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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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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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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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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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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고요한 학살

안녕하세요.




DUMMY

갑자기 나타난 개들의 흉흉한 이빨에 놀라 자신도 모르게 모두 도륙해버린 백수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개를 좋아했고, 작은 개보다는 덩치 큰 녀석들을 예뻐한 그였기에 이유를 불문하고 개들을 죽였다는 것에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싸우기 전 꼭 개나 짐승들을 먼저 보내는 놈들이 있지. 짐승의 목숨을 하찮게 보는 것들 치고 성품이 훌륭한 자를 보지 못했다."


꾸짖듯 읊조리는 백수의 한 마디에 한 예소가 발끈했다.


"내 수족과 같은 것들이었다. 네 놈이 뭘 안다고!"


"넌 정체를 모르는 상대의 실력을 파악하기 위해 네 팔다리를 갖다 던지나?"


이럴 때 청무회의 거친 무인들을 진정시키는 건 금 천기에게 내려진 또 다른 역할이었다. 지금이라도 허리에 찬 금편과 단도를 꺼내려는 한 예소를 막아선 금 천기가 어느덧 표정이 보일 정도까지 다가온 백수의 주위를 찬찬히 살폈다.

매복이나 미리 설치해 놓은 함정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한 예소의 말로는 마기를 가진 자라 했는데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나 눈빛에서는 마교인의 특성이 보이지 않았다.


'내 눈을 속일 정도로 완벽하게 기를 숨기고 있는가. 그렇다면 만만치 않은 놈이다.'


청무회의 실력자인 금 천기에게는 상대가 백 명이던 한 명이던, 적의 행색이 동네 걸인이던 마교의 괴수이던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아군의 탈출로를 확보하고 적의 퇴로는 차단한다. 예상치 못한 함정에 다수의 인원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적절히 분산한다.

그리고 최대한 우리의 전력은 감추고 상대의 전력은 모두 파악한 후 싸움에 임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과정은 주변의 민가에서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파와 마교, 혈교 간의 큰 전쟁이 오래 지속되고 그가 괴걸이라는 이름을 이름을 강호에 떨치기 시작할 무렵, 그 때의 금 천기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데 힘을 아끼지 않았고, 언제든 주저 없이 칼을 들고 싸움에 임했던 강호의 쾌남아였다.

함께 싸우던 검우들이 하나둘씩 전투가 아닌 병으로 쓰러지는 것을 봐야 했던 그는 가끔 자신이 남궁 천율을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정사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유일무이한 능력과 시선을 마주 하는 것 만으로도 모두의 무릎을 꿇리는 기백, 저 높은 곳에 우뚝 서 있는 태양처럼 찬란히 빛나던 그를 본 순간 세상 두려울 것이 없던 금 천기라는 이름은 한없이 초라해지고 말았다.

정파의 심장이자 독보적인 실력자인 남궁 가의 후계자를 가까이서 따르는 것은 강호 무인들이 모두 꿈꾸는 영광이었으나 금 천기는 왠지 그의 곁에 서는 것이 썩 내키지가 않았다.

그에게 다가갈수록 금 천기라는 자신의 이름이 사라져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마교의 잔당에 대한 오랜 추적이 끝나고 자신에게 청무회라는 직함이 주어졌을 때, 금 천기는 태어나 처음으로 오랜 시간 고민을 했다.

당시에도 아마 지금과 같은 후회를 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그는 모두가 선망하는 자리가 주는 명예와 무림 맹주가 내미는 고귀한 손을 차마 뿌리치지 못했다.

그렇게 여러 번의 우유부단함과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손을 내렸던 선택의 시간들이 더해져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제 금 천기에게 남은 건 청무회라는 이름과 동료들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방심으로 그것을 잃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백수는 살기 흉흉한 여러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한적한 시골길 한 가운데에 멈춰섰다.

청무회의 실력자에 대한 정보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한 명 한 명의 실력도 뛰어나지만 조금만 불리해도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날 것이고, 하나라도 무림맹에 돌아가 이 곳의 일을 고한다면 내일부터는 전면전을 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먼저 발을 묶고 한 번에 제압해야겠다.'


제압. 예전에는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기도 했을텐데, 지금의 백수에게 제압이란 최대한 빠르게 저항 없이 죽이는 것을 뜻했다.

