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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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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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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133

작성
22.09.16 12:00
조회
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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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1쪽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2)

안녕하세요.




DUMMY

열지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장 한덕 그 놈은 지칠 줄도 모르는구나. 지금 점창파 차기 장문인과 함께 있으니 오늘은 그냥 돌아가라고 해라."


열지는 최근 자신에게 끊임없이 추근대는 녹림채의 대두령 장 한덕일 거라 생각했다.

장 한덕은 녹림채의 대두령으로 추대된 이후 자신이 무슨 무림맹주라도 된 것처럼 막무가내로 행동하고 있었다.

사실 추대됐다는 것도 우스운 말로 녹림채에 무슨 의사 결정을 위한 기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찾아가서 전대 대두령을 때려잡으면 그만이었다.

이런 식이다 보니 대두령의 교체는 대부분 전 대두령이 나이가 들어 힘이 떨어졌을 때 이루어지고 그 과정도 말이 교체지 도둑질이나 다름 없었다.

그나마 장 한덕은 전 대두령이 녹림채에 있을 때 당당하게 쳐들어가 싸움으로 차지했으니 나름 정통성을 주장할 만 하긴 했지만 열지가 보기엔 술에 취한 채로 결투를 받아준 전 대두령이나 그다지 정당하지 못한 싸움에서 이겨 놓고 왕처럼 기고만장한 장 한덕이나 한심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열지의 예상과는 달리 찾아온 손님은 장 한덕의 전령이 아니었다.

늘씬한 팔다리에 부친이 쓰던 긴 장검을 든 남자는 해남 목가의 목 해명이었다.

목 해명을 따라 온 의협단의 무사들은 문을 막고 서서 산적들이 문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퇴로를 차단했다.

뛰어나온 산적들 중 목청이 큰 한 명이 일단 소리를 질렀다. 목청으로 선공을 주고 받는 건 산적들의 대화법이었다.


"네 놈들은 목이 몇 개길래 겁도 없이 열지 님의 산채에 발을 들이느냐?!!!"


해명은 주위를 슬쩍 둘러보았다. 잘 하면 30명, 많으면 40명이 조금 넘을 법한 고만고만한 크기의 산채였다.

녹림의 주인이라는 장 한덕의 산채도 총 인원이 200이 안 되니 이 정도면 작은 규모는 아니지만, 겁도 없이 점창파의 본채가 있는 근처에서 산적질을 하는 규모로는 한없이 부족했다.

밥은 굶어도 불의는 참지 못하는 목 해명은 숨을 한 번 고른 후 산채가 떠나가도록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팔다리 멀쩡한 것들이 비옥한 농토를 가진 광주 땅에서 할 짓이 없어 산에 숨어 도적질이냐? 머리가 나쁘면 글을 배우던가 힘이 있으면 나무라도 베서 먹고 살 생각을 해야지, 이게 무슨 한심한 짓거리들이란 말이냐?

하늘이 너희를 용서한다 해도 내 검이 그냥 놔두지 못하겠다. 크게 한 번 혼이 난 후에 너희들의 죄를 되새겨 보도록 해라!!!"


목청 큰 남자들의 집합소인 산적 소굴에서도 독보적이라 할 만한 목청에 순간 산채에는 적막이 흘렀다.

뒤따라 온 허 성이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의협단 단원들은 딴 건 몰라도 목청으로는 무림 최고가 될 만 하구만."


산채의 목조 건물이 쩌렁 쩌렁 울릴 정도의 해명의 목청에 열지와 태선도 결국 몸을 일으켰다.


"뭐야, 아버님이 또 사람을 보냈나? 목청이 저렇게 큰 제자가 있었던가?"


열지는 자기 키 만한 대부(大斧)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두령을 기다리던 해명이 열지를 보자마자 자신의 큰 목청을 또 한 번 자랑했다.


"이런 겁쟁이들 같으니! 넌 들어가서 아버지 나오시라고 해라!!"


열지가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산적 소굴이라 한들 서너 명이서 수십 명이 무기를 들고 있는 산적 소굴에 들어온 것도 어이없는 일인데 그 안에서 저렇게 호기를 부리는 남자를 보며 불리한 싸움은 시작부터 피하는 게 당연한 생존 방식이라 여기고 살아왔던 열지에겐 해남 목가의 목 해명의 등장이 상당히 신선했다.

