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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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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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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133

작성
22.06.14 22:08
조회
5,359
추천
38
글자
12쪽

위험한 거래(1)

안녕하세요.




DUMMY

당(唐)고조 이연(李淵)이 수(隋)나라를 무너뜨리고 대당 제국을 건설한 것이 서기 618년, 당나라는 여러 풍파도 겪었지만 문화, 예술이 발전하고 국가 제도가 정비된, 잘 갖춰진 통일 제국이었다. 허나 막강했던 대 제국의 치세도 100년을 장담하기 어려우니, 안으로는 예종과 중종, 측천 무후와 공주들이 권력을 가지고 다투는 동안에 밖에서는 거란고 말갈이 봉기하고 멸망했던 고구려 유민들이 발해를 세우는 것을 막지 못 하며 통일 제국의 기반이 흔들리는 시기가 도래하였다.


혁명을 꿈꾸는 자에겐 난세가 기회라 했던가. 힘이 곧 정의이자 협인 강호 무림은 100년에 가까운 당 제국의 태평 성세 속에 발톱을 감추고 숨을 죽였다. 먹을 것이 넘치는 시대엔 칼보다 쌀이 귀한 법이고, 검결보단 사서를 익히는 것이 유리했다. 서기 690년, 황제 예종이 폐위되고 측천 무후(則天武后)의 수렴청정(垂簾聽政)이 시작되면서 드넓은 제국의 땅에도 다시 피바람의 전운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강호의 검이 칼집에서 뽑혀 나올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다.




당나라의 수도이자 대륙 제일의 도시인 장안은 무후의 낙양 천도 소식으로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예종이 폐위되면서 피비린내 나는 숙청이 이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결정된 수도 이전이었다. 그러나 상단의 장사꾼들에게는 다시 없을 엄청난 돈벌이가 될 수도 있는 천재 일우의 기회였다. 전국의 상단이 천도에 필요한 물자를 대기 위해 황궁의 권력자에게 줄을 대고 돈을 바쳤다. 4대 째 상단을 운영중인 유세 표국(劉世鏢局) 또한 이번 천도를 통해 중원의 거대 상단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황궁의 관리를 한 명이라도 더 만나 손바닥에 광이 나도록 손을 비벼대고 있어야 할 표국의 부단주인 유 지령은 지금 장안이 아닌 청해의 서녕에 있었다. 서녕 성은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흑월제(黑月祭)가 열리는 시기라 성 안은 발 디딜 틈이 없는 인산인해의 난장판이었다.


흑월제 기간에는 중원 뿐 아니라 서역과 동쪽의 삼국, 왜국의 진귀한 물건들이 싼 값에 들어오기 때문에 장사꾼들에게는 춘절만큼 중요한 시기이긴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천도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단주를 따르는 복면인의 낯빛이 밝지 않았다. 유세 표국의 부단주이자 단주 유 환명의 차남인 유 지령은 뒤통수에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을 참다 못 해 뒤를 홱 돌아보았다.




"그만 좀 쏘아보거라. 무공이 극강한 자는 안광으로도 사람을 죽인다더니 내 뒤통수에 구멍 뚫리겠어."




주인의 호통에 복면인이 움찔했지만 차가운 시선은 여전했다.




"이 곳은 주공의 안전을 지키기에 적합치 못합니다. 암기라도 쓴다면 저라 해도 모두 감당하긴 힘들 겁니다."




"사람이 이리 많은데 암기를 뭐하러 써? 그냥 와서 목을 비틀고 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무슨 왕야(王爺) 쯤 되는 거물도 아닌데 누가 날 노린다는 거야?"




"유리 표국의 성장을 눈여겨보는 자들이 있다는 걸 주공도 아시면서 그러십니까. 보는 눈이 많아지면 그 중에 탐탁치 않게 보는 자들도 생기는 법입니다. 게다가 지금 주공은 매우 위험한 자들과 거래를 하러 오셨다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들은 자객 집단입니다."




"알았어. 그래서 너랑 온 거잖아. 상단 최고의 무사를 데리고 왔는데 뭐가 걱정이야?"




"자객을 얕보시면 안 됩니다. 그들은 강호의 법도를 지키는 자들이 아니니까요. 저기, 제 말을 듣고 계신 겁니까?"




"오 당호로(糖葫蘆)다! 청해의 당호로는 중원 최고라던데 이거 먹고 가자."




"아니 진짜 이럴 때가 아니라니까요... 주실 거면 저는 딸기로 주십시오."




