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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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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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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6
글자수 :
581,133

작성
22.07.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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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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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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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새로운 길을 찾다

안녕하세요.




DUMMY

백수는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들 태세인 무명을 진정시키고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했다. 돌팔이이던 아니던 유 환명은 광길이라는 자가 알려준 조제법으로 증세가 호전되었다. 약선이라면 더 효과가 좋은 약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때 강호를 호령하던 영웅을 대체 무슨 수로 설득시킬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재물이나 명예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구석진 곳에서 마을 사람들의 원성이나 들으며 지낼 리가 없다. 지금에라도 강호에 나가면 중원을 호령할 사람이 이러고 있다는 건 야망 따위를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대체 이 사람이 원하는 건 뭐지? 정파의 거두였던 사람이 왜 이런 곳에서 숨어 지내듯 살고 있을까?'


백수의 고민이 길어지는 와중에 답은 의외로 쉽게, 그것도 상대방에게서 나왔다. 약선은 백수의 얼굴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갑자기 밝은 얼굴로 말을 꺼냈다.


"생각해봤는데, 공자가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게 정말입니까?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내가 점혈에 능통한 자를 하나 아는데 그 자라면 활인혈을 풀어내는 방법을 알 것 같기도 하거든. 그 자의 호는 흑미(黑眉)고

이름은 문 소라고 하는데, 본명을 사용하지 않으니 알아서 잘 찾아봐야 할 거에요."


"그 분이 어디 계신지 알 수 있을까요?"


"정해진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니는 거렁뱅이에요. 주로 고비 사막에 있으니 거기서 찾아보면 될 거에요."


"사막...이군요."


밑도 끝도 없이 사막이라니... 말 그대로 사막에서 모래알 찾기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이것만 해도 백수에게는 큰 성과라 할 수 있겠지만 기왕이면 이런 다시 없을 기연을 그냥 놓치고 싶진 않았던 백수는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고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을 본 효령이 짜증을 내면서 두 사람을 재촉했다.


"초면인 공자들께 이 정도면 많은 걸 줬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공자들의 정직한 눈빛이 맘에 들어서 귀한 정보를 준 것이니 더 욕심을 부리지 말고 이만 가보도록 하세요."


"아, 그것이... 그래도..."


그 때 호기롭게 문짝을 걷아차면서 들어오는 세 사람이 있었으니 어디서 보아도 정체를 알 수 있는 정겨운 인상들을 가진 그들, 바로 건달들이었다. 백수에겐 그야말로 제 때 나타난 구세주같은 그들은 거들먹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다 백수를 보고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오오, 이것 좀 보게? 이 산도적 같은 놈이 우리한테는 돈 없다더니 여자를 끌어들였어."


좀 더 나이가 있어 보이는 건달이 혀를 차면서 앞서 말한 건달을 꾸짖었다.


"좀 자세히 봐라. 엄청 예쁘게 생겼긴 하지만 사내가 아니냐. 네 놈이 그러니 이 나이가 되도록 연애 한 번 못 하지."


"남 연애사는 왜 들먹이쇼! 그건 그렇고 네 놈은 뭔데 이렇게 예쁘게 생겨서 사람 기를 죽여?"


건달들의 만담에는 이골이 난 무명이 출수도 아까운 듯 검을 놓고 조용히 일어섰다.


"주공의 외모가 뛰어난 거에 왜 너희들이 기가 죽냐... 우리는 갈 참이었으니 용건 있는 사람들끼리 얘기 잘 나누도록 해라."


뒤에 서 있던 세 번째 건달이 '이번엔 내 차례인가'하는 태도로 앞으로 나서다 그 중 나이가 있는 건달의 제지로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그래도 밥 몇 그릇 더 먹어본 사람의 눈치로 자신들의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예사롭지 않은 기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무릇 건달이란 힘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인상의 더러움과 목소리의 크기로 우위를 정하는 것이다. 진짜로 검을 뽑을 자세가 된 무사들과는 겸상을 하지 않는 것이 건달의 미덕이라는 걸 인생을 좀 살아본 건달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명색이 건달인 자신들이 기세에서 밀리면 안 되기에 목소리만큼은 우렁차게 내질렀다.


"우리도 바쁜 사람들이야! 관계없는 자들은 당장 꺼져!"


"아니 형님, 저기 앉아있는 녀석은 여자 옷 입혀 놓으면 기녀라고 해도 믿겠는데 근처 기방에라도 데려다 놓으면 잘 팔리지 않겠어요?"


건달이 셋 이상 모이면 꼭 그 중 눈치 없는 놈이 하나씩 끼기 마련이었다. 나이 든 건달은 제발 눈 앞의 멍청이가 입을 다물기를 빌면서 조용히 타일렀다.


"우리가 건달이지 도적은 아니잖냐. 우린 돈만 받으면 되니 관계없는 사람들은 보내자고, 응?"


이때다 싶었던 백수가 두 건달의 대화에 냉큼 끼어들었다.


