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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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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133

작성
22.07.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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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
12쪽

강호의 천지안(天池眼)(1)

안녕하세요.




DUMMY

요령 성 외곽, 포목점을 운영하는 장 무기는 아내와 함께 명산 유람을 다녀온 후, 자신의 집 뒷마당에 난리가 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마치 군마들이 휘몰아쳐가기라도 한 것처럼 제대로 서 있는 물건이 없었고, 폭약이 터진 흔적까지 있어서 부랴부랴 가게를 뒤져봤는데 다행히 가게엔 별다른 흔적이 없었다. 그는 짐을 풀기도 전에 옆집에 사는 목 씨를 찾아갔다.


"말도 없이 부부끼리만 여행을 떠나더니 왜 그리 헐레벌떡 들어오는가? 그 사이 도둑이라도 들었어?"


"그게 아니라 가죽 말려두는 뒷마당에 난리가 났길래 말이야.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게... 나도 잘은 몰라. 며칠 전, 해질녘에 갑자기 시끌벅적하더니 모용 가에서도 찾아오고 잠깐 시끄럽더라고. 근데 통 말을 안 해주니 뭔 일인지 알 수가 있나. 저기 객잔 쪽 얘길 들어보니 팔, 다리가 잘린 사람도 나오고 그랬다던데? 모용 가에 뭔 일이 있긴 있었나벼."


"그래? 기분 좋게 여행 다녀와서 간 떨어질 뻔했네그려. 가게도 멀쩡하고 이웃에 다친 사람도 없으면 그걸로 된 게지."


"되긴 뭐가 돼? 여행 갔다 왔으면 선물이라도 들고 와야지 빈손으로 와 놓구선. 이웃 사이에 그러는 거 아니야."


"선물이 왜 없나? 좋은 술을 가져왔으니 이따 보세나~."


기세 좋게 담배 연기를 쭈욱 뱉어낸 장 씨가 웃으며 목 씨의 도자기 가게를 나섰다. 나가는 길에 비쩍 마른 물지게꾼과 부딪혀 넘어질 뻔했으나 기분이 좋았던 그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집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들어갔다. 물지게꾼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다 장 씨가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한 후, 조용히 근처 골목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물지게를 조용히 벗어던지자 비쩍 마른 팔다리의 실체가 드러났다. 군살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근육으로만 뒤덮인 몸을 가진 그는 벽에 기대어 앉아 묘한 음율로 휘파람을 불었다.

잠시 후, 그의 곁으로 지게꾼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키를 가진 남자가 기척도 없이 나타났다. 큰 남자가 상대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지시를 내리셨는가?" "모용 훤에게 알리라는 명이다. 뒷일을 그에게 맡기고 넌 모용 가에 침입했던 무사를 쫓아라."


남자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심기가 불편하다는 걸 알리지 않기 위해 그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뒷일은 맡기라면서 그 놈들을 쫓으라는 이유는 뭐지?"


"그 자들을 봤으니까. 우리가 언제부터 내려진 명의 진의를 확인하고 움직였는가. 그냥 받들면 되는 것이다."


"진의가 아니라 계통이 의심스러워서지. 그 명은 맹주님의 명인가, 아니면 송 지명 그 자의 명인가?"


키 작은 남자의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자네의 의중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송 주무관(主務官)은 지금 맹주님의 총애를 받고 있으니 굳이 적의를 드러내진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나야 이미 눈 밖에 난 놈이 아닌가. 너나 몸조심해서 하루빨리 본가로 복귀해라."


작은 남자는 어깨를 살짝 들썩이고는 다시 담장 밖으로 사라졌다. 잠시 하늘을 보던 키 큰 남자는 다시 지게를 지고 물지게꾼이 되었다.

물 지게꾼과 친구의 대화로는 보이지 않는 묘한 이야기를 나눈 두 사람은 남궁 세가의 정예 무사 집단 중 하나인 청무회(靑武會)의 도 연무(島 然舞)와 주 석강(周 石強)이었다. 청무회는 남궁 세가가 정파 무림을 장악한 후, 여러 문파의 신흥 고수들을 모아 창설한 다섯 개의 단체 중 하나로 초기엔 중원에 암행하며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특히 마교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맹주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맡았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쓰임새가 변질되어 이제는 남궁 세가의 정예 밀정 집단이 되어 있었다. 모두 강호에 몇 안 되는 고수들인 데다 강호 이곳저곳에 그들의 눈과 귀가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보니 남궁 세가의 힘은 청무회의 정보력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대부분의 무림인들에게 청무회라는 이름 정도만 알려진 그들은 세상 끝까지 닿을 듯한 정보력 때문에 천지안(天池眼)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우기도 했다. 도 연무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으나 주 석강의 말대로 무사에게 내려진 명은 가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따르면 되는 것이다. 연무는 어딘가에서 주워온 물지게를 내려놓고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다.


