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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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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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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6
글자수 :
581,133

작성
22.07.02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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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추천
12
글자
12쪽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2)

안녕하세요.




DUMMY

익히 예상을 했었던 말이지만 아버지에게 듣는 말이라 백수의 마음에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한 마디였다.


[형은 아직 저를 의심하고 있습니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관평은 지금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모용 선화는 관평의 변심을 우려해서 주위에 첩자들을 심어 놓았을 것이 분명했다. 백수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형을 만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고, 자신 뿐 아니라 아버지와 무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악수(惡手)였다.


[형에게 아버지를 치료할 약의 조제법을 전할 방법이 있겠습니까?]


유 환명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조용히 붓을 들었다.


[의원과 간병인들도 모두 모용 세가의 감시를 받고 있으니 어려울 것이다. 저들의 눈을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서도 가끔은 정신이 나가주는 게 낫다.]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은 백수의 팔을 무명이 슬쩍 잡았다. 더 이상 여기 머물면 위험하다는 것을 뜻하는 신호였다.

백수는 2년 만에 만난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유 환명은 말없이 백수를 등지고 누워서 다시 욕지거리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반드시 구하러 오겠습니다.'


내공이 없어 전음을 보낼 수 없는 백수지만, 이 한 마디는 유 환명에게 또렷하게 전해졌다.

유 환명의 침소를 빠져나온 백수와 무명은 경계병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골목 사이사이를 지나 비밀 통로에 다시 도착했다.

형을 못 만나고 가는 것이 못내 아쉬워하던 백수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관평은 달빛 한 자락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비밀 통로의 입구에서 석상처럼 우두커니 서서 백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명은 검집에 손을 얹었으나 백수가 만류했다. 관평은 검을 차고 있긴 했지만 손에 쥘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 비밀 통로를 알고 있는 두 사람의 인영이 누구의 것인지 관평은 알고 있었다.


"역시 형제끼리는 통하는 게 있나보다. 오늘 아침부터 기분이 왠지 들뜨더구나. 분명 죽었다고 들었는데도 다른 사람이 아닌 네가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 사람은 마치 대치중인 군세처럼 거리를 좁히지 못 하고 서로 바라보기만 했다. 결국 관평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살아 있었으면서도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은 걸 보면 그랬어야 할 사정이 있는 거겠지. 우리 사이에 풀어야 할 일들이 분명 있다고 생각하는데 오늘은 그 날이 아닌 것이냐?"


백수는 한참을 고민하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형님은 모용 선화의 말을 모두 믿으십니까?"


언젠가는 들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말이었지만 자신의 반려를 적으로 보고 있는 동생의 말투에 관평은 마음이 무거웠다.


"어찌 되었든 이젠 네 형수가 된 사람이다. 대화로 풀어볼 생각은 전혀 없는 거냐?"


"저와 무명을 죽이려고 했고 거의 죽였던 자입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저를 본다면 다시 한 번 죽이려고 할 겁니다."


"그건 내가... 어떻게든... 젠장."


관평은 동생을 안심시킬 어떤 말도 해 줄 수 없는 자신의 위치를 깨달았다. 백수의 말대로 자신의 부인이 동생을 죽이려고 했다면 동생이 살아 돌아온 것을 곱게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걸 막을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관평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동생을 보내주는 것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말해봐라."


백수는 잠시 머뭇거리다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서녕성에서 가장 큰 객잔에 약의 제조법을 맡겨 두겠습니다. 아버지의 병환에 효험이 있을 겁니다. 모용 세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해주세요."


"모용 세가에서 아버님의 쾌유를 바라지 않는다는 거냐?"


"확실치는 않지만 아버님은 누군가의 간계로 인해 병이 드신 것 같습니다. 그게 누구인지 확실히 알기 전까진 모두를 의심해야 합니다."


"아버님의 병환이 생긴 것이 수 년 전인데, 그렇다면 모용 세가는 이 일과 관련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냐?"


어떻게든 자신의 부인을 보호하고 싶어하는 형의 말에 백수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리 상단을 노린 음모가 예상보다 오래전부터 계획되었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누구도 믿을 수 없습니다."