어린 아이처럼 가판대의 상인 앞에서 눈을 반짝이는 하얀 피부의 소년은 유세 표국의 부단주 유 지령(劉實領) . 열 여섯의 어린 나이지만 셈이 뛰어나고 인품도 좋아서 상단 사람들의 신망이 두터운 소년이었다. 그의 뒤를 따르는 스무살 정도의 남성은 그의 호위 무사인 무명(無名)이다. 그는 서역 사람으로 서역인 특유의 갈색 피부에 붉다 못해 타오르는 듯한 밝은 적안을 가지고 있어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지령이 아버지를 따라 처음 떠난 서역행에서 죽어가는 그를 구한 이후 무명은 지령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무명은 지령의 뜻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이 아니었으나, 이번 암행은 여러모로 불안한 요소가 너무 많았다. 오랜만에 산채에서 나와 세상 즐거운 지령과는 달리 무명의 눈에는 불안과 긴장이 가득했다.




'덕과 지를 갖췄다 해도 아직은 아이로구나. 우리가 만나러 가는 자들이 어떤 놈들인지 알고는 계신 건가...'




커다란 딸기에 설탕물을 가득 입힌 당호로를 아작아작 씹으면서도 무명의 눈은 사방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




"저기네. 다 왔다!"




지령이 가리킨 곳에는 무연루(霧緣樓)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이 층짜리 누각이 보였다. 지령은 무명이 주변을 살필 틈도 없이 성큼 성큼 객잔의 문을 열었다.


무연루의 내부는 바깥 만큼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윽한 대나무 술의 향기와 오리탕에서 솟아오르는 고기 국물의 진득한 냄새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가득했다. 지령이 약속한 장소인 2층으로 올라가려는데 무명이 그를 제지했다.




"제가 먼저 좀 살펴보겠습니다. 그 자들이 어떤 장치를 해 놓았을 지도 모릅니다."




"아,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니까? 아마도 저들은 우리가 물건을 여기에 가져왔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하고 있을 거야. 하지만 그들은 우리처럼 여유를 부릴 수가 없지. 이 거래에서는 우리가 갑이라고."




지령은 충직한 무명의 손을 슬쩍 내려놓고 거침없는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1층과는 달리 2층에는 드문드문 빈 탁자가 보였고, 약속 장소인 구석으로 갈 수록 빈 자리는 더 많아졌다.


지령과 무명은 통로의 끝까지 와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복도 끝에 있는 서넛의 탁자에는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자리를 빼곡이 채우고 있었다. 스무 살 정도 돼 보이는 젊은이부터 젊게 봐 줘도 팔십은 족히 넘을 것 같은 노인까지 있었다. 나이부터 옷차림까지 다양한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코 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미동조차 하지 않을 것 같은 차가운 눈빛. 무공을 잘 모르는 지령에게도 눈 앞의 인물들은 서녕 성의 동네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무명이 범상치 않은 기백을 풍기는 사람들과 필살의 기를 교환하고 있을 때 지령은 갑자기 한 탁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사십 세 정도 돼 보이는 중년인에게 포권하며 공손히 고개르 숙였다.




"어르신들을 봽습니다. 유세 표국의 차남 지령이라 합니다."




지령의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한 건 무명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탁자에 있던 사람들도 탁자 아래로 손을 넣으며 전투 태세를 취하는 바람에 시끌 벅적한 객잔의 구석에서는 소리 없는 칼부림이 한 바탕 벌어지기 직전의 상황이 되었다.


그 때 지령의 맞은 편에 앉아있던 중년인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대 상단을 이끄는 대협께서 이리 어리신 분인 줄은 몰랐구려. 모두들 인상 쓰지 말고 음식이나 드십시다. 축제에 와서 부딪히는 건 칼이 아니라 술잔이어야지 않겠소?"




탁자를 차지하고 있던 십수 인의 자객들은 중년인의 한 마디가 채 끝나기도 전에 팽팽하던 살기를 모두 거두어 들였다. 무명 만이 아직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뭐 해. 너도 인상 풀고 자리에 앉아.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무명은 지령의 재촉에 겨우 자리에 앉았지만 검집을 잡은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중년인은 탁자에 있던 찻잔을 집어들고 지령에게 차를 권했다.




"이런 날엔 술을 한 잔 기울이는 게 맞지만 먼저 중요한 거래를 끝내야겠지?"




지령 또한 무명의 하지 말라는 뜨거운 시선을 꾹 참으며 함께 잔을 들었다. 독이라도 있을 지 모른다는 무명의 걱정도 타당했지만 지령에겐 그들이 그런 얕은 수를 쓰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만큼 이 거래에 지령이 내놓을 물건은 저들에게 무엇보다 중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지령은 잔을 내려놓자마자 중년인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바로 거래를 진행하지요. 무영검은 가지고 오셨습니까?"




무영검(無影劍). 한나라 초기 명장 한신(韓信)에게 바치기 위해 최고의 명인이 제작했다는 최강의 병기는 한신이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한 후 주인을 잃고 중원을 떠돌다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어떤 강철보다 단단하지만 물처럼 투명하여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는다는 전설의 검은 한 때 페르시아의 황제가 가지고 있다는 소문부터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손에 있다는 말까지 떠돌았지만 그 누구도 실체를 확인하지는 못 했다. 지금 그 검이 지령의 눈 앞에 있는 자객들의 손에 있다는 정보를 큰 대가를 치르면서 알아낸 지령이 이들과의 거래를 요구한 것이다.