얼마 후, 모용 세가의 가주 모용 훤은 예정에 없던 손님을 맞았다. 무림맹에서 보낸 물건을 가져온 상인이라는 말에 그는 접견실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무림맹에서 직접 사람을 보내는 건 좀처럼 없는 일이었기에 가주의 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무림맹의 전령은 몸집이 작고 돌멩이처럼 단단한 팔다리를 가진 남자였다. 상인은 분명히 아니고 싸움터에서 살아온 진짜 무사의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공손히 포권한 후, 며칠 전 본가에서 있었던 작은 소동과 그들이 목격한 내용을 차분하게 고하였다.

모용 훤은 정령의 보고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강호의 다른 명문가의 가주들처럼 무공이 높지도, 재력이나 무력이 특출나지도 않았던 모용 세가를 무림의 5대 세력으로 키운 건 가주의 담대함과 영민함, 그리고 침착함이었다.

조공 요구가 아니라는 건 다행한 일이었지만, 본가에 당당하게 들어와 본가 사람을 감쪽같이 빼갔다는 건 그리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거기에 모용 가 무사들을 가지고 노는 수준의 초고수가 개입되었다는 건 더욱 큰 문제였다. 모용 훤의 뇌리에 누군가의 얼굴이 스쳤다. 모용 훤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무림맹의 전령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네. 본가의 일은 내가 처리할 테니 그대는 쉬다 가시게. 방을 준비해두지."


"가주님의 호의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허나 먼저 받은 명이 있어 급히 가봐야 할 것 같군요."


"흐음, 그렇겠지. 바쁜 사람을 붙잡진 않을 테니 가기 전에 준비해 둔 명차나 한 잔 들고 가시게나."


"감사히 명 받들겠습니다."


모용 훤은 전령이 자리를 떠나자 근처의 몸종을 불렀다. 첫째가 문안 인사를 오기 전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던 그는 몸종에게 조용히 넷째를 불러오라 명을 내렸다. 모용 선화는 가주가 담배를 한 대 다 피우기도 전에 헐레벌떡 나타났다. 가주에게 직접 부름을 받는 건 흔치 않은 일이라는 걸 아는 그녀는 약간 긴장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모용 훤은 자식 중 가장 자신을 닮지 않은 딸에게 차를 건네며 물었다.


"상단에 발을 들인 후로 꽤나 바쁘게 지내더구나. 바로 돌아갈 생각이냐?"


아버지의 눈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모용 선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상단의 거래 품목 정리가 끝나지 않아서요. 전임 단주가 판로 개척에 욕심이 많아서 돈이 되지 않는 곳까지 무리해서 개척한 경우가 많았어요. 판로만 조금 정리를 해도 상단의 수입이 상당히 올라갈 겁니다."


모용 훤은 광채를 내뿜는 딸의 눈동자를 잠시 관찰했다. 지금까지 사람을 보는 자신의 눈은 틀린 적이 없었고, 그 혜안이 지금의 위치를 만들어 줬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정작 어릴 때부터 지켜본 딸의 심중은 항상 알 수가 없었다.


"하인들의 처소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고 들었다. 네가 부리던 자라고 하던데."


"송구스럽습니다. 다시는 절대 그런 일 없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사람 쓰는 일은 절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 절대라는 말은 함부로 해선 안 되지. 손이 부족하다면 사람을 좀 내어주마."


"괜찮습니다. 제가 알아서 할 수 있어요."


모용 훤은 딸의 굳게 다문 입술에서 보이는 고집을 보고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한 번 세운 뜻을 굽히지 않는 담대함과 단호함으로 지금의 모용 세가를 일군 그였지만, 여느 필부들처럼 어린 딸과의 대화는 쉽게 풀어가지 못하는 흔한 아버지였다.

모용 선화를 내보낸 후, 그는 살짝 고갯짓을 했다. 가주의 미세한 움직임을 파악한 무사 한 명이 조용히 방에 들어와 가주 앞에 무릎을 꿇었다.


"찾으셨습니까." "며칠 전 하인들의 처소에서 있었던 일을 알고 있느냐?"


"예. 당시 추격에 참여했던 무사들과 주변 주민들을 탐문했는데, 보고할 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청무회가 보기엔 그렇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상당한 고수가 개입한 것 같다는구나. 다시 조사해보고 주동자들을 조용히 처리해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모용 훤의 서슬 퍼런 명을 받고 나간 사내는 불이라도 뿜을 듯한 안광을 번뜩이며 수하들을 모았다. 그들은 모두 모용 세가의 정식 제자는 아니지만 빼어난 무공과 충성심을 가진 무사들이었다. 그들의 수장인 사내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며칠 전 쥐새끼들이 겁도 없이 본가를 들락거린 것 같다. 중요한 건 그걸 우린 모르는데 청무회 놈들은 알고 있다는 거다."


