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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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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133

작성
22.07.18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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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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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2쪽

사막의 꽃

안녕하세요.




DUMMY

"관병이 지키는 마을에 들어와서 소를 잡아가는데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는 건 이상하군요."


"그렇지. 나도 그게 이상해서 지금까지 상황을 지켜본 건데, 일단 지금은 우리 부단주, 아니 의협단 단주님을 먼저 뵙고 나서 꼭 다시 돌아와 이 놈을 잡을 생각이네."


"현명한 생각이십니다. 안 교관님은 의협단의 뿌리를 세우고 사람을 모으는 일을 하시게 될 테니 언제든 여기에 다시 오실 수 있습니다."


안 량이 묘하게 눈을 흘기며 무명을 쳐다보았다.


"자네가 내게 이 정도로 부드럽게 얘기를 하는 건 처음인데... 그동안 세상의 이치를 좀 깨달았거나 아니면 내게 말 못한 급한 일이 있구만."


무명은 역시 눈치 빠른 늙은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생각마저 안 량에게 읽힐까봐 얼른 딴 소릴 했다.


"우리는 지금 무림의 거대 정파와 싸움을 시작하려는 것이니 속도가 곧 생명입니다. 저들이 우리를 적으로 인식하기 전에 최대한 세력을 키워 놓아야 하지요.

사실 우리끼리 한가하게 안부나 주고 받을 시간도 없습니다."


"그래...? 뭐 그렇다면 빨리 가야지. 호야, 집 정리는 다 했느냐?"


"예 아버님, 이런 때를 생각하고 세간 살이도 안 들여놓았잖습니까."


"다 내 선견지명이었느니라. 자, 우리 단주님을 뵈러 가자꾸나."


호탕한 부자의 시원시원한 반응 덕분에 시간을 절약하게 된 무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안 량의 한 마디에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한 대로 일이 잘 풀린 건 사실이지만 자신이 지금 백수의 명령을 거부하고 독단적으로 움직인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내가 약선의 말에 너무 쉽게 움직인 건 아닐까? 더 깊게 생각해보고 행동했어야 하는데. 이 일로 인해 약선에게 약점을 잡히는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


무명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더 빨리 말을 달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안 량과 안 호가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뜬 백수는 무명이 단독으로 사천에 갔다는 소식을 약선에게 전해들었다.


"단주님과 함께 가고 싶다는 말을 계속 하기에 이렇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말을 꺼냈는데, 듣자마자 바로 떠날 줄은 몰랐네요. 제 불찰입니다."


"약선 어른이 무명을 겁박한 것도 아니고 본인의 선택이죠. 약선께서는 신경쓰지 마십시오."


항 량이 눈치를 보며 백수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찌 보면 시간도 절약하고 단주님께도 더 안전한 비책을 약선 어른이 찾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저도 두 분만 사막으로 보낸다는 것이 그리 탐탁치 않았는데, 무명이 내일 출발하기 전까지만 도착하면 일이 더 잘 풀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벌여놓은 일은 어쩔 수 없으니 우리는 사막으로 떠날 준비를 서둘러야겠지.

약선 어른 과 내가 사막으로 갈 준비를 해 놓을 테니, 항 선생은 자호를 데리고 우리가 가지고 온 재물을 안전하게 보관할 장소를 찾아보고 무명이 안 량 아저씨를 데려오면 그 분과 함께 주변의 인재를 찾아봐.

돈을 이야기하는 자들도 있을 텐데, 한 달에 은화 스무 개를 주겠다고 운을 띄워봐."


"안 량 대협이라... 이름만 들어도 믿음이 생기는군요. 인품과 실력을 갖춘 호인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강호의 이름난 고수를 찾는 것도 아닌데 은화 스무 전은 과한 월봉이 아닌가 싶긴 합니다."


"생각을 하는 자라면 은화 스무 개의 의미를 알 것이고, 그조차 모른다면 그냥 헤벌쭉 하겠지.

그런 바보들은 량 아저씨가 하루면 걸러낼 테니 걱정말고 항 선생은 주위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조용히 일을 추진하는 것에 신경을 좀 써줬으면 좋겠어."


"알겠습니다. 오래 걸리더라도 천천히 가라는 말씀이시죠."


"일정을 정확히 말해줄 수는 없지만 일을 끝내는 즉시 돌아올 테니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백수의 미소를 보며 항 량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항 량의 가슴 속 어디선가 묘한 감정이 스물스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의구심과 불안, 아니면 그 사이에 있는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의 조각들이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단주님이 자리를 비우셔도 되는 건지 모르겠구나.

반드시 필요한 일이니 가시는 거겠지만 의협단의 기반을 세우고 사람들을 모으는 건 앞으로의 대업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거늘...'


함께 지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백수에 대한 신뢰는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항 량에게도 지금의 상황은 없던 불안감마저 싹트게 했다.

항 량은 지금의 이 불안이 누구에게서 시작된 건지 알고 있었으나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지금은 백수의 계획대로 모든 일이 차질없이 진행되길 바랄 뿐이었다.


