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114,823
추천수 :
1,166
글자수 :
581,133

작성
22.07.12 06:00
조회
960
추천
10
글자
12쪽

어떤 죽음에 명분이 있는가

안녕하세요.




DUMMY

오대산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산세가 험하고 작은 봉우리들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는 형세라 들어가는 길이 많지 않았다.

특히나 말을 타고 최대한 들어오려 할 것이 분명한 모용 세가의 추적대가 이용할 만한 길은 하나 뿐이라 무명과 아두가 매복 장소를 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두 사람이 수풀이 무성한 장소에 몸을 숨기려 하는데 산 중턱의 산채로 통한 길에서 누군가 바쁜 걸음으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에 대해서는 예상을 못했던 두 사람은 어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사내의 차림새를 본 아두가 수풀에서 빠져 나가 큰 길에서 올라온 것처럼 숨을 헐떡이며 사내 앞에 나타났다.

산에서 내려온 사내는 바로 청무회의 마 송이었다.

어서 내려가 대선배가 맡긴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쉬지도 않고 내려오는 길이라 옷은 흙투성이에 호흡도 거칠었다. 아두는 마 송이 너무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선발대는 올라갔습니까?"


숨을 헐떡이며 놀란 토끼눈을 하고 아두를 보던 마 송은 이내 알았다는 듯이 웃으며 포권했다.


"아, 도 선배님이 얘기한 분들이시군요. 그래도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은 몰랐는데... 저도 선배님을 모셔다 드리고 지금 내려오는 길입니다.

아직 주변 상황에 대한 정탐은 시작도 못했습니다."


"저희가 왔으니 그런 건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혹시 선배님은 일행을 데리고 오셨습니까?"


"아니요. 도 선배님이 누굴 데리고 다닐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하..."


마 송은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아무리 후발대라 하나 먼저 출발한 이가 누군지도 모른다? 특히나 청무회에서 도 연무라는 사람의 위명은 신참이라 모를 수도 있는 그런 이름이 아니었다.

항상 혼자 다니고 청무회의 연례 보고에도 참여를 한 적이 없지만, 신출귀몰한 그의 행적과 과거의 업적은 청무회에 몸 담은 무사 모두가 우러러보는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청무회의 무사들은 자신의 임무 이외의 것을 묻지 않으며 알려고 해서도 안된다는 철칙을 이 자들은 모르는 것인가?

마 송은 빨리 걷기 위해 등 쪽으로 돌려 묶어 놓았던 검집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이미 그의 목 울대를 향해 아두의 소검이 빠른 속도로 뻗어 오고 있었다.

서걱하고 뼈가 갈리는 소리와 살 가죽이 찢어지는 소리.

사람의 목숨 줄이 끊긴 것 치고는 너무나 작은 단말마가 금세 주위의 산새 소리와 물 소리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렇게 스물 다섯 젊은 무사의 뜨거운 피가 명산의 산길에 흩뿌려졌다.

바로 숲에서 뛰어나온 무명이 바닥에 쓰러진 시신을 보며 아두를 노려보았다.


"청무회의 무사라는 확신이 있었나? 아니면 산에서 내려오는 자는 다 죽이겠다는 생각이었던 건가."


아두는 무명에게 시선도 두지 않고 길에 뿌려진 핏방울을 주변의 흙으로 덮었다.


"청무회는 따로 제복을 갖추어 입지는 않지만 자기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자의 검에 묶인 실 뭉치 같은 것."


아두의 말대로 평범해 보이는 의복과는 어울리지 않는 청색 실 뭉치가 검 손잡이 끝에 묶여 있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아두에게 괜한 소리를 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든 무명은 아무 말 없이 아두가 시신을 숨기는 걸 도왔다.

무명은 아직 약선의 말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다. 자신 또한 무사였고 싸움터에서 맞이한 적을 베는 데는 일말의 자비도 없는 사람이지만, 산에 있는 모두를 죽여야 한다는 건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경험 상 살생 보다는 내가 몸을 굽히고 피하는 것이 백 배 낫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이었다.

피 한 방울은 언젠가 핏줄기가 되어 돌아온다. 그리고 그 핏줄기는 나 뿐 아니라 내 주위의 사람들 것이 될 수도 있었다.

무명은 왠지 자꾸만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드는 것을 애써 감추고 모용 가의 무사들이 패냄새를 맡지 못하도록 산짐승의 똥을 가져와 시신을 묻은 곳 근처에 뿌려두었다.

두 사람이 작업을 거의 마칠 무렵에 그들에게도 들릴 정도의 수십 개의 말발굽 소리가 지축을 흔들었다.


"온 것 같군. 그런데..."


그들의 예상보다, 약선의 예상보다도 숫자가 많았다. 어림 잡아도 스무 명 이상이었는데, 전력으로 말을 달리면서도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갖추고 있었다.

보통 녀석들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모용 세가의 무사들은 오대산의 초입에 들이닥쳤다.

예상을 뛰어넘는 질풍같은 그들의 질주에 무명과 아두는 몸을 숨기는 것이 고작이었고, 기습을 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약선의 말대로 쉽게 볼 녀석들이 아니다.'


