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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114,796
추천수 :
1,166
글자수 :
581,133

작성
22.07.26 09:00
조회
885
추천
9
글자
11쪽

죽음을 넘어서다

안녕하세요.




DUMMY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백수는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천천히 눈을 떴다.

고개를 돌려보니 심지가 다 타버린 횃불과 수북히 쌓인 먼지덩이가 보였다.

급히 몸을 일으킨 백수가 제단과 같은 모양의 바위에 시선을 집중했다.

실낱같은 빛도 없는 방이었지만, 이미 어둠에 익숙해진 백수의 눈에는 바위 위에 놓인 혈교의 비급이 조금 전과 같은 모습으로 놓여진 것이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조금 전의 환영은 뭐였지? 아니 그건 환영이 맞나?'


자신을 향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연기를 쏟아내던 뼈가 앙상한 괴 노인의 타오르는 붉은 눈동자가 백수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눈 앞에 있는 낡은 책에서는 구역질이 나올 정도의 더러운 기운이 계속 풍겨나오고 있었다.

사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바위 위에 덩그러니 놓인 조그만 책 한 권을 집어서 들고 나오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백수의 발이 책을 향해 다가서질 못하고 손을 뻗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진짜 마공의 힘은 백수의 몸과 마음을 두려움이라는 쇠사슬로 단단히 묶어 버렸다.

백수는 자신이 책 앞에서 꽤 오랜 시간을 서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상태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발자국만 걸으면 되는데 알 수 없는 무엇이 그 쉬운 일을 허락하지 않았다.


"진정하자. 이게 무엇이던 간에 결국 실제는 아니잖아."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소스라치게 놀란 백수가 돌아본 곳에는 조금 전 자신을 쓰러뜨렸던 괴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노인의 눈에선 여전히 불꽃이 튀는 것처럼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물론 내가 지금 현생에 살아있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실재하지 않는다고 볼 순 없지. 조금 전에 봤겠지만 난 네 앙상한 다리를 못 쓰게 만들 수도 있고 다시 한 번 네 숨구멍을 막아버릴 수도 있다.

자, 말해봐라. 당장이라도 살아있는 널 죽일 수 있는 내가 환영이냐?-


백수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약선과 얽히기 시작한 후부터 겪게 된 일들의 결정판이라 할 만한 상황이었다.

살아있는 두 사람의 영혼이 바뀌고, 자신이 만든 책에 스며들어 산 사람을 공격할 수 있는 악령이라니...

백수는 갑자기 구역질이 나면서 이 어두운 공간에서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런 백수를 보는 노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흘렀다.

백수는 노인의 비웃음에 전에 없던 의기가 치솟았다.


'갈 길이 바쁜 내가 이 런 곳에서 사자에게 놀림을 당하다니...'


백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 자리에 정좌한 후, 타골에게 배운 무당파의 태극 신공으로 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걸린다 해도 백수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활인혈을 가진 그는 노인에게 타격을 입는다 해도 시간만 주어지면 천천히 회복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마공을 쓰는 노인에게 정신적 타격을 입거나 혼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심법으로 강인한 내공을 길러야 했다.


'이렇게 뚝딱 익혀서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보는 수 밖에 없지.'


백수는 폭포에서 스승께 배운 여러 무공들을 하나 하나 일깨우며 자신의 내공을 조금씩 끌어올렸다.

보통 속성으로 내공이나 무공 실력을 끌어올리려면 극강의 고수가 자신의 내공과 기운을 불어 넣어줘야 한다.

그러나 지금 백수에겐 머리 속에 담긴 중원 모든 무술의 지식과 끝없이 회복하는 강인한 신체가 있었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못 이룰 목표도 아니었다.

태극 신공으로 어느 정도 마음도 가라앉히고 내공도 올렸지만, 방 전체를 마기로 뒤덮을 정도로 강력한 노인의 마공을 이겨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노인의 팔에 불잡혀 그의 눈에서 쏘아대는 강력한 마기를 정통으로 받은 백수는 단말마의 비명도 못 지른 채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아아악!!"


이제서야 조금 전 질렀어야 할 비명을 지르며 눈을 뜬 백수는 이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바로 각 문파의 심법으로 내공을 단련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글과 그 뜻을 안다 하여 모든 진리가 통하지 않듯이, 모든 문파의 비급 내용을 알고 있다고 그것이 다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몸과의 궁합이 딱 맞는 무공이 있고 오히려 내게 해가 되는 무공이 있는 것이다.