그러기 위해 백수는 상대가 반응을 하기 전에 선공하는 것을 택했다. 순식간에 끌어올려지는 백수의 투기를 보며 백전백승을 최근까지 자랑했던 청무회의 무사들은 각자 자신들에게 유리한 위치로 이동하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백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금 천기도 서너 장 뒤로 살짝 뛰어오르며 암기를 던질 준비를 했다. 상대가 예상치 못한 강공을 시도할 경우 적의 움직임을 늦춘 후 반격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백수는 계속 내공을 끌어올리기만 할 뿐, 출수에 나서지 않았다. 전투 준비를 마친 두 세명의 무사들이 천천히 백수와의 거리를 좁히며 다가갔다. 청무회 무사들 중에서 가장 민첩하고 상황 판단도 빠른 자들이었다.

그들은 백수의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반응할 수 있도록 몸의 감각을 최대로 끌어올린 후, 한 번에 다가서지 않고 한 명씩 차례대로 거리를 좁혔다.

가장 먼저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은 날이 세 방향으로 뻗은 삼지도(三支刀)를 들고 가장 가까이 다가간 태건이었다.


'저 놈 어째서 숨을 쉬지 않지?'


높은 수준의 무공 소유자는 상대의 호흡만 보고서도 싸움의 유불리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가 얼마나 가쁜 숨을 쉬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태건이 본 백수는 호흡을 완전히 멈춘 상태로 계속 내공만 끌어올리고 있었다.


-뭔가 하려는 것 같다. 모두 조심해.-


태건의 전음은 다른 무사들의 호기심 혹은 투지를 불러 일으켰다. 금 천기가 모두를 진정시키기도 전에 이미 무사 몇이 백수를 향해 뛰어오르고 있었다.

무사들의 판단에는 틀림이 없었다. 상대가 큰 기술을 쓰기 위해 내공을 올리고 있다면 그 전에 치는 것이 효과적인 전술인 것이다.

문제는 백수가 바로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윽!!"


금 천기는 갑자기 귀에서 쨍하는 파열음과 함께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나는 것을 느끼고 겨우 몸의 중심을 다시 잡았다.


"무슨 일이지? 모두 진형을 유지하고 상대가 다가오면 싸워..."


하지만 금 천기의 눈 앞에서는 이미 학살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십 명에 가까운 청무회의 무사들이 팔 다리가 잘리고 목이 베여지며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광경은 학살이 분명했지만, 그런 장면에서 으레 따라야 할 소리가 없었다.부딪히는 병장기들의 귀를 찢는 파열음이나 부상당한 무사들의 신음 소리, 단말마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백수는 가까운 곳에 있는 적부터 제압해 나갔다. 소림의 용조수와 구음백골조로 적의 팔다리를 잡아뜯고 목을 부러뜨렸는데도 수많은 격전을 치른 백전노장인 청무회의 무사들이 입만 벌리고 있다가 픽픽 쓰러지는 것이었다.

금 천기는 자신도 공격에 나서려다 이렇게 된 이유를 깨달았다.

주변에 공기가 전혀 없었다.

사람이 몸을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려면 공기가 필요하다. 특히나 급격한 움직임을 보이기 위해서는 많은 숨을 들이마셔야 한다.

헌데 숨을 마시려는 순간에 공기가 사라져 버리면 사람은 순간적으로 심한 두통과 한께 현기증, 공황을 겪게 된다.

순간적으로 힘을 폭발시켜 빠르게 상대를 제압하는 청무회의 무사들에게 예상치 못한 진공의 상황은 큰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래도 앞의 동료 여럿이 쓰러지는 걸 지켜본 후방의 무사들은 급히 대열을 정비하려 했다. 그러면서 가장 발이 빠른 자를 뒤로 물려 무림맹에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금 천기가 한 예소에게 급히 전음을 보냈다.


-본부에 가서 맹주께 직접 전해라. 마교가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한 예소는 자신의 개들을 죽인 원수를 직접 죽이지 못한다는 사실에 불만이 가득했지만, 개들이 없으면 자신의 전투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도 알았기에 가슴으로 분을 삭혔다.


-꼭 생포해 와. 내가 직접 죽이겠다.-


하지만 한 예소의 부질없는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작은 물체에 강타당한 예소의 목이 크게 꺾이더니 마치 몸과 따로 노는 것처럼 흐느적거렸기 때문이다. 그녀의 다부진 몸이 비틀거리더니 바닥으로 무너졌다.

잘 놀라지 않는 금 천기조차도 지금은 크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적은 청무회의 정예무사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도 수 십장의 거리에서 뭔가를 던져 달아나는 한 예소의 머리를 정확하게 명중시켰다.

