 남아본들 사람을 설득하고 문파를 만드는 건 본인이 잘 하는 영역이 아니었다.

무명은 백수의 호위 무사를 천직으로 생각하고 그 이상은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효령이 내놓은 제안은 무명에게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최선의 답이었다.


"그리 하는게 좋겠군요.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반드시 안 량이라는 사람을 데려와야 해요. 단주는 시간이 지체되는 걸 원하지 않을 테니까요."


무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마차를 끌던 말 중 체력이 좋고 날랜 말을 잡아탔다.

오대산에서 남쪽으로 꽤 먼 거리를 내려온 상태라 사천까지 가려면 북서쪽으로 상당한 거리를 달려야 했지만, 최근 쉴 새 없이 중원 곳곳을 활주했던 무명은 다음 날 해가 중천에 오기 전 사천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중간에 말을 두 번이나 갈아타야 했지만, 결국 무명은 자신의 목표대로 다음 날 오후가 되기 전 사천 근처에 도착했다.

백수와 함께 자주 들르던 곳이라 그런지 고향처럼 눈에 훤한 풍경과 맵싸한 향을 풍기는 사천 특유의 음식 냄새가 무명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무명은 주변 사람들에게 수소문한 끝에 안 량과 그의 아들이 살고 있는 오두막을 찾아냈다. 뒷마당에서는 고소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뭔가를 두드리는 정겨운 소리가 울려퍼지는 평범한 민가의 정경이었다.

그러나 집에 다가서기도 전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안 량의 우렁찬 호령이 온 동네에 울려 퍼졌다.

예전부터 안 량의 목청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던 무명은 고개를 저으며 문 앞에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목청 큰 사람은 항 량과 자호로 충분한데... 의협단에 자꾸 목소리 큰 사람만 모이는구나..."


목소리 크기로 사람을 가려받을 수도 없는 일이라 무명이 참는 수 밖에 없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안 량의 양자인 안 호가 커다란 나무 밑둥을 잘라 만든 도마 위에 생선을 썰고 있었다.

십 년 넘게 칼을 만지던 사람 답지않게 한참이 지나서야 무명을 발견한 안 호는 도둑질 하다 들킨 고양이처럼 펄쩍 뛰었다.


"아이구 깜짝이야! 가져갈 것도 없는 집에 도적님이 오셨구나아~.

... 아니 이게 누구야?"


도적이라는 말에 웃옷도 안 걸친 안 량이 자신이 자랑하던 풍뢰도를 들고 뛰쳐나왔다.


"뭐어 도적?? 오랜만에 검무를 좀 추겠구나. 어딨냐 도적은?"


무명과 안 량, 안 호는 오랜만에 본 동료 답지 않게 굳은 얼굴로 한참을 마주 보고 있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안 량은 주위를 슬쩍 돌아보더니 무명을 방 안으로 안내했다.

무명이 엉거주춤 의자에 앉자 곧이어 안 호가 술과 구운 생선을 가지고 들어왔다.

무명은 안 량과 안 호가 술을 거침없이 들이키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들을 차례로 돌아보며 말했다.


"대충의 소식은 들었소만 다른 무관들도 모두 상단에서 쫓겨난 겁니까?"


안 량의 킁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고등어 한 마리를 통째로 들고 물어뜯었다. 안 호가 아버지 대신 무명의 질문에 답했다.


"고매하신 정파의 기둥 모용 세가에서 우리를 쫓아낼 리가 있나. 우리 발로 걸어나왔지."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온 안 호는 거칠게 술을 한 잔 더 마시고 말을 이었다.


"처음엔 월봉도 올려주고 힘든 일이나 순찰 같은 것도 모용 가에서 온 무사들이 다 하길래 그래도 명문 정파답구나 했지.

그런데 왠걸, 점점 우리한테 이상한 일만 시키더니 결국은 상단의 무사 모두를 마굿간 관리나 뒷간 청소같은 한직으로 몰아내더군.

존경받는 정파라는 것들이 이런 식으로 사람을 몰아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네.

그러고선 우리 스스로 나가는 것이니 돈은 한 푼도 못 준다면서 꾹 참고 일을 하고 있던 동료들까지 괘씸죄로 싹 다 몰아서 내보냈다네."


이야기를 듣던 안 량도 성질이 났는지 흠 하는 기침 소리를 크게 한 번 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자네의 무공은 익히 알고 있으니 운이 좋으면 살았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정말로 살아 있었군 그래. 그런데 부단주님은 어떻게 ..."


