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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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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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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133

작성
22.09.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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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3쪽

들개 떼의 눈에 띄다

안녕하세요.




DUMMY

청성 파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섬서 성의 청성산에는 며칠 째 어수선한 기운이 감돌았다. 좌두곤과 진 가민의 내전이 백수 일행의 활약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마무리된 후, 바로 찾아온 무림맹의 사정단은 진 가민에게 사건의 전말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요구함과 동시에 청성파 내,외부의 상황이 모두 확실하게 정리될 때까지 자신들이 문파의 임시 문주 역할을 맡을 것임을 발표했다.

말 그대로 선포였다. 말도 안 되는 강압적인 요구에 반발을 일으킨 제자들이 많았지만, 진 가민은 이것이 무림맹에서 내주는 시험의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계속 자신들의 보호 아래 있을 것인지 알아보겠다는 거겠지. 보호라기 보다는 지배에 가깝지만 저들의 비호 없이 강호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건 사실이니까...'


진 가민은 말 없이 장문인의 인장을 사정단의 단장인 서풍도객(緖風刀客) 천 유학에게 건넸다. 정사 대전 당시 시체가 쌓인 피 웅덩이 속을 함께 기어 다니던 전우는 이제 다른 위치에 서 있었다.


"아시다시피 임시 조치일 뿐이니 불만을 가진 제자 분들도 좀 달래주시고, 남아있는 좌두곤의 잔당들도 하루 빨리 색출해야 할 겁니다."


"인장을 받으신 이상 이제 청성파의 장문인이 되신 것인데, 불만 있는 제자들을 달래고 반란일 일으킨 세력을 색출하기 위해 무엇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던 천 유학의 눈에서 광채가 났다. 천 유학 또한 과거의 명예보다는 현재의 권력이 중요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자신에게 대항하는 자들에겐 가차없이 엄격하고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자에겐 너그럽다.

사람들의 눈이 있는 곳에선 절대 재물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자신의 손으로 더러운 돈을 만지지도 않는다.

그런 일들을 해 줄 아랫 것들은 주위에 언제나 있으니 자신은 꼿꼿하고 고고한 정사 대전의 영웅으로 남아있으면 된다.

천 유학의 자식들은 모두 무림맹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인물이거나 황실의 관리가 되어 있었다. 무예 소질이 있는 아이는 변방의 성벽으로 보내 실적을 쌓게 한 후, 데려와서 황실의 호족들 아래로 줄을 대 주고, 글에 밝은 녀석들은 일찌감치 황도로 보내 힘 있는 황가의 인척이나 입김이 센 환관들과의 관계를 만든다.

이것은 그들에게도 좋은 일이거니와 나중에 천 유학 자신의 위치를 더 단단하게 다지는 토대가 되어준다.

이렇게 몇 십 년을 쌓인 권력의 토대는 쉽게 흔들리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황실이던 무림맹이던 천 유학의 눈과 귀가 닿지 않는 곳은 없었다.

진 가민도 그걸 모르는 바보는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어느 정도 협상을 해야 하는 시기라는 위기감이 들었다.

여기서 계속 뒷걸음질을 치면 결국 무림맹의 꼭두각시가 되는 결말 뿐이었다.

좌두곤이 자신과 다른 길을 가긴 했지만 그가 청성파의 체질을 싹 바꿔 놓은 것도 사실이었다.

이제 청성파는 무림맹이 던져주는 뼈다귀 없이도 자생이 가능한 독립적인 조직이 되어 있었고, 주변 지역에서 유망한 인재들이 스스로 찾아올 정도로 인망도 높아져 있었다.

이제 이대로 운영만 잘 해나가면 현재 무림맹을 장악하고 있는 2대 세가나 소림, 무당파 까지는 아니더라도 신흥 세력으로 자리 잡은 사천의 당문 혹은 이름 값으로 버티고 있는 화산파 정도는 내려다 볼 수 있는 세력으로 키워낼 자신이 있었다.

물론 이렇게 성장한 데는 좌두곤의 영향이 크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어차피 그는 장문인이 될 만한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없는 뜨내기 학사에 불과했다.

정사 대전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자신이야말로 강하고 새롭게 커가는 청성파에 어울리는 지도자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기회에 좌두곤의 세력을 깨끗하게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문파 운영에 필요한 인재는 또 구하면 그만이다.

중앙 관리가 되기 위해 지금도 공부에 매진하는 학사들은 섬서 성에도 수 없이 많다.

진 가민은 그들 중 쓸 만 해 보이는 인재들을 이미 몇 명 봐두고 있었다.

이제 자신이 문파를 완벽하게 장악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눈 앞에 있는 이 굶주린 들개를 잘 구슬러서 보내야 하는 것이다.

천 유학은 섬서 성 특산품인 대추 차와 육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른 곳이었다면 천 유학의 이 정도 시선 처리를 보면 눈치를 대강 채고 알아서 기어다녔을 게 분명하지만 진 가민은 일부러 뜸을 들였다.


