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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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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6
글자수 :
581,133

작성
22.08.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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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1쪽

청성파의 내전(內戰)

안녕하세요.




DUMMY

백수는 청해의 본거지로 돌아온 후, 의협단의 기초를 세우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수가 적을 때는 방만한 운영을 해도 무리가 없었지만, 이제 의협단의 단원 숫자만 해도 50명을 넘기게 되니, 운영과 유지에 공을 쏟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정의 관리였다. 안 호가 재정 관리를 담당했으나, 혼자 힘만으로는 벅찬 부분이 있어 향 량이 돕고 있었다.


'전반적인 운영을 맡아줄 만한 계산이 빠른 인물이 필요하겠구나.'


백수는 유세 표국에 있는 방 위준이 떠올랐다. 항상 철두철미하고 작은 일도 빈틈없이 마무리하던 그의 모습이 이젠 가슴 한 구석의 통증으로 남았다.


'방 선생은 왜 우릴 배신한 것일까? 우리의 대접이 그의 생각엔 많이 모자라다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모용 세가에서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 걸까?'


그런데 백수의 머리속에 방 위준의 모습과 겹쳐지는 한 명의 얼굴이 있었다. 바로 괴력의 형제들을 구할 때 봤던 판관 포 형대였다.

판관을 맡을 정도로 지식이 풍부하고 거기에 사리 판단이 분명하며 자신의 판단에 대한 대쪽같은 믿음과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늦은 밤, 백수는 혼자 있을 때 조용히 청사령을 호출했다. 이번엔 아두가 아닌 교연이 그림자처럼 나타나 백수 앞에 고개를 숙였다.


"찾으셨습니까."


"청해의 판관으로 있는 포 형대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봐줬으면 좋겠어. 혹시 신변에 이상이 생기거나 황실에 대한 불만이 있는지도."


"알겠습니다. 그리고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중요한 일인가?"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교연은 말없이 백수의 곁으로 한 발 더 다가왔다. 이미 주변은 모두 살핀 후라 엿듣는 이는 없었다.


"첫 번째는 단주의 아버님이 계시는 유세 표국의 정보입니다.

모용 선화가 출산을 앞두고 있습니다. 모용 가에서는 모용 훤의 두 자녀 이후 첫 아이라 꽤 성대하게 연회를 베풀 예정인 것 같습니다.

모용 선화는 유세 표국에서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 같은데, 그러긴 힘들 겁니다.

모용 선화가 상단을 최소 보름은 비울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백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예상 못 했던 일도 아니지만 자신이 아직 건드릴 수 없는 강한 상대를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본채에는 누가 남는다더냐?"


"모용 가의 움직임은 아직 없습니다만, 모용 선화의 성격 상 정예 병력을 남겨 놓을 겁니다. 그리고 모용 선화가 몇 단 전부터 중원의 은둔 고수들을 불러 모았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워낙 조용히 움직인 터라 무사들에 대한 정보는 없지만, 최소 십 수명의 고수들을 모은 것 같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모용 선화는 임신 중이라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고, 지금 본채를 습격한다면 자신을 위한 연회 중에 자리를 비우기도 힘들 것이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모용 선화라면 본채에 강력한 정예 병력을 남겨 놓을 것이 분명했다.

모용 세가를 직접 습격한 이후, 백수에게는 자꾸 까닭 모를 불안감이 엄습할 때가 많았다. 자신의 생환을 모용 선화가 모르는 채로 최대한 힘을 모으려 했건만,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시작부터 너무 많은 자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만 것이다.

그럴 가능성은 적지만 약선이 개입해 자신에게 대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는다 해도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였다.


'그렇다면 아예 정체를 드러내고 활동하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모용 선화도 내가 유 지령이라고 바로 확신할 수는 없을 테니 아직 시간이 있다.

청해와 사천의 문파들만 장악해도 무림맹에서의 내 입지를 세울 수 있다.'


