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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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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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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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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133

작성
22.10.06 12:00
조회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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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9쪽

협객행

안녕하세요.




DUMMY

집 근처의 객잔에서 쉬고 있는 천명을 찾아온 이는 넷째 형 구 천상이었다.

어렸을 적 부터 사이도 좋았고 항상 자신의 편을 들어주었던 형까지 외면하기 힘들었던 천명은 그의 앞에 잔을 내 주었다.

두 사람은 오랜 회한이 담긴 독주 한 잔을 나누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네가 남다른 삶을 살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예상 이상의 화려한 복귀로구나."


천상의 말에는 비아냥이나 질투 같은 감정은 들어있지 않았다. 천명도 피식 웃으며 형의 빈 잔을 채워주었다.


"그러게 말이우. 한 가지 확실한 건 여기까지 온 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천운이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따라준 결과라는 거요.

참 별 일을 다 겪었지..."


"그 얼굴은...? 싸우다 다친 게냐?"


천명은 잠시 말를 멈췄다. 천상도 아차 싶긴 했지만, 두 사람은 예전부터 대화에 예의를 크게 차리던 사이가 아니었기에 천명도 깊게 의미를 두진 않았다.


"그리 되었소. 거의 관 뚜껑 덮을 뻔 했지. 그러고 보면 그 때가 가장 자만에 빠져 있을 때였으니 하늘이 내게 가르침을 주신 게 아닐까 싶긴 해.

형님, 세상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강자들이 수 없이 많소. 그들은 상대가 약하다고 봐 주거나 반격의 기회를 주는 일 따윈 없지. 최선을 다 해서 반드시 죽이고 마는 강자들이 중원에 득시글거린다고.

나는 정말 운이 좋아서 목숨을 건진 거요. 운이 아주 좋았어..."


천상은 괜히 동생의 아픈 기억을 꺼냈나 싶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술을 한 잔 더 마신 천상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 의협단 얘기를 꺼냈다.


"너희 의협단 이야기가 변방인 여기까지 들리더구나. 너희 단주는 본주들이 모이는 자리에 함꼐 들어가 회의를 한다면서?

대체 어떤 사람인 게냐, 너희 단주는?"


"그런 건 왜 궁금하오?"


"그거야 나이도 젊다는데 어떻게 그런 성취를 이루었는지 궁금한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냐. 내 주변의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다."


"누가 알아오라고 한 것은 아니고?"


천상은 잔을 내려놓았다. 동생은 못 본 사이 무공도 강해지고 더 침착해지기도 했지만 다른 변화도 있었다.

낯빛이 어두워지고 사람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건 예전의 천명 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솔직히 말하마. 아버님께서 네가 구도장파를 위해 이런저런 일을 좀 해 줄 수 있도록 설득을 해보라는 말을 듣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전적으로 네 선택에 달린 일이고 넌 이제 엄연히 의협단 소속 무인이니 구도장파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할 필요도 없어.

그 외에 내가 받은 청탁이나 비밀 약속 같은 건 없다.

네가 정 불편하다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으마."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천상을 천명이 붙잡았다. 얼굴의 반쪽이 변했다 해도 곱상하던 나머지 반은 예전 그대로였다. 천명이 난처한 얼굴로 미소를 짓자 천상은 한숨을 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내가 실언을 했어. 크게 다친 이후로 사람을 대하는 게 조금 어려워지더라구.

사람을 잘 믿지 못하게 되고, 항상 경계를 하게 됐지 뭐요."


"생사를 넘나드는 부상을 당했으면 그럴 수도 있지. 너무 맘에 두지 마라."


"그 때 손가락 하나 가누기 힘들 정도의 부상을 입고 조그만 약방에 누워 있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 그 때 우리 단주님이 아니었다면 난 그 곳에서 온 몸이 녹아서 죽었을 거요. 같이 있던 동료는 날 두고 그냥 떠나자고 했었거든.

그를 원망할 수는 없지. 당시 우리는 쫓기고 있었고, 내 상태가 너무 안 좋았으니까.

난 그 때 강호에 뛰어든다는 게 장난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


천상은 막내 동생이 얻은 명성은 거저 얻은 게 아니라는 것을 동생의 얼굴에서 느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천명이 고향에 돌아온 것은 목숨을 걸고 싸우던 강호의 전장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온을 찾기 위해 고향에 돌아온 것이리라.

누명을 씌워 몰아붙이고 쫓아내듯 파문을 시킨 자신들이 이제와서 도움을 청하는 것 자체가 막내 동생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천상은 말 없이 잔만 비웠다.

여기까지 오게 된 형의 마음을 알고 있는 천명은 거나하게 취한 천상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그에게 조용히 말했다.


"아버님께는 내가 조만간 찹아봽겠다고 전해드려요. 파문당한 내가 구도장파를 위해 뭘 할 수 있는지 들어나 봅시다."


천상은 만취하여 흐릿한 눈으로도 동생의 미소를 보았다. 곱상한 얼굴로 계집아이 같다는 놀림을 받던 막내가 보여주는 남자의 웃음이었다.


"고맙다. 다른 형들이 염병하지 못하게 내가 목줄을 잘 잡고 있으마."


"걱정마쇼. 내가 그 놈들 떠든다고 꿈쩍이나 할까봐?"


형제는 웃으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이좋은 형제의 다음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의협단에서 급한 호출이 왔기 때문이었다. 천명은 새벽 해가 뜨기 전 출발하여 급히 말을 달려야 했다.

