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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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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133

작성
22.09.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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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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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날아오르려면 땅을 박차야 한다

안녕하세요.




DUMMY

청성산 중턱, 과거 도교의 원류가 된 천사도(天师洞)의 창시자인 장도릉(張道陵)이 머물렀다는 천사동 안에서는 청성파의 임시 장문인 역할을 맡고 있는 진 가민이 청성파 장문인들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 앞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거대한 황룡이 꿈틀거리는 듯한 화려하면서도 강력한 움직임은 바로 진룡보전의 초식이었다.

백수가 좌두곤의 난을 제압하고 사라진 이후, 서너 달에 한 번씩 서신으로 진룡보전의 초식이 진 가민에게 전해졌다.

진 가민은 이런 방식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아직 무림맹의 감시가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현명한 전달 방식인 건 사실이었다.

진 가민은 좌두곤 만큼의 지력과 문파 운영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벌써부터 문파의 젊은 제자들 사이에서는 좌두곤 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오는 실정이었다.

그래도 그들이 아무 말 못하는 건 가끔씩 진 가민이 보여주는 진룡보전의 초식,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진 가민에게는 목숨줄과도 같은 백수의 서신인 셈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제자들의 불만을 무마할 수 있을 지 확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경영이 뛰어난 사람을 불러 앉히자니 좌두곤 같은 꼴이 날까 두려웠다.

사실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은 하나 뿐인 모친을 잃고 도망자 신세가 된 좌두곤이었지만, 진 가민도 부인이 다리를 다쳐 절름발이가 되었고, 큰 아들 또한 큰 부상을 입고 아직까지 치료 중이었다.

진 가민에게 남은 건 이제 청성파 뿐이었다.

이 곳을 크게 키워 구파 일방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히고 전 무림에 세력을 떨치는 것이 그의 남은 삶에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목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문파의 후계자가 될 정통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청성파의 비전 절기를 전수받은 어린 놈은 곧 돌아오겠다 하더니 아직까지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있었다.


'깔짝깔짝 한 두 장씩 주는 초식으로는 부족하다. 어서 진룡보전 전부를 가져오란 말이다.'


그 때, 진 가민의 뒷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천사동은 외부의 침공 같은 위기 상황이 아니면 장로들도 들어올 수 없는 장문인 만의 공간이었다.

진 가민은 검을 내려놓고 들어온 사람의 외모를 살폈다.

딱히 검을 써 본 적은 없는 샌님 같은 얼굴에 눈빛만은 날아다니는 매처럼 날카로운 삼십 대 정도의 젊은 남자였다.


"주군의 명을 받고 청성파 장문인을 뵈러 왔습니다."


남자의 주군이 누군지 알 길은 없었으나 자신을 임시가 아닌 장문인이라 부르는 것이 마음에 들었던 진 가민은 한결 풀어진 낯빛으로 남자를 맞이했다.


"네 주군이 누구길래 여기까지 날 찾아왔느냐?"


"저희 주군께서는 때가 됐다고 하시며 이것을 진 장문인께 전하라 하셨습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받아든 책을 본 진 가민의 얼굴이 환희로 가득찼다.

진룡보전이었다. 자신이 그렇게 애타게 찾아 헤매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진 가민은 사람을 쉽게 믿는 성격이 아니었다.

이 책이 가짜일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이 자가 어떻게 여기까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들어올 수 있었는지도 궁금했다.

남자는 그의 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하듯 묻기도 전에 답을 했다.


"예전에 저희 주군이 이 곳에 오셨을 때 봐둔 샛길이 있어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걸린 것은 주군의 머리 속에 있는 내용을 필사하느라 그리 된 것이니 이해를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런가? 책을 받은 게 아니었나? 하긴 진룡보전은 장문인이 후계자에게 직접 전수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전해졌지.

직접 나타나기엔 주변의 눈도 많고 내가 어떻게 나올 지도 모르니 그럤던 건가.

조심스러운 녀석이군.'


진 가민은 환하게 웃으며 기쁜 소식을 전해준 전령을 대접하려 했다. 그러자 남자는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주군께서 전하신 말씀이 더 있습니다. 진 장문인께서는 지금 비대해진 문파를 운영하시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들었습니다.

저를 곁에 두시고 이제부터 소소한 운영은 제게 맡기십시오.

다른 제자들의 눈에 너무 띄지 않도록 총관이나 주무관 같은 직책을 주시면 됩니다."


"자네한테... 문파 운영을 맡기라고?"


"직책을 받는 건 제가 여기 머무를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위치가 높지 않은 적당한 직책을 주시고 대신 장문인 곁에 항상 머무를 수 있게 해주십시오.

문파가 정상화 될 때까지 장문인을 돕겠습니다."


"그 청년은 날 왜 이렇게까지 돕는 거지?"


"장문인께서 청성파의 진정한 주인이 되지 못하시면 저희 주군의 도움이 헛수고가 되지 않겠습니까?

청성파를 위해서도 진 장문인께서 하루 빨리 강해진 청성파의 전권을 장악하시길 저희 주군은 바라고 계십니다."


진 가민은 남자의 말을 믿어야 할 지 약간 혼란스러웠지만 눈 앞의 진룡보전은 가짜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몇 장만 넘겨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진 가민은 남자를 보며 차가워진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그래, 그럼 적당한 직책을 내리도록 하겠네. 자네의 이름은 뭔가?"