"단주님." "아, 그래. 더 보고할 것이 남았나?"


"현재 청성파의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선대 장문인이 후계를 남기지 못하고 죽은 후, 가장 세력이 강했던 좌두곤(㘸窬袞)과 청성파 내에서 존경받는 최고수인 냉혈공자(冷血公子) 진 가민(振 嘉旼)이 공동 장문인을 맡고 있었는데, 두 세력 사이의 싸움이 붙은 것 같습니다."


"그래? 제대로 싸움이 벌어진 것이 언제냐, 무림맹에서는 알고 있는 거야?"


"무림맹의 세작들도 이미 떠났겠지만, 거리 상 저보다 먼저 도착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이상한 분위기가 포착된 건 오늘 새벽입니다. 좌두곤이 거느리는 무사들이 진 가민의 집을 포위하고 불화살을 날리는 것을 주변 산 사람들이 목격했다 합니다.


"주변의 평판은 어떠하냐, 백성들은 진 가민과 좌두곤 중 누구 편을 들던가?"


"보통은 청렴하고 욕심이 없는 진 가민을 편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진 가민이 문파의 운영에 손을 놓고 한량처럼 사는 동안, 좌두곤이 청성파의 궂은 일을 모두 맡아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좌두곤도 능력있는 사람으로 주변에 평이 나쁘지 않습니다."


세상 일엔 흑과 백으로만 나뉘어지지 않는 일이 대부분이다. 허나 내가 앞으로 나가려면 반드시 누군가의 옆에 서야만 한다.

백수 또한 지금 의협단의 미래를 결정할 지도 모르는 선택을 해야 했다.


'구파 일방의 한 축인 청성파에 내 지분을 만들어 놓을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기는 편에 서는 것이지. 이 정보 만으로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우니 직접 가야겠구나.'


잠을 청하려던 차림의 백수는 다시 의복을 찾아 걸쳐 입고 무명과 안 호를 불렀다.

두 사람 모두 늦은 밤의 호출에 옷도 제대로 갖춰입지 못하고 달려왔다. 오랜만에 편하게 다리를 뻗어보려다 달려왔을 무명에겐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일단 먼저 청성파로 가야겠어. 이번 내전의 승자에게 힘을 보태준다면, 청성파는 우리 편이 될 거야."


백수의 설명을 듣고 난 후, 안 호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중요한 건 누가 승자가 될 것이냐 하는 거겠군요.가진 정보로만 보면 좌두곤이 될 것 같긴 한데 백성들의 신망이 두텁고 무공의 뛰어나 무인들의 존경을 받는 진 가민도 쉽게 당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무림맹보다 먼저 가서 상황을 파악하는 거겠지. 구 천명과 허 성의 실력도 보고 싶기는 하지만 지금 바로 출발해야 하니 일단 무명하고 다녀와야겠어."


"그리 말씀하시다니 섭섭합니다."


백수의 곁에는 어느새 허 성과 구 천명 그리고 이 무빈까지 들어와 있었다.

호탕한 음성을 가진 구 천명이 백수를 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이제 저희도 어엿한 의협단의 일원이니 단주가 가시는 곳에 함께 가겠습니다.

항상 청성파의 검술을 보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가 왔으니 놓칠 수 없습니다."


허 성도 백수에게 다가와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미력한 힘이나마 강호의 정의를 위해 사용하고 싶군요. 어디든 함께 하겠습니다."


백수는 처음으로 동료라는 존재의 든든함을 느꼈다. 이 든든함은 예전 무명에게 목숨을 기대던 때의 절박한 감정이 아니었다.

자신을 위해 혹은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의협심 넘치는 자들을 동료로 둔 자의 굳건한 믿음과 자신감이었다.