백수에겐 곤륜파와 소림, 아미파의 비급은 잘 맞는 편이었으나, 화산파와 점창파의 심법은 백수의 몸을 차게 하고 내공을 감퇴시켰다.

무공들의 장단점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백수는 끊임없이 노인에게 최후를 맞아야 했다.

가끔은 책 근처까지 손을 뻗은 적도 있었으나 보통은 바위 앞까지도 가지 못하고 노인의 강력한 술법에 숨이 멎을 때까지 켁켁거리다 쓰러지는 장면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나뭇가지를 가지고도 수 백 번, 수 천 번을 찌르다 보면 언젠가는 바위에 구명을 낼 수 있는 법이다.

조금씩 각 문파가 보유한 무공의 기초를 깨우쳐 가며 조금씩 바위를 향해 전진한 백수가 이번엔 책의 모서리에 손이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엔 이전의 상황과는 뭔가 달랐다.

백수는 고통 속에 숨이 멎고 얼마 후 처음의 자리에서 다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바위 앞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책은 여전히 손이 닿을 자리에 놓여 있었다.


"아니, 결국 해낸 건가?"


백수는 조심스럽게 책을 만져 보았다. 이전과는 달리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대신 백수의 눈 앞에 꿈에서 볼까 두려운 노인의 앙상한 팔다리가 나타났다.

노인은 백수를 바로 공격하지 않고 한 손으로 턱을 괸채 유심히 살피기만 했다.


-재미있는 놈이로다. 생명력을 주변에서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구나.

내게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더 많은 연구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백수가 태극권의 방어 자세를 취하자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손목을 까딱거렸다.


-돼도 않는 무사 흉내는 집어치워라. 이 쯤 되면 안 된다는 걸 알지 않느냐.

그 책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동굴 속에 혼자 있기 무료하여 끄적거려 놓은 내 비망록 같은 것이지. 그걸로 뭘 하려면 삼백 년을 걸릴 게다, 킬킬.-


"하지만 약선과 침선은 실험에 성공했다던데?"


-네가 보기에 그것이 성공으로 보이느냐? 화백이 거의 그려 놓은 그림에 애새끼들이 점 몇 개 찍어 놓는 거나 다름없지. 그것들은 백 날 해봐야 지들이 뭘 했는지도 모를 게다.-


백수는 난감했다. 무림을 주름잡았던 고수인 그들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백수를 보내주려고 할 지 확신이 없었다.

그리고 어찌 됐든 자신은 약선과 침선의 도움을 받아 내공을 회복하고 활인혈도 열린 상태인데, 두 사람을 원래 상태로 회복 시켜주지 않고 떠난다면 강호의 도리가 아니다.

백수가 책을 들고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에 노인이 특유의 음침한 음성으로 말했다.


-널 계속 가지고 놀까도 했지만, 네가 밖에 나가는 것이 날 더 재미있게 해 줄 것 같으니 보내주마. 하지만 그냥 갈 순 없지.-


노인이 갑자기 백수의 눈 앞으로 뛰어들더니 한 손으로는 단전을, 다른 손으로는 인중을 붙잡고 눌렀다. 그와 동시에 백수의 온 몸에서 타오르는 듯한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살갗은 불에 타는 고통 같은데 몸 속에서는 끝도 없는 한기가 밀려왔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백수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연구한 모든 탈명술의 비밀을 네게 전해주마. 하지만 조건이 있다.

반드시 내 연구를 발전시켜 혈교의 역사에 남을 술법을 완성시켜야 한다.-


"교도도 아닌 자에게 혈교의 비밀을 넘겨서 뭘 어쩌겠다는 것이냐!"


-내가 평생 연구한 비급을 받아들이면 알게 될 것이다. 네가 지금까지 봐 온 것들은 진짜 세상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주화입마 같은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 마공을 받아들이는 순간, 넌 모든 마공의 지배자가 될 것이니...크크-


"그러니까 그런 걸 왜 나한테 주냐고....."


죽음의 위기를 몇 번이나 넘겨본 적 있는 백수에게도 혈교의 괴수가 전하는 마공의 집약체는 내공이 생긴지 얼마 되지도 않는 그가 받아들이기에 버거웠다.

결국 이번에도 백수는 끙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어둠과 적막만이 남은 방 안에 누군가의 음침한 웃음 소리가 스르르 바닥을 울리다 사라졌다.


"아이고 머리야, 이번엔 정말 독하게 당했네. 그런데 기분이..."