"이 곳의 대추는 다른 지방과 크기도 색도 다르지요. 그래서 그런지 열이 강한 다른 대추들과는 달리 열을 식히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청성산 근처에 가장 좋은 대추가 나오는 밭이 있습니다.

대인께 최상품을 모아 보내드리겠습니다."


"문파의 일로 정신도 없으실 텐데 그런 수고를 끼칠 수는 없지요.

제가 한 번 둘러보고 몇 개 구입해 가야겠습니다."


'아예 통째로 잡수시겠다?' 진 가민의 명치 끝에서 불이 끓어올랐다.

무림맹의 늙은이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특히나 천 유학은 만족을 모르는 물욕의 화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만족스런 얼굴로 차를 들이킨 천 유학이 장문인의 자리에서 진 가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무림맹에서도 진작부터 청성파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좌두곤은 곧 잡히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청성파 내에 존재하는 불만을 가진 자들에 대한 처리도 필요할 겁니다. 색출과 제거만이 능사는 아니니까요."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문파의 중요 업무를 담당하고 백성들과의 관계가 좋았던 인물들은 대부분 좌두곤을 따르는 자들이었다.

그들을 모두 제거하면 결국 청성파에는 예전부터 문파의 기둥 뿌리를 갉아먹던 사람들만 남는 셈이었다. 청성파에는 이제 팔을 걷어붙이고 일을 해 줄 젊은 인재들이 필요했다.

진 가민에게는 문파의 실권 장악 뿐 아니라 젊은 인재 포섭이라는 또 하나의 숙제를 안고 있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래서 주동자를 제외한 제자들은 처벌하지 않고 한 번 더 기회를 줄 생각입니다. 청성파의 재건이라는 중대한 목표를 앞에 두고 더 이상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순 없지요."


천 유학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진 가민은 그가 섬서 성의 유지들과 뒷거래가 있었음을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었다.

청성파의 제자들 중에는 지역 유지의 자제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좌두곤을 따르고 있었다. 그들의 처벌을 무마해주는 조건으로 천 유학이 얼마나 받았을 지 상상하니 다시 한 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재주는 내가 부리고 돈은 네 놈이 챙기겠다는 거로군. 이런 더러운 꼴을 더 이상 당하지 않으려면 하루 빨리 청성파의 힘을 키워야 한다.'


진 가민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천 유학과 함께 차를 마셨다. 지금은 자신의 감정을 숨겨야 할 때였고, 진 가민은 그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진 가민이 자리를 비운 후, 청성파의 장문인만이 앉을 수 있는 높다란 의자에서 내려와 청성산의 전경을 감상하던 천 유학의 뒤로 한 무리의 남자들이 나타났다.

무림맹에는 청무회 말고도 여러 개의 비밀 조직이 있었는데, 천 유학이 조장으로 있는 암익조(陰翼鳥) 또한 청무회와 마찬가지로 중원의 곳곳을 누비며 정보 수집과 비밀스러운 일을 행하는 무사들의 모임이었다.

그들의 이름에 어울리는 바닥까지 늘어진 긴 장포를 입은 남자들 중 한 사람이 천 유학 앞에 고개를 숙였다.


"좌두곤은 후일을 도모할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수하와도 일체 연락을 취하지 않고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상청궁 전투에서 좌두곤 측 용병으로 나섰던 이는 조장의 예상대로 개방의 후개 중 한 명인 주 예경이 맞았습니다.

문제는 진 가민이 데리고 온 청년인데, 지금까지 어느 문파에도 속하지 않았던 인물이라 정확한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청년이 민가에 숨어있던 좌두곤을 만났던 것은 확실합니다.

둘이 무슨 얘기를 주고 받았는지는 좌두곤을 찾아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천 유학은 짭짤한 육포를 씹다가 비릿한 맛을 느끼고 육포 조각을 내려 놓았다.

전부터 흔들거리던 치아가 있었는데, 그 곳에서 피가 흘러나와 잇몸까지 적신 모양이었다.

강호를 호령하고 세상 두려울 것이 없던 호걸도 세월을 이길 순 없다. 아무리 수련을 거듭해도 체력은 약해지고 검 끝은 무뎌지게 되어 있다.

그 빈틈을 무엇으로 메꾸느냐에 따라 말년의 생활이 달라지는 것이다.

천 유학은 그것을 자신의 처세술과 재물로 채웠다.

그 결과 누구도 그의 앞에서 눈을 부릅뜨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이 설사 맹주나 그에 버금가는 힘을 가진 모용 훤이라 해도 말이다.

천 유학은 아쉬운 듯 씹다 내려놓은 육포를 보다가 창 밖을 보며 말했다.


"날이 좋구나. 이틀이면 청해까지 다녀올 수 있으려나?"


조장의 말을 알아들은 남자가 천 유학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럼 청해에서 광주까지 수색 범위를 넓히겠습니다."


"남쪽엔 사람을 보내두었으니 곧 기별이 올 게야. 아무래도 청해 쪽에 신경이 쓰인다. 모용 가의 넷째가 시집 간 곳이 어디지? 거기도 한 번 들러봐라.

