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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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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133

작성
22.10.0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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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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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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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권력의 달콤한 맛

안녕하세요.




DUMMY

남궁 천율은 쟁반에 놓인 잉어 위에 손을 올려 놓았다. 그랬더니 잠시 후 잉어에서 서서히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내심 크게 놀란 백수와는 달리 다른 장문인들은 한 두번 본 게 아니라는 듯 평온한 반응이었다.


'현경의 경지에 오르면 저런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사람의 깊이는 모르겠으나 무공의 깊이는 참으로 놀랍구나.'


손가락으로 잉어를 한 번 푹 찔러본 남궁 천율이 씨익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속까지 잘 익은 것 같으니 영 대협의 작품을 감상해보십시다."


"맹주님은 어서 요리집을 하나 차리셔야 한다니까? 제가 매일 가겠습니다."


"약속 지켜야 합니다. 그렇잖아도 요즘 무릎이 아파서 아침마다 은퇴를 고민하고 있어요."


설이은 농담이 오가며 주연의 분위기가 한층 달아오르자 백수는 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난간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산들바람이 호수면을 간질이고 가끔씩 나타난 오리 부부가 먹이를 찾는 한가로운 광경을 넋을 잃은 사람처럼 바라보고 있던 백수는 어느새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정효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번 일에 장문인의 도움이 컸습니다.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사실 받기는 내가 더 받았지. 감사 인사도 내가 해야 할 것 같고.

무림을 지배하는 위치에 올라선 기분이 어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지도 좀 헷갈리네요."


"나도 네가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 왔다는 건 확실해 보이는데, 초심을 잃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거야.

권력이라는 건 타인과 절대 나눌 수 없는 법이거든.

네가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넌 이제 권력을 가졌어. 이제부터 네 권력을 노리는 자들에게서 그것을 지켜야 할 거야."


"권력이라는 게 대체 뭡니까? 그것을 통해 무엇을 이루셨습니까?"


정효는 예상치 못한 백수의 질문에 흠칫 놀랐다. 희고 고운 피부를 가진 젊은 청년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정효는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에게 세상을 먼저 겪은 누이로서 남녀 상열지사를 알려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지금 백수를 품어주기엔 주변의 눈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아까부터 백수와 자신을 훔쳐보는 임 증요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늙은 여우 같으니라고. 네 뜻대로는 안 해줄 테니 왕 대협과 날 엮을 생각은 하지도 마라."


아미파에는 언제부터인가 금남(禁男)의 규율이 생겨서 무슨 철칙처럼 따르고 있긴 했지만, 누가 만들었는지도 확실치 않은 족보 없는 규율이었고 남자야 만나고 싶다면 몰래 만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강하고 신비한 여인들의 집합소처럼 되어버린 아미파의 제자들은 항상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실상은 타의에 의한 강제 순결을 지키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거의 명맥이 끊긴 일월신교의 후계자이자, 한 때 운 효령, 정효 사태와 함께 동방삼협(東方三俠)이라 불리기도 했던 임 증요는 현재 한 문파의 장문인이 된 정효와 몰락한 교단의 마지막 후계가 된 자신의 모습이 비교가 되어서인지 목숨을 걸고 함께 싸웠던 동료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다.

항간에는 영 서강이 마지막까지 정효 사태와 임 증요 사이에서 고민했다는 소문까지 돌았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뛰어난 무공과 미모를 두루 갖춘 여성 협객이 자주 등장하지 않는 시대였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주변의 관심은 더욱 높았고, 그것이 사이가 좋았던 두 여인 사이에 은근한 경쟁 심리를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답이 없는 고민에 빠진 백수를 두고 자리로 돌아온 정효는 이미 술 기운이 올라 여기저기서 비틀거리는 장문인들을 보며 한숨이 나왔다.


'내가 여기서 뭐하는 거람.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노래나 부르고 싶다. 백수가 준 돈이 있어서 한동안은 안 가려고 했는데, 오늘따라 예쁘게 차려입고 한 곡조 뽑고 싶구나.'


