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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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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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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6
글자수 :
581,133

작성
22.06.2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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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
11쪽

모용 세가 침투(1)

안녕하세요.




DUMMY

동굴을 나온 후로 어지간해선 잘 놀라지 않던 백수의 눈이 커졌다.


"모용 선화가? 상단 본채에 틀어박혀 두문불출 중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두가 탐색의 실패를 인정하듯 고개를 숙였다.


"신혼 방을 차린 후로는 도무지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정확한 정보를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송구합니다."


"송구할 것까진 없어. 밖으로 안 나오면 누구라도 방법이 없지. 청사령의 밀정들 눈조차 피해서 본채를 빠져나왔다면 비밀 통로를 이용한 것이 분명하군. 사람을 풀어 찾아냈거나 아니면 누가 알려줬겠지..."


백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지하의 비밀 장소를 아는 사람은 단주의 가족과 무명 정도이고, 대부분의 상단 사람들은 비밀 장소의 존재 자체도 몰랐다. 하지만 모용 선화는 상단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남자를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어도 그것이 추리해낼 수 있는 가장 타당한 결론이었다. 모용 선화는 유 관평을 통해 상단의 모든 비밀과 재산들을 빠르게 파악하고 장악해가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왜 갑자기 본가로 돌아왔을까? 그것도 이렇게 비밀스럽게..."


"모용 세가의 경계가 삼엄하여 가까이서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만, 가족들을 대하는 모습에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들 웃고 있더군요."


"모용 선화가 본가에 바칠 재물이라도 싸들고 왔나보구나. 그러려고 이런 짓을 벌였을 테니... 어찌 됐든 모용 선화가 이 곳에 있다는 건 우리에게 좋은 소식은 아니야. 더 집중하고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겠다. 아두는 수고했으니 가서 며칠 쉬다가 우리가 일 마치고 이 곳이 잠잠해지면 다시 탐색을 시작해줘. 모용 선화가 언제 이 곳을 떠나는지 우리가 바로 알아야돼. 모용 선화가 없는 지금이 유세 표국에 침투해서 형님과 아버님을 만나볼 마지막 기회가 될 지도 몰라."


"명을 따르겠습니다. 저는 항상 이 근처에 있으니 필요하면 부르십시오."


"며칠 쉬다 오라니까... 내일부터 요령성엔 한바탕 난리가 날 거야."


"밀정이 자리를 비우면 그건 죽었다는 뜻입니다. 일부러 그랬던 실수이던 제가 말없이 자리를 비웠다면 왕 대협께서도 그 곳에서 피하셔야 합니다."


"알았어. 내가 청사령의 일에 주제넘게 끼어들었던 것 같군."


"그렇진 않습니다... 전혀."


아두는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그 자세 그대로 모습을 감추었다. 최고수급 자객들이 주변의 환경에 흡수되듯이 모습을 감춘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러나 백수는 지금 감탄이나 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었다.

모용 선화가 이 곳에 있다. 그 말인 즉슨 작전의 난이도가 급격하게 올라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백수는 기세도 좋게 몇 시진째 떠들고 있는 항 량과 자호에게 슬쩍 손짓을 했다. 눈치빠른 두 사람은 소리를 계속 지르면서 눈과 귀만 백수를 향했다.


"계획을 조금 수정해야겠다. 계획대로라면 요령성 외곽에서 기다리다가 이 무빈의 가족을 데리고 탈출해야 하지만, 모용 선화가 이 곳에 있다는 것을 안 이상 그건 힘들겠어. 그 여자를 속여 넘기는 건 쉽지가 않고 빈틈없는 성격에 의심이 많아서 만약 우리의 존재를 들키면 중원 끝까지라도 우리를 추적할 거야. 내일 작전은 이 무빈과 무명에게 맡기고 우린 새벽에 이 곳을 떠난다. 모용 선화가 우리의 낌새도 채지 못할만큼 멀리 가야돼."


"그럼 포목점 준비는 어떻게...?" "어떡하긴, 지금 가야지."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기는 백수를 항 량이 만류했다.


"이런 일에 단주님께서 직접 나서시다니요. 제가 가겠습니다."


"만취한 사내가 밤길을 다니면 모용 세가의 순찰대에게 들키기 쉬워. 난 술을 거의 안 마셨으니 실수없이 끝낼 수 있을 거야."


"서, 설득력이.... 있어!"


"거봐, 자호도 그렇다잖아... 너희 둘은 계속 시끄럽게 술이나 마시고 있어. 그게 도와주는 거다."