이 무빈도 한결 나아진 얼굴로 백수에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는 아직 이런 고수들과 함께 할 상태가 못 되니 이 곳을 지키겠습니다. 항 선생의 말로는 앞으로 한 달이면 몸도 거의 회복될 것이라 하니 이전의 빚을 모두 갚겠습니다."


백수는 믿음직한 동료들을 이끌고 청성파의 본거지인 청성산을 향해 출발했다.

달빛 하나 없는 어두운 밤이었지만, 백수의 눈에는 자신의 앞길이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도교의 발원지이자 도가 무공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청성산에서는 지금 소리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조용한 피바람을 미리 알아챈 산짐승들과 산에 뿌리를 내린 산 사람들은 곳곳에서 벌어지는 피냄새와 소리 없는 함성에 모두 겁을 집어먹고 보금자리를 떠나거나 웅크리고 앉아 벌벌 떨면서 이 밤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청성파의 공동 장문인이자 수많은 제자들을 지휘하는 무사들의 수장인 진 가민.

그의 집은 현재 시뻘건 불길에 휩싸여 지붕은 이미 사라지고 바깥의 벽만 겨우 남아 그 곳이 집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집 뒤의 숲에서는 오래전부터 진 가민의 제자들과 좌두곤이 이끄는 토벌대의 혈전이 이 곳 저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포위망에 빈틈을 보이지 마라. 상대는 진 가민과 제자들이다."


토벌대는 청성파 내 좌두곤을 따르던 무사들과 그가 데려온 용병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수가 족히 백을 넘겼다.

그들은 진 가민과 그의 식속들이 모두 잠든 한 밤을 노려 기습을 감행했다. 수백 개의 불화살들이 진 가민의 집을 붉은 물결로 휘감은 후, 사천의 당문에서 개발한 멸겁벽력탄 수십 개가 불길에 휩싸인 집으로 날아들었다.

펑 하는 폭음이 수십 차례 들리고 나니 진 가민의 집에 남은 건 타버린 집터와 형체도 알아보기 어렵게 녹아내린 시신들 뿐이었다.

다행히 진 가민은 제 때 자신을 깨워준 막내아들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밤에 꼭 소변을 보러 가는 아이가 날아오는 불화살을 발견하고 아빠를 깨웠던 것이다.


"아버지, 아버지! 오늘 불꽃놀이를 하나 봐요. 하늘이 밝아요!"


진 가민은 한 팔에 막내 아들을 끼고 다른 손에는 자신의 애검 유화(柳花)를 손에 쥔 채 기약없는 도피에 나섰다.

부인은 어디선가 기척이 사라진 후 다시는 찾지 못 했고, 함께 도망치던 제자들도 하나둘씩 날아오는 화살과 암기에 쓰러져갔다.

이제 남은 건 자신과 막내, 그리고 둘째 딸 용선 뿐이었다.


"오빠는 어디에 있느냐?"


용선은 눈물 가득한 얼굴로 진 가민을 보며 흐느꼈다.


"오빠는 아까 나 대신 화살에 맞아서...흑흑."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으랴. 모든 건 방탕하게 살면서 정세를 헤아리지 못하고 방비를 게을리한 자신의 잘못이었다.

그러나 진 가민은 아직 포기할 수 없었다. 청성산 정상의 상청궁에는 진 가민을 위해 목숨이라도 바칠 이 백의 제자들이 있었고, 장로들 또한 자신의 편이었다.

그는 정신을 다잡고 팔에 안긴 막내의 상태를 확인한 후, 용선의 어깨를 붙잡았다.


"조금만 견디자꾸나. 상청궁까지만 가면 이 아비가 나쁜 놈들을 모두 혼내주마."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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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이름을 알리다. 22.09.20 513 8 9쪽
97 제대로 훈육할 생각이라면 매를 들어야 한다 22.09.20 505 8 9쪽
96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2) 22.09.16 572 8 11쪽
95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1) 22.09.15 552 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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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들개 떼의 눈에 띄다 22.09.12 609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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