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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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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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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133

작성
22.07.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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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13쪽

약선(藥仙) 운 효령

안녕하세요.




DUMMY

백수와 무명은 중원을 관통하는 장강의 큰 물줄기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했다. 가지가 뻗쳐나가듯 하류에서 또 다른 하류로 그 세력을 줄여가던 강물이 여러 줄기로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여인이 설명해주었던 동한이었다. 삼각주처럼 흙이 쌓여 만들어진 강 끝자락의 마을은 배를 타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고, 강 사이의 섬 치고는 꽤 넓은 크기였으나 주민은 별로 없었다.

괴인을 찾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천상에서 선녀들이 부르는 것 같은 맑은 미성의 노랫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백수의 얼굴이 찌푸려짐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분노를 갈아 넣은 고성이 튀어나왔다.


"야 이 놈아, 주둥이를 곱게 꼬매버리기 전에 조용히 해라!"


"저 썩을 놈이 허연 대낮부터 염병이여, 염병이!"


집 밖까지 나와서 한풀이하듯 욕을 내뿜는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보니 작지만 깔끔하게 꾸며놓은 작은 집이 하나 있었다. 백수와 무명은 문 앞에서 조심스럽게 헛기침을 한 번 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계십니까?"


그 사람이었다.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흑발을 곱게 빗어내리고 있던 그 남자는 백수와 무명을 보자 깜짝 놀라 노래를 흥얼거리던 목소리로 꺄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말도 없이 남의 집에 벌컥 들이닥치면 어떻게 해욧! 깜짝 놀랐잖아요."


"방금 인기척을 냈는데, 계시냐고 물어도 봤습니다만..."


"오늘은 왠일로 천궁에나 사실 법한 미소년들을 보내셨대요? 이젠 미인계로 나가겠다는 건가요?"


백수와 무명이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남자는 자신의 솔방울 같은 턱수염을 깎다가 짜증이 났는지 칼을 집어던졌다. 백수는 화들짝 놀라 튀어올랐고, 무몀은 벌컥 성을 냈다.


"이 망할 수염은 왜 반 나절도 안 되서 또 나는 거야? 두껍긴 또 왜 이렇게 두껍고!" "사람이 있는데 무슨 짓인가!"


"누가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 들어오래요? 아무튼 난 지금 돈이 없으니까 내 수염이라도 뽑아가던지 세간살이를 들어가던지 맘대로 해욧!"


백수는 구석에 서서 남자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씩씩거리던 남자의 숨소리가 조금 편안해졌다 싶을 무렵, 백수는 남자의 앞으로 나아가 공손히 포권을 하며 입을 열었다.


"약속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사천에서 온 왕 백수라 합니다. 선생께 도움을 구하고자 먼 길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남자는 백수를 위아래로 쓰윽 살피더니 방 한 구석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백수와 무명은 의자를 가져와 남자의 곁에 앉았다. 남자는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세심한 손놀림으로 향이 좋은 차를 가져와 그들의 앞에 놓아주었다.찻잔에서는 은은하고 달콤한 향이 퍼져나왔다. 그러나 차 향이나 맡고 있을 여유가 없었던 백수는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꺼냈다.


"저는 2년 전, 건업의 장터에서 선생께 약을 구입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덕에 목숨을 건졌지요. 그 약은 아무나 만들 수 있는 약이 아니었습니다. 선생께서는 약학에 조예가 깊으신 분 같은데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이런 미남이라면 기억을 못할 리가 없는데 제 기억엔 오라버니 같은 분께 약을 판 적이 없습니다만..."


"뭐, 오라버니? 이 자가 목소리와 정신머리를 바꾼 게냐?"


백수는 순간 울컥한 무명을 겨우 진정시키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2년 전이니까요. 그 때 제가 산 약은 물 속에서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약이었습니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던 남자는 아하 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명은 그 모습을 보더니 다시 한번 짜증을 냈고, 가시 한 번 백수가 진정시켰다.