넷째 형에게 서신 하나 남기지 않은 것이 영 마음에 걸렸지만, 청사령의 밀정을 시켜서 급히 모두의 복귀를 명하는 건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었다.


각자 정해진 비밀 통로를 통해 비밀 회합 장소에 도착한 의협단 단원들은 원형 탁자에 둘러 앉았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백수가 모두의 찹석을 확인한 후, 입을 열었다.


"급히 의논할 일이 있어 여러분들을 모이게 했습니다.

청사령의 정보에 따르면 지금 무림의 수 많은 비밀 조직들이 우리를 쫓고 있는데, 무림맹 소속의 청무회라는 곳에서 우리 정체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하더군요.

청무회 소속 극광이라는 자가 우리 은거지 근처까지 와서 냄새를 맡고 갔다 하는데 이대로 가면 조만간 은거지의 소재가 발각되는 경우도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여러분들의 의견을 묻고 싶소."


"일단 극광이라는 자는 제거하고 은거지를 천천히 옮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대로 가면 청무회가 아니더라도 결국은 발각될 수 밖에 없겠는데요."


무명의 담담한 말투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과거 최대한 살생을 피하려는 태도를 취하던 무명은 여러 사건을 겪은 후 구 천명처럼 심경의 변화를 겪는 중이었다.

안 호도 무명의 의견에 동의룔 표했다.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은거지를 옮기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특히 유 환명 어른이 계셔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옮기는 것도 손이 많이 가지요. 극광이라는 자가 이 곳 근처까지 왔다면 모용 세가나 다른 조직들 또한 근처까지 오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들개들은 제거하면서 천천히 이주를 추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유 환명 어른의 존재가 발각된다면 단주님의 정체가 발각되는 것도 시간 문제입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원형 탁자에 앉지 않고 뒤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남자가 백수의 부름을 받고 다가왔다.

호롱불 아래 정체를 드러낸 그는 바로 좌두곤이었다.

청성파 내전 이후 진 가민에게 쫓기며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던 그는 결국 백수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었고, 안 호와 함께 의협단의 살림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곳에서도 그의 뛰어난 운영 능력이 발휘되어 의협단은 무림맹 가입에 상당한 돈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건실한 재정을 유지해나갈 수 있었다.


"두 분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전은 이제부터 신중히 고려해 볼 문제라 해도 극광이라는 자는 제거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군요.

의협단은 아직 정체를 모두 드러내서는 안됩니다. 수 많은 이리떼들이 너도나도 물어뜯으려 들 겁니다."


"그러면 은거지의 이전 문제는 이제부터 바로 추진하기로 하고 먼저 극광이라는 자의 처분을 논해야겠군요.

정보에 의하면 그는 무림맹 소속 청무회의 장로급 무사입니다. 상당한 고수일 뿐 아니라 오랜 시간 밀정으로 살면서 약삭 빠르고 생존 능력 또한 탁월합니다.

기회를 잡으면 놓치지 말고 반드시 제거해야 할 겁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제게 맡겨주십시오."


무명과 천명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백수가 바라지 않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백수에게 절세 무공을 배운 이들은 이제 무림에서 누구도 쉽게 대적할 수 없는 강자가 되어 있었고, 그만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도 강했다.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이렇게 된 이상 별 수가 없었다.


"그럼 두 분이 함께 다녀오십시오. 항상 의견을 나누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단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무명과 천명이 함께 고개를 숙였다.

백수는 의협단에서 가장 믿을 만한 두 고수가 나섰는데도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구나. 우리의 협객행은 이제 시작인데 왜 자꾸 불길한 기분이 드는 거지?'


머리가 복잡해진 백수는 불현듯 우각정에서 보았던 정효 사태의 부드러운 눈빛이 떠올랐다. 이런 때에 왜 정효 사태가 떠올랐는지 사랑을 해 본 적도 없고 연모하는 감정이 뭔지도 모르는 철 없는 단주는 알 길이 없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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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청무회(3) 22.11.03 298 2 6쪽
112 청무회(2) 22.10.08 447 4 7쪽
111 청무회(1) 22.10.07 360 5 10쪽
» 협객행 22.10.06 374 5 9쪽
109 권력의 달콤한 맛 22.10.05 402 5 9쪽
108 이름을 알리다 22.10.04 407 7 10쪽
107 동상이몽(3) 22.10.01 450 7 10쪽
106 동상이몽(2) 22.09.30 426 5 10쪽
105 동상이몽(1) 22.09.29 452 4 10쪽
104 뿌리가 썩은 나무는 새싹이 돋지 않는다 22.09.28 469 4 11쪽
103 회의 소집(5) 22.09.27 459 6 10쪽
102 회의 소집(4) 22.09.24 482 8 9쪽
101 회의 소집(3) 22.09.24 478 5 10쪽
100 회의 소집(2) 22.09.22 465 7 9쪽
99 회의 소집(1) 22.09.21 521 7 9쪽
98 이름을 알리다. 22.09.20 513 8 9쪽
97 제대로 훈육할 생각이라면 매를 들어야 한다 22.09.20 504 8 9쪽
96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2) 22.09.16 571 8 11쪽
95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1) 22.09.15 552 7 8쪽
94 날아오르려면 땅을 박차야 한다 22.09.14 584 9 10쪽
93 와호장룡(臥虎藏龍) 22.09.13 598 5 14쪽
92 들개 떼의 눈에 띄다 22.09.12 609 6 13쪽
91 와신상담(臥薪嘗膽) 22.09.11 606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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