첫 인상은 맘에 들었지만 결국 해명은 열지의 산채에 겁도 없이 들어온 침입자였다.

자신의 큰 도끼를 바닥에 내리 꽂으며 열지가 가벼운 비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것이냐? 내가 좀 바쁘니 뭐든 할 거면 빨리 해."


목 해명은 생각지도 못했던 열지의 여유로운 반응에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규모가 크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점창파의 위세에도 주눅들지 않고 산적질을 계속 하는 산채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데, 두령이 젊은 여자라는 것에 더욱 흥미가 생겼다.

의협단 합류 후 백수와 지속했던 수련으로 그의 불 같은 성미는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지만, 상대를 가리지 않는 정의감은 그대로였다.

불의를 저지르는 자라면 그게 어린 아이던 여자던 예외는 없었다.

해명의 장검이 하늘을 향했다. 백수는 해명이 공격 위주의 돌진하는 검술 보다는 공수의 조화를 이룬 공수합일의 무공을 익히길 원했다.

그래서 해명이 배운 비급은 바로 무당파의 태극 검법이었다.

자연스러운 기의 흐름을 이용하고 상대의 공격을 받아넘겨 자신의 힘으로 이용하는 검술로 공격과 방어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고난이도의 무술이었다.

열지는 태극 문양을 그리며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해명의 검 끝을 보고 있었다.


'보통 고수가 아니군. 산채에 소수로 들어올 만큼의 자신은 있었네.'


하지만 열지와 그녀의 부하들도 동네 양아치들은 아니었다.

열지는 자신의 부하들을 그저 산에 사는 망나니들로 살기를 원하지 않았다.

전법을 잘 알지는 못해도 되도록 그들이 한 몸처럼 움직이고 군대처럼 싸우길 바랬다.

그건 열지의 아비에게 배운 운영의 지혜이기도 했다.

산적들은 무자비하게 달려드는 공포감과 위압감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자들이다. 기습에는 유용하지만, 군대에서 훈련받는 기본적인 진법만 익히고 있어도 어렵지 않게 다수를 상대할 수 있었다.

열지 또한 자신의 눈으로 훈련을 몇 달 정도 받은 관병들이 자신들보다 두 배는 많은 수의 산적들을 쉽게 제압하는 것을 목도했다.

열지는 손을 들어 산적답게 막무가내로 달려들려는 부하들을 제지했다.

이런 때에 쓰려고 자신이 점창파의 얼간이를 구워 삶았던 것이다.

때마침 태선이 자신의 검을 들고 조용히 걸어 나왔다.

열지는 태선을 돌아보며 그의 팔을 슬쩍 잡았다.


"지금 우리 산채를 부수겠다고 무사들이 왔어. 보통 실력자가 아닌 것 같은데 어떡해?

그냥 다른 지방으로 도망이라도 갈까봐."


열지의 교태가 가득 담긴 목소리와 몸짓에 태선의 가슴에 바람이 잔뜩 들어갔다.

그는 되도 않는 거드름을 피우며 앞으로 나아갔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난 점창파의 총 교두인 태선이라 하오.

이 산채는 내가 처분을 맡은 곳이니 지금은 물러나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먼 길 걸음 하셨으니 술이나 한 잔 하시고..."


"에이이잉, 이 산적 똘마니 같은 자식아!!!"


해명의 우렁찬 외침에 해명과 같이 온 의협단 무사를 포함한 산채에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


"지금 네 아버지가 얼마나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는지 뻔히 알면서 이게 무슨 어린애 같은 행동이냐!

점창파의 미래를 너 같은 놈에게 맡겨야 한다니 정말 한심한 일이로구나."


잠시 얼이 빠져 있던 태선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위해 심호흡을 했다. 잠시 울컥하긴 했지만, 이건 누가 봐도 더럽게 큰 목청으로 상대를 도발하는 단순한 전술이었다.


"그래, 알았소. 그런데 갑자기 찾아와서 날 훈계하는 그대는 대체 누구신지?"