남자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비쳤다.


"포 형대라고 합니다. 장문인의 성공을 돕겠습니다."



소광촌의 가축 도난 사건 때 현명한 판결을 내린 포 형대를 유심히 지켜봤던 백수는 은거지로 돌아온 이후에도 계속 청사령을 통해 포 형대의 상황을 살폈다.

그리 어렵지 않은 집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자랐으나 현재는 부모가 모두 병중이라 치료비에 고민이 많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부모의 치료비를 모두 내 주었다.

포 형대는 자신을 찾아온 백수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또한 뇌물과 비리로 얼룩진 황실의 행태에 어지간히 질려있던 참이었다.


"전 그래도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 믿었습니다. 배고프고 몸이 힘들 때 어쩔 수 없이 악해지는 거라 생각했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더 가질 수 없을 만큼 곳간을 채워도 더 욕심을 내고 다른 사람을 괴롭힙니다.

결국 사람의 본성은 악하단 말입니까?"


백수는 웃으며 포 형대의 잔을 채워 주었다.


"사람은 악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선하지도 않지요.

악은 악이고 선은 선입니다. 사람이 악의 껍질을 쓰면 악인이 되고 선한 껍질을 쓰고 선인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껍질을 쓰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입니다. 지금까지 수 많은 핑계를 봐 왔습니다만, 악인은 본인 스스로 악의 껍질을 뒤집어 쓰기로 결정했을 뿐입니다."


포 형대는 백수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의협단이 어떤 곳이고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부모의 형제들조차 한 푼도 내주지 않았던 부모님의 치료비를 선뜻 모두 내 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 드높은 가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포 형대는 자신의 감사에 대한 표현을 하기로 했다. 친지도 황실도 자신을 돕지 않았으니 그들에게는 아무런 미련도 없었다.

그렇게 관직을 버리고 찾아온 의협단 사람들은 모두 무공이 뛰어나고 의협심 또한 출중했다.

그에 비해 자신은 옳고 그름에 대한 의지는 있지만 그것이 모두를 위한 정의인가 하는 부분까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의협단은 내 행동의 결과까지 생각하고 행동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


"제가 하는 행동이 의협단이 추구하는 바와 다를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저는 지금까지 제 의지를 꺾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게 옳다고 생각하면 그리 하세요. 지금 포 선생이 뒤집어쓰려고 하는 껍질이 어떤 것인지 항상 생각해보면 그 곳에 답이 있을 겁니다.

그런 것을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라 생각되어 포 선생을 데려온 겁니다."


백수의 말대로였다. 포 형대는 어렸을 적부터 시시비비를 가리는 걸 좋아했다.

옳고 그른 것, 바르지만 모두 옳지는 않은 것, 잘못 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던 것....

사람이 살면서 겪게 되는 수 많은 일들에 정답 같은 건 없었다.

양팔 저울을 달 듯이 저울에 가치를 올려두고 덜 괴롭고 더 바르다 생각되는 방향을 따르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이다.

포 형대에게 의협단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자신이 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의로운 행동만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던 포 형대에게 의협단 활동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시험대가 되는 것이었다.



사천의 남쪽에는 운남이 있었다. 이름난 특산품은 없지만 땅이 비옥하고 농지가 넓어 풍요로운 지역이었다.

일찌기 운남 지방에 자리를 잡았었던 유력 문파인 점창파는 몇 년 전에 광주로 기반을 모두 옮겼다.

여러 핑계를 대긴 했지만, 결국 백성들이 잘 사는 지방에 가서 더 긁어 모아보겠다는 얄팍한 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순박한 광주 사람들은 자신의 지역에 유명한 문파가 생기는 것을 기뻐했다.

백성들이 잘 사는 지역에다 보니 산적이 많았고, 지역 유지들은 점창파의 고수들이 산적을 싹 몰아내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점창파가 자리를 잡은 지 수 년이 지났음에도 산적의 난동은 수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더 극심해져가고 있었다.

정파 중에서도 명문가인 점창파가 자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산적 떼의 횡포가 수그러들지 않는 데는 사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이유가 있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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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협객행 22.10.06 373 5 9쪽
109 권력의 달콤한 맛 22.10.05 402 5 9쪽
108 이름을 알리다 22.10.04 407 7 10쪽
107 동상이몽(3) 22.10.01 450 7 10쪽
106 동상이몽(2) 22.09.30 426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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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뿌리가 썩은 나무는 새싹이 돋지 않는다 22.09.28 469 4 11쪽
103 회의 소집(5) 22.09.27 458 6 10쪽
102 회의 소집(4) 22.09.24 482 8 9쪽
101 회의 소집(3) 22.09.24 478 5 10쪽
100 회의 소집(2) 22.09.22 465 7 9쪽
99 회의 소집(1) 22.09.21 521 7 9쪽
98 이름을 알리다. 22.09.20 513 8 9쪽
97 제대로 훈육할 생각이라면 매를 들어야 한다 22.09.20 504 8 9쪽
96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2) 22.09.16 571 8 11쪽
95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1) 22.09.15 552 7 8쪽
» 날아오르려면 땅을 박차야 한다 22.09.14 584 9 10쪽
93 와호장룡(臥虎藏龍) 22.09.13 598 5 14쪽
92 들개 떼의 눈에 띄다 22.09.12 609 6 13쪽
91 와신상담(臥薪嘗膽) 22.09.11 606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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