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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114,818
추천수 :
1,166
글자수 :
581,133

작성
22.07.21 17:48
조회
862
추천
7
글자
11쪽

나를 만나다

안녕하세요.




DUMMY

문 소의 호언장담대로 두 사람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다시 나왔다.

원래는 효령이 것이었던 가녀린 팔에 들려 나온 백수는 마치 나뭇가지처럼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서는 무명을 보며 문 소가 손을 내저었다.


"혈맥이 역류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잠시 의식을 잃게 한 것 뿐이야.

곧 정신을 차릴 테니 염려 말고 정신을 차리면 물하고 과일 같은 걸 줘라.

고기나 독기가 있는 풀 종류는 안돼."


자리에 누운 지 얼마 안 되어 정신을 차린 백수는 온 몸의 기운이 다 빠진 사람처럼 정신이 없어 보였다.

흐릿한 눈으로 입만 벙긋거리는 걸 본 무명이 물을 가져와 입에 대니 아기 새처럼 받아먹었다.

그 모습을 본 문 소가 헛웃음을 지었다.


"무슨 애를 키우냐? 곧 천상천하 독존지체가 되실 몸이니 미리 모셔두는 게 좋긴 하겠지만."


문 소는 껄껄 웃으며 금세 술 한 병을 다 들이켰다. 효령이 그에게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그건 무슨 소리지?"


"귀가 먹었냐, 말 뜻 그대로다. 저 청년의 몸은 그냥 활인혈을 가진 좋은 신체의 소유자가 아니야.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온 몸의 혈맥을 다시 잡아주고 막힌 곳이나 기가 약한 곳이 있으면 하나하나 다시 손을 댔어.

이제 활인혈이 깨어나고 끝없이 샘솟는 내공을 양분 삼아 몸에 있는 혈맥을 모두 깨운다면, 그리고 그 자리에 강력한 무공을 새겨 넣으면?

잘은 몰라도 예전에 무슨 책에서 봤던 그런 몸이 되는 거지."


"... 불사지체(不死之體)?"


"그래. 바로 그거지."


백수를 챙기느라 여념이 없는 무명을 뒤로 하고 집을 나온 효령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효령이 백수와 뜻을 함께 하기로 한 것은 그의 품성과 열정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협단의 높은 뜻이 하늘까지 닿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수십 년 동안 자신들의 자리에 돌과 쇠로 된 벽을 쌓고 권력을 공고히 쌓은 무림의 강자들은 절대 고수 한 두 명이 나온다 하여 쉽게 쓰러질 자들이 아니었다.

문 소와 효령도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강호를 떠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한 때는 동귀어진의 각오로 재물을 탐한 소인배들과 황실과 결탁한 배신자들을 모두 처단할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상대의 뼈를 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이 보일 때 던질 가치가 있는 목숨이 되는 것이지, 이 쪽만 개죽음을 당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불사지체의 극강 고수라면?

얼마나 강한 지를 가늠하는 건 둘째치고 불사지체를 본 적도 없는 효령에게 그 이름은 불가사의하고 공포까지 느껴지게 하는 힘이 있었다.

수백 년 전, 마교에 불사지체를 가진 자가 나타나 무림 뿐 아니라 중원 전체를 두려움에 떨게 한 적이 있었다고 고서에 적혀있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무림인의 팔 할이 목숨을 잃었으며, 도저히 그와 대적할 자가 없어 대부분의 중원인들이 서역이나 남방, 혹은 멀리 동쪽 지방으로까지 피난을 갔을 정도라고 하니 그 위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마교 내부에서조차 멈출 수 없는 그 광기에 공포를 느껴 그를 제거하려 했다고 하는데 온갖 독과 암수를 써도 그는 죽지 않았고, 몇 년 후 끝없는 살육에 지루함을 느낀 그가 스스로 강호를 떠났다고 전해진다.