무명은 수십 마리의 말이 폭풍처럼 산의 입구에 몰아치는 광경을 보면서 되새기고 싶지 않은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올랐다.

무명은 서역의 사막을 떠돌아 다니던 마적떼 중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메뚜기 떼처럼 주변을 휩쓸고 다니는 그들은 따로 가정을 꾸리는 일이 없었고, 자신의 맘에 들어 데리고 다니던 여인이 아이를 가지게 되면 보통은 아이와 산모를 죽였다.

무명의 친모는 어떻게든 아이를 살리고자 임신 사실을 숨겼는데, 천운이 따랐는지 주변국의 칼리파가 보낸 토벌대에 의해 마적떼가 초토화 되면서 무명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철도 들기 전에 자신의 뿌리를 찾겠다며 마적떼를 찾아나선 무명은 인명에 대한 가치도 모르고 그저 눈 앞의 재물과 살육에만 미쳐 있던 그들의 눈빛을 본 후, 그렇게도 자신을 만류하던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무명은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모용 세가 추적대의 눈빛에서 어릴 적 마적떼의 도적들에게서 보았던 흉흉한 살기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더욱 두려운 것은 저들이 온 몸에 살기를 가득 채운 상태임에도 차가울 정도로 냉정하고 전술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선두에 있는 무사를 중심으로 선봉의 무사들이 전방을 경계하고 중앙의 몸통이 언제든 전투에 나설 수 있도록 전투 준비를 갖추고 있었으며, 후방을 살피는 무사들에게서도 티끌 만큼의 방심이나 냉정을 잃은 모습이 없었다.

그들은 수많은 다리를 가졌지만 하나의 머리를 가진 지네처럼 자그마한 오차도 없이 자신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쉬운 상대가 아니다. 이런 느낌은 무명 뿐 아니라 아두 또한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한 명 한 명의 무공도 상대하기에 만만치 않은데 저들은 전술적 움직임을 가질 줄 아는 숙련된 전투병들이었다. 예전 무림의 전투는 일 대 일 대결이 주를 이루었기에, 상대 편에 범접하기 힘든 수준의 고수가 있다면 아군의 숫자가 많아도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수 만 대 수 만의 대전투를 경험해 본 현재의 강호인들은 숫자라는 것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힘이라는 걸 직접 목도했다. 현경이니 혈마니 하는 초고수라 해도 수 백 수 천의 훈련받은 병사들이 대형을 갖추어 공격하면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결국 무공의 강함이란 일 대 일, 일 대 수십의 대결에서나 통용되는 힘의 법칙이었다.


무명은 강력한 선봉을 치는 것보다는 몸통을 건드려 대열을 어지럽힌 후, 산채 쪽으로 후퇴할 계획을 세웠다. 의견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먼저 움직이면 아두 또한 따라서 나서줄 거라 믿고 무명은 발각되지 않도록 미리 검집에서 뽑아둔 검을 강하게 움켜 쥐었다.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땐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움직여라. 휘둘러 베지 말고, 정확하게 찌르고 찌른 방향으로 몸을 피해라. 내 등을 본 적은 필히 죽이면서 움직임이 제한되는 좁은 곳으로 몸을 피했다가 다시 넓은 장소로 이동하는 것을 계속 반복해라.


백수가 가르쳐준 독고 구검에는 다수의 적을 혼자서 상대하는 방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기습이 효과를 최대한으로 보려면 저들이 말을 타고 있을 때를 노리는 것이 유리했기에, 무명과 아두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었다.

무명은 선봉에 선 대장으로 보이는 무사가 말의 속도를 줄이면서 산세를 살피는 틈을 노려 숲에서 뛰쳐 나갔다.

속도라면 강호에서 누구와 붙어도 자신있다 자부하는 무명의 쾌검이 말과 함께 가쁜 호흡을 가다듬던 한 무사의 어깨와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추룡진(隊龍陣)을 펼쳐라!!"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무명이 날아오름과 동시에 선두에 있던 마 근홍이 수하의 무사들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짧게 외쳤다.

지휘관의 외침에 수 많은 무사들은 마치 한 몸처럼 원형의 진을 펼쳤다.

최대한 빠르게 기습하고 상대의 대열이 흩어진 틈을 타 그들의 대열을 통과하여 반대편으로 통과하려 했던 무명의 계획은 그들이 순식간에 펼친 용을 떨어뜨리는 방어진 때문에 완전한 실책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순식간에 원형의 진을 만들었고, 공중에 있던 무명은 그들이 만든 그물 위에서 팔딱거리는 생선과 다를 게 없는 상태가 된 것이었다.

아무리 무명이라 해도 공중에서 할 수 있는 행동에는 한계가 있었다. 공중에 있는 무명을 지면에서 둘러싼 모용 세가의 무사들은 각자가 가진 투척 무기를 꺼내들었다.

무명에게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그 때, 후위의 무사들이 모인 곳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검붉은 색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쿨럭 하고 피를 토하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정확히 때를 맞춘 아두의 협공 덕분에 무명은 자신의 계획대로 반대편 숲 속으로 몸을 숨길 수 있었다.


