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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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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795
추천수 :
1,166
글자수 :
581,133

작성
22.06.2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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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12쪽

모용 세가 침투(2)

안녕하세요.




DUMMY

새벽녘이 다 되서야 모든 일을 끝마친 백수의 이마엔 땀이 흥건했다. 머리속에 든 지식만 가득할 뿐 실제 체력은 여전히 평범한 또래만큼도 못 미치는 탓이었다. 이제 객잔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백수는 공터의 장작 위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만에 하나 포목점 주인이 기껏 준비해놓은 것을 치운다거나 가죽을 말린답시고 공터를 쓸데없는 것들로 채워놓으면 낭패다. 이 계획은 모든 것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야만 하는데, 이렇게 그저 운이 따르기만을 바래서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자신이 이 곳에 머무를 수 있다면 여러 가지 상황에 대비할 수 있었겠지만, 바로 떠나기로 마음먹은 이상, 미리 준비를 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백수는 어제 밤처럼 도포를 뒤집어쓴 모습으로 포목점의 문을 두드렸다. 한참을 두드리니 궁시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칠게 문이 열렸다. 포목점 주인은 키가 작고 동글동글한 체구에 가는 눈매를 가진 계산이 빨라 보이는 남자였다.


"무슨 일이슈, 이 새벽에?"


"이른 시간에 찾아와서 죄송해요. 제가 사정이 좀 급해서..."


퉁명스러운 태도를 고수하던 남자는 백수가 내민 금화에 잠시 호흡 곤란이 엄습한 듯 비오는 날 두꺼비처럼 꺽꺽 소리를 냈다. 백수는 잠시 상점 안의 가죽들을 둘러보는 척 하다가 남자가 권한 의자에 앉았다. 남자는 이제 황후를 모시듯 백수의 비위를 맞추려고 혀를 내밀고 헥헥거렸다.


"무엇이든지 말씀만 하십쇼. 구하기도 힘든 황실의 금화를 지니신 걸 보니 황도에서 오신 것 같은데 이런 누추한 가게까지 어찌 오셨습니까요?"


"가죽이 필요해요. 조금 많이... 일단 여기 있는 가죽을 모두 살게요."


"예엣? 허허허, 가죽이야 많이 있지만 이 많은 걸 어디에 쓰시려고..."


"여기 말고 다른 곳에 또 가죽이 있나요?"


남자는 자신이 방금 돈벼락을 맞았다는 것을 실감한 듯 손을 내저었다.


"지금은 여기 있는게 전부지만 찾으신다면 옆 동네 것도 다 구해드리겠습니다요!"


"아니, 이 가게 가죽이 맘에 드니 여기 있는 것만 다 살게요. 사실 가죽이 더 많이 필요하긴 한데..."


백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괜찮으시다면 장안 근처의 지산이라는 곳에 질 좋은 가죽을 판다던데 좀 구해다 주실 수 있나요? 사례는 섭섭치 않게 할게요."


남자는 예상치 못한 백수의 요구에 눈만 꿈벅거리며 약간 망설이는 것 같았다.


"지산이면 여기서 며칠은 가야 하는 곳인데... 가게를 며칠씩 비우기도 그렇고 참..."


백수는 기다렸다는 듯 탁자 위에 금화를 몇 개 더 올려놓았다.


"이건 선금이고 괜찮은 가죽을 가져오시면 값은 시세보다 더 많이 쳐드릴게요. 제가 사정이 급해서 그러니 부탁합니다."


사실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 벡수가 내놓은 금화는 가게에 있는 가죽을 모두 사고도 남을 액수였고, 몇 달을 내놓아도 다 팔릴지 장담할 수 없는 양이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놔두다보면 바람을 맞고 먼지가 쌓여서 가죽의 가치가 떨어지기 쉽상인데 한 번에 다 가져가겠다는 건 그에겐 더 바랄게 없는 거래 조건이었던 것이다. 흥정을 위해 고민하는 척 해보려던 남자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흥정도 좋지만 이런 거래는 상대가 마음 변하기 전에 잡아야 하는 그야말로 횡재수였다.


