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114,773
추천수 :
1,166
글자수 :
581,133

작성
22.08.24 09:00
조회
659
추천
6
글자
11쪽

옳은 길로 가지 못한다면 승리라도 손에 쥐어야 하는가(1)

안녕하세요.




DUMMY

청성산에는 수많은 도가의 사당이 건립되어 있었다. 그 중 으뜸은 상청궁으로 규모도 가장 크고 청성파의 본가 제자들과 장문인이 주로 거주하며 도를 닦는 공간이었다.

현재에도 도가에 귀의한 수많은 도인과 무가의 제자들이 상청궁에 기거하며 가르침을 전파하고 있었다.

진 가민 또한 청성산에서 태어나 평생을 보냈다. 제자들은 곧 형제이며, 전우였고, 한 몸처럼 움직이는 정신 공동체와도 같았다.

함께 피를 흘렸던 수 많은 전투들, 특히 십여 년 전, 정사대전에서 진 가민과 청성파의 제자들은 목숨을 내던지고 싸웠다.

정파의 의협심도 물론 있었겠지만 명문 정파의 말석으로 밀려난 청성파의 위세를 되찾겠다는 공명심 또한 그들의 발을 전장으로 이끌었다.

청성파의 깃발은 어딜 가나 선두에 있었다. 오죽하면 당시 정파 연합군을 이끌던 남궁 천율이 야습같은 위험한 전투를 할 때마다 남궁 세가의 수하들 대신 청성파의 무사들을 데리고 갈 정도였다.

그렇게 피를 흘려가며 얻은 승자의 깃발, 허나 승자의 영광은 그들의 것이었을 지 모르나 전리품은 모두 엉뚱한 놈들의 차지가 되고 말았다.

처세술과 정치에 능했던 모용 훤의 모용 세가와 사대 문파 소림, 무당, 화산, 점창파, 그리고 무림맹을 지휘했던 남궁 세가와 그를 따르던 제갈 세가, 황보 세가 등은 진 가민이 제자들과 마교의 잔존 세력을 쫓고 있을 때 뒷구멍으로 전리품과 땅을 나누기에 바빴다.

그래서 진 가민이 전장에서 돌아왔을 때, 청성파에 남은 건 기울어진 가세와 이름 뿐인 명예 뿐이었다.

정사 대전의 7대 영웅 중 한 명으로 추앙받으며 매년 무림맹에서 지원금을 주겠다 했지만 그것도 한 때 뿐, 몇 년이 지나니 그들의 가벼운 약속은 흐지부지 되었고, 청성파 또한 그들의 가벼운 약속처럼 스러져 갈 위험에 처해있을 때 혜성처럼 나타난 것이 바로 청성산의 유생 좌두곤이었다.

몇 년 째 관직에 오르지 못해 고향으로 돌아온 학사의 무리 중 한 명이었던 그는 청성파의 방만한 운영을 꼬집으며 밑바닥부터 고쳐 나갔다.

처음엔 그를 고깝게 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청성파의 잘못된 점들을 개선해나간 그는 장문인의 신뢰도 얻고 청성파를 자생 가능한 조직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청성산 주변의 땅을 개간하고 산에서는 약초와 산짐승을 이용해 돈을 벌어들이니 청성산 주변엔 비옥한 농지가 생겼고, 청성파의 제자들이 치안을 지키고 농사와 사냥을 돕자 청성산으로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청성파의 제자들은 주변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것은 모두 좌두곤이 규율이 엄히 세우고 꼿꼿하게 운영한 덕이었지만, 무사 출신도 아니고 정사 대전에 참전한 적도 없는 그가 문파 운영의 전면에 나서는 것을 안 좋게 보는 눈도 있었다.

좌두곤을 좋게 보지 않았던 진 가민의 세력은 거의 대부분이 무인이고 수 없이 전투를 해 온 싸움꾼들이었다.

좌두곤은 그들이 무력을 앞세워 청성파를 장악하려 들 것을 우려해 외부에서 용병을 들이기 시작했고, 그것이 이번 내전의 발단이 되고 말았다.

결국 과거의 영광을 지키고자 한 자들과 현재의 삶을 중요하게 여긴 자들의 다툼이 청성산을 피로 물들이게 된 것이었다.


진 가민은 청성산에 다가오면서도 왜 이런 상황에 오게 됐는지조차 짐작 못하고 있었다. 그는 평생 전투만 하며 살아온 무인이었고, 문파의 운영이나 사람들의 불만을 조율하는 데는 관심도 소질도 없었다.

사실 이틀 전 새벽, 좌두곤을 노린 자객의 습격이 있었다.

하루빨리 좌두곤을 꺾어야 한다는 주변의 충언에도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진 가민을 답답히 여긴 수하들의 짓이었다.

천만 다행으로 좌두곤은 목숨을 건졌고, 대신 집에 있던 홀어머니가 목숨을 잃었다.