오래 전의 글이고 정사를 담은 것도 아니다 보니 과장이 섞였을 수 있겠지만, 정파와 사파를 포함한 전 무림이 덤벼들어도 쓰러뜨릴 수 없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던 최강자에 대한 기록은 효령에게 찝찝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만약 단주가 정말 불사지체가 된다면... 무림에 대한 불 같은 복수심을 가진 그가 중원에 나와 거대 정파들과 충돌하게 되면 강호에 엄청난 피바람이 몰아칠 수도 있겠구나.'


십 년 만에 자신의 몸을 되돌릴 기회를 찾은 효령은 왠지 기쁨보다는 끝을 알 수 없는 동굴 안으로 계속 걸어 들어가는 답답한 기분에 휩싸였다.


백수가 하루가 지나도 기운을 되찾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문 소는 백수를 데리고 다시 지하실로 들어갔다. 따지고 드는 무명에게 문 소는 귀찮은 파리를 쫓는 것처럼 손을 흔들었다.


" 이십 년 동안 막혀있던 혈도를 찾는 게 그리 쉬운 줄 알았냐? 게다가 활인혈이라는 건 밖에 있는 모래알보다도 작고 정해진 위치가 있는 것도 아니라 아주 미세한 오차만 있어도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긴다.

기력을 못 찾는 건 아마 활인혈과 함께 다른 부분도 건드려서 부작용이 생긴 것 같은데 금방 해결할 테니 기다려봐라."


이번엔 이전보다 더 빠른 시간에 일을 끝마친 문 소는 무명과 효령을 보며 인심 좋은 아저씨 같은 미소를 지었다. 절세 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푸근한 미소였지만, 어쨌든 좋은 결과를 뜻하는 모시임이 분명했기에 무명의 얼굴도 밝아졌다.


"오늘은 자게 놔둬라.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다."


백수는 사막의 해가 떠오르기도 전에 잠에서 번쩍 깨어났다.

그는 꿈에서 사막을 날고 있었다. 날개도 없이 헤엄이라도 치는 것처럼 사막 위를 낮게 날던 그는 어는 순간 사막을 벗어나 중원을 향했다. 황산의 깎아지른 듯한 날카로운 봉우리들을 넘어 바다처럼 넓은 장강의 물살과 남부의 드넓은 평야를 내려다던 백수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무한한 자유로움을 경험했다.

백수는 꿈에서 깨어나서도 꿈에서 느꼈던 그 감각이 잊혀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다시 누워서 한 번 더 꿈을 꾸고 싶을 정도로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다시 누울까 고민하며 침상에 누워있던 그는 갑자기 목이 마르다는 생각이 들면서 갈증이 대장에서 위를 지나 식도와 기도를 타고 올라와 목구멍을 지나는 찌릿한 기분을 느꼈다.

마치 온 몸의 내장과 뼈 한 조각 조각을 직접 만져보는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이었다.

백수의 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백수가 살아있으니 체내의 모든 것들이 살아있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머리카락 한 올부터 발가락 끝에 흐르는 피 한 방울의 생동감까지 매 순간 느끼는 건 백수에게 너무나 생소한 경험이었다.

백수는 지금 새로 태어난 것 같았다.얼마 전까지 유 지령이었고 지금은 왕 백수가 된 그는 사라지고 완전히 전에 없었던 새로운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백수가 지금까지 잃고 있었던 당연한 자신의 것을 찾은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앞으로 그가 찾아내야 할 몸 속의 보물들이 수도 없이 남아 있었다.


해가 뜨자마자 잠에서 깬 무명은 백수가 보이지 않자 깜짝 놀라 집 밖으로 뛰쳐 나갔다.

백수는 해가 고개를 내민 사막의 모래언덕 위에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명도 백수의 무엇인가가 크게 변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직 무공이 쌓인 것도 아니고 몸이 엄청나게 강해진 것도 아니었으나 너무나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무명을 돌아보는 백수의 눈동자는 전에 없이 맑고 또렷했다. 그리고 최근 끊임 없는 이동과 전투로 약간 힘이 빠져있던 그의 음성이 오늘은 오래된 사찰에서 울리는 범종 소리처럼 맑게 들렸다.