"기억이 나네요. 얼굴이 너무 변해서 못 알아보겠는데? 아무리 봐도 2년 사이의 성장이라고는 보기 힘드네요. 제가 본 변안술(變顔術) 중 최고의 경지라 할 수 있겠어요."


"이걸 알아보시는 걸 보니 역시 보통 분이 아니시라는 걸 알겠습니다. 제 모습을 이렇게 만들어주신 스승님이 계신데 그 분 말씀이 제게 활인혈이라는 게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직 발현되지 않았다고도 하셨지요. 선생께서는 혹시 활인혈을 발현시키는 방법을 알고 계십니까?"


"지금 활인혈이라고 했어요?"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갑자기 백수에게 불쑥 다가왔다. 그러더니 백수의 정수리에 손을 대고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휘젓는 것이었다. 무명의 경계심과 분노가 한계에 이르렀지만 백수가 눈을 부라리자 씩씩거리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어머나, 활인혈이라는 게 진짜 있었네. 이건 좀 놀라운 걸?"


남자는 나무 토막 같은 두꺼운 손가락으로 백수의 정수리 이곳저곳을 찔러보았다. 가끔은 바늘에 찔리는 것 같은 통증이 있었지만 소리라도 냈다가는 무명이 칼을 뽑을 것 같아 백수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한참 후 백수의 머리결 탐험을 마친 남자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활인혈은 근 수백 년간 발견되지 않았던 희귀한 혈자리에요. 오래 전 소림의 달마 대사가 활인혈의 소유자였다고 하지만 그것도 사실인지 확인이 되지 않았구요. 활인혈은 말 그대로 사람을 살리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표면적으로는 상처가 스스로 치유되고 숨을 안 쉬거나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기운을 타고났다고 하는데 그보다 중요한 건 활인혈의 소유자가 하늘의 좋은 뜻을 받는다는 거지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활인혈의 소유자는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을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활인혈은 세상이 아주 어지럽고 혼탁할 때만 나타난다는 말도 있어요. 그런데 당신은..."


남자가 갑자기 백수의 눈을 빤히 들여다 보았다.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나요?"


백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남자의 눈을 똑바로 보며 대답했다.


"제가 온 세상을 바로 잡을 힘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무림의 질서를 바로 세우려는 뜻은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는 그 뒤로도 백수와 한참동안 눈싸움을 하더니 씨익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남자의 미소가 비웃음이나 헛웃음이 아니라는 걸 확인한 백수는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남자가 백수의 말에 어느 정도 믿음을 가진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럼 제게 활인혈을 발현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시겠습니까?"


"몰라요. 제가 그런 걸 어떻게 알겠어요?" "..........응?"


"뭐 이런 산 도적 같이 생긴 놈이, 알고 보니 협잡꾼이었구나아!"


백수는 시위에서 튀어나가는 화살처럼 튀어오른 무명을 막아 세우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하지만 백수 또한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뭔가 알고있는 것처럼 자세는 다 잡더니 이제 와서 모른다? 하지만 백수에겐 아버님을 피료할 약의 조제법을 알려준 도인이 있었다. 백수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남자에게 다시 물었다.


"선생께서 모르신다면 제게 선생이 계신 곳을 알려주신 도인께서는 아실까요? 강남의 석묘촌에서 만난 도인께서 선생이 계신 곳을 알려주셨습니다만."


남자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자의 상큼 발랄함에 이번엔 백수까지 욱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인내심을 발휘해 꾹 참았다. 남자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치면서 눈을 반짝였다.


"아~, 광길이? 그 놈이 산 속에서 조용히 사냥이나 하면서 지내라니까 괜히 입을 놀려서 결국 일을 만들었군요."


"과, 광길입니까, 그 분 존함이...?"