분노한 좌두곤은 지금까지 모았던 병력을 모두 이끌고 청성산을 포위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미리 훈련이 되어 있었던 좌두곤의 용병들과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은 준비된 움직임으로 청성산의 요충지를 효과적으로 점령했다.

남은 곳은 상청궁 뿐, 가장 많은 제자들이 있으며 그 중 대부분이 진 가민을 따르는 무인들인 공략이 쉽지 않은 요새와도 같은 사당이었다.

진 가민이 이 곳에 들어가 농성을 시작한다면 아무리 좌두곤의 세력이 숫적으로 유리하다 해도 장기전이 될 수 밖에 없고, 그리 되면 무림맹에서 중재에 들어갈 것이다.

무림맹에서는 정사대전의 영웅인 진 가민의 편을 들 것이 확실하니 좌두곤에게는 일각이 여삼추라 할 수 있었다.


"진 가민은 이 근처에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상청궁에 들어가려 용을 쓰겠지.

상청궁에 들어가기 전 잡지 못하면 우리의 거병은 실패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빨 빠진 호랑이를 먹여 살리느라 기울어진 청성파의 대들보를 우리의 힘으로 다시 세워야 한다."


좌두곤의 말에 청성파의 젊은 제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청성파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좌두곤과 젊은 제자들이 땀 흘려 일하는 동안 진 가민을 필두로 하나씩 자리를 꿰찬 늙은이들은 허구헌 날 과거의 전쟁 얘기만 들먹이며 술판을 벌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이제 그들은 진 가민 일파를 모두 내치고 백성들과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청성파를 만들 생각이었다. 백성들 위에서 군림하는 명문 정파가 아니라 함께 일하고 열매도 함께 나누는 존경받는 도인이 되고 싶었다.

어찌 됐든 이제 그들에겐 남은 길은 더 많은 피를 흘리는 것 뿐이었다.

결과가 어떻게 될 지는 누구도 알 수가 없었다.



진 가민은 상청궁으로 들어가는 모든 비밀 통로가 좌두곤의 병사들로 막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용선이라도 산 아래로 내려보내고 봐야겠구나. 이렇게 된 거 동귀어진의 각오로 한번 부딪혀 보겠다. 운이 좋아 제자들이 날 발견이라도 한다면 좋으련만...'


진 가민은 딸 용선의 손을 잡았다. 겁을 많이 먹어서 핏기가 사라진 딸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진 가민은 딸의 손에 입김을 불어주며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 딸이 검을 잡는다고 아빠가 꾸중을 하였는데, 네 검이 위급할 때 큰 도움이 되었구나. 이 아비의 생각이 짧았던 걸 용서해다오."


용선의 눈에서 더 이상 나올 것이 없을 것 같던 눈물이 다시 쏟아졌다.

어린 나이지만 평생 한 번도 사과라는 걸 해 본 적이 없는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때늦은 사과가 무엇을 뜻하는 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네 동생의 목숨이 네게 달렸다. 넌 이 길을 따라 밑으로 내려가서 큰 강이 보일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강이 있는 곳까지 가면 어부들에게 우면장이라는 사람을 찾아 그의 배를 타거라.

그 이외엔 아무도 믿어선 안된다."


"아버님, 저는 못 할 것 같습니다. 무, 무서워요..."


진 가민은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딸의 볼을 쓰다듬었다.


"안다. 나도 전장에 나갈 때마다 무서워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지. 술을 아무리 마셔도 검을 아무리 휘둘러도 무섭긴 마찬가지였어.

하지만 아무리 무서워도 결국 떠밀려서라도 해야 되는 일이 있다.

넌 누이로서 어린 동생의 생사 여부를 네 손에 쥐게 되었다.

어쩔 테냐, 여기서 이 어린 것과 함께 목숨을 잃을 테냐?"


용선은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러나 진 가민은 딸을 탓할 수 없었다.

그 때, 뒤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한 사람이 아니었다.


'낭패다. 최대한 소리없이 없에고 이 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그러나 나타난 사람들은 좌두곤의 부하들도 아니었고, 모두싸울 뜻이 없다는 표시로 양손을 들고 있었다.

체격이 건장한 사내와 공동파의 도인으로 보이는 중년인, 그리고 수려한 외모의 청년 둘이 있었는데, 모두 내공이 상당한 수준이었고 특히 백옥같은 피부를 가진 스무살 초반의 청년이 가진 내공은 진 가민을 깜짝 놀라게 했다.

상대하기 힘들겠다는 결론을 내린 진 가민은 뽑아들었던 검을 다시 검집에 넣었다.


"무림맹에서 보내셨는가? 왜, 맹주께서 이제 쓸모 없어진 호랑이 이빨이라도 뽑아오라 하시던가?"


네 사람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모든 것을 내려 놓은 진 가민에게 이제 자존심 같은 건 없었다.


"따라가라면 따라가고 자결하라면 하겠네. 대신 두 아이만은 살려주시면 안 되겠는가?