무명은 공교롭게도 사막 여행 준비가 막 끝난 시점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도착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효령과 함께마차의 짐을 살피는 백수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백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명을 한참 내려다 보았다.


"제가 지시를 따르지 않고 제 멋대로 행동했으니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백수는 고개를 들지 못하는 무명의 정수리를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안 량과 안 호를 발견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노사부를 본 백수는 마차에서 급히 뛰어내렸다.


"지금은 상벌을 논할 때가 아니니 어서 약선 어른을 도와서 마차 준비를 마치도록 해."


백수와 안 량은 십 년만에 만난 부자처럼 얼싸안고 재회의 기쁨을 누렸다. 처음엔 백수의 변한 얼굴 때문에 어리둥절한 안 량이었지만, 아기 때부터 제 손으로 어루만진 그 맨살의 감촉은 다른 얼굴이 된다 해도 잊을 수가 없었다.

이유가 무었이던 중요한 건 다시 만났다는 것이고 두 사람에겐 그걸로 충분했다.


"도련님,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지만 아직 제게 시킬 일이 있으시다면 제 풍뢰가 부러질 때까지 써먹으십시오, 하하핫!!"


"부단주님을 다시 뵐 수 있을 거라고는 솔직히 생각 못 했습니다. 아버님 말씀대로 역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군요."


"두 분 다 잘 오셨습니다. 무명에게 그간의 이야기는 대충 들으셨을 거라 생각해요.

여기까지 오셨다는 건 우리 일을 돕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시간이 없으니 먼저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할 것인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제 어엿한 문파의 단주님이신데 말씀을 낮추십시오. 늙은이라고 대접받는 건 질색인 사람인 거 아시잖습니까."


백수가 머뭇거리자 안 호도 말을 보탰다.


"아버님 말이 맞습니다. 더 많은 사람을 거느리시려면 위계를 반듯이 세워야 합니다.

저와 아버지도 과거의 연을 염두에 두지 않고 문파의 주인으로서 단주님을 모시겠습니다."


"그럼 두 사람의 말이 옳으니 그리 하도록 하겠소. 일단 이 곳의 일은 두 사람에게 맡길 테니 저기 있는 자호, 항 량 선생과 함께 사천 근처에서 의협단의 기반을 세워야 하는데, 위치는 사천과 청해 사이의 작은 성이면 좋을 것 같고. 오가는 사람이 어느 정도 있어야 우리의 움직임이 의심받지 않으니 민가가 백 호 이상은 되고 시장이 있는 곳이어야 할 거요."


"사천에서라면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주변인의 의심을 거두기 위해 객잔이나 골동품점으로 위장을 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아주 좋은 생각이오. 외부인이 드나들어도 의심받지 않고 골동품으로 위장해 재물을 들이기도 용이하겠군."


백수는 안 량과 안 호가 오자마자 일을 척척 추진하는 걸 보며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마차 구석에서 기가 잔뜩 죽어있는 무명을 보니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백수는 위계 질서나 명령 체계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새벽에 말없이 떠난 것이 잘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결론적으로는 시간을 절약하게 됐으니 백수의 관점에서는 잘 된 일이다.

그러나 이 상황에 그냥 흐지부지 넘어간다면 무명에 대한 편애를 의심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이 상황은 그저 무명의 개인 행동이라 하기엔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고민하던 백수는 무빈의 가족을 데려올 때처럼 자신의 뜻대로 하기로 했다.


'사람이 많아질 수록 모두의 마음에 들기는 힘들어지는 법이지. 나를 믿고 온 자들이라면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일단 내 뜻을 따르는 것이고 그게 싫다면 그들이 떠나야지.'


백수는 고개를 숙이고 마차의 짐을 묶고 있는 무명에게 다가갔다. 무명은 백수를 보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번엔 네 덕분에 시간을 절약했으니 그렇게 풀 죽을 필요 없어. 이전까지 단독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 단독 행동을 하지 않는게 좋겠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으니, 이번 행동은 문제삼지 않겠지만 앞으로는 어떤 상황에서든 내게 먼저 얘기하고 나서 움직이도록 해."


"명심하겠습니다."


무명의 어깨가 조금이나마 펴진 것을 본 백수는 다시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이제 백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는 활인혈의 발현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단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길을 나선 백수와 무명, 효령은 보름 넘게 마차를 달라고서야 황금빛 모래가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사막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그 아래에 얼마나 많은 조난자들과 객사자들의 유골이 묻혀있는 지 짐작도 하기 힘든 곳이 바로 사막이었다.

무공이 뛰어나도 땅을 뒤흔드는 권력이 있어도 사막의 타는 듯한 햇살 아래에서는 모두 평등하다. 길을 잃으면 비틀거리다 곧 바닥을 기어다니게 되고 얼마 후 사막에 사는 동물들의 한 끼 식사가 된다.

그래서 이 곳에서는 금덩이보다 물 한 모금이 귀하고 절세 미녀보다 길잡이가 필요했다.

사막의 말을 할 줄 아는 무명이 근처의 부락에 들어가 길잡이를 구했다. 초원에서 만난 오부타를 떠올린 무명은, 이번엔 말수가 적은 길잡이를 구하길 원했다.