"존함은 무슨 존함이에요. 제자로 키워볼까 했는데 고기 욕심을 못 버리길래 내 쫓아 버렸어요.약학을 배우려면 수습 때 삼 년, 전문 과정 때 오 년, 도합 팔 년 동안 육식을 금해야 하는데 그 놈이 고기를 너무 좋아하더라구요. 제 딴엔 몰래 먹는다고 숨어서 먹고 오는데 피비린내가 얼마나 나던지... 그런 놈 말을 듣고 여기까지 오시다니 사람 인연은 정말 알 수가 없네요."


"그 분이 알려주신 약재 덕분에 저희 아버님 병환에 차도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제 밑에서 삼 년 가까이 있었으니까요. 그 정도면 산 속의 곰이라도 환약 몇 개 정도는 만들 수 있었을 거에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선생께서 제 아버님을 치료할 약을 만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세상이 싫고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서 이런 곳에 틀어박혀 조용히 사는 거 보면 모르시겠어요? 저는 더러운 세상 물에 다시 손을 담글 생각이 없답니다."


"그리 조용하게 사시는 것 같지는 않던데요..." "뭐라구요?" "혼잣말입니다."


백수가 얘기를 들어본 대부분의 도인들은 이 남자처럼 강호에 발을 들이는 걸 꺼려했다. 타골 선사의 말처럼 특출나게 뛰어나면 먼저 제거당하는 것이 영웅들의 운명이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백수는 지금 절실히 이 사람이 필요했다. 지금 백수에겐 이 남자를 의협단으로 끌어들일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 때 남자가 고민중이던 백수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런데 오라버니, 이거 하나 먹어볼래요?"


"네 그러죠. 이건 무슨 신단인가요?" "아니, 내가 작년에 만들어봤던 맹독인데 효과가 있나 해서."


"네? 욱... 케엑..." "뭐가 어째? 이 망할 놈이!!"


백수는 쓰러지는 순간까지 무명을 제지한 후,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리고는 무명이 백수의 숨이 끊긴 것을 보고 검을 뽑아 드는 찰나에 다시 눈을 떴다.


"주공, 괜찮습니까!" "넘어질 때 옆구리에 담이 왔나 봐. 그거 빼곤 괜찮은데."


남자는 백수의 입을 벌려보고 손도 살피더니 혼자 깨방정을 떨면서 박수를 쳤다.


"대충 기억나는 대로 만들어본 건데 효과가 있네? 그래도 독은 이제 그만 만들어야겠다."


"사람한테 다짜고짜 독을 먹이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끄덕 없을 걸 아니까 먹인 거지요. 난 살인자가 아니에요. 난 사람을 살리는 약을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법을 알려면 무엇이 사람을 죽이는 지도 알아야 해요. 하지만 지금까지는 사람한테 시험을 해 볼 수가 없었는데 오늘 이렇게 해보네요."


"그렇다고 설명도 없이 처음 본 사람한테 독을 먹이나? 당신도 강호의 검을 찬 잡놈들이랑 다를 게 없다."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 날 누구랑 비교를 해!!"


갑자기 터져나오는 남자의 불호령에 짚으로 만든 지붕이 들썩거렸다. 항 량과 자호에게 고함 깨나 겪어본 백수와 무명이 깜짝 놀랄 정도의 사자후였다.


"내 약선이라는 허명을 달고 강호에서 사람을 살려온 게 몇이고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이 몇 차례인지 네 놈들이 알기나 해? 이제 좀 조용히 살아보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어디서 또 이상한 것들이 찾아와서 날 희롱하려는 게야, 약선 운 효령라는 이름이 여염집 아낙네 이름 같으냐?"


"약선... 운 효령?"