백수는 항 량의 걱정에 가득찬 눈길을 외면하고 장포를 뒤집어썼다. 눈에 띄지 않기위해 일부러 어두운 색의 비단을 골랐으나, 오히려 순백의 얼굴빛을 더 드러나게 하는 효과만 났기 때문에 얼굴까지 뒤집어 쓸 수밖에 없었다.

치안이 잘 유지된 도시답게 해가 진 거리에도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있었으나, 서녕 성에 심심찮게 보았던 취객들과 지나는 여인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한량들 같은 부류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백수는 고개를 푹 숙인채 발끝만 보며 계속 걸었다. 민가와 상점이 많은 중심부만 벗어나면 크게 문제될 만한 일이 없을 터였다. 백수가 그런 생각을 하고 발을 내딛는 순간, 얼음장처럼 차가운 음성이 그의 발목을 잡아 쥐었다.


"거기 잠깐 서 보시오."


백수는 떨지 않기위해 입술을 꼭 깨물었다. 묵직하고 내공이 실린 낮은 음성으로 보아 순찰을 나온 모용 세가의 무사가 틀림없었다. 구름에 가린 달빛을 병풍삼아 도주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어차피 도망을 치려 한들 무공도 뛰어난 데다 지리도 잘 알고 있는 정예 무사를 따돌릴 방법도 없었기에 백수는 그냥 고개를 돌렸다. 이리 되면 이판사판이었다.

뒤를 돌아본 백수의 얼굴을 본 무사의 눈빛이 흔들리는게 느껴졌다.


'설마 벌써 내 얼굴이 모용 세가에 알려졌나?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 없지만 만약에 자신이 유세 표국의 유 지령이라는 것을 저들이 안다면 이번 계획 뿐 아니라 백수의 목숨 또한 장담할 수 없었다. 스물 예닐곱 정도 되어보이는 젊은 무사는 한 발 더 다가와서 백수의 얼굴을 흘깃 보고는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어흠... 야심한 시각에 여인 혼자 어딜 다니시는 게요?"


백수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스승이 만들어준 예사롭지 않은 미모가 뜻밖의 장소에서 제 역할을 하는 순간이었다. 백수는 자신의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가성을 사용하여 일부러 알아듣기 힘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녀, 부끄럽습니다. 모른 척 해주시면 안되겠는지요."


무사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미모의 여인(?)이 풍기는 청초한 자태에 당장이라도 혼절할 것 같은 정신을 부여잡으며 생각에 잠겼다.


'부끄럽다는 건 야심한 밤에 부모님 몰래 정인을 만나러 길을 나선 것인가. 정인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사내 자식이 연인을 보고 싶으면 지가 쳐 나올 일이지, 늦은 시각에 이런 아름다운 여인에게 밤길을 걷는 위험을 초래하게 만들다니. 나였다면 매일 삼세번이라도 집을 나섰을 것이거늘...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게냐.'


아직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본 젊은 무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본가의 규칙대로라면 해가 진 후 돌아다니는 수상한 인물은 누구던 간에 행선지와 주소, 성함을 파악한 후 순찰 대장에게 보고하는 것이 응당 해야 할 행동이었지만, 그렇게 한다면 이 여인은 큰 곤혹을 치르게 될 것이 분명했다. 동네 망신을 당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혹시나 이런 일로 혼사길이 막히기라도 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결과가 정해진 고민을 조금 더 해본 무사는 마음을 정했다. 그의 마음은 이미 머릿 속 망상 속에서 갈 길을 정해두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냥 보내드릴 테니 다음부터는 밤길을 함부로 나서지 마십시오. 그대같은 여인을 이리 대하는 놈은 정인 자격도 없는... 흠흠 이거 또 내가 쓸데없는 소릴... 혹시 걱정되시면 제가 달빛이 비추는 곳까지만 안내를 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이렇게 같이 다니는 걸 누가 보기라도 하면 무사님께도 폐가 될 거에요."


"아, 그렇죠. 그건 그렇지만... 아니지, 그 말이 맞습니다. 그럼 제가 혹시 이상한 자는 없는지 주변을 꼼꼼히 돌아보겠으니 안심하고 가던 길을 가십시오."