관평은 자신과 모용 선화에 대한 이야기를 동생에게 전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누구보다 자신이 믿어줬어야 했던 동생이 자신의 의심 때문에 집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중원을 떠돌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칼로 가슴을 찔리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필귀정이라 하였으니 언젠가는 모든 것이 바른 길로 인도되리라. 관평은 항상 영민하고 냉정하게 상황 파악을 한 후 행동에 옮겼던 동생의 판단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할 말이 많으나 우리에게 여유가 없구나. 서녕엔 5일 후 쯤 들를 것이다."


관평을 자신을 지나쳐가는 동생을 보며 속삭이듯 한 마디를 남기고 통로를 빠져나갔다.


"몸 조심 하거라. 내가 힘이 없어 미안하구나."


백수는 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 채 빠른 걸음으로 칠흑같은 비밀 통로를 걷기 시작했다. 복잡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마구잡이로 앞을 향해 걷다 보니 울퉁불퉁한 돌벽에 쓸려 팔이 상처 투성이가 되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결국 무명이 백수를 제치고 앞장서기 시작하고 나서야 두 사람은 통로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안전한 장소까지 나온 후 무명이 입을 열었다.


"주공의 형님은 복심을 숨기지 못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용 선화가 주공의 생환을 눈치 챌 지도 모릅니다."


"언젠가는 그리 될 일이니 그건 문제가 아니지만, 그 여인이 아버님과 형님께 해꼬지를 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이 무빈의 가족에게 했던 것처럼 인질로 삼으려 하겠죠. 어쨌든 두 분은 가능한 한 빨리 구출해내야 할 것 같습니다."


백수 또한 지금 당장에라도 본채에 들어가 두 사람을 구해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몰래 들어가는 건 쉬워도 집중적으로 감시를 받는 두 사람을 빼내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철두 철미한 모용 선화는 자신이 없는 동안 본채에 정예 병력을 남겨 놓았을 것이 분명했고, 어찌어찌 구출에 성공한다 해도 중원 끝까지 그들을 쫓아올 모용 가의 추격대를 따돌리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침통한 얼굴의 백수를 보며 무명은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상단에 들렀다 청해로 간다 하셨는데 거긴 무슨 일로 가십니까?"


"거기서 만날 사람이 있어. 너하고는 별로 안 친했던 깐깐하고 고지식한 할아범이 거기 있다고 해서 말이야."


"무술 교관이었던 안 량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분이 상단을 떠나셨는지는 몰랐습니다."


"상단에 있던 호위 무사 대부분이 그 곳을 떠났다는군. 량 아저씨는 성품이 강직하고 우리 편이 되어줄 만한 사람이라 생각되서 청사령에 찾아달라 했지."


"그래도 사람 일은 알 수 없으니 다른 마음을 먹고 있진 않은지 확인을 먼저 해보셔야 합니다."


"그래야지. 이럴 때 얼굴을 바꾼 게 유용하게 쓰이지 않겠어?"


백수는 갑자기 무명이 그 답지 않게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


"속에 있는 말 참으면 병 되는 거 몰라? 할 말 있으면 해."


무명은 조금 더 고민을 하더니 결심한 듯 백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소단주 말입니다. 그냥 감으로 찾아와 봤다고 하지만 저는 그 말이 믿기지 않습니다. 감시를 받고 있는 처지에 그런 개인 행동을 하는 것도 미심쩍구요. 행동에 좀 더 주의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녕 성에는 다른 사람을 보내시지요."


백수 또한 그 생각을 안 한 것이 아니었다. 관평 답지 않은 행동이었고, 평소 충동적이고 말보다 행동이 앞서던 그였기에 조금 전 보았던 관평은 왠지 사람이 변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건 백수도 마찬가지였다.

동생의 원수라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의 반려자가 된 여인을 적으로 돌린다는 건 성품이 여리고 착한 관평에게는 크나큰 마음의 짐이 되었을 거라는 것은 누구보다 백수가 잘 알고 있었다.

백수는 2년의 시간동안 자신만 성장한 것은 아닐 거라 생각을 하니 관평의 심정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다.

관평 또한 상단 안에서 많은 일을 겪고 남 모르는 성장통을 겪었을 것이 분명했다.


"네가 말했잖아. 형님은 속마음을 잘 숨기지 못해. 나를 함정에 빠뜨릴 생각이었다면 내가 눈치를 챘겠지. 우린 어려서부터 함께 지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눈치는 빨라.

