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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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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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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6
글자수 :
581,133

작성
22.10.07 09:00
조회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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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0쪽

청무회(1)

안녕하세요.




DUMMY

의협단이 본부로 사용중인 골동품점은 드나드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은거지의 실체를 감추기 위해 위장 영업중인 골동품점이다 보니 물건들은 형식상 갖다 놓은 것들 뿐이고, 가끔씩 눈치 없는 손님들이 찾아와도 썰렁한 내부와 보잘것 없는 물건에 혀를 차며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허리가 살짝 굽은 노인의 행색을 한 극광이 골동품점을 찾아온 것은 어느 날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었다.

보통 이 시간에 가게를 지키던 유세 표국 출신 직원은 개인적인 볼일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가게에는 자호만이 남아서 청소를 하는 중이었다.

극광은 기척도 없이 들어와 가게 이곳 저곳을 찬찬히 살폈다. 그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열심히 벽을 청소하던 자호가 뒤를 돌아보았다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아이 씨 깜짝이야! 인기척을.... 내라!!!"


"아이구 미안하네. 많이 놀랬나 보구만. 그래도 점원이 가게에 누가 들어오는지 관심은 가지고 있어야지."


할 말이 없어진 자호가 괜히 심통을 부렸다.


"가게는 이제 문을 닫을 참이우. 내일 다시 와요."


"그런가? 그럼 자네가 청소를 다 할 때까지만 둘러보다 가겠네. 물건을 좀 보고 가야 내일 다시 올 지 말 지를 정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물건이야 뭐... 아니지, 그러시우."


어차피 팔 물건을 진열해 놓은 게 아니라는 말을 실수로 할 뻔한 자호가 겨우 입을 다물어 위기를 넘겼다.

어느 누구에게든지 이 가게는 어엿한 골동품점이어야 하는 것이다. 제대로 장사를 하는 것처럼 보이겠다고 잘 팔릴 만한 물건을 진열해 놓으면 자꾸 손님이 와서 더 피곤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가게의 물건들은 겉은 봐줄 만 하지만 속은 엉터리인 물건으로 가득 채워놓았다.

약간의 안목만 있어도 여기 있는 물건 대부분이 쓰레기에 가깝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의 잡동사니들만 가득한 곳이 이 골동품점이었다.

극광은 자신을 흘깃거리는 자호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게에 있는 물건들을 사뭇 진지하게 살피다가 헛기침을 하며 발길을 돌렸다.


"밖에서 볼 때는 괜찮아 보였는데 와서 보니 썩 좋아보이는 물건은 없구먼."


"지금 우리 가게 물건을 대놓고 흉보는 거요?"


"뭐 그냥 그렇다는 거지. 젊은이가 성질이 불같구만 그려. 장사를 하려면 좀 고분고분해야지. 그럼 난 가겠네, 허헛."


자호의 사나운 시선을 뒤로 하고 극광은 골동품점을 나왔다.

나오자마자 그의 굽은 등은 펴졌고, 구름을 타고 다니는 듯한 몸놀림으로 민가가 모인 골목 어귀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자호는 얼마 후 돌아온 직원에게 가게를 맡기고 가게 지하에 있는 비밀 통로를 통해 의협단의 은거지로 향했다.

은거지에서는 백수가 허성, 강 씨 형제들과 함께 권술 수련을 하고 있었다.


"단주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야?"


"가게에 이상한 노인이... 등장했다!"


흥분하면 나오는 자호의 말버릇이 다시 나오는 것을 본 백수가 자호를 진정시키고 천천히 물었다.


"좀 진정하고 숨을 천천히 들이마셔봐. 어떻게 생긴 노인인데?"


"등이 약간 굽었고 나이는 오십 같기도 하고 육십 같기도 하고... 하얀 수염이 나 있었는데...음..."


"그런데 이상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뭐야?"