"뭐 내가 바쁜 사람이긴 하지만 그리 급하시다니 젊은 처자에 청을 외면할 수가 없구만. 그럼 언제까지 필요하신 게요?"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사정이 아주 급해요. 준비가 되는 대로 바로 출발해주셨으면 합니다."


"엥, 당장 말이오? 부인한테 아직 얘기도 못 했는데... 잠 깨우면 화를 내서..."


상단의 부단주를 맡았던 백수는 결정타를 날리는 시점을 알고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금화를 두 개 더 내려놓았다.


"그럼 이번 기회에 부인과 유람을 한 번 다녀오시는 건 어떻겠어요? 며칠이 걸리는 여행길이니 가는 길에 맛있는 것도 드시고 좋은 경치도 구경하시면서 다녀오세요. 경비는 제가 부담할게요."


남자의 가는 눈매가 금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젠 그에게 밖에 나가 벌거벗고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라고 해도 군말 없이 할 정도로 금화의 강력한 힘에 굴복된 상태였다.


"그, 그럽시다! 거래는 이루어진 거니 나중에 무르기 없기요. 그럼 가죽들은 언제 가지러 오실 거요? 조금 말려놔야 할텐데..."


"그런 건 제가 가져가서 다 할테니 걱정마시고 바로 출발만 해주세요. 지산에서 가죽을 가져오시면 그 때 한 번에 가져갈게요."


"아, 그러면 되겠구만. 그럼 내 바로 준비해서 출발하겠소."


백수는 여성스럽게 살짝 고개를 숙인 후, 포목점을 나왔다. 두 번째라 그런지 여자 흉내가 조금 더 수월해진 느낌이었다. 되도록이면 이 곳에 수상한 움직임을 남기지 않는 게 좋겠지만, 완벽한 계획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 공터가 오늘 밤까지는 이대로 유지되어 있어야 했다. 만약 포목점 주인이 입을 연다 해도 그는 백수를 젊은 여자로 기억하고 있을 테니 추적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가게 문에 살짝 귀를 대보니 포목점 주인이 헐레벌떡 아내를 깨우는 소리와 두 사람이 신이 나서 주고 받는 말소리가 마치 흥겨운 창극처럼 들렸다. 백수는 계획대로 되었음을 확신하고 객잔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수와 항 량, 자호가 모용 세가의 코 앞에서 위험 천만한 일을 벌이고 있을 무렵, 무명과 이 무빈은 성 외곽의 빈 집에서 초조하게 백수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나 이 무빈은 한 시도 앉아있지 못 하고 계속 주위를 서성거렸다. 결국 참다 못한 무명이 한 마디 쏘아붙였다.


"우리 상단을 휘젓고 다니던 잠입의 명수가 뭘 그리 긴장을 하나. 아직 몸도 성치 않은데 체력 소비하지 말고 정신을 집중했으면 좋겠다."


머쓱해진 무빈은 자리에 앉았지만, 얼마 안 되어 다리 일어나 서성거렸다. 무빈은 며칠도 안 되어 멀쩡해진 자신의 팔다리를 만져보았다. 실로 믿을 수 없는 신묘한 의술이었다. 모용 선화의 심복인 구 숙정의 악명은 세간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사실 모용 세가 내에서도 손꼽히는 고수이고, 무엇보다 독과 암기를 잘 사용했다. 맞은 자국조차 남지 않는 침과 여러 가지 독액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줄도 알아서 대부분의 목표물들은 자신이 무엇이 당한 지도 모른 채 세상을 하직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빈이 당한 독은 그 중에서도 강력한 독으로 중독되자마자 환부를 도려내고 그 후 몇 달을 운기조식하면서 온 몸의 피를 밖으로 쏟아냈는데도 아주 미세한 독성이 남아서 팔다리와 뼈를 썩게 하고 있었다. 그런 맹독이 백수가 데려온 의원의 침 몇 방에 거의 해독 되어버린 것이다. 멀쩡할 때의 움직임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룻밤 정도는 설쳐댈 수 있을 만한 몸이 이렇게 쉽게 만들어졌다는 데에 무빈은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검을 돌려보던 무빈이 무명을 돌아보며 물었다.


