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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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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133

작성
22.09.30 20:00
조회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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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0쪽

동상이몽(2)

안녕하세요.




DUMMY

남궁 천율의 시선이 우각정에 모인 장문인의 얼굴 하나 하나에 박혔다.

각자 자신들의 목적과 욕심, 아니면 무인으로서의 자존심 같은 감정들을 가지고 이 곳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모두 자신이 속한 자리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인물들이다 보니 살아오면서 양보나 배려 같은 행동을 한 적이 없다.

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동료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행동을 비효율적이라 여기는 사람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최고다 보니 모두가 자신을 위해 희생을 해야 승리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졌던 것이다.

결국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무림의 최고수들은 전란이 끝나고도 전쟁 당시의 감정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소. 이번 회의는 점창파의 고명자와 청성파의 진 가민이 제의한 회의이니 먼저 그들의 안건을 듣도록 하겠소.

점창파의 고명자가 먼저 얘기해보시오."


고명자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섰다. 평소 성격이 온순하고 밝은 그 답지 않게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먼저 최근 점창파에 있었던 불미스런 일에 대해 알려야 할 것 같군요.

점창파의 신궁에 자객이 침입하여 제 아들이자 차기 장문인이 될 예정인 태선을 해치려 했습니다.

다행히 미수에 그치긴 했지만 구파 일방의 일원인 우리 점창파의 신궁까지 잠입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모인 사람들 중 대부분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 놀라는 척은 했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외부 소식에 큰 관심이 없는 화산파의 젊은 장문인과 그의 부인만이 크게 놀란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깡다구 좋은 놈이 있다니 화산파에서 제자로 삼고 싶군요."


장난끼라면 남편에 뒤지지 않는 임 증요도 한 마디 거들었다.


"화산파에서 거드름 좀 피우려면 그 정도는 돼야겠지요. 그래도 우리한테까지 덤비면 싸움도 못하는 남편이 어디 한 군데 부러지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네요."


"나 참, 부인이 지켜주면 되지 나보다 두 세 배는 더 많이 먹는 당신이 힘 좀 써야 하지 않겠소?"


농이나 주고 받을 상황이 아닌데도 영 서강의 성격을 알기에 누구도 제지하지는 않았지만 장문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어두웠다.

모두의 생각은 같았다. 누군지는 모르나 이번에는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 것이다.

정효 사태는 술잔을 드는 척 하면서 슬쩍 남궁 천율과 모용 훤의 눈치를 살폈다.


'점창파의 후계자 선정에 끼어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저 둘 중 하나인데...

너구리 같은 모용 훤은 속을 알 수가 없고, 남궁 천율은 정말 몰랐던 얼굴 같기는 하지만 모를 일이지.'


고명자는 잠시 숨을 고른 후 계속 말을 이어갔다.


"자객의 습격에 대한 일은 우리 힘으로도 해결할 수는 있지만, 중요한 건 누군가 점창파의 내정에 간섭을 하려 한다는 점이겠지요.

향후 이런 일이 또 생기지 않도록 배후를 철저하게 밝힐 생각입니다.

다행히 자객 한 놈을 붙잡아 두었으니, 누구의 음모인지는 곧 밝혀질 겁니다."


이번에는 모용 훤의 입가에 보일락말락한 미소가 떠올랐다. 미소라고 보기도 힘든 약간의 떨림이었지만, 정효 뿐 아니라 당문의 오 독경과 진 가민까지도 그 미세한 변화를 알아챘다.


'모용 훤이 뭔가 알고 있는 건가?'


모용 훤은 일찍이 무림맹에서 점창파를 장악하기 위해 손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고 명자를 닮은 곧은 심성을 가진 태선 보다는 자신들이 움직이기 좋은 사람을 앉혀서 미래의 점창파를 좌지우지 하려는 계획이었다.

본거지를 옮긴 후, 날이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점창파를 장악한다면 향후 무림맹에 든든한 보물 창고가 되어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같은 무림맹 소속이며 정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점창파에 직접 자객을 보낼 정도로 무림맹의 현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모용 훤은 최근 무림맹이 지나친 세력 확장으로 인해 재정난을 겪고 있다는 정보를 접한 바 있었다.

무림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무림맹은 비대하고 끊임없이 먹기만 하는 아귀와도 같은 조직이 되어 있었다.

모용 세가가 진작부터 백성들과 교류하며 농업과 상업에 직접 참여하여 곳간을 채울 방안을 연구했던 것과는 달리, 무림맹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남궁 세가는 사방에서 들어오는 세금만을 믿고 자생할 방안을 만들어두지 않았다.

그 사이 무림맹에 기대어 살아가는 인원은 점점 늘어났고, 그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데 드는 비용 또한 계속 늘어났다.

결국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남궁 세가의 금고에도 빈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무림맹과 남궁 세가의 금고와 곳간엔 아직도 셀 수 없을 정도의 곡식과 재물이 넘쳐나긴 했지만,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재정이 적자로 돌아섰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금화가 많아도 수만 명을 먹이려고 하면 일 년이면 거덜날 수도 있었다.