최근에 일이 좀 있었다고 하는데 묘한 이야기를 들었어."


"무슨 일입니까?"


"근처 의원에 환자가 왔는데 상처가 묘하더라는군. 일행 중 한 명은 상청궁에 있던 그 청년이 맞는 것 같으니 그 녀석들은 보름도 안 돼서 청성파와 모용 세가 두 문파에서 벌어진 싸움에 관여한 거란 말이지."


"그런데 그것이 상처와는 무슨...?"


"상처를 치료했다는 의원을 캐 봤는데 그가 봤다는 상처가 예사롭지 않아.

아무래도 마공에 당한 것 같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랄 수 밖에 없는 두 글자였다.

오래 전 중원을 초토화시킨 정사 대전 이후로 무림에서는 마교의 잔뿌리 하나라도 발견되면 가차 없이 제거해왔다.

마교의 씨를 말리겠다는 생각으로 누구보다 잔인하게 마교의 잔존 세력을 끝까지 쫓아 갓난 아기 한 명도 남겨두지 않고 괴멸시켰지만, 마교의 생명력이 얼마나 질기고 독한 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이들이었다.

그래도 근 십 년 간에는 마교의 세력에 대한 정보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확실하게 강호에서 마교라는 이름을 지워버렸나 하는 시기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 이름을 다시 듣게 된 것이다.

암익조의 대장 격인 오 유신이 먹이감을 발견한 매의 눈빛으로 천 유학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는 천 유학과 비슷한 연배인 데도 아직 싸움에 군침을 흘리는 전형적인 호전가였다.


"그 곳부터 가 봐야겠군요. 마교의 흔적이 실오라기 하나라도 있으면 바로 찾아내서 멸하겠습니다."


"혹시 발견되면 그리 하도록 하고 아니면 그 청년에 대한 정보를 찾아내. 청성파의 비전 절기를 알고 있었다 하니 차후에라도 진 가민을 흔들 수 있는 무기가 될 것이다."


오 유신은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급하게 자리를 떴다.

피에 굶주린 야차 같은 인물이지만 실력 하나는 믿을 만 했고, 무엇보다 무림맹과 천 유학에 대한 충성도가 높았다.

우두머리가 되려면 꼭 하나 쫌은 필요한 유형의 사람이었다.

충성심이 강하고 머리는 단순한 싸움을 잘 하는 사람. 모반의 염려가 적고 잔머리를 굴릴 줄 모르니 부리기에도 편했다. 머리가 나빠서 누군가 헛소문으로 위계를 쓰려 해도 잘 넘어가지 않는 것도 장점이었다.


'청무회에서 찾고 있다는 인물도 왠지 이 청년일 것 같단 말이지.

그것들보다 먼저 찾아서 내 수족으로 부릴 수만 있으면 앞으로 무림맹을 내 뜻대로 이끌어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랜 기간 이어진 태평성대로 강호엔 이제 예전만큼 뛰어난 인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예전처럼 뛰어난 초고수보다는 많은 병력이 힘의 척도가 되었고, 규모가 큰 문파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실상 크고 작은 분쟁마다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전쟁을 벌일 수도 없는 일이고, 무엇보다 큰 규모의 싸움을 벌이려면 많은 돈이 든다는 점에서 소수의 뛰어난 무인에 대한 수요는 여전했다. 다만 그런 인물이 없을 뿐이었다.

무림맹과 모용 세가, 청성파까지 여러 곳에서 찾고 있는 중요 인물이 된 백수는 이번 유세 표국 급습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계획을 실행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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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청무회(2) 22.10.08 447 4 7쪽
111 청무회(1) 22.10.07 359 5 10쪽
110 협객행 22.10.06 373 5 9쪽
109 권력의 달콤한 맛 22.10.05 402 5 9쪽
108 이름을 알리다 22.10.04 407 7 10쪽
107 동상이몽(3) 22.10.01 450 7 10쪽
106 동상이몽(2) 22.09.30 426 5 10쪽
105 동상이몽(1) 22.09.29 452 4 10쪽
104 뿌리가 썩은 나무는 새싹이 돋지 않는다 22.09.28 469 4 11쪽
103 회의 소집(5) 22.09.27 458 6 10쪽
102 회의 소집(4) 22.09.24 482 8 9쪽
101 회의 소집(3) 22.09.24 478 5 10쪽
100 회의 소집(2) 22.09.22 465 7 9쪽
99 회의 소집(1) 22.09.21 520 7 9쪽
98 이름을 알리다. 22.09.20 512 8 9쪽
97 제대로 훈육할 생각이라면 매를 들어야 한다 22.09.20 503 8 9쪽
96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2) 22.09.16 571 8 11쪽
95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1) 22.09.15 551 7 8쪽
94 날아오르려면 땅을 박차야 한다 22.09.14 583 9 10쪽
93 와호장룡(臥虎藏龍) 22.09.13 598 5 14쪽
» 들개 떼의 눈에 띄다 22.09.12 609 6 13쪽
91 와신상담(臥薪嘗膽) 22.09.11 606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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