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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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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133

작성
22.09.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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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회의 소집(2)

안녕하세요.




DUMMY

백수는 잔을 잡은 손까지 떨며 놀라는 진 가민을 진정시켰다.

역시 진 가민은 무인이자 능수능란한 정치가였다. 이미 백수를 이 곳에 잡아두려고 준비까지 해 놓은 상태에서 이렇게 놀랄 리가 없는 상황인데 저렇게까지 과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놀라는 척 하면서 주변의 수하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술책이었다.


"진 대인, 그렇게까지 놀라실 필요도 없고 수하들을 부르실 필요도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지금까지 제가 드린 도움을 뜻하는 겁니다.

진 대인이 청성파를 어려움 없이 장악하실 수 있도록 제가 도왔으니, 이제부터는 진 대인께서 저를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자신의 연기를 들킨 진 가민의 얼굴이 급하게 진정되면서 동시에 차가워졌다.

피가 흘러내리는 전장에서 수 없는 죽음을 봐 왔던 전사의 얼굴이었다.

진 가민은 속으로 이렇게 된 것이 오히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잴 필요 없이 원하는 걸 주고 받는 건 진 가민 입장에서도 편한 일이었다.


"속 시원하게 말해주니 나도 마음이 편하군. 그래 자네가 내게 원하는 게 무엇인가?"


"이번에 무림맹 회의가 소집될 겁니다. 그 때 제가 몸 담고 있는 의협단을 무림맹의 일원으로 들이자는 안건이 나올 텐데 거기에 동조해주시면 됩니다."


"자네의 목적은 무림맹에 들어오려는 것이었나?"


"강호에서 살아남으려면 무림맹의 비호를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의협단은 아직 규모가 작지만 재정적으로 탄탄하고 실력있는 무인도 많으니 무림맹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자네 말대로 의협단이라는 곳이 그렇게 훌륭한 문파라면 무림맹 입장에서 거절할 이유가 없을 텐데 굳이 내 힘까지 빌려야 하는 이유가 있나?"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니까요. 무림맹의 크기를 더 키우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도 있다 들었습니다. 혹시나 생길 지 모르는 반발의 가능성을 지우고 싶은 겁니다."


진 가민은 백수의 눈치를 살폈다. 뭔가 다른 게 더 있는 것 같긴 한데 백수의 눈에서는아무 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청년이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1년 전과는 무공의 깊이가 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드러내지 않으려 애를 쓰고는 있지만 진 가민 정도의 고수는 근육의 움직임, 걷는 보폭 같은 별 것 아닌 정보 만으로도 상대의 실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눈 앞에 있는 청년은 지금 살짝 드러난 무공 만으로도 자신과 필적할 정도의 깊이를 가지고 있었다.


'1년이면 무공을 쌓기에 그리 긴 시간이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일취월장한 거지?

역시 표풍보록과 진룡보전을 함께 수련한 효과인가...'


청성파의 비급인 진룡보전과 표풍보록을 함께 수련하면 수련자의 공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진 가민 또한 어릴 적에 선대 장문인이 말도 안 되는 높이의 봉우리 사이를 뛰어 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진 가민 또한 누구 못지 않게 열심히 수련했지만 아무리 해도 선대 장문인의 능력에는 미치지 못했고, 그 차이를 비급의 연성 여부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나이도 중년을 넘어선 진 가민에게 아직 무공을 더 높은 경지까지 상승시킬 수 있는 여력이 아직 남아있다는 뜻이었다.

진 가민은 오늘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자네의 뜻대로 하지. 자네 말대로 회의가 열리고 그 안건이 나온다면 난 찬성 표를 던지겠네. 헌데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네만..."


"말씀하십시오."


"자네가 혹시 청성파의 정식 전승자라면 진룡보전 뿐 아니라 표풍보록도 알고 있는가?"


백수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 사실 가르쳐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백수로서는 진룡보전과 표풍보록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어내고 싶었다.

능수능란한 정치가인 진 가민이라면 표풍보록을 얻는 순간 안면몰수를 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물론입니다. 허나 지금은 주위에 보는 눈이 많으니 진 대인께서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시면 천천히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진 가민은 백수의 빈 잔을 채워주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 백수를 잡아두는 게 나은 지 아니면 백수의 말대로 회의를 마친 후 천천히 배워나가는 것이 좋은 지 계산해보기 위해서였다.

진 가민의 고민을 알고 있는 백수가 먼저 말을 꺼냈다.


"고민이 되시리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표풍보록을 수련하신다 하여 청성파의 장악이 바로 이루어지는 건 아닙니다.

먼저 예전의 청성파보다도 더 강한 문파를 만드셔야 하고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노제자와 신진 세력들과의 반목도 해결하셔야 합니다.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포 선생이 알려드린 것으로 압니다. 그 해결책에는 많은 현금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 문제를 해결해드리겠습니다."


"자네가 그 많은 돈을 그냥 내 주겠다는 말인가?"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대인께서 또 한 가지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백수가 내민 것은 정창파의 고명자에게도 건넸던 어음들이었다.


"이것은?"