그만큼 새로운 재물이 계속 들어와야 거대한 조직을 유지할 수 있는데, 최근 들어오는 세금의 양이 예전만 못했다.

아미파처럼 더 이상 세금을 보낼 수 없을 정도로 궁핍한 문파도 있었고, 공동파처럼 이름만 남기고 명맥이 끊긴 곳도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세수는 줄어갔다.

그렇기에 모용 세가 같은 거대한 동맹에 의지하게 되었고, 그것은 무림맹 내에서 모용 세가의 영향력 강화로 이어졌다.

이것은 모용 훤이 바라던 바이기도 했다. 굳이 힘을 쓰지 않고도 돈으로 상대를 굴복시킬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다.

상대가 나보다 힘이 세다면 그 힘을 날 위해 쓰도록 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모용 훤은 무림맹을 자신의 손 아래 두게 될 날이 멀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장문인들께 보여줄 것이 있소이다. 이것은 과거 정사 대전 때 발행한 것으로 보이는 어음이오.

어음이라 함은 신의를 담보 삼아 재물을 거래한 것이니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해도 어음에 적힌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고 봅니다.

어음에 적힌 문파는 남궁 세가와 모용 세가, 그리고 소림사와 공동파인데 공동파는 현재 이런 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테니 조금 더 여유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공동파의 임시 장문인 자격으로 회의에 참가한 도사 현장(玄掌)이 날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은 얼굴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에 반해 소림사의 주지인 모설(摸雪)대사는 날벼락을 세게 맞은 얼굴이 되었다.

이런 어음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터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느 정도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있던 모용 훤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다만 고명자가 들고 있는 어음을 뚫어질 듯 노려볼 뿐이었다.

한참을 노려봤는데도 종이가 뚫어지지 않자 실망했는지 모용 훤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음이라는 건 주는 이와 받는 이의 신의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모용 세가가 그 어음을 주고 돈을 받았다는 건 사실인 것 같으나 어음을 받은 이가 확실치 않으면 무턱대고 돈을 지불할 수는 없습니다.

어음에 돈을 준 이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까?"


"불행히도 어음에는 돈을 주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지 않군요. 제가 알기로 이런 어음이 한참 돌고 있을 당시엔 정사 대전이 한창이었고, 이 어음은 문파의 명예를 걸고 지불을 보증한 지폐와 같은 역할을 했을 겁니다.

실제로 당시에 이 어음만으로 물건 값을 지불한 상단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 어음을 발행한 분들 또한 그런 식으로 어음이 사용되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돈을 받을 이의 이름을 적어 놓지 않았을 겁니다.

이유가 어쨌든 여러 문파의 인장과 당시 장문인의 서명이 들어있는 이 어음은 큰 문제가 없는 한 지불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해당 문파는 앞으로의 신용 거래에 큰 문제가 생길 겁니다.

받을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다는 이유로 지불을 거부한다면 누가 이 문파를 믿고 거래를 하겠습니까?"


남궁 천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돈에 관계된 일에 크게 관심이 없는 그는 송 지명이 와서 대신 일을 처리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받은 바에 따르면 무림맹은 지금 재정에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주변 상단의 이권에도 개입하고 점창파의 후계자 선정에도 끼어들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언젠가 송 지명이 이런저런 계획이 담긴 문건을 가져왔을 때, 대충 마음대로 하라고 했던 적이 있는데, 그 때 보고서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자신이라면 그냥 어음에 적힌 금액을 지불하고 다 털어버리고 싶지만, 그렇게 한다면 송 지명에게 며칠 동안 잔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 분명했다.

표정에 변화가 없는 모용 훤과는 달리 점점 고민이 깊어가는 남궁 천율을 보며 고명자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항상 다른 장문인들을 아랫 사람 대하듯 행동하는 남궁 천율을 이 정도로 당황하게 한 것만 해도 속이 다 시원했다.

무림맹주를 더 곤란하게 하고 싶기도 했지만 고명자는 신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그에게는 백수에게 부탁받은 일이 있었다.


"그럼 이 안건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 같으니 여기까지 하고 다음 안건을 전하겠소이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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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청무회(1) 22.10.07 360 5 10쪽
110 협객행 22.10.06 374 5 9쪽
109 권력의 달콤한 맛 22.10.05 402 5 9쪽
108 이름을 알리다 22.10.04 407 7 10쪽
107 동상이몽(3) 22.10.01 450 7 10쪽
» 동상이몽(2) 22.09.30 427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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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회의 소집(3) 22.09.24 478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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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회의 소집(1) 22.09.21 521 7 9쪽
98 이름을 알리다. 22.09.20 513 8 9쪽
97 제대로 훈육할 생각이라면 매를 들어야 한다 22.09.20 504 8 9쪽
96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2) 22.09.16 571 8 11쪽
95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1) 22.09.15 552 7 8쪽
94 날아오르려면 땅을 박차야 한다 22.09.14 584 9 10쪽
93 와호장룡(臥虎藏龍) 22.09.13 598 5 14쪽
92 들개 떼의 눈에 띄다 22.09.12 609 6 13쪽
91 와신상담(臥薪嘗膽) 22.09.11 606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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