"독무(毒霧)다!! 산개해서 매복병을 찾아내고 선봉은 나를 따르라!"


마 근홍의 지휘 아래 무사들은 일제히 흩어져서 독무의 영향권에서 몸을 피했다.

그리고 마 근홍의 주변에 있던 최정예 무사들이 아두의 도움 덕에 몸을 피한 무명의 흔적을 찾아 뒤롤 쫓기 시작했다.

다행히 부상을 입진 않았으나, 무명은 말을 탄 정예 무사들에게 등을 보인 셈이 되고 말았다. 사냥꾼에게 뒤를 잡힌 사슴보다도 못한 상황이었다.

아두 또한 대열을 정비한 중위와 후위의 무사들에게 위치가 발각되어 추적을 당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찰나의 실수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기에 놓여 있었다.

경공이 약한 무명은 본인의 체력과 민첩성 만으로 바위와 나무 사이를 달리며 바람처럼 거리를 좁히는 모용 세가의 정예 무사들을 피해 달렸다. 그러나 일단 등을 보이고 시작하는 추격전은 무명에게 불리할 수 밖에 없었다. 방향을 바꾸면 순식간에 몇 개의 흉기가 날아올 지 모르는 상황에 적들은 사방으로 포위망을 넓히며 무명의 퇴로를 좁히고 있었다.

수많은 전투를 겪어본 그들은 등을 보인 상대를 어떻게 구석으로 몰아넣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직접 공격을 하기 보단 언제든 공격당할 수 있다는 위협만 보여주면서 사냥감의 행동 반경을 좁히는 것이었다.

험한 산길을 다리의 힘만으로 달리면서도 언제든 모든 방향으로 검을 휘두를 준비가 되어있는 무명의 빈틈없는 움직임을 보면서 마 근홍은 사냥감이 쉬운 상대가 아님을 확신했다.


'저 정도의 움직임을 보이는 자라면 가주님이 말씀하셨던 상당한 고수가 틀림없다.'


사냥감을 정한 그에겐 이제 한 가지 할 일만 남아 있었다. 충실한 사냥개들에게 숨통을 물어 뜯을 대상을 정해주는 것이었다.


-숲을 지나면 큰 바위가 두 개 붙어있다. 거기서 몰아넣고 잡는다. 생포할 필요 없으니 바로 죽여라.-


지휘관의 전음에 충실한 사냥개들의 눈에 전보다 더 강하고 차가운 살기가 맴돌았다.

이제 그들은 손에 피를 묻힐 정당한 명분을 얻은 셈이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림실세 왕백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0 괴수같은 인간, 인간같은 괴수(1) 22.07.30 899 8 9쪽
59 썩은 열매엔 아쉬움을 두지 않는다 22.07.29 888 7 10쪽
58 부정하지만 강한 수단 22.07.27 879 9 12쪽
57 잃었으나 손해는 없다. 22.07.27 920 9 13쪽
56 죽음을 넘어서다 22.07.26 886 9 11쪽
55 탈혼(脫魂)과 추혼(追魂) 22.07.23 914 7 12쪽
54 나를 만나다 22.07.21 863 7 11쪽
53 고치 속에 든 것은 22.07.21 855 6 10쪽
52 사막의 꽃은 썩었다. +2 22.07.20 888 9 15쪽
51 사막의 꽃 +2 22.07.18 890 8 12쪽
50 사천의 괴수 +2 22.07.16 910 8 12쪽
49 무명과 효령의 담판 +2 22.07.15 912 9 11쪽
48 결정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2 22.07.14 894 9 13쪽
47 이리떼는 호랑이를 죽일 수 없다. +2 22.07.13 930 10 12쪽
» 어떤 죽음에 명분이 있는가 +4 22.07.12 961 10 12쪽
45 피로 물든 손 +2 22.07.09 984 10 15쪽
44 강호의 천지안(天池眼)(2) +2 22.07.08 985 11 10쪽
43 강호의 천지안(天池眼)(1) +2 22.07.07 1,006 11 12쪽
42 새로운 길을 찾다 +1 22.07.06 1,013 11 12쪽
41 약선(藥仙) 운 효령 +2 22.07.05 1,043 12 13쪽
40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2) +2 22.07.02 1,030 12 12쪽
39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1) +1 22.06.30 1,033 12 15쪽
38 충성을 맹세하다 +2 22.06.29 1,030 9 15쪽
37 모용 세가 침투(4) +2 22.06.28 1,015 11 13쪽
36 모용 세가 침투(3) +2 22.06.25 986 11 13쪽
35 모용 세가 침투(2) +2 22.06.25 1,005 10 12쪽
34 모용 세가 침투(1) +2 22.06.23 1,053 11 11쪽
33 요령성 잠입(2) +2 22.06.21 1,066 10 14쪽
32 요령성 잠입(1) +2 22.06.20 1,097 11 11쪽
31 무사와 건달을 얻다 +2 22.06.18 1,129 1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