형님이 그림자만 보고서 나와 널 알아챈 것처럼 말이야.

만약 형님이 모용 선화에게 날 본 사실을 말한다 해도 그들은 내 변한 모습을 모르니 오히려 그게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어."


백수는 미소를 지으며 무명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지만 네 말도 일리가 있으니 서녕 성에는 다름 사람을 보낼게. 청사령 사람을 보내면 되겠지."


무명은 그제서야 안심한 듯 표정이 풀어졌다. 밝은 얼굴의 무명을 보면서 백수는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서녕 대신 다른 곳에 가봐야겠어. 바로 건업으로 가자." "거기엔 무슨 용건으로 가십니까?"


"지난 번에 아버님의 약을 얻었던 그 괴인, 아니 상인을 다시 만나봐야겠어. 아무래도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아버님의 병환을 치료했을 정도니 내 체질에 대해서도 아는 게 있을 지 몰라."


"그럼 바로 출발하시죠. 빠른 말을 타면 이삼 일 정도면 도착할 겁니다."


백수와 무명은 근처 마을에서 날랜 말을 구해 건업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무명의 말대로 가벼운 차림으로 말을 달리니 삼 일만에 건업 근처의 장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큰 시장도 아니고 너른 공터에 대충 펼쳐 놓은 장터다 보니 어제 온 장사꾼이 오늘 그대로 있다는 보장이 없는 곳인데, 백수가 그 남자를 본 것이 2년 전이었으니 지금까지 그 곳에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백수와 무명이 절박한 바램으로 시장을 뒤졌으나 어디서도 옥구슬 굴러가는 미성을 가진 남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급해진 백수는 근처의 상인들을 아무나 붙잡고 남자의 행방을 물었다. 한참을 수소문하다 보니 말린 생선을 파는 아낙네가 그런 남자를 본적 있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그 남자 알지요. 산도적같이 생겨 가지고 목소리는 얼마나 간드러졌는지... 뒤에 있으면 어디 가극을 하는 극단이라도 온 줄 알겠더라니까. 파는 것들은 또 지 얼굴같은 것만 파는데 그 사람이 옆에 오면 냄새 때문에 손님들이 생선 상한 줄 알고 그냥 가버려서 얼마나 짜증이 나는지 말입니다요. 그리고..."


백수는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한 후 아직 반 나절은 할 말이 남은 것 같은 여인의 말을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끊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상인이 어디서 지내는지 혹시 아십니까?"


백수는 여인이 또 딴소리를 하기 전에 은화를 꺼내 그녀의 입을 막았다. 며칠 장사를 쉬어도 될 만한 은빛 광채에 여인의 입이 함박만하게 벌어졌다.


"그게... 집이 어딘지는 모르는데 여기서 강을 따라 내려가면 나오는 동한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그 사람을 한 번 보긴 했습니다요."


백수는 은화를 한 개 더 얹어 여인의 입을 확실하게 막은 후 다시 길을 떠났다. 여인은 추가로 받은 은화의 의미를 아는 눈치 빠른 장사꾼이었다.

그녀는 금방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볕에 생선을 말리며 호객 행위를 시작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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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사막의 꽃 +2 22.07.18 889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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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피로 물든 손 +2 22.07.09 983 10 15쪽
44 강호의 천지안(天池眼)(2) +2 22.07.08 984 11 10쪽
43 강호의 천지안(天池眼)(1) +2 22.07.07 1,006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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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약선(藥仙) 운 효령 +2 22.07.05 1,042 12 13쪽
»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2) +2 22.07.02 1,030 12 12쪽
39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1) +1 22.06.30 1,032 12 15쪽
38 충성을 맹세하다 +2 22.06.29 1,029 9 15쪽
37 모용 세가 침투(4) +2 22.06.28 1,014 11 13쪽
36 모용 세가 침투(3) +2 22.06.25 985 11 13쪽
35 모용 세가 침투(2) +2 22.06.25 1,004 10 12쪽
34 모용 세가 침투(1) +2 22.06.23 1,052 11 11쪽
33 요령성 잠입(2) +2 22.06.21 1,065 10 14쪽
32 요령성 잠입(1) +2 22.06.20 1,096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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