그들의 상대는 보통의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더 괴이한 것은 그가 사용한 무공이었다. 이 정도의 먼 거리에서 암기나 작은 물체를 던졌다면 금 천기나 주변에 있던 동료들의 눈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적이 사용한 기술의 속도는 자신들의 눈이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한 예소를 쓰러뜨렸다. 금 천기는 살아오면서 이런 기술을 단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설마 탄지공인가?'


탄지공은 상대의 기세를 꺾는 데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기술이지만 내공을 한 점에 끌어모으는 것이 어렵고 또 그것을 발사해서 내공을 가진 고수에게 피해를 주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싸움에서 사용되는 일은 드문 기술이었다.

물론 연성하는 것도 현경 이상의 고수가 아니면 내공만 잘라먹고 위력은 전혀 없는 허세 부리기를 위한 기술이 되기 십상이었다.

금 천기는 남궁 천율이 절벽 건너에 있는 혈교의 고수를 탄지공으로 쓰러뜨리는 것을 눈 앞에서 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상대가 절벽을 넘어오진 못할 거라 여기고 방심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상황이었다. 이렇게 많은 적과 전투를 벌이면서 정확하게 먼 거리의 적을 노린다는 건 금 천기의 상식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양쪽으로 날이 뻗은 장검을 쥔 금 천기의 손에서 스물스물 땀이 배어나왔다. 지금이라도 당장 동료들을 도와 전투에 참여해야 하건만, 금 천기는 자신도 모르게 눈 앞에 있는 적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

백수의 움직임은 상대를 최대한 끌어들인 후, 다가온 상대를 방패 삼아 뒤에 있는 적을 공격하는 전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청무회의 무사들은 지나치게 접근한 동료 때문에 움직임이 제한되었고, 백수의 용조수가 그 틈을 파고 들었다.

후방의 궁수와 암기를 든 무사들이 백수의 급소를 노리며 화살과 은빛 암기를 뿌려댔지만, 백수가 교묘하게 무사들 사이로 숨는 통에 청무회 무사들은 앞으로는 백수와 맞서고 뒤로는 동료들의 투척무기들과 싸워야 했다.

이런 양상은 전투 초반에 백수가 청무회 무사들의 머리와 발을 묶어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백수가 무사들의 허를 찌르기 위해 사용한 기술은 바로 무저진공장이었다.

혈교의 비전 무공인 무저진공장(無底眞空場)은 혈교에서도 연성한 자가 몇 명 되지 않는 매우 실험적인 무공으로 연성에 성공한다 해도 마공의 소모가 극심하고 시전자 자신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기술이었다.

순간적으로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여 진공 상태로 만드는데 공기가 사라지는 것을 쉽게 알아채기가 어렵고, 대부분 격렬하게 움직이려는 찰나에 갑자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성공만 한다면 다수의 적을 순간적으로 멈추는데 효과적인 부분도 있었다.

그런 것을 알 리가 없는 금 천기는 마교의 기술과 정파의 비전절기를 함께 사용하는 적에 대한 궁금증이 솟아 올랐다.

동료들이 목숨을 내던지며 싸우는 와중에도 금 천기는 그저 감탄에 가까운 신음 소리를 내며 백수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이미 금 천기의 머리 속에서는 싸움의 결과가 그려지고 있었다.

자신의 운명 또한 그 안에 있었다. 그는 헛된 움직임으로 이런 멋진 싸움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금 천기에게 싸움은 이미 끝나 있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작가의말

오랜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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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한 학살 23.02.05 147 3 12쪽
113 청무회(3) 22.11.03 298 2 6쪽
112 청무회(2) 22.10.08 447 4 7쪽
111 청무회(1) 22.10.07 360 5 10쪽
110 협객행 22.10.06 374 5 9쪽
109 권력의 달콤한 맛 22.10.05 402 5 9쪽
108 이름을 알리다 22.10.04 407 7 10쪽
107 동상이몽(3) 22.10.01 450 7 10쪽
106 동상이몽(2) 22.09.30 427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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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회의 소집(3) 22.09.24 478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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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회의 소집(1) 22.09.21 521 7 9쪽
98 이름을 알리다. 22.09.20 513 8 9쪽
97 제대로 훈육할 생각이라면 매를 들어야 한다 22.09.20 504 8 9쪽
96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2) 22.09.16 571 8 11쪽
95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1) 22.09.15 552 7 8쪽
94 날아오르려면 땅을 박차야 한다 22.09.14 584 9 10쪽
93 와호장룡(臥虎藏龍) 22.09.13 598 5 14쪽
92 들개 떼의 눈에 띄다 22.09.12 609 6 13쪽
91 와신상담(臥薪嘗膽) 22.09.11 606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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