무명은 안 호의 눈을 빤히 들여다 보았다. 부자가 모두 무명과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

두 사람 모두 말이 안 통하는 원칙 주의자였고, 자유 분방한 백수의 경영 방식과 태도를 항상 걱정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보다 상단을 사랑하고 지키려 했다는 사실만은 무명이 절대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명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보는 안 호의 눈에는 그 때 보았던 대쪽같은 청렴함과 명예를 목숨보다 소중히 하는 꼿꼿함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 두 분은 저보다 상단에 오래 계셨으니 지금의 사태에 대해 누구보다 상심이 크시리라는 것을 압니다. 상단에서 쫓겨난 무사 중 사천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건 알아서 뭐하게, 다 몰고 쳐들어가서 칼부림이라도 하려고?"


불편한 콧소리만 내던 안 량이 휙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괜한 짓을 해서 소단주님만 곤란하게 하지 말고 돌아가! 부단주께서 그리 되신 건 내 눈을 감는 날까지 잊지 못할 한이 되겠지만, 어찌 됐든 상단은 지켜야만 하네.

그렇잖아도 지금 소단주께서는 사방이 포위당한 성에 혼자 남은 장수처럼 고립되어 있는데 망할 놈의 모용 세가 놈들이 도무지 빈틈을 보이지 않아..."


"아버지, 저 놈이 무슨 생각인지 확실치도 않은데 그만 말씀하세요."


"무슨 생각이면 어쩌게! 우리가 지금 무슨 힘이라도 있냐? 그냥 매일 먹고 자면서 시간만 보내는 것이 삶이라면 당장이라도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인데."


"아버지..."


예전에도 전생에서는 분명 진짜 부자 지간이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할 정도로 끈끈한 부자지간이었다.

안 량은 호탕하고 무예와 전술에도 능통한 사람이고 안 호는 침착하고 상대의 얕은 수를 잘 파악하는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의협단에 꼭 필요한 인재임은 확실했다.

무명은 다짜고짜 안 량을 보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무명의 이런 모습을 생전 처음 보는 부자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안 량, 안 호 대협. 자세한 설명을 드리고 모셔야 하나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주공께서는 지금 살아계십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


"몇 번의 죽을 위기가 있었지만 자친 곳 하나 없이 멀쩡하시고 지금은 우리를 이렇게 만든 모용 세가를 몰아내고 강호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 세력을 모으고 있습니다.

주 공은 두 분이 저희와 함께 대업을 도모해주시길 바라고 있습..."


"우리 도련님은 어디 계시냐!!!"


육십이 넘은 노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우렁찬 호령과 함께 안 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 량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 그랬었지. 안 량에게 주공은 특별한 사람이었다.'


백수가 걸음마를 할 때부터 지켜봐왔고, 몸이 약한 그를 지키기 위해 귀한 도자기를 다루듯 항상 조심하고 금이야 옥이야 돌봤던 것이 바로 안 량이었다.

어린 주공이 비명횡사를 당할 때 곁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수치심과 죄책감에 모든 걸 놓아버렸던 늙은 도객은 무명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자신의 애도(愛刀)인 풍뢰(風壘)를 찾고 있었다.

침착한 성격의 안 호는 목소리를 낮추고 무명에게 재차 확인했다.


"소단주님은 지금 어디 계신가, 대업을 도모한다는 건 또 무슨 소리고?"


"정파를 자처하면서 이런 파렴치한 짓을 한 모용 세가의 음모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그들을 유세 표국에서 몰아내겠다는 뜻이지요. 쉽지 않은 일이 되겠지만, 두 분은 주공이 무모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지 않나... 상대는 정파의 2대 거두라고. 무림맹의 맹주가 속해 있어서 남궁 세가를 최고로 보는 사람이 많지만, 모용 세가에는 남궁 세가를 뛰어넘는 병력과 재력이 있네.

오죽하면 황실에서도 모용 세가는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야.

우리라고 이렇게 꼬리를 내리고 싶었겠는가? 제대로 물지도 못할 거 소동만 일으켜서 괜히 그들에게 소단주님을 몰아낼 구실을 줄까 봐 숨을 죽이고 있는 게지."


"주공은 가볍게 상처나 주고 끝내려고 사지에서 돌아오신 게 아닙니다."


무명이 안 호의 눈을 보며 한 마디 한 마디 분명하게 말했다.


"더러운 방법으로 유세 표국을 차지했고, 지금도 비슷한 만행을 여기저기서 저지르고 있는 모용 세가와 그를 비호하는 무림의 악한 세력을 모두 몰아내고 강호의 정의를 세우는 것이 주공과 우리 의협단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의협단?"


"강호의 바른 정의를 세우자는 의미로..."


"거 이름 한 번 똑부러져서 좋구만, 하하핫!"