"가게에 들어오는데 전혀 인기척이... 없었다! 그리고 수염은 하얗게 셌는데 머리카락은 탱탱한 것도 이상하고...또 그 눈빛!"


자호는 백수의 말대로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눈빛이 싸움을 안 할 때 무명하고... 비슷했다!"


백수는 자호가 본 남자가 청무회의 극광일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미 이 근처까지 추적을 해낸 청무회의 사냥개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자.

청무회의 정보망이라면 언젠가 발각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지금은 다시 은거지를 옮기기에 너무 이른 때였다.

힘들여 골동품점과 은거지를 마련한 지 이 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 곳을 버리고 새로운 근거지를 마련해야 한다는 건 재정적으로나 안전으로 보나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다.

무명과 천명이 극광을 처리하기로 한 지 이틀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여기까지 왔다는 것도 큰 문제거리였다.

잘 숨긴다고 숨겼는데 이렇게 빨리 찾아냈다는 것은 청무회가 아닌 다른 추적자들이 이 곳을 발견하는 것도 시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일단 두 사람이 극광이라는 자를 최대한 조용히 처리해주면 그 다음에 최대한 빨리 이 곳을 정리해야겠구나.'


지금까지 유 환명이 모아두었던 재물로 운영해나갔던 의협단은 이제 스스로 재정을 해결해나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적지 않은 금액을 아미파와 청성파를 지원하는 데 사용했고, 어음까지 지불했다.

거기에 매월 나가는 의협단 식구들의 급여 또한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물론 후속 방안을 다 준비해 놓은 상태긴 하지만, 그 방안으로 돈이 들어오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직 몸이 성치 않은 유 환명을 또 다시 옮기는 것도 백수 입장에서는 큰 고민거리였다.

백수는 생각이 닿은 김에 유 환명이 치료를 받고 있는 치료실로 가 보았다.

그 곳에는 약선 운 효령이 직접 만든 탕약을 유 환명의 입에 흘려 넣고 있었다.


"아버님은 좀 차도가 있습니까?"


효령은 밝은 얼굴로 백수를 맞았다. 청사령을 통해 백수의 부름을 받은 효령은 즉시 돌아와 오랜 기간 유 환명을 돌보고 있었다.


"아직은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정도야. 이 독은 무림에 존재하는 독이 아니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지. 어떤 독을 썼는지만 알아도 치료가 쉬울텐데 말이야."


백수는 유세 표국의 비밀 동굴에서 악독한 수법을 쓰고 자결한 구 숙정이 생각나 입술을 깨물었다. 그 여자라면 알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이미 산산 조각이 나 버렸기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타골 선사에게 어느 정도의 의학 지식을 전수받은 백수도 유 환명의 증세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유 환명이 자기 발로 걸을 수준만 되어도 은거지를 옮기는 것이 수월할 터였다.


"문소 놈을 불러볼까? 또 어디서 이상한 연구를 하고 있을텐데."


백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약선 어른을 이렇게 오래 잡아두고 있는 것도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아버님은 중독이 심해 회복이 안되는 것이기 때문에 침술보다는 약으로 회복해야 할 것 같군요."


"나도 같은 생각이야. 하지만 내 약이 이렇게 맥을 못 추는 건 정말 처음이네. 오래 쉬었더니 나도 한 물 갔나 봐."


"무슨 말씀이십니까. 약선 어른의 문제가 전혀 아닙니다.

이건 제 생각인데 아무래도 이 독은 사파의 것 같습니다.

그것도 마교나 지금은 사라진 일월신교 같은 곳이 아닐까 싶어요."


약선이 눈이 커졌다.


"그것도 일리가 있네. 정파의 것이라면 내가 모를 리가 없고 당문이나 다른 문파에서 새로 제작한 독이라 하기에도 이 분이 중독된 기간이랑 맞지가 않으니...

하지만 만약 그렇다고 하면 일이 쉽지가 않아. 특히 혈교는 지금은 맥이 다 끊겨서 예전의 자료가 남은 게 없는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혈교는 확실히 아니에요."