백수는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야사(野史) 한 토막이 떠올랐다. 과거 무림에는 정파 오협이 있었는데, 당시 최강검으로 불리우던 남궁 문규와 곤륜파의 신선 제율 선인, 아미파의 장문인 손 양지와 점창파 최고의 무인이었던 호 원갑, 그리고 출생과 행적이 불분명한 약선이 있었다. 그들은 당시 황제의 명을 받들어 북방의 설국에서 물밀듯이 내려온 수십 만 대군을 맞아 황군과 함께 치열하게 싸웠고, 설국을 막아낸 후엔 그 공을 인정받아 각자 영지와 제후의 호를 하사받았다. 그러나, 황궁의 귀족들은 강호의 인물이 황제의 총애를 받는 것이 못마땅했고, 갖은 죄를 뒤집어씌워 그들을 하나둘씩 제거해나갔다. 그 중엔 황족에게 허리를 굽혀 살아남은 자도 있었고, 가문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목을 내놓은 자도 있었는데 약선의 경우엔 황제가 하사한 영지도 봉직의 기회도 마다하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고 적혀 있었다. 이후 약선은 정파가 모두 힘을 합쳐 마교에 대항하여 싸울 때 잠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싸움이 끝나자 또 어디론가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다. 여기까지가 백수가 알고 있는 약선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지금 백수의 눈 앞에 있는 남자는 수십 년 전 강호를 주름잡던 약선이라 하기엔 너무 젊고 솔직히 너무 거친 것이 배가 고파 산 속에서 방금 뛰어나온 사나운 멧돼지 같았다. 이런 사람이 강호의 신선이라 불리우는 약선이라니... 백수는 직접 들었지만 왠지 믿고 싶지가 않았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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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괴수같은 인간, 인간같은 괴수(1) 22.07.30 899 8 9쪽
59 썩은 열매엔 아쉬움을 두지 않는다 22.07.29 888 7 10쪽
58 부정하지만 강한 수단 22.07.27 879 9 12쪽
57 잃었으나 손해는 없다. 22.07.27 920 9 13쪽
56 죽음을 넘어서다 22.07.26 886 9 11쪽
55 탈혼(脫魂)과 추혼(追魂) 22.07.23 914 7 12쪽
54 나를 만나다 22.07.21 862 7 11쪽
53 고치 속에 든 것은 22.07.21 854 6 10쪽
52 사막의 꽃은 썩었다. +2 22.07.20 888 9 15쪽
51 사막의 꽃 +2 22.07.18 889 8 12쪽
50 사천의 괴수 +2 22.07.16 910 8 12쪽
49 무명과 효령의 담판 +2 22.07.15 912 9 11쪽
48 결정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2 22.07.14 894 9 13쪽
47 이리떼는 호랑이를 죽일 수 없다. +2 22.07.13 930 10 12쪽
46 어떤 죽음에 명분이 있는가 +4 22.07.12 960 10 12쪽
45 피로 물든 손 +2 22.07.09 984 10 15쪽
44 강호의 천지안(天池眼)(2) +2 22.07.08 985 11 10쪽
43 강호의 천지안(天池眼)(1) +2 22.07.07 1,006 11 12쪽
42 새로운 길을 찾다 +1 22.07.06 1,013 11 12쪽
» 약선(藥仙) 운 효령 +2 22.07.05 1,043 12 13쪽
40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2) +2 22.07.02 1,030 12 12쪽
39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1) +1 22.06.30 1,033 12 15쪽
38 충성을 맹세하다 +2 22.06.29 1,030 9 15쪽
37 모용 세가 침투(4) +2 22.06.28 1,014 11 13쪽
36 모용 세가 침투(3) +2 22.06.25 986 11 13쪽
35 모용 세가 침투(2) +2 22.06.25 1,005 10 12쪽
34 모용 세가 침투(1) +2 22.06.23 1,052 11 11쪽
33 요령성 잠입(2) +2 22.06.21 1,065 10 14쪽
32 요령성 잠입(1) +2 22.06.20 1,097 11 11쪽
31 무사와 건달을 얻다 +2 22.06.18 1,129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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