익숙한 모습으로 다시 정신을 차린 백수는 자신에게 뭔가 아주 큰 변화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자신의 몸에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리 깨끗하지 않은 그 기운들은 백수가 정파의 여러 심법을 통해 조금씩 쌓아나간 내공과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고 백수의 내공을 갉아먹기도 하면서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백수의 몸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뭐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백수는 이게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책의 주인인 노인이 백수에게 남기고 떠난 마지막 마공이었다.


수십 년 전, 사람의 생명과 혼을 사용해서 여러 가지 어둠의 술법과 살인 기술을 연구해오던 혈교는 역사상 다시 나오기 힘든 기재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이든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 혈교의 장로들이 자신들을 한참 추월해 높은 경지로 올라가는 그 천재를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었고, 그를 동쪽 끝 화산 분화구 아래 동굴에 가둬두기로 결정했다.

혈교에서 더 얻을 것이 없다는 걸 알고 있던 천재는 장로들의 배신을 응징하지 않고 오히려 기꺼이 받아들였다. 대신 가끔씩 실험에 필요한 사람들을 보내주는 조건으로 그는 평생을 연구에만 매진했다.

그러나, 천재의 연구에도 한계는 있었다. 사람의 생명력을 이용한 술법이다 보니 자신 또한 연구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목숨 줄에는 한계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고심 끝에 그는 자신의 혼을 봉인하여 후에 쓸만한 인재가 나타나면 그에게 연구를 이어나가게 할 결심을 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더 강한 술법의 연구 뿐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고 화산 속 동굴에서 생을 마감한 그 천재의 모든 것이 지금 백수에게로 전해졌다.

백수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책이 모두 타서 재만 남았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제 그에게 그런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책에 담겨 있던 모든 내용은 이미 백수의 머리 속과 온 몸에 문신처럼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타골 선사에게 습득한 정파와 사파의 모든 무공과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혈교의 비밀스런 술법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든 백수는 온 몸에 흐르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이젠 정말로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방을 나섰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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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괴수같은 인간, 인간같은 괴수(1) 22.07.30 898 8 9쪽
59 썩은 열매엔 아쉬움을 두지 않는다 22.07.29 888 7 10쪽
58 부정하지만 강한 수단 22.07.27 878 9 12쪽
57 잃었으나 손해는 없다. 22.07.27 920 9 13쪽
» 죽음을 넘어서다 22.07.26 886 9 11쪽
55 탈혼(脫魂)과 추혼(追魂) 22.07.23 913 7 12쪽
54 나를 만나다 22.07.21 862 7 11쪽
53 고치 속에 든 것은 22.07.21 854 6 10쪽
52 사막의 꽃은 썩었다. +2 22.07.20 888 9 15쪽
51 사막의 꽃 +2 22.07.18 889 8 12쪽
50 사천의 괴수 +2 22.07.16 909 8 12쪽
49 무명과 효령의 담판 +2 22.07.15 912 9 11쪽
48 결정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2 22.07.14 893 9 13쪽
47 이리떼는 호랑이를 죽일 수 없다. +2 22.07.13 929 10 12쪽
46 어떤 죽음에 명분이 있는가 +4 22.07.12 960 10 12쪽
45 피로 물든 손 +2 22.07.09 984 10 15쪽
44 강호의 천지안(天池眼)(2) +2 22.07.08 984 11 10쪽
43 강호의 천지안(天池眼)(1) +2 22.07.07 1,006 11 12쪽
42 새로운 길을 찾다 +1 22.07.06 1,013 11 12쪽
41 약선(藥仙) 운 효령 +2 22.07.05 1,042 12 13쪽
40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2) +2 22.07.02 1,030 12 12쪽
39 부자의 해후, 형제의 해후(1) +1 22.06.30 1,032 12 15쪽
38 충성을 맹세하다 +2 22.06.29 1,029 9 15쪽
37 모용 세가 침투(4) +2 22.06.28 1,014 11 13쪽
36 모용 세가 침투(3) +2 22.06.25 985 11 13쪽
35 모용 세가 침투(2) +2 22.06.25 1,005 10 12쪽
34 모용 세가 침투(1) +2 22.06.23 1,052 11 11쪽
33 요령성 잠입(2) +2 22.06.21 1,065 10 14쪽
32 요령성 잠입(1) +2 22.06.20 1,096 11 11쪽
31 무사와 건달을 얻다 +2 22.06.18 1,128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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