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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114,799
추천수 :
1,166
글자수 :
581,133

작성
22.07.23 09:00
조회
913
추천
7
글자
12쪽

탈혼(脫魂)과 추혼(追魂)

안녕하세요.




DUMMY

소리가 잘 퍼지지 않는 사막에서도 옹벽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성량을 가진 남자는 집 주인의 허락도 없이 문을 박차고 들어오더니 놀란 눈으로 백수 일행을 둘러보았다.


"독특한 계집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남자 취향도 별스럽구나. 여자처럼 예쁘게 생긴 놈에 평범한 사막의 아들, 저 노인장과 터지기 직전의 선인장처럼 생긴 놈은 또 뭐냐?"


서른 정도 되어 보이는 건강한 구리 빛 피부의 남자는 자신의 농담이 재미있었는지 혼자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다 주위의 반응이 없자 시큰둥한 얼굴로 휘파람을 불었는데, 휘파람 소리가 멎기도 전에 수많은 사막의 전사들이 나타나 백수와 약선 일행을 에워쌌다.

약선과 침선이 있으니 대적 못 할 상대는 아니었지만, 오랜 기간 목숨을 건 전투를 해 온 상대의 눈에서는 절대 얕볼 수 없는 냉정함과 절제된 살기가 풍겨 나왔다.

남자는 문 소에게 다가가 두 손가락으로 그의 턱을 집어 들었는데, 바로 난동을 부릴 줄 알았던 문 소는 의외로 그의 도발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해도 자꾸 썩은 내를 풍기면 땅에 버릴 수 밖에 없지.

이제 우리의 거래를 끝마치고 내 침실에 와서 즐거운 밤을 보내는 것이 어떤가?"


문 소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상대를 배려했는지 이번엔 내용물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언제 약속 안 지킨다고 했냐? 그렇잖아도 출발할 참이었다."


"그래? 내가 볼 때 지금 너희들은 짐을 꾸려서 도망이라도 가려는 모양새인데 내가 잘못 봤나 보군."


"여길 떠나려는 건 맞다만 바로 네바드란으로 가서 볼일을 본 후에 갈 참이었지."


문 소는 말을 마친 후 특유의 거친 가래 침을 퉤하고 뱉었다. 발을 들어 살짝 그것을 피한 남자가 살짝 한쪽 눈을 찡그리며 웃었다.


"그 성질 머리만 좀 숙이면 좋은 아내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그 괴상한 목소리도 좀 어떻게 하고."


"너 이 몸의 진짜 주인은 나보다 백 배는 더 사나우니 더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또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군. 좋아, 가는 참이었다니 같이 가면 되겠어.

그런데 여기 있는 것들은 어쩔 셈이었나?"


"일을 하는데 필요한 동료들이다. 어차피 너희들이 건드릴 수도 없지만 그럴 생각도 하지 않는 게 신상에 이로울 것이야."


남자는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문 소를 앞에 두고도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과 자신감이 그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 그들의 여정에 예정이 없던 마적떼 수십 명이 참가하게 되었다.

원래 있던 일행의 눈치를 보는 것 만으로도 자다가 경기를 일으키던 파산은 이제 거의 울면서 낙타를 몰았다.

백수는 낙타 위에서 효령을 붙잡고 물었다.


"저 사람들은 대체 누구입니까? 침선과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거죠?"


"잘은 모르겠는데 저 썩을 놈이 또 일을 벌인 것 같네요. 목적지는 같다고 하니 일단 가보도록 하죠."


"목적지가 같다고 하시는데 우리의 목적지가 어디입니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네바드란이라고만 들었어요. 제가 알기로 네바드란은 고대 신을 섬기던 신전인데 지금은 폐허가 된 곳이에요. 거기에 숨겨 놓은 건가..."


"뭘 말입니까?"


"탈혼술과 추혼술의 비밀이 담긴 책을 말하는 거에요. 그 책은 사실 그냥 평범한 비급이 아니에요. 저자의 마공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저주까지 담겨서 불에 타지도 않고 끊임없이 마기를 내뿜고 있더라구요.

땅에 묻으면 주변의 풀이 모두 죽고, 모래에 묻으니 모래가 새까맣게 변했을 정도로 마기가 강해 어디에 보관을 해야 할 지 고민이었는데, 저 놈이 적당한 장소를 찾은 것 같군요.

그 책이 있어야 단주님의 힘을 빌어 다시 한 번 의식을 실행할 수 있어요."


"그렇군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백수는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약선과 침선은 지금 자신들도 손을 대기 힘든 물건을 통해 자신들의 몸을 되찾으려 하는 것이고, 아마도 그 책이 풍기는 마기를 막아줄 방패로 자신을 쓰려 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자신이 아무리 활인혈을 가진 자라고 한들 극강의 고수들도 버티기 어려운 마기를 견뎌낼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특히나 자신은 어제까지만 해도 내공이라곤 모래알 만큼도 없는 평범보다 못한 체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던가.