안 량은 뭐가 그리 좋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이처럼 울다가 지금은 바닥이 꺼질 정도로 크게 웃고 있었다.

안 호 또한 난처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가슴 속에서는 새로운 세상과 다시 뜻을 펼 수 있다는 기대가 용암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왠만한 사람은 들고 있기도 힘든 풍뢰를 어깨에 들쳐멘 안 량은 무 명과 안 호를 내려다보며 무명이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 주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냐! 의협단 단주께서 기다리시니 당장 출발하자꾸나."


세 사람이 말을 구하기 위해 집을 나서자 문 밖에 있던 중년인 하나가 머뭇거리다 안 량을 보고 그의 곁으로 뛰어왔다.


"무슨 일인가?"


"그 놈의 괴수가 또 마을에 들어와서 돼지를 잡아갔지 뭐요. 이러다 우리 마을에 돼지와 소가 남아나지 않을 것 같으니 이를 어쩌오..."


"흠... 그런데 지금은 내가 시급한 일을 먼저 해야만 하니 그 일만 마치면 다시 돌아와 그 괴수를 잡아주겠네. 며칠만 말미를 주게나."


"요즘은 이틀이 멀다 하고 마을을 습격하니 이러다 아이들이 해를 입을까 걱정이오.

부탁이니 빨리 좀 돌아와서 그 괴수를 잡아주시오."


"알겠네. 한 번 입 밖으로 꺼낸 약속은 거두지 않으니 염려 놓으시게."


마을에서 말을 구한 무명은 출발 전 안 량에게 물었다.


"마을에 나타난 괴수라는 게 뭡니까?"


"일 년 전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놈이 나타나 마을에서 가축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고 놈이 어찌나 신출귀몰한지 관병이 와서 진을 치고 지키기까지 했는데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했네.

가끔 산에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 호랑이나 곰이 마을에 내려오는 경우를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지속적으로 마을을 습격하는 놈은 처음이야.

사람들은 마을에 가축이 떨어지면 사람까지 노릴까봐 염려하는 것 같은데, 내 생각은 다르네."


과거 산중에서 혼자 호랑이 목을 단칼에 두동강내던 무사의 눈이 번뜩였다.


"지금 마을을 습격하고 있는 건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야."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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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괴수같은 인간, 인간같은 괴수(1) 22.07.30 898 8 9쪽
59 썩은 열매엔 아쉬움을 두지 않는다 22.07.29 888 7 10쪽
58 부정하지만 강한 수단 22.07.27 879 9 12쪽
57 잃었으나 손해는 없다. 22.07.27 920 9 13쪽
56 죽음을 넘어서다 22.07.26 886 9 11쪽
55 탈혼(脫魂)과 추혼(追魂) 22.07.23 914 7 12쪽
54 나를 만나다 22.07.21 862 7 11쪽
53 고치 속에 든 것은 22.07.21 854 6 10쪽
52 사막의 꽃은 썩었다. +2 22.07.20 888 9 15쪽
51 사막의 꽃 +2 22.07.18 889 8 12쪽
» 사천의 괴수 +2 22.07.16 910 8 12쪽
49 무명과 효령의 담판 +2 22.07.15 912 9 11쪽
48 결정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2 22.07.14 893 9 13쪽
47 이리떼는 호랑이를 죽일 수 없다. +2 22.07.13 929 10 12쪽
46 어떤 죽음에 명분이 있는가 +4 22.07.12 960 10 12쪽
45 피로 물든 손 +2 22.07.09 984 10 15쪽
44 강호의 천지안(天池眼)(2) +2 22.07.08 985 11 10쪽
43 강호의 천지안(天池眼)(1) +2 22.07.07 1,006 11 12쪽
42 새로운 길을 찾다 +1 22.07.06 1,013 11 12쪽
41 약선(藥仙) 운 효령 +2 22.07.05 1,042 12 13쪽
40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2) +2 22.07.02 1,030 12 12쪽
39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1) +1 22.06.30 1,032 12 15쪽
38 충성을 맹세하다 +2 22.06.29 1,029 9 15쪽
37 모용 세가 침투(4) +2 22.06.28 1,014 11 13쪽
36 모용 세가 침투(3) +2 22.06.25 985 11 13쪽
35 모용 세가 침투(2) +2 22.06.25 1,005 10 12쪽
34 모용 세가 침투(1) +2 22.06.23 1,052 11 11쪽
33 요령성 잠입(2) +2 22.06.21 1,065 10 14쪽
32 요령성 잠입(1) +2 22.06.20 1,097 11 11쪽
31 무사와 건달을 얻다 +2 22.06.18 1,129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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