"호남 목가의 제자이며, 의협단 단원인 목 해명이다."


태선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솔직히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호남 목가는 어디 있는 문파고 의협단은 또 뭐냐?

어디 듣도 보도 못한 이름만 달고 와서는 감히 점창파 총 교두 앞에서 허세를 부려?

솔직히 검을 뽑기도 아까워서 그냥 쫓아내고 싶다만, 여기 있는 산적들이 널 그냥 보내지 않을 것 같아서 한 수 가르쳐주마."


해명은 기다렸다는 듯 검 끝을 태선에게 향했다.


"그러려고 이 지저분한 곳까지 온 거다. 산적들도 손을 볼 예정이니 걱정하지 마라."


일 년 전, 해명은 부친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짐을 챙겨 백수를 찾아갔다.

어차피 이대로는 무관에 남아 봐야 폐가 될 뿐이었다. 자신의 불 같은 성격을 다스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백수를 찾아간 것은 큰 은혜를 배푼 그에게 보답을 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수련을 시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지금까지 살면서 입산 수행도 해보고 낚시도 해 보았지만 그의 손이 먼저 나오는 성미는 고쳐졌나 싶으면 다시 튀어 나왔다.

이번에야 말로 이 버릇을 고치지 않으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고기나 잡으며 살 생각이었다. 그게 가문을 위해서도 나은 길이라 믿었다.


의협단은 해명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큰 조직이었다.

엄한 규율이 있고 강력한 고수들과 지력이 뛰어난 참모들이 있었다.

그리고 상당한 양의 재물도 있었다. 백수는 말도 안 되는 괴력을 가진 형제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해명이 오자 해명에게 형제들의 예법을 담당시켰다.

나름 무림의 정파로 예법 하나는 똑부러지게 배웠던 해명은 형제들과 티격태격하면서도 제법 예법을 잘 가르쳤고, 강 씨 형제들과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

해명은 형제들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수 틀리면 주먹부터 나가던 과거의 내 모습이 지금 이 형제들과 다를 게 없구나.'


해명은 강씨 형제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일 년의 시간 동안 해명의 자신의 가슴 속에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길을 조금이나마 잠재울 수 있었고, 백수도 그런 해명을 보며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지금의 해명은 검을 휘두를 줄 아는 망나니에서 정의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진정한 무인으로 거듭나는 중이었다.

그런 해명의 앞에 자신의 예전 모습과 너무나 비슷한 태선이 검을 들고 서 있으니 해명의 마음이 복잡했다.


' 이 녀석도 우리 단주님을 만난다면 무인으로서 도약할 수 있을 텐데.

인연이 닿지 않는 것이 아쉽군.'


명문 정파인 점창파의 차기 장문인이 될 자가 모든 걸 버리고 의협단에 몸을 담을 리는 없었기에 그것은 불가능한 바램이었다.

해명이 딴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태선은 어느 새 검을 뽑아 들고 해명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점창파의 검술 또한 공격과 방어가 잘 조화를 이룬 불패의 검법이기에 두 사람의 대결은 호각세가 예상되었다.

물론 그것은 목 해명이 '호남 목가의 목 해명'이었을 때의 이야기이고, 의협단의 단원 중 한 사람인 해명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난 점창파의 추일검법(墜日劍法)을 쓰도록 하지.

네 놈은 뭘 사용할 것이냐? 호남 뭔가 하는 곳에 내가 모르는 비전절기(祕傳絕技)라도 있나?"


산적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해명 또한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장검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목이 떨어질 자에게 알려줘서 무엇 하겠나. 정 듣고 싶다면 저승에서 듣도록 해라."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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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이름을 알리다. 22.09.20 509 8 9쪽
97 제대로 훈육할 생각이라면 매를 들어야 한다 22.09.20 498 8 9쪽
»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2) 22.09.16 569 8 11쪽
95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1) 22.09.15 550 7 8쪽
94 날아오르려면 땅을 박차야 한다 22.09.14 581 9 10쪽
93 와호장룡(臥虎藏龍) 22.09.13 597 5 14쪽
92 들개 떼의 눈에 띄다 22.09.12 606 6 13쪽
91 와신상담(臥薪嘗膽) 22.09.11 603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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