거침없고 당돌한 지령의 요구에 중년인의 눈이 빛났다. 무명은 이제 진짜 경계해야 할 순간이 왔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탁자에 앉은 모두에게서 전에 없던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럼 자네는 그 물건을 가져 왔는가?"




지령은 평범한 옷감 장수같은 얼굴의 중년인이 내뿜는 살기에도 생글생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가슴을 톡톡 두드렸다.




"물론입니다. 거래를 하려면 먼저 거래 물품을 확인하는 게 우리 상단의 철칙이거든요."




강호에서 수백 번 생사를 넘나들었을 중년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만큼 지령이 가진 물건이 그들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녔다는 뜻이리라. 중년인이 숨을 고른 후 지령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보여주게. 우리 청사령(靑蛇岭)의 비전 절기인 청사백결(靑蛇百诀)을 말일세."




중년인을 포함한 탁자의 무인들에게서 전에 없던 긴장이 느껴졌다. 이제부터는 손짓 한 번, 숨소리 한 번으로도 조용한 객잔 구석이 피바다로 변할 수 있었다. 무명은 호흡을 길게 가져가면서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검무를 대비했다.




'좌우로 아홉에 주공의 정면에 있는 셋. 일 합으로 우측의 조무래기 넷은 제압한다 해도 좌측의 다섯은 주공에 가려져 있어서 검을 자유롭게 휘두르기 힘들고 그보다 무서운 건 정면의 노인과 저 중년인...'




팔십 넘은 노인의 무공도 무명에 뒤지지 않을 것 같았지만 중년인에게서는 차가운 한기 외에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아서 무명을 더욱 긴장하게 했다. 고수들 사이에서는 무공을 숨기기가 더욱 힘든 법인데, 중년인은 평정심을 잃은 상태에서도 자신의 무력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무명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상대는 강호의 무인이라면 고수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자객 아홉과 고수 셋이고 그 중 하나는 실력을 가늠하기 힘든 상대. 이 쪽은 둘이지만 한 명은 없느니만 못한 소년에 오히려 그를 지켜야 하는 불리한 상황이다.




'하필 상대가 청사령의 자객들이라니... 쉽지 않은 거래가 되겠구나.'




최악의 경우 동귀어진(同歸於盡)까지 각오하고 있는 무명과는 달리 지령은 여전히 과자를 문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찻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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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99 세비허
    작성일
    22.06.20 03:10
    No. 1

    잘 보고 갑니다 건필 하세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61 악지유
    작성일
    22.07.06 14:57
    No. 2

    당나라 시대라면 아득한 옛날이라
    그 시대엔 16세 라면 혼인도 할 나이입니다.
    소년이라기 보다는 청년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듯...

    비장의 한 수를 숨겨두지 않았다면 호위 1명을 데리고
    위험한 고래를 한다는건 현명한 선택이 아닌 듯...
    하회를 봐야 알 수 있겠지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3 하르르하다
    작성일
    22.07.13 09:36
    No. 3

    딸기는 못 참지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3 암사
    작성일
    22.07.13 11:51
    No. 4

    딸기는 너무 좋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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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청무회(2) 22.10.08 447 4 7쪽
111 청무회(1) 22.10.07 359 5 10쪽
110 협객행 22.10.06 373 5 9쪽
109 권력의 달콤한 맛 22.10.05 402 5 9쪽
108 이름을 알리다 22.10.04 407 7 10쪽
107 동상이몽(3) 22.10.01 450 7 10쪽
106 동상이몽(2) 22.09.30 426 5 10쪽
105 동상이몽(1) 22.09.29 452 4 10쪽
104 뿌리가 썩은 나무는 새싹이 돋지 않는다 22.09.28 469 4 11쪽
103 회의 소집(5) 22.09.27 458 6 10쪽
102 회의 소집(4) 22.09.24 482 8 9쪽
101 회의 소집(3) 22.09.24 478 5 10쪽
100 회의 소집(2) 22.09.22 465 7 9쪽
99 회의 소집(1) 22.09.21 520 7 9쪽
98 이름을 알리다. 22.09.20 512 8 9쪽
97 제대로 훈육할 생각이라면 매를 들어야 한다 22.09.20 503 8 9쪽
96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2) 22.09.16 571 8 11쪽
95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1) 22.09.15 551 7 8쪽
94 날아오르려면 땅을 박차야 한다 22.09.14 583 9 10쪽
93 와호장룡(臥虎藏龍) 22.09.13 598 5 14쪽
92 들개 떼의 눈에 띄다 22.09.12 609 6 13쪽
91 와신상담(臥薪嘗膽) 22.09.11 606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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