"남궁 세가와 모용 세가 등 여러 문파들이 발행한 어음입니다. 이것을 회의에서 보여주시고 그들의 반응을 살펴 주십시오. 심하게 압박하면 반발할 지 모르니 몇 장만 보여주시고 상대의 반응을 떠 보는 수준에서 물러서 주시면 됩니다."


진 가민은 오래 된 어음의 종이 질을 보며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과거 정사 대전이있던 시기에 여러 문파들은 오랜 전란으로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 때 그들을 도왔던 것이 바로 여러 상단들이었다.

돈 냄새를 잘 맡는 장사치들은 문파에 돈을 빌려주고, 차용증 형식의 어음을 받았다.

정사 대전이 끝나면 무림을 장악한 명문 정파들에게 돈도 얻고 자신들의 영향력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영민한 계획이었지만, 그들의 오산은 칼 쥔 자들을 너무 가볍게 봤다는 사실이었다.

마교와 혈교를 무너뜨리고 무림의 주인이 된 정파의 세력들은 장사꾼들에게 빌린 돈을 갚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문파의 인장이 찍힌 종이를 가지고 찾아온 상단의 주인 중에는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진 자들도 있었고, 어처구니 없는 죄를 뒤집어쓰고 상단 전체가 가루가 된 경우도 있었다.

상단주들은 안면몰수의 진수를 보여주는 명문 정파의 태도에 이를 갈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세상의 도리가 있을 거라고 믿은 자신들의 철부지 같은 믿음을 후회하며 손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진 가민의 기억에 분명 청성파도 이런 어음을 몇 번이나 발행했었다. 당시 끝도 없이 몰려오는 마교와 혈교의 괴수들과 몇 년 째 싸우던 정파의 세력들 중 쪼들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중원 여기저기에 뿌려졌던 수 많은 어음들은 어느샌가 자취를 감추고 이젠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후였다.

그 종이들이 지금 진 가민의 눈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청성파가 발행한 어음은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것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을 것이니 앞으로도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진 가민은 백수의 눈을 보며 그의 진위를 살피려다 그만두었다.

분명 이 청년은 자신보다 한 수 위를 내다보고 있었다.

너무 뛰어난 사람은 밑에 두거나 후환이 될 바에야 제거하는 것이 상책이긴 하나 백수의 경우엔 자신에게 너무나 큰 도움을 주고 있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이 상태로 계속 도움을 받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청성파의 지위를 이용해 밟아 나가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결정을 내린 진 가민은 웃으며 백수와 잔을 나누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쌓은 덕이 좀 되나 보구만. 자네와 같은 귀인을 만났으니 말일세.

자네가 말한 대로 이번에 회의가 소집되면 자네의 의협단이 무림맹에 들어올 수 있도록 내 최선을 다하겠네.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주저 말고 언제든 얘기하게나."


"대인의 은혜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허허, 은혜는 내가 입었지. 자네가 있으니 내 뒤로 천군만마가 버티고 있는 것 같구만."


사실 백수는 현재 중원에 있는 대부분의 문파가 발행한 어음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 혜안을 가진 상단주들은 정사 대전이 끝났을 때를 대비하여 명문 정파에 줄을 대기 위해 돈을 내주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 중에는 미래를 생각하며 여기저기서 어음을 긁어모은 유 환명도 있었다.

유 환명은 언젠가 이 종이들이 자신의 상단을 지켜줄 든든한 방패가 되리라 믿으며 그것들을 숨겨 두었다.

그러다 주변의 상단들이 인간의 도리도 모르는 늑대들의 칼 끝에 무너지는 걸 보고서는 숨겨 놓은 어음들을 일단 찾지 않기로 했다.

유 환명은 야망이 큰 사람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무사가 아니라 장사꾼이었다.

나중에 자신의 자식들이 상단을 운영할 때는 칼 든 자들에게 비굴하게 굽신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할 말을 하는 상단의 주인이 되길 바랬다.

결국 유 환명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명문 정파의 인장에 찍힌 종이들은 그들의 목을 죄는 동아줄이 되었으니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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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협객행 22.10.06 373 5 9쪽
109 권력의 달콤한 맛 22.10.05 402 5 9쪽
108 이름을 알리다 22.10.04 407 7 10쪽
107 동상이몽(3) 22.10.01 450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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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회의 소집(4) 22.09.24 481 8 9쪽
101 회의 소집(3) 22.09.24 477 5 10쪽
» 회의 소집(2) 22.09.22 465 7 9쪽
99 회의 소집(1) 22.09.21 520 7 9쪽
98 이름을 알리다. 22.09.20 512 8 9쪽
97 제대로 훈육할 생각이라면 매를 들어야 한다 22.09.20 503 8 9쪽
96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2) 22.09.16 571 8 11쪽
95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1) 22.09.15 551 7 8쪽
94 날아오르려면 땅을 박차야 한다 22.09.14 583 9 10쪽
93 와호장룡(臥虎藏龍) 22.09.13 598 5 14쪽
92 들개 떼의 눈에 띄다 22.09.12 608 6 13쪽
91 와신상담(臥薪嘗膽) 22.09.11 605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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