"저기에서 사람들이 오고 있어. 숫자가 꽤 많고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눈이 좋기로는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는 무명이 아무리 봐도 여러 필의 말들이 일으키는 흙먼지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백수는 자신의 말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미지근한 물 한 모금에 그의 온 몸이 활력으로 채워지는 것 같은 충만함을 느낀 백수는 침상에 앉아 명상을 시작했다.

얼마 후 잠이 깬 효령과 파산, 문 소도 좌선중인 백수를 발견했다.

그저 집에 가고 싶을 뿐인 파산은 백수가 정신을 차렸다는 사실만으로도 눈물이 날 만큼 기뻤다.

효령도 백수의 빠른 회복세에 안도하면서 문 소를 돌아보았다.


"이번엔 성공한 것 같은데 우리 실험은 언제 시작할 수 있지?"


"상태를 보아하니 지금이라도 할 수 있겠다. 역시 활인혈의 소유자라 회복력이 남다르구만."


무명이 집에 돌아오자 효령은 그를 불러 세웠다. 효령이 무슨 말을 할 지 알고 있는 무명의 얼굴이 그다지 밝지 않았다.


"문 소의 말에 따르면 단주님의 막혀있던 혈은 완전하게 발현되었다고 하네요. 이젠 약속대로 우리의 일을 도와줘야겠어요."


"단주님께 해를 입히지 않겠다고 약속하실 수 있겠습니까?"


술병을 들고 땅바닥에 벌렁 누워있던 문 소가 무명을 보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해를 입히면 네가 어쩔 건데! 어차피 지금 네 주인은 우리가 지금 가서 전력으로 머리통을 후려쳐도 상처 하나 안 입을 거다. 그리고 어찌 되었든 난 약속을 지켰으니 너희도 그래야 계산이 서는 것 아니냐."


발끈한 무명의 어깨를 어느새 다가온 백수가 가볍게 두드렸다.

백수는 효령과 문 소에게 공손히 포권하며 고개를 숙였다.


"두 분 덕분에 전 잃어버렸던 제 진짜 몸을 되찾은 기분입니다.

제 몸을 되찾았으니 이제 두 분의 몸을 되찾도록 돕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 주십시오."


치마가 뒤집어지도록 다리를 들고 벌렁 누워있던 문 소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보지 못 했던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좋아, 잘 생긴 청년이 좋다고 하니 그럼 바로 출발하자고! 일단 밥부터 먹고!!"


문소의 말에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길잡이로 끌려와 성질 사나운 무림 고수들 사이에서 숨도 못 쉬고 있던 파산이었다.

이제야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파산의 머리 속에는 살짝 구운 양 갈비와 뜨뜻미지근한 마유주 한잔이 떠올랐다.

이제 며칠만 있으면 그 모든 것들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두둑한 수고비까지 손에 들고 말이다.

그러나 희망이 클수록 예상치 못한 변수도 따라오는 법. 간단히 요기를 한 후 길을 떠나려고 짐을 챙기고 있는데, 갑자기 백수가 벽을 보며 혼잣말하듯 말했다.


"왔어. 정오에나 올 줄 알았는데 굉장히 빠르네."


"뭐가 왔다는 말입니까?"


"말들, 그리고 칼을 든 남자들. 서른 명은 돼 보이는데 마적이 아닐까 싶어."


백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문 밖에서 가마솥에 쇠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막의 주인 하마드가 사막의 꽃을 만나러 왔다!!"


집에 가는 줄 알고 신이 나 있던 파산은 하마드라는 이름을 듣자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왜, 왜 지금 하마드가 여기 오는 것이냐, 왜애!!"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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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고치 속에 든 것은 22.07.21 854 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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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2) +2 22.07.02 1,030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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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모용 세가 침투(3) +2 22.06.25 986 11 13쪽
35 모용 세가 침투(2) +2 22.06.25 1,005 10 12쪽
34 모용 세가 침투(1) +2 22.06.23 1,053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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