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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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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133

작성
22.06.20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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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
11쪽

요령성 잠입(1)

안녕하세요.




DUMMY

평생 본인보다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밖에 해보지 않은 자호는 얼마 가지도 못해 미행을 들키고 말았다. 무명이나 무빈이 보기엔 그냥 대놓고 따라오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긴 했다. 그래도 명색이 동네 잡배들의 두목이라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자호를 보며 무빈이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뒤처리를 깔끔하게 못하고 길을 나섰군요. 주공께 송구합니다. 이 놈은 제가 처리하도록 하지요."


"무슨 소리냐, 나, 난..."


자호는 무엇인가 강렬하고 멋진 인상을 남길 말을 해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빈의 진짜 살기를 접하는 순간 누가 오금을 맹렬하게 걷어찬 것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무빈이 그에게 다가와 엽전이 든 돈주머니를 손에 쥐어 주었다.


"얼마 안 되지만 이걸로 곡괭이라도 사서 밭을 갈며 살아보아라. 내가 이런 말할 처지는 아니다만 파락호 노릇을 하며 살기엔 네 젊음과 혈기가 아깝지 않으냐?"


자호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그러나 무빈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 할 때 울분이 실린 듯한 한마디를 던졌다.


"그래서 너희들은 되고 난 안된다는 거냐? 똥이나 푸는 사람의 자식이니까 나도 똥을 푸면서 살라고?"


흥미를 느낀 백수가 다가왔다. 자호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갑자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래 내 몸, 건강하다. 그런데 왜 나는 강호에 나가 대장부다운 삶을 사는 꿈조차도 꾸면 안되는가. 우리 아버지부터 모두 그렇게 말한다. 건강하니 똥 잘푸겠다고, 팔힘이 세니 똥 잘 푸겠다고. 목청이 크니 똥이 잘 푸겠다는건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왜 나는 무엇을 하던 결국 그 자리로 가야 하느냔 말이다."


자호의 제법 내공이 실린 외침에 검을 다듬던 무명까지 관심을 가지고 찾아왔다. 백수는 처음으로 자호의 얼굴을 뚫어지게 살펴보았다. 전형적인 입만 산 자들의 관상을 가진 건장하고 멀끔한 인상의 젊은이였다. 문득 폭포에서 타골 선사께 들었던 잡설이 떠올랐다.



-내가 강호에서 사십 이년을 굴러먹었다. 가진 거라곤 맷집밖에 없던 땡중이 어떻게 삭풍이 몰아치는 강호 무림의 살벌한 벌판에서 살아남았는지 아느냐? 나보다 잘난 놈 뒤에서 까고, 앞서 가려는 놈 다리 걸고, 나보다 더 많이 아는 놈 머리통을 후려쳤다.


엥? 강호의 정의와 질서를 세우시겠다는 분이 시정 잡배도 안할 짓을 하고 다니셨다고요?


뭐 어떡해. 내가 많이 세져야 강호의 정의고 뭐고 해먹을 수 있는거 아니냐? 그렇게 해서 나름 무림에서는 상대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안 되는 놈이 있더라. 바로 주둥이만 산 놈들이다. 이것들은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더구나.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잘 안됩니다. 아첨꾼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비슷하지. 그런 놈들은 말로 하는 건 못하는게 없으니까. 처음엔 세치 혀로 내 환심을 끌고 내 신뢰를 얻은 후엔 비밀을 캐내어 내 적들에게 뿌리면서 내 친우들과 날 이간질하고 종국엔 어느샌가 날 강호의 공적으로 만들지.너도 나가서 꼭 이루고 싶은 게 있다 했지? 그렇다면 입만 산 놈을 조심해야 해. 그리고 네 주위에 입만 산 놈 하나 정도는 데리고 있어야 한다. 나에게 위험한 건 적에게도 위험한 법이니라.-



백수는 하남의 깡촌에서 동네 건달들이나 호령하던 자호가 자신에게 어떤 쓸모가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냥 보내면 뭔가 찜찜한 기분이 남을 것 같은 느낌도 강하게 들었다. 어차피 촌부의 자식이고 백수의 발목을 잡을 약점 같은 것도 없다는 건 장점이고, 신체 건강해 보이니 안되면 시종으로라도 쓸 수 있겠다는 부분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백수는 언제나 그렇듯 결정을 내렸다.