"너희 주공, 아니지 말 조심하겠네... 단주님은 근 몇 년간 대체 무슨 일을 겪었던 건가? 이런 의술을 가진 자는 지금까지 본 적도 없네."


"주공께서 원하시면 언제든 얘기해줄 수 있다. 사실 뭐 대단한 비밀도 아니야. 그냥 누굴 만나서 그리 되었다던데."


"죽은 사람도 살린다던 화타라도 만난 건가... 아무튼 내가 더 깊숙이 알 필요는 없겠지. 그런데..."


무빈은 검집에 검을 채워 넣고 진지한 얼굴로 무명을 보며 말했다.


"자네도 모용 세가의 무사들을 보았겠지. 본가의 무사들은 그보다 더 뛰어난 자들이 많을 것이 분명한 일인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보는가?"


검을 손질하던 무명은 귀찮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주공은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맡긴 거고, 너는 반드시 해내야 하는 거다. 이번이 네 가족을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걸 잊지 말도록."


차가운 말이었지만 무명의 말에는 한 치의 틀림도 없었다. 무빈은 피식 웃고나서 모용 세가가 위치한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렇지, 저 친구 말대로 난 가능성을 셈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부인과 아이들을 위해서 난 반드시 저 곳에 들어가야 해.'


그 때, 검은 복면의 사내가 기척도 없이 두 사람 사이로 나타났다. 청사령의 정예 무사인 교연이었다. 화들짝 놀라 검을 쥐었던 무빈이 다시 검을 내려놓았고, 무명은 이미 검을 뽑았다가 한숨을 쉬며 다시 검집에 넣었다.


"거참, 암습을 하는 것도 아닌데 기척 좀 하고 다니지 그러나."


"자객에게 별 소릴 다하는구나. 모용 세가에 있는 은조와 이 무설, 이 무향의 위치를 찾았다."


"어디냐?" 무빈의 눈이 번쩍 띄었다. 교연은 작은 나무 껍질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거기엔 깨알같은 크기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아마도 손님들을 묵게 하는 객방인 것 같은데, 아이들은 네 번째 방에서 다른 하인들의 자녀들과 함께 지낸다. 여인은 낮엔 다른 여인들과 집안일을 하다 밤이 되면 아이들을 만나 객방 중 바깥쪽 끝 방에서 잔다. 아이들은 가끔 다른 아이들과 놀다가 같이 자기도 하는 것 같다. 들어가면 일단 바깥쪽 끝방부터 찾아보는 게 좋을 것이다."


마치 함께 식사라도 하고 나온 것 같은 자세한 정보에 어지간한 일은 다 겪어본 무빈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청사령이군. 이 정도로 파악해낼 줄은 몰랐는데."


"난 왕 대협의 명으로 유세 표국으로 간다. 요령 성엔 다른 무사가 너희를 도울 것이다."


교연은 두 사람의 답도 듣지 않고 왔을 때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무빈은 다시 한번 혀를 내둘렀다.


"우리 단주님은 대체 어떻게 저런 자들을 손에 두신 겐가. 비정하고 언제든 뒤통수를 칠 수 있는 믿지 못할 자들이라고 하던데."


"몇 번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더군. 이제 위치도 파악했으니 출발해보자."


무명의 뒤를 따라 이 무빈도 검 손잡이를 고쳐 쥐었다. 수 년 만의 실전이었다. 긴장과 함께 묘한 설레임으로 무빈의 가슴이 뛰었다.


"그래, 바라던 바다."