"받아야 할 돈이 얼만데?"


"용건 없으면 어서 가라니까... 크게 경을 치고 싶으냐?"


나이 든 건달의 조금 맥 빠진 협박에 백수는 오히려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약선에게 빚을 지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용건이 없었는데 지금 생겼어. 이 분이 빚진 거 내가 갚아줄 테니 가져가야 할 금액이 전부 얼마인지나 말해봐."


지금까지 뒤에 있던 건달이 이 때다 싶었는지 열을 내면서 뛰어나왔다. 가장 눈치가 없어 보이는 대신 덩치는 제일 큰 건달이었다.


"그런데 이 놈이 이뻐서 봐주려 했더니 따박 따박 말이 짧네?" "야, 넌 좀 조용히 해라!"


나이 든 건달은 뒤에 있는 무명의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눈치 없는 건달의 입을 막았다.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미소년의 자신감은 허세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소싯적에 강호에서 벌어진 큰 전투를 두 번이나 구경했던 그의 감에 따르면 미소년의 뒤에서 자신들을 차갑게 쏘아보고 있는 청년은 마음만 먹으면 자신들 정도는 순식간에 몇 동강 낼 수 있는 실력자였다. 아직 검을 집어 들지는 않았지만 만약 그런 불상사가 생긴다면 여기 목소리만 큰 두 덩치와 자신은 앞으로 제삿밥 먹으러 갈 때나 집에 들어가 볼 수 있는 불귀의 객이 되는 것이었다. 건달은 거의 애원에 가까운 호소로 덩치만 큰 두 바보들을 달랬다.


"돈을 준다지 않냐. 어서 돈을 받아가지고 돌아가서 술이나 한 잔 거하게 들이붓자꾸나, 허허허! 그런데 우리가 받을 돈이 얼마지?"


"저도 모르죠. 항상 있는 대로 긁어가기만 해서... 넌 아냐?" "난 돈 셀 줄 모르는데?" "......"


이 대화를 더 들었다간 자신도 바보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든 백수가 소매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세 건달은 백수의 주머니에서 나온 누런 쇠붙이가 내뿜는 광채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백수는 그래도 말이 조금 통하는 걸로 보이는 나이 든 건달의 손에 황실의 인장이 박힌 금화를 쥐어주었다.


"이 정도면 이 분의 빚을 갚는 데 충분하고도 많이 남을 거다. 남는 걸로는 셋이서 술도 한 잔 하고 멋진 옷도 좀 사고 그래. 당신이라면 이 금화에 찍힌 인장이 뭘 의미하는지 알 것 같은데, 더 욕심을 부리면 어떻게 될 건지도 알 거라 믿어."


나이 든 건달은 자신도 모르게 바보처럼 고개를 끄덕거렸다. 백수의 예상대로 그는 정확히는 몰라도 황실의 금을 가진 자라면 자신들이 건드려선 안된다는 것 정도는 아는 사람이었다. 건달 하나와 바보 둘이 집을 나서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효령이 자신의 커다란 콧구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콧김만으로도 탁자에 놓인 잔이 살짝 흔들렸다.


"흥, 이런 걸로 제 환심을 사려는 건가요? 빚을 갚아준 건 감사한 일이지만, 제 마음이 변하지는 않을 테니 기대는 하지 마세요."


백수는 지금이 바로 진심을 보여줄 적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백수는 효령의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약선 어른, 저는 사천 근처의 작은 상단의 부단주였으나 사람들이 강호의 정파라 추앙하는 모용 세가의 계략으로 모든 것을 잃고 목숨만 건졌습니다. 가족들과는 만나지도 못하고 여전히 모용 세가에 쫓기는 신세입니다. 살면서 죄를 지어본 적도 없는데 제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한단 말입니까? 저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빼앗는 그들에게 강호의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진짜 정의를 세울 생각입니다. 약선 어른께서 힘을 빌려주신다면 부족한 저희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저희 의협단에 합류해 주십시오."


예상치 못했던 백수의 열변에 효령은 잠시 넋을 잃고 이야기를 들었다.


'강호의 정의를 다시 세우겠다고? 어린 청년의 의기가 보통이 아니긴 하지만 지금 강호는 뿌리부터 썩은 거대한 고목이라 할 수 있다. 내버려두면 주변의 어린 나무들까지 죽이겠지만, 이젠 너무 두꺼워서 건드릴 수가 없지.'


효령은 한숨을 쉬면서 엎드려있는 백수를 일으켰다. 고개는 들었으나 결코 자리에서 일어서지는 않는 백수의 눈에서는 예전 어디선가 보았던 강한 의지가 보였다. 효령은 그것이 다른 이가 아닌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라는 걸 깨닫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동료들처럼 강한 무공은 없었어도 누구보다 정의감이 강했던 나인데, 강호에 올바른 법도와 정의를 세우려던 내 열망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꼬...'