일순 얼음을 끼얹은 것처럼 주위가 조용해졌다. 무사들의 호흡이 거칠어지는 걸 느낀 사내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들이 알았다면 우리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철저하게 다시 조사해서 일의 전모를 밝히고 주모자를 처리하자. 내가 앞장서겠다. 뭐든 알아내면 내게 보고하고 함께 움직이도록 한다. 상당한 고수라고 하니 개별 행동은 금한다."


무사들의 눈에 이미 전투에 들어간 것 같은 살기가 번뜩였다. 자신들의 본가에서 벌어진 일을 다른 사람도 아닌 남궁 세가의 세작들에게서 보고받는다는 건 그들에겐 더할 수 없는 치욕이었다. 더 이상의 수치가 없으려면 일의 마무리만큼은 반드시 자신들의 손으로 해내야만 했다. 무사들은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제각각 흩어졌다. 무사들을 이끄는 수장인 마 근홍(馬 根洪) 또한 익숙한 손놀림으로 자신의 무구를 챙겼다.


한편 백수 일행은 예정에 없던 사막 여행을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원래는 약선을 만나 유 환명의 병을 고칠 약의 조제법을 알아낸 뒤, 예전 상단의 호위 무사였던 안 량을 찾아갈 계획이었으나, 백수의 체질을 고칠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기자 일단 사막으로 먼저 가기로 한 것이었다. 튼튼한 마차와 말을 고르고 비축할 음식을 챙기는 그들의 곁으로 한 청년이 조용히 다가왔다. 평범한 옷을 입고 봇짐을 하나 짊어진 그는 청사령의 무사인 아두였다. 그는 백수에게 천천히 다가와 등 뒤에서 조용히 말을 건넸다.


"왕 대협,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이구 깜짝이야. 여긴 사람도 없는데 기척 좀 내고 다니지 그래. 그런데 무슨 일이야?"


"모용 세가에서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추격대가 늦어도 오늘 밤에는 오대산으로 출발할 겁니다."


모두의 손이 멈췄다. 사정을 모르는 효령만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짐을 챙기고 있었다. 백수가 쓴웃음을 지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역시 모용 세가는 다르네. 나름 잘 속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오대산에 있는 사람 중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무빈 뿐인데 그 마저도 몸이 성하지 않으니 모용 세가의 추적대를 상대하긴 어려웠다. 게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남궁 세가의 무사까지 추적에 가담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는 판단이 든 백수는 짐을 정리하는 약선의 손을 잡았다.


"약선 어른, 계획을 바꿔야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바로 오대산으로 갈 겁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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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괴수같은 인간, 인간같은 괴수(1) 22.07.30 899 8 9쪽
59 썩은 열매엔 아쉬움을 두지 않는다 22.07.29 888 7 10쪽
58 부정하지만 강한 수단 22.07.27 879 9 12쪽
57 잃었으나 손해는 없다. 22.07.27 920 9 13쪽
56 죽음을 넘어서다 22.07.26 886 9 11쪽
55 탈혼(脫魂)과 추혼(追魂) 22.07.23 914 7 12쪽
54 나를 만나다 22.07.21 863 7 11쪽
53 고치 속에 든 것은 22.07.21 855 6 10쪽
52 사막의 꽃은 썩었다. +2 22.07.20 888 9 15쪽
51 사막의 꽃 +2 22.07.18 890 8 12쪽
50 사천의 괴수 +2 22.07.16 910 8 12쪽
49 무명과 효령의 담판 +2 22.07.15 912 9 11쪽
48 결정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2 22.07.14 894 9 13쪽
47 이리떼는 호랑이를 죽일 수 없다. +2 22.07.13 930 10 12쪽
46 어떤 죽음에 명분이 있는가 +4 22.07.12 961 10 12쪽
45 피로 물든 손 +2 22.07.09 984 10 15쪽
44 강호의 천지안(天池眼)(2) +2 22.07.08 985 11 10쪽
» 강호의 천지안(天池眼)(1) +2 22.07.07 1,007 11 12쪽
42 새로운 길을 찾다 +1 22.07.06 1,014 11 12쪽
41 약선(藥仙) 운 효령 +2 22.07.05 1,043 12 13쪽
40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2) +2 22.07.02 1,030 12 12쪽
39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1) +1 22.06.30 1,033 12 15쪽
38 충성을 맹세하다 +2 22.06.29 1,030 9 15쪽
37 모용 세가 침투(4) +2 22.06.28 1,015 11 13쪽
36 모용 세가 침투(3) +2 22.06.25 986 11 13쪽
35 모용 세가 침투(2) +2 22.06.25 1,005 10 12쪽
34 모용 세가 침투(1) +2 22.06.23 1,053 11 11쪽
33 요령성 잠입(2) +2 22.06.21 1,066 10 14쪽
32 요령성 잠입(1) +2 22.06.20 1,097 11 11쪽
31 무사와 건달을 얻다 +2 22.06.18 1,129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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