두 사람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은 마차에 올라탔다. 세 사람은 무빈의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모용 세가를 향해 말을 채찍질했다.

미리 약속해둔 장소에 도착하니 백수 일행이 탄 마차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명이 급히 달려가 백수의 안전을 확인했다.


"난 괜찮아. 그런데 계획이 좀 바뀌었어. 우리는 이대로 요령성을 벗어나서 바로 서녕으로 갈 거야. 오늘 계획은 너하고 이 무빈 두 사람이 해내야 해."


무빈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돌발 상황이라도 생긴 거요? 그렇다면 저 때문에 단원의 위험을 감수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돌발 상황이긴 한데 여기까지 와서 단원의 가족을 나 몰라라 할 순 없지. 앞으로 이런 일이 더 생길 텐데 우리는 모든 단원과 그 가족들을 모두 지킬 테니 이번 기회에 다들 알아둬."


백수의 단호한 엄포에 모두 고개를 숙였다. 특히 무빈은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자신보다 한참 어린 청년에게 존경심까지 드는 순간이었다.


'어설픈 야심이나 공명심으로 사람을 이끄는 자는 아니구나. 앞으로 더 큰 일을 할 대인이다.'


무빈이 백수에 대한 감탄을 김치 못하고 있는 사이 무명이 조용히 백수의 곁에 다가와 속삭였다.


"돌발 상황이라는 게 뭡니까? 너무 위험한 일이라면 계획을 수정하시는 것이..."


"말 그대로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지 뭐. 모용 선화가 본가에 와 있다고 하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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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괴수같은 인간, 인간같은 괴수(1) 22.07.30 898 8 9쪽
59 썩은 열매엔 아쉬움을 두지 않는다 22.07.29 888 7 10쪽
58 부정하지만 강한 수단 22.07.27 878 9 12쪽
57 잃었으나 손해는 없다. 22.07.27 920 9 13쪽
56 죽음을 넘어서다 22.07.26 885 9 11쪽
55 탈혼(脫魂)과 추혼(追魂) 22.07.23 913 7 12쪽
54 나를 만나다 22.07.21 862 7 11쪽
53 고치 속에 든 것은 22.07.21 854 6 10쪽
52 사막의 꽃은 썩었다. +2 22.07.20 888 9 15쪽
51 사막의 꽃 +2 22.07.18 889 8 12쪽
50 사천의 괴수 +2 22.07.16 909 8 12쪽
49 무명과 효령의 담판 +2 22.07.15 912 9 11쪽
48 결정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2 22.07.14 893 9 13쪽
47 이리떼는 호랑이를 죽일 수 없다. +2 22.07.13 929 10 12쪽
46 어떤 죽음에 명분이 있는가 +4 22.07.12 960 10 12쪽
45 피로 물든 손 +2 22.07.09 984 10 15쪽
44 강호의 천지안(天池眼)(2) +2 22.07.08 984 11 10쪽
43 강호의 천지안(天池眼)(1) +2 22.07.07 1,006 11 12쪽
42 새로운 길을 찾다 +1 22.07.06 1,013 11 12쪽
41 약선(藥仙) 운 효령 +2 22.07.05 1,042 12 13쪽
40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2) +2 22.07.02 1,030 12 12쪽
39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1) +1 22.06.30 1,032 12 15쪽
38 충성을 맹세하다 +2 22.06.29 1,029 9 15쪽
37 모용 세가 침투(4) +2 22.06.28 1,014 11 13쪽
36 모용 세가 침투(3) +2 22.06.25 985 11 13쪽
» 모용 세가 침투(2) +2 22.06.25 1,005 10 12쪽
34 모용 세가 침투(1) +2 22.06.23 1,052 11 11쪽
33 요령성 잠입(2) +2 22.06.21 1,065 10 14쪽
32 요령성 잠입(1) +2 22.06.20 1,096 11 11쪽
31 무사와 건달을 얻다 +2 22.06.18 1,128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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