짧은 순간에 수많은 고민과 잘못된 결정을 반복한 젊은 무사는 결국 꿈에 그리던 여인을 보내주었다. 그의 망상 속에선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을 위해 위험한 밤길로 들어서는 강호의 협객이 된 자신의 모습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는 어느새 그림자 꼬리만 남기고 사라져가는 여인(?)의 뒷모습을 보며 언제나 바보들이 그렇듯 씨익 웃으며 한 마디를 남겨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름은 물어볼 걸 그랬나... 아니다,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마음의 표현이겠지. 후... 이런 게 사랑인가.

부디... 강녕하고... 행복하시오."


그는 눈물을 차오르는 것을 꾹 참고 자신의 길을 떠났다. 이것은 젊은 무사가 앞으로 되도 않는 사랑에 빠져서 수십 번은 하게 될 바보짓의 웅대한 시발점이었다.


연애 한 번 못해본 사랑꾼을 만난 덕분에 위기를 넘긴 백수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미리 봐두었던 포목점에 도착했다. 다행히 포목점 뒷편의 공터엔 아무것도 펼쳐져 있지 않았지만, 내일이면 죽은 자와 산 자가 뒤섞이는 싸움터가 될 곳이라 생각하니 왠지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백수는 포목점 뒤에 숨겨두었던 밧줄과 나무토막 몇 개를 집어들었다. 언뜻 보면 잡동사니로 보이는 이것들로 의협단은 경계가 삼엄한 모용 세가에 잠입하여 그들의 눈을 속이고 이 무빈의 가족을 구출해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었는데 하루만에 이런 장소를 찾아낸 것은 백수에겐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공터의 크기는 적당하고 공테 뒷편엔 야트막한 절벽까지 있어서 가족을 너무나 사랑한 무사의 처절한 마무리를 꾸며내기엔 일품인 공간이었다. 역시나 문제는 예상치 못했던 모용 선화의 등장이었다. 무명의 말대로라면 백수가 본 중원 최강의 무사인 무명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아니면 그보다 더 강할 지도 모르는 극강 무공의 소유자이고, 무엇보다 이 곳은 그녀의 집 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한 번에 성공해야 하는 위험한 임무이자 의협단에게 주어진 첫 도전이었다.


'이 정도의 위기에서 주저앉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무림의 거대 정파들을 상대하겠는가. 모용 선화가 얼마나 철두철미한 지는 모르겠으나, 이번에 내가 그 여자를 멋지게 속여 넘기고 이 무빈의 가족을 모두 구해낼 것이다.'


백수는 가냘픈 팔뚝을 바쁘게 움직여 작전에 쓰일 무대를 제작했다. 모용 가의 무사를 만났을 땐 어둑어둑하던 달빛이 이젠 구름을 벗어나 공터를 환히 비추고 있었다, 순찰 무사에게 발각되었을 때 달빛이 이렇게 비추었다면, 무사가 백수를 여인으로 착각하는 일은 없었을 수도 있었다. 하늘 또한 의협단과 백수를 돕는 것만 같았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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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탈혼(脫魂)과 추혼(追魂) 22.07.23 914 7 12쪽
54 나를 만나다 22.07.21 862 7 11쪽
53 고치 속에 든 것은 22.07.21 854 6 10쪽
52 사막의 꽃은 썩었다. +2 22.07.20 888 9 15쪽
51 사막의 꽃 +2 22.07.18 889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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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어떤 죽음에 명분이 있는가 +4 22.07.12 960 10 12쪽
45 피로 물든 손 +2 22.07.09 984 10 15쪽
44 강호의 천지안(天池眼)(2) +2 22.07.08 985 11 10쪽
43 강호의 천지안(天池眼)(1) +2 22.07.07 1,006 11 12쪽
42 새로운 길을 찾다 +1 22.07.06 1,013 11 12쪽
41 약선(藥仙) 운 효령 +2 22.07.05 1,043 12 13쪽
40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2) +2 22.07.02 1,030 12 12쪽
39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1) +1 22.06.30 1,033 12 15쪽
38 충성을 맹세하다 +2 22.06.29 1,030 9 15쪽
37 모용 세가 침투(4) +2 22.06.28 1,014 11 13쪽
36 모용 세가 침투(3) +2 22.06.25 986 11 13쪽
35 모용 세가 침투(2) +2 22.06.25 1,005 10 12쪽
» 모용 세가 침투(1) +2 22.06.23 1,053 11 11쪽
33 요령성 잠입(2) +2 22.06.21 1,065 10 14쪽
32 요령성 잠입(1) +2 22.06.20 1,097 11 11쪽
31 무사와 건달을 얻다 +2 22.06.18 1,129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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