운 효령은 백수의 나이였을 때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또래보다 강했고 영민했으며, 태산 같은 뜻을 세우고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자신보다 더 강한 동료들과 그보다 더 강한 적을 만나서 수 없이 부러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자신의 신념을 지키다 쓰러진 동료들을 보면서 효령은 더욱 의지를 불태우면서도 내면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두려움 또한 커져갔다. 더러운 진창에 발을 담그지 않는다는 그럴 듯한 핑계로 강호를 떠난 후 효령의 삶은 마치 산들바람에 떠다니는 민들레 홀씨 같았다.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강호를 떠난 후 효령은 평안하지도 도를 즐기지도 못했다. 효령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청년이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랬다. 아름답지만 꺾이지 않는 의지가 담긴 눈을 가진 청년은 분명 주변에서 뭐라 해도 듣지 않을 것이다. 예전의 효령처럼 말이다. 그러나 자신이 그랬듯 이 청년들 또한 꺾이고 도망치라는 법은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평생을 바친 약학에 대한 연구마저 시들해져 가고 있던 이 때, 저런 눈빛을 가진 청년을 만난다는 건 효령에게 생의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저 아름다운 청년은 중원의 모든 독을 이겨내고 보통 사람이라면 목숨을 내놓아야 될 사혈법(瀉血法)을 사용해도 끄덕 없는 활인혈의 소유자였다. 현재 자신에겐 방법이 없지만, 중원 최고의 점혈법 고수인 문 소라면 혈을 뚫어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순간의 실수로 평생의 짐처럼 떠안게 된 자신의 저주를 해결하는 방법 또한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효령은 무릎 꿇은 두 청년을 보며 자신의 남은 생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을 마쳤다.


"그런데 의협단이라는 문파명은 누가 지은 거에요? 중원에 사는 뒤가 구린 놈들이 이름만 듣고 전부 달려들겠네. 사막으로 가면서 일단 문파명부터 다시 생각해봐요."


많은 의미가 담긴 효령의 한 마디에 백수와 무명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효령은 기대에 찬 눈빛들에 화답하며 시커먼 송충이같은 눈썹을 찡긋거렸다. 귀여운 여인이었다면 애교 넘치는 행동이었겠으나 얼굴의 절반이 가시같은 털로 뒤덮인 남자의 행동이라 그런지 백수와 무명은 기쁘면서도 눈쌀을 찌푸렸다. 백수가 포권하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약선 어른!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한 때 북방의 거인들조차 공포에 떨게 했던 무림의 기린아, 약선 운 효령이 강호에 다시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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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괴수같은 인간, 인간같은 괴수(1) 22.07.30 899 8 9쪽
59 썩은 열매엔 아쉬움을 두지 않는다 22.07.29 888 7 10쪽
58 부정하지만 강한 수단 22.07.27 879 9 12쪽
57 잃었으나 손해는 없다. 22.07.27 920 9 13쪽
56 죽음을 넘어서다 22.07.26 886 9 11쪽
55 탈혼(脫魂)과 추혼(追魂) 22.07.23 914 7 12쪽
54 나를 만나다 22.07.21 863 7 11쪽
53 고치 속에 든 것은 22.07.21 855 6 10쪽
52 사막의 꽃은 썩었다. +2 22.07.20 888 9 15쪽
51 사막의 꽃 +2 22.07.18 890 8 12쪽
50 사천의 괴수 +2 22.07.16 910 8 12쪽
49 무명과 효령의 담판 +2 22.07.15 912 9 11쪽
48 결정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2 22.07.14 894 9 13쪽
47 이리떼는 호랑이를 죽일 수 없다. +2 22.07.13 930 10 12쪽
46 어떤 죽음에 명분이 있는가 +4 22.07.12 961 10 12쪽
45 피로 물든 손 +2 22.07.09 984 10 15쪽
44 강호의 천지안(天池眼)(2) +2 22.07.08 985 11 10쪽
43 강호의 천지안(天池眼)(1) +2 22.07.07 1,006 11 12쪽
» 새로운 길을 찾다 +1 22.07.06 1,014 11 12쪽
41 약선(藥仙) 운 효령 +2 22.07.05 1,043 12 13쪽
40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2) +2 22.07.02 1,030 12 12쪽
39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1) +1 22.06.30 1,033 12 15쪽
38 충성을 맹세하다 +2 22.06.29 1,030 9 15쪽
37 모용 세가 침투(4) +2 22.06.28 1,015 11 13쪽
36 모용 세가 침투(3) +2 22.06.25 986 11 13쪽
35 모용 세가 침투(2) +2 22.06.25 1,005 10 12쪽
34 모용 세가 침투(1) +2 22.06.23 1,053 11 11쪽
33 요령성 잠입(2) +2 22.06.21 1,066 10 14쪽
32 요령성 잠입(1) +2 22.06.20 1,097 11 11쪽
31 무사와 건달을 얻다 +2 22.06.18 1,129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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