"그래. 우리가 뭘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따라오겠다는 의지는 가상하니 한동안 너를 지켜보도록 하마. 대신 세 가지를 지켜야 한다. 첫째, 우리들 중 누구든 너에게 뭘 시키면 그냥 해라. 둘째, 아무것도 묻지도, 알려 하지도 마라. 셋째, 가고 싶으면 언제든 갈 수 있지만 다시 돌아올 수는 없다. 떠나는 순간 우리는 남이 되거나 적이 될 것이다. 둘 중 무엇이 될 지는 너의 행동이 달린 것이야.

할 수 있겠나?"


"저, 저기 미안한데 다시 한 번만, 말이 빨라서..."


자호는 멍하니 딴 생각을 하다가 백수의 말을 한 번 더 놓치고서야 대충 계약 조건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호의 눈썹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씰룩거렸다.


"하지만, 아니다, 나는... 너희들이 시종이 말이다."


"저 놈이 왜 말을 저렇게 해. 남만이나 월족이 보낸 첩자가 아닐까요? 그냥 베어버립시다."


무빈과는 또 다른 서늘한 살기를 뿜어내는 무명의 검집을 본 자호는 소스라치게 놀라 더욱 더듬거렸다.


"나는 아니다! 첩자..."


"아무리 봐도 이상한데... 똑바로 해 말을, 그럼"


"아, 알았으니 살려주십시다 대협, 잉?"


"뭐야, 말 잘하네. 앞으로 그렇게 해라."


사라지는 무명의 뒷모습을 보며 뭔가 억울했는지, 자호가 궁시렁거렸다.


"저승사자같다, 저 자는..."


자기도 모르게 말버릇이 나온 그는 무명이 들을까 부산하게 두리번거리다 마차로 훌쩍 올라탔다. 백수 또한 그의 넉살이 싫지 않았는지 뭐라 하지 않고 마차에 올라탔다. 뒤따라 들어온 무명과 항 량이 백수의 곁에 앉았다. 무빈은 마부가 되어 마차를 몰았다.

항 량이 백수를 보며 물었다.


"이제 다음 행선지를 어디로 두실 예정이신지요?"


"이 무빈과 약속을 했으니 일단 요령성으로 가야하는데 그 전에 들러야 할 곳이 있어. 항 량 선생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하명하시지요. 어디를 찾으십니까?"


"근방에서 가장 큰 장의사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어."


"아... 장의사요?"


"되도록이면 요령성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이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요령성 안에 있는 곳은 안돼. 모용 세가의 정보력이 닿지 않을 거리에 있는 장의사여야 한다는 거지."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마침 그 근방에 아는 지인이 있으니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정탐을 나간 아두가 돌아오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미리 일을 분담해두자. 외모가 튀는 무명이하고 모용 가의 사람이었던 무빈은 모용 세가 사람들의 눈에 띄면 곤란하니 요령성엔 자호하고 항 랑 선생, 그리고 내가 먼저 들어갈거야. 본가 근처 지리를 파악해놔야 작전 동선을 짤 수 있으니까."


"세 사람만 가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제가 변장을 좀 하지요."


"우리는 이미 모용 세가 무사들하고 한 바탕 했던 사람들이야. 십 혈사인지 뭔지하는 녀석들도 직접은 못 봤다 해도 네 외모의 특징을 기억할 거야.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으니 의심을 사지 않을 것이고, 항 선생과 자호와 같이 가면 그냥 유량을 다니는 한량들로 위장하기 쉬울 테니 걱정하지마. 만약에 예상치 못하게 위급한 일이 생기면 청사령의 도움을 받으면 돼."


무명은 반박할 말이 없어 물러서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만이 남은 얼굴이었다. 그에 비해 자호는 첩첩 산중의 절벽을 올라 금은 보화가 가득한 극락을 발견한 얼굴이었다. 특히 백수를 바라보는 얼굴은 십 수년간 짝사랑해온 정인을 먼 발치서 훔쳐보는 그런 표정과 눈빛이었다.


'역시 이 분은 보통 분이 아니었다. 큰 일을 하기 위해 강호에 나오신 게야. 난 그런 분의 삼고 초려를 받은 몸이니 앞으로의 언행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겠구나. 묻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도 대업을 이루기 위한 비밀 유지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 아니겠는가? 나 자호,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 이 분들의 비밀을.'


"어이 자호, 듣고 있어?"


"아, 딴 생각이... 있었다."


"으... 너 말투 좀 어떻게 안돼? 아무튼 넌 마차에서 내려주면 근처의 객잔에서 적당히 돈을 쓰면서 놀다가 해가 뜨면 나와서 사람들한테 모용 세가의 본가 위치를 물어서 문 앞에 와 있어. 종이를 줄 테니 객잔에서부터 본가까지의 길을 적당히 그려놓는 것 잊지말고. 나하고 항 선생은 민가를 돌아다니면서 계획을 실행하기 좋은 동선을 찾은 다음 널 내려줬던 객잔으로 갈 거야. 거기서 셋이 만난 후에 술 한잔 하면서 진탕 노는 척 하다가 다음날 점심에 거길 빠져나오면 돼. 어때, 어렵지 않지?"