왠지 저들이 생각보다 위험한 일을 자신에게 숨긴 채 진행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떨치기 힘들었던 백수는 고개를 숙인 채 문 소의 뒷모습만 보며 낙타를 몰았다.


상당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네바드란이라는 곳은 백수의 상상을 뛰어넘는 거대한 석조 건축물이었다.

과거 사막 문명의 번성을 짐작케 해주는 웅장한 건축물의 잔해가 사라진 옛 왕조의 영광과 쇠락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문 소는 빛 바랜 돌 벽들 사이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더니 결국 지하로 통하는 작은 구멍을 하나 발견했다. 몸집이 왜소한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좁은 공간이었다.


"이제 여기서부터 자네가 수고를 해줘야겠어."


문 소가 백수를 돌아보며 미녀에겐 어울리지 않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오래된 곳이라 이런저런 것들이 많을 거야. 전갈이라던가 뱀이라던가, 뭔지 알지?

갈림길이 없으니 쭉 내려가다 보면 큰 방 같은 게 나올텐데 자네가 알아볼 수 있도록 내가 표시를 해 놓았으니 표시가 된 방으로 들어가면 돼.

충고를 하자면 일단 그 책을 집으면 절대 들여다보지 마.

시선도 주지 말고 그냥 온 길로 들고 나오면 되는 거야."


백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일행을 따라온 마적떼고 그 책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다부진 체격의 사내들이 이 곳 저 곳을 탐색하며 다른 입구를 찾는 모습이 보였다.

걱정스런 얼굴의 무명을 본 백수는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저 밑에 뭐가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아.

오늘 아침부터 왠지 그런 느낌이 드네. 저기 있는 것 정도로 나한테 해를 입힐 순 없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주공의 뜻이 그렇다면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저기 있는 마적떼들은 위험한 녀석들 같으니 책을 가지고 나오기 전에 바깥 상황을 미리 살피십시오."


"알았어. 낌새가 이상하면 신호를 줘."


백수는 끝이 안 보이는 큰 뱀의 아가리 속과도 같은 구멍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내렸다.


문 소의 말대로 입구만큼 통로도 좁았지만 갈림길 같은 건 없었기에 그저 전진만 하면 되는 행군이었다. 중간 중간 새빨간 전갈이나 노랗고 까만 줄무늬의 예쁜 색을 가진 뱀이 갑자기 튀어나오곤 했지만 백수에게 해를 입히려 하진 않았다.

한참을 구부정한 자세로 낮은 통로를 걷던 백수의 눈 앞에 넓은 원형의 방이 나타났다. 벽에는 열 개도 넘는 출구가 있었는데, 삐뚤 빼뚤한 글씨로 '여기로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써놓은 곳이 눈에 띄었다. 문 소 다운 표식이었다.

백수는 천천히 통로 안으로 발을 들였다.

왠지 더 스산한 냉기를 뚫고 한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알 수 없는 탁한 공기가 백수의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들고 온 횃불도 바람 한 점 없는데 갑자기 불빛이 흔들리면서 불꽃이 흔들리더니 거의 있으나 마나한 밝기가 되었다.


'낭패다. 다시 나가야 하나?'


다행히 좁은 굴을 지나는 사이 눈이 어둠에 익숙해졌는지 어느 정도의 분간은 가능하다는 걸 확인한 백수는 그냥 끝까지 가보기로 결심하고 천천히 한 발 한 발 앞을 향해 내딛었다.

어느 정도 걷다 보니 정면에 넓적하고 평편한 바위가 하나 있고 그 위에서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냉기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살을 에이는 차가움이 아니라 몸 속에 있는 내장을 얼리는 듯한 끔찍한 느낌을 주는 나쁜 기운이었다.

백수는 잘은 보이지 않아도 눈 앞에 부었이 있는 지는 알 수 있었다.

탈혼과 추혼이라는 사람이 써서는 안 될 마의 경지에 손을 댄 자의 악한 혼이 담긴 책이었다.

항상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는 백수였지만 이런 더러운 것에는 손도 대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모두에게 유익하다면 약간의 편법도 가능하다 생각하며 살아온 백수였지만, 그건 모두가 인정하는 상식의 선 안에서의 융통성을 말하는 것이었다.

사람의 생명이나 혼을 건드려 자신의 사익이나 지식의 습득을 추구하려는 건 백수의 상식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악이었다.


"약선 두 사람은 이것이 사악한 혈교의 마공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걸 사용해보려 했단 말인가.

사람들이 전하는 것처럼 두 사람의 의협심이 드높았던 것은 아닐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저들을 의협단에 끌어들이는 것도 다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 백수는 일단 조심스럽게 책에 손을 뻗어 보았다.

의외로 책은 백수의 손길에 아무런 저항도 없었다. 책이 저항을 한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방금까지 폭풍처럼 쏟아내던 마기를 생각하면 책을 집는 순간 화상이라도 입지 않을까 내심 걱정하며 손을 내민 백수였다.