그러나 사람의 바램을 꼭 거꾸로 이루어주는 심술 고약한 신이라도 있는 건지, 새로 구한 길잡이 파산은 오부타의 고약한 성질머리에 그보다 더한 주둥이를 가진, 무명이 생각하는 최악의 길잡이였다.


"나를 데려가는데 은 몇 개로 흥정을 보겠다고? 옆에 있는 움막에 가서 지금 여기 서 있는 남자 '알 무하메드 파드루스 헤론 이드라옷 알 파산'이 누군지 한 번 물어보라고. 내가 이 '신이 악마를 가둬놓으려고 만드신' 사막을 몇 번이나 왕복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했고 또 얼마나 많은 피비린내를 맡았는지 말이야.

내가 방금 전갈의 지배자 수드라 여왕하고 무함마드 칼리파가 보낸 40인의 도적 얘기는 안 했지?

그 얘기까지 듣고 나면 너희 동방의 머저리들은 내 앞에 엎드려 내 발에 입을 맞추게 될 것이야. 내가 사막에서 보고 들은 지식을 양피지에 적으면 북방의 붉은 땅에 사는 망나니들이 기르는 거대한 양들 가죽을 모두 벗겨도 모자라다고.

내가 좀 전에 술 가져오라고 안 했나? 사람이 얘기를 들어주겠다고 하면 술부터 가져오는 게 사막의 예의라는 거 몰라?

넌 생긴 건 오아시스의 사람 같은데 이런 기본적인 예의도 아직 모르고 말이야, 쯧..."


'아... 그냥 가고 싶다. 아니, 이 놈을 베고 나서 그냥 가고 싶다.'


무명은 굳이 백수의 명령까지 어겨가며 사막까지 따라나선 자신이 미워지고 있었다.

그 때 곁에서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백수에게 효령이 조용히 귓속말로 소근거렸다.


"금을 달라고 합니다. 황실 금화로 몇 개 던져주시지요."


"약선 어른 이들의 말을 할 줄 아십니까?"


"예전에 이 곳에 머물렀던 적이 있어요. 아주 잘 하는 건 아니에요."


반가운 얼굴로 주머니의 금화를 꺼내는 백수와는 달리 무명의 얼굴엔 경계의 빛이 떠올랐다.


'약선이라는 사람이 숨기고 있는게 대체 어디까지인 것이냐. 주공을 저 사람이 이끄는 데로 의심없이 데려가도 되는 것인가.'


그 때 약선과 대화를 나누던 파산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뭐어? 다시 말해봐. 지금 당신들이 찾는 게 '사막의 꽃'이라고 했어??"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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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괴수같은 인간, 인간같은 괴수(1) 22.07.30 899 8 9쪽
59 썩은 열매엔 아쉬움을 두지 않는다 22.07.29 888 7 10쪽
58 부정하지만 강한 수단 22.07.27 879 9 12쪽
57 잃었으나 손해는 없다. 22.07.27 920 9 13쪽
56 죽음을 넘어서다 22.07.26 886 9 11쪽
55 탈혼(脫魂)과 추혼(追魂) 22.07.23 914 7 12쪽
54 나를 만나다 22.07.21 863 7 11쪽
53 고치 속에 든 것은 22.07.21 855 6 10쪽
52 사막의 꽃은 썩었다. +2 22.07.20 888 9 15쪽
» 사막의 꽃 +2 22.07.18 890 8 12쪽
50 사천의 괴수 +2 22.07.16 910 8 12쪽
49 무명과 효령의 담판 +2 22.07.15 912 9 11쪽
48 결정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2 22.07.14 894 9 13쪽
47 이리떼는 호랑이를 죽일 수 없다. +2 22.07.13 930 10 12쪽
46 어떤 죽음에 명분이 있는가 +4 22.07.12 960 10 12쪽
45 피로 물든 손 +2 22.07.09 984 10 15쪽
44 강호의 천지안(天池眼)(2) +2 22.07.08 985 11 10쪽
43 강호의 천지안(天池眼)(1) +2 22.07.07 1,006 11 12쪽
42 새로운 길을 찾다 +1 22.07.06 1,013 11 12쪽
41 약선(藥仙) 운 효령 +2 22.07.05 1,043 12 13쪽
40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2) +2 22.07.02 1,030 12 12쪽
39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1) +1 22.06.30 1,033 12 15쪽
38 충성을 맹세하다 +2 22.06.29 1,030 9 15쪽
37 모용 세가 침투(4) +2 22.06.28 1,015 11 13쪽
36 모용 세가 침투(3) +2 22.06.25 986 11 13쪽
35 모용 세가 침투(2) +2 22.06.25 1,005 10 12쪽
34 모용 세가 침투(1) +2 22.06.23 1,053 11 11쪽
33 요령성 잠입(2) +2 22.06.21 1,066 10 14쪽
32 요령성 잠입(1) +2 22.06.20 1,097 11 11쪽
31 무사와 건달을 얻다 +2 22.06.18 1,129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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