늘그막에 얻은 핏줄이네. 딱히 무공에 재능도 없어서 필부로 키워 어디 관청의 관리라고 시켜볼까 했었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뭐든 할 테니 제발 이 아이들만.... 내 이렇게 부탁하네."


하얀 얼굴의 청년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진 가민에게 다가와 어깨에 조용히 손을 얹었다. 가냘픈 팔에서 자신의 몸 전체를 뒤흔들 만한 묵직한 내공이 느껴졌다.


"냉혈 공자 진 대협이시죠? 저희가 대협의 활로를 뚫어드리겠습니다."


진 가민은 이게 꿈인가 싶어 다시 한 번 청년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단지 넷 뿐이었지만 그들의 자신감은 동네 한량들의 허세 같은 것이 아니었다.

백수의 손을 자고 일어선 진 가민은 자신의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야 마지막으로 멋진 전투를 할 기회를 얻었으니 아쉬울 게 없다만 아이들의 안전이 걱정이오. 아이들을 보살펴주지 않겠소?"


"아이들은 무사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것보다 진 대협의 전세가 안 좋아보이는데 지금 전황이 어떻습니까?"


"전황이랄 게 있겠소. 멍청한 늙은이가 방비를 허술히 하고 있다가 기습을 당하고 말았소. 산의 작은 궁마다 불길이 오르는 걸 봤으니 아마 내가 가진 대부분의 전력은 좌 두곤 그 놈에게 다 제압당한 것 같고, 내가 믿을 건 상청궁의 동지들 뿐이오."


"상청궁에 들어가면 된다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백수는 높게 솟은 누각을 보며 의협단 단원들을 돌아보았다.


"진 대협 말씀대로 상청궁에 들어가기만 하면 전황을 뒤집을 방도가 생길 것 같으니 길을 한 번 뚫어보자. 교연은 아이들을 부탁해."


"명을 따르겠습니다.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엔 다른 무사가 단주님을 호위할 겁니다. 혹여 놀라실 까봐 말씀드립니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나도 호위 무사가 있어."


교연은 진 가민이 반응을 하기도 전에 두 아이를 장포에 감싸안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진 가민은 잠시 얼이 빠진 사람처럼 서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아이들은 이미 떠났고, 이들이 아군이던 적이던 간에 이미 돌아갈 곳은 없었다.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은 한 곳 뿐이었던 것이다.

진 가민은 검집에서 스릉 소리가 나도록 강하게 검을 빼들었다. 예전 정파 오협과 함께 마교의 교주 악불군과 십일 장로를 상대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현경이니 화경이니 하는 고수들의 싸움도 결국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이면 동네 개들의 싸움이나 다를 바 없었다. 물어 뜯던 뒤통수를 치던 상대의 목숨이 완전히 끊길 때까지 치고 찌르고 자른다.


"뉘신지는 모르겠으나 여기 계신 후학들께 내가 왜 냉혈 공자라 불리는지 보여 드리겠소. 그럼 가 봅시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림실세 왕백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정말로 갈려 나갔습니다. 22.10.08 181 0 -
공지 100번 치면 바위도 뚫는다. +1 22.09.24 144 0 -
공지 안전장비는 날 지켜주지 못한다. 22.09.17 115 0 -
공지 앞뒤가 바뀐다는 건... 22.09.08 180 0 -
공지 공지입니다. 22.08.19 867 0 -
115 왜 아무도 남지 않았는가 24.02.25 44 1 13쪽
114 고요한 학살 23.02.05 146 3 12쪽
113 청무회(3) 22.11.03 298 2 6쪽
112 청무회(2) 22.10.08 447 4 7쪽
111 청무회(1) 22.10.07 359 5 10쪽
110 협객행 22.10.06 373 5 9쪽
109 권력의 달콤한 맛 22.10.05 402 5 9쪽
108 이름을 알리다 22.10.04 407 7 10쪽
107 동상이몽(3) 22.10.01 450 7 10쪽
106 동상이몽(2) 22.09.30 426 5 10쪽
105 동상이몽(1) 22.09.29 452 4 10쪽
104 뿌리가 썩은 나무는 새싹이 돋지 않는다 22.09.28 469 4 11쪽
103 회의 소집(5) 22.09.27 458 6 10쪽
102 회의 소집(4) 22.09.24 482 8 9쪽
101 회의 소집(3) 22.09.24 478 5 10쪽
100 회의 소집(2) 22.09.22 465 7 9쪽
99 회의 소집(1) 22.09.21 521 7 9쪽
98 이름을 알리다. 22.09.20 513 8 9쪽
97 제대로 훈육할 생각이라면 매를 들어야 한다 22.09.20 504 8 9쪽
96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2) 22.09.16 571 8 11쪽
95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1) 22.09.15 552 7 8쪽
94 날아오르려면 땅을 박차야 한다 22.09.14 583 9 10쪽
93 와호장룡(臥虎藏龍) 22.09.13 598 5 14쪽
92 들개 떼의 눈에 띄다 22.09.12 609 6 13쪽
91 와신상담(臥薪嘗膽) 22.09.11 606 7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