"그걸 어떻게..."


효령은 더 질문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백수는 예전 자신들 때문에 마기가 가득한 혈교의 물건을 억지로 흡수하게 되었는데 그 때 혈마인에 의해 억지로 주입된 혈교의 숨겨진 술법들이 백수의 머리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백수는 약선과 침선의 실수를 매꾸려다 그리 된 것이기 때문에 효령은 지금 빚을 갚는 심정으로 유 환명을 치료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이면에는 기회가 됐을 때, 백수의 활인혈을 다시 한번 건드려보고 싶은 생각도 남아있었다.

독으로는 절대 죽지 않는 그의 신체를 이용하면 수 많은 약재료들의 효능과 부작용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차마 그에게 직접 얘기를 해 보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 번은 자신의 바램을 꺼낼 생각을 하고 있는 효령이었다.



해가 지자 달빛도 구름에 가리워진 숲을 걷고 있는 그림자가 있었다. 청무회의 극광은 저녁 내내 주변을 탐색하고 또 탐색했다.

세밀하게 살피고 살펴서 확신이 들 때까지 의심하는 것이 그가 임무에 실패하지 않는 비결이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오대산 사건의 주범을 추적해오고 있었다. 수십 명의 고수들을 감쪽같이 해치우고 사라진 범인은 한 두 명이 아님에도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아서 추적에 애를 먹었다.

하지만 사람이 많으면 어딘가에 멈춰서 밥을 먹어야 하고 객잔에 들러 잠도 자야 한다. 중원 전 지역에 펼쳐진 무림맹의 정보망을 총동원하여 신출귀몰한 범인을 쫓던 극광은 드디어 어느정도 해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해답은 의외로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태풍의 눈이 될 수도 있었다.

극광은 지금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맹주가 어떻게 받아들일 지 생각해보았다.

무림맹에서 한참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자를 괜히 건드려서 오히려 청무회에 불똥이 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도 들었다.

극광은 여러 가지 상황을 따지며 셈을 하는 자신을 보며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외톨이 늑대처럼 살던 내가 이제 환관처럼 생각하고 있구나. 무사가 임무를 받았으면 그걸로 끝인 거지, 내가 언제부터 누구의 심기 같은 걸 신경 써 가며 사람을 쫓고 베었던가...'


그러나 그의 고민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급히 멈춘 그의 발걸음 뒤로 극도로 기척을 숨긴 누군가가 접근하고 있었다.

극광은 지금이라도 숨을 곳을 찾거나 바로 경공을 펼칠까 하다 그만두었다.

왜냐하면 그의 정면에도 상당한 내공을 지닌 무사가 극광이 사정거리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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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청무회(2) 22.10.08 447 4 7쪽
» 청무회(1) 22.10.07 360 5 10쪽
110 협객행 22.10.06 373 5 9쪽
109 권력의 달콤한 맛 22.10.05 402 5 9쪽
108 이름을 알리다 22.10.04 407 7 10쪽
107 동상이몽(3) 22.10.01 450 7 10쪽
106 동상이몽(2) 22.09.30 426 5 10쪽
105 동상이몽(1) 22.09.29 452 4 10쪽
104 뿌리가 썩은 나무는 새싹이 돋지 않는다 22.09.28 469 4 11쪽
103 회의 소집(5) 22.09.27 458 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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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이름을 알리다. 22.09.20 513 8 9쪽
97 제대로 훈육할 생각이라면 매를 들어야 한다 22.09.20 504 8 9쪽
96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2) 22.09.16 571 8 11쪽
95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1) 22.09.15 552 7 8쪽
94 날아오르려면 땅을 박차야 한다 22.09.14 584 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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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들개 떼의 눈에 띄다 22.09.12 609 6 13쪽
91 와신상담(臥薪嘗膽) 22.09.11 606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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