"이 계획, 가능성이...있다!"


"어 그래, 고마워... 항 선생은 어때? 문제가 될 만한 게 있을까?"


"드디어 요령성의 백주를 마셔볼 기회가 생겼군요. 특히 장백산 쪽에서 들어오는 장솔주(長松酒)가 그렇게 향이 좋다던데 주공께서도 술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되실 겝니다. 후훗.."


"항 선생은 초원에서 벌레밥이 될 뻔 하고도 전혀 정신을 못 차린 듯 하니 아예 거기로 보내서 창고지기라도 시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무명의 서슬퍼런 경고에 항 량은 몸을 움찔했다. 어지간해선 쫄지 않는 대장부 항 관위도 악마의 입에서 만난 거대 괴수는 절대로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이었다. 백수가 웃으며 무명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도 그러고 싶을 때가 있지만 아직은 쓸 데가 많은 의원이라 말이야. 네 다리도 아직 완치가 된 게 아니고, 가르쳐 놓은 의술이 아깝기도 하니 한동안은 두어야겠지."


항 량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백수와 무명을 번갈아 보다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뭐 주공이 보내시는 곳이라면 그 괴물 벌레가 있는 곳만 빼면 어디든 좋소이다! 하하핫!"


"그래, 바로 거기로 보낼 생각이라니까, 하하핫!"


항 량은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이 머리 속을 스쳐가면서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그는 실로 오랜만에 술을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은 채 바닥에 누웠다.



백수 일행은 열흘 가까이를 더 달린 후에야 목적지인 요령성에 도착했다. 중간에 항 량의 지인이 소개한 장의사를 만나느라 시간이 지체된 것도 있지만, 결국 항 량이 지인과 술을 진탕 마시고 술병이 나는 바람에 이 삼일은 더 지체되고 만 것이다. 요령성은 무림 오대 세가 중 하나이자 정파 무림의 명문가인 모용 세가가 위치한 지역답게 집집마다 구획이 잘 정리되어 있고, 흔히 봃 수 있는 좀도둑도 없었다. 시장은 활기가 넘쳤지만, 왠지 모를 질서가 있었고, 어디에서도 흥정이 시비로 번지는 일 따위는 없었다.


"이 곳의 벼슬아치는 그래도 제대로 된 사람인가 봅니다. 황도가 아니고선 이 정도로 치안이 좋을 수가 없는데..."


항 량의 감탄에 백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이틀에 잡혀진 것 같아 보이지 않으니 결국 모용 세가의 힘이라고 봐야겠지. 관리들이야 몇 년 있다가 다른 곳으로 가라는 교서가 내려오면 끽소리 못하고 가야 하는데 이 곳의 잘 닦여진 도로와 바둑판처럼 지어진 민가의 모습은 일 이년에 할 수 있는게 아니거든."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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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사막의 꽃은 썩었다. +2 22.07.20 888 9 15쪽
51 사막의 꽃 +2 22.07.18 889 8 12쪽
50 사천의 괴수 +2 22.07.16 909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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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어떤 죽음에 명분이 있는가 +4 22.07.12 960 10 12쪽
45 피로 물든 손 +2 22.07.09 984 10 15쪽
44 강호의 천지안(天池眼)(2) +2 22.07.08 985 11 10쪽
43 강호의 천지안(天池眼)(1) +2 22.07.07 1,006 11 12쪽
42 새로운 길을 찾다 +1 22.07.06 1,013 11 12쪽
41 약선(藥仙) 운 효령 +2 22.07.05 1,042 12 13쪽
40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2) +2 22.07.02 1,030 12 12쪽
39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1) +1 22.06.30 1,032 12 15쪽
38 충성을 맹세하다 +2 22.06.29 1,029 9 15쪽
37 모용 세가 침투(4) +2 22.06.28 1,014 11 13쪽
36 모용 세가 침투(3) +2 22.06.25 985 11 13쪽
35 모용 세가 침투(2) +2 22.06.25 1,005 10 12쪽
34 모용 세가 침투(1) +2 22.06.23 1,052 11 11쪽
33 요령성 잠입(2) +2 22.06.21 1,065 10 14쪽
» 요령성 잠입(1) +2 22.06.20 1,097 11 11쪽
31 무사와 건달을 얻다 +2 22.06.18 1,129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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