책은 오랜 시간 지하에 있어서 그런지 약간 거칠고 종이는 바싹 말라 있었다.

이상한 일이 생기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돌아선 백수는 눈 앞의 광경에 발을 멈추고 말았다.

암흑 뿐이었던 방이 어느새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그리고 방 한 가운데엔 비쩍 말라 뼈가 다 보일 지경의 한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노인의 머리엔 서역인들이 쓰는 터번 같은 것이 씌어져 있었고, 헝겊 조각 같은 것으로 중요 부위만 겨우 가린 처참한 몰골이었다.

백수는 눈 앞의 광경이 환각인지 실제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어둠에 익숙해져 있던 눈에 갑자기 빛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눈을 뜨기 힘들었던 탓도 있었다.

겨우 눈을 비비며 다시 정면을 살피는 백수의 눈앞으로 어느샌가 다가온 노인이 크게 입을 벌리더니 백수를 향해 검푸른 액체를 쏟아냈다.


"으아아악!!"


생각지도 못한 끔찍한 광경에 백수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노인이 백수에게 쏟아낸 것은 액체가 아닌 연기 같은 기체였다. 검푸른 색의 연기는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백수의 온몸을 뱀처럼 휘어 감았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백수의 손이 제 멋대로 움직이면서 제 주인의 목을 쥐려고 했다.

자신의 몸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자 백수는 두려워졌지만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머리 속의 잡생각들을 비우면서 방법을 생각했다.

백수는 자신의 몸이 점점 더 속박당하는 느낌에 급히 정신을 집중하고 타골 선사가 가르쳐준 천근추(千斤錘)를 사용해 몸이 지배 당하는 걸 막으려 했다.

그저 머리 속으로만 알고 있던 소림의 무공이 이제 백수가 마음만 먹으면 사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신기하면서도 자신의 둘러싼 검은 기운의 기세가 사그러들지 않는 것에 불안함도 느껴졌다.

백수의 눈 앞에 있는 노인은 자신의 몸 속에 있는 모든 걸 쏟아붓기라도 하려는 듯이 끊임없이 탁한 연기를 내뱉었다.


'먼저 저 노인을 막아야겠다. 버티기만 해서는 승산이 없어.'


백수는 어떻게든 노인을 향해 손을 뻗어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점점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걸 느꼈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혀가 입 안으로 말려 들어가 숨 구멍을 막고 있었다.

백수가 낭패라고 느낄 새도 없이 그의 의식은 지금보다 더 깊은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백수는 자신의 머리가 땅에 닿는 걸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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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괴수같은 인간, 인간같은 괴수(1) 22.07.30 898 8 9쪽
59 썩은 열매엔 아쉬움을 두지 않는다 22.07.29 888 7 10쪽
58 부정하지만 강한 수단 22.07.27 879 9 12쪽
57 잃었으나 손해는 없다. 22.07.27 920 9 13쪽
56 죽음을 넘어서다 22.07.26 886 9 11쪽
» 탈혼(脫魂)과 추혼(追魂) 22.07.23 914 7 12쪽
54 나를 만나다 22.07.21 862 7 11쪽
53 고치 속에 든 것은 22.07.21 854 6 10쪽
52 사막의 꽃은 썩었다. +2 22.07.20 888 9 15쪽
51 사막의 꽃 +2 22.07.18 889 8 12쪽
50 사천의 괴수 +2 22.07.16 909 8 12쪽
49 무명과 효령의 담판 +2 22.07.15 912 9 11쪽
48 결정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2 22.07.14 893 9 13쪽
47 이리떼는 호랑이를 죽일 수 없다. +2 22.07.13 929 10 12쪽
46 어떤 죽음에 명분이 있는가 +4 22.07.12 960 10 12쪽
45 피로 물든 손 +2 22.07.09 984 10 15쪽
44 강호의 천지안(天池眼)(2) +2 22.07.08 984 11 10쪽
43 강호의 천지안(天池眼)(1) +2 22.07.07 1,006 11 12쪽
42 새로운 길을 찾다 +1 22.07.06 1,013 11 12쪽
41 약선(藥仙) 운 효령 +2 22.07.05 1,042 12 13쪽
40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2) +2 22.07.02 1,030 12 12쪽
39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1) +1 22.06.30 1,032 12 15쪽
38 충성을 맹세하다 +2 22.06.29 1,029 9 15쪽
37 모용 세가 침투(4) +2 22.06.28 1,014 11 13쪽
36 모용 세가 침투(3) +2 22.06.25 985 11 13쪽
35 모용 세가 침투(2) +2 22.06.25 1,005 10 12쪽
34 모용 세가 침투(1) +2 22.06.23 1,052 11 11쪽
33 요령성 잠입(2) +2 22.06.21 1,065 10 14쪽
32 요령성 잠입(1) +2 22.06.20 1,096 11 11쪽
31 무사와 건달을 얻다 +2 22.06.18 1,128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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