한 때 거칠 것 없는 협객의 삶을 살던 정효는 이제 한 문파의 생존을 책임지는 장문인이 되었고, 맘에 드는 남자에게 말 한 마디 건넬 수 없는 서글픈 처지가 되어 있었다.

왠지 자유롭게 술에 취해 아무 말이나 떠들고 아무에게나 추파를 던지는 동네 술꾼들이 부러워지는 밤이었다.



정효의 말대로 무림맹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무림 권력의 중심에 선다는 것을 의미했다.

백수는 그 의미를 바로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본거지를 숨기지 않아도 되었다. 누구도 의협단에 해를 끼칠 수 없다.

그런 시도를 한다면 전 무림에 깔려있는 무림맹의 밀정들이 무림맹에 보고하게 되고, 뛰어난 무사들이 바로 투입되어 적들을 제거한다.

그 뿐 아니라 언제든 중원 전 지역에 있는 무림맹 산하의 무관, 상단, 객잔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돈을 낼 필요도 없고, 사정을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냥 요구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존경이었다. 중원의 모든 백성은 과거 사파의 공격에서 무림을 구해낸 정파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존경은 힘에서 나오고 힘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무림맹은 오랜 시간동안 백성들에게 감히 넘볼 수 없는 높이에 위치한 권력의 첨탑같은 존재였다.

이제 백수와 의협단 또한 그런 권력을 가진 존재가 된 것이었다.



"확실히 무림맹 소속이 되니 다르긴 다르군요. 의협단의 명패를 내다 걸 수 있는 날이 올 줄이야..."


안 량의 감개무량한 얼굴로 새로 지어진 의협단의 본채에 걸린 명패를 보며 말했다.


"저기 걸린 문패의 값이 상당히 비싸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됩니다. 이제 무림맹에 매년 세금을 내야 하고 비정기적으로 상남도 해야 할 테니 미리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상인 연합에서 단주님을 봽고 싶어합니다."


백수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 중원에서 가장 힘이 막강한 청해, 사천 등지의 상단주들이 모인 거상 연합과 백수가 밀담을 나눈 것이 벌써 몇 달 전이었다.

백수는 상단주들에게 그들이 가진 무림맹 어음들을 활용할 방법을 알려주었고, 상단주들은 그로 인해 생기는 수익을 백수와 배분하기로 약조를 했었다.


"그들이 약조를 잘 지키려 들지 모르겠습니다. 무사들이 안면몰수를 한다면 상인들은 너구리처럼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술수에 능하니까요."


안 호의 걱정스런 말투에 백수가 너털 웃음을 터뜨렸다.


"그걸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여기에 또 있겠나? 대비를 해두기도 했지만 감히 무림맹소속의 의협단 단주 뒤통수를 치려 들 정도의 배짱 좋은 상인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


무림맹 소속의 무사가 된 의협단 단원들 또한 예전과는 다른 대우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였다.

특히나 무림맹에 명함도 못 내밀던 구도장파 같은 군소 문파에서는 장문인의 아들이 무림맹 회의에 초대받는 문파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경사가 되었다.

천명은 말 그대로 장원 급제 후 금의환향 하듯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우유부단하고 답답한 천명의 부친도 그 날만은 어린 아들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기뻐했다.


"아비가 널 그리 홀대했는데 네 힘으로 오늘과 같은 성취를 해 냈으니 정말 자랑스럽구나."


"모두 아버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오랜만에 부친의 얼굴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천명이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이제 구도장파도 크게 성장할 겁니다. 아버지는 청렴하고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이니 사람들이 알아 줄 겁니다."


구도장파의 문주이자 천명의 아버지인 구 맹지는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들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구 맹지도 아들들의 성격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에 예전 천명이 떠날 때의 상황도 그의 잘못이 아니라 누명을 쓴 것임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관에 더 이상의 난리가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그는 빨리 사건을 덮으려고만 했고, 그로 인해 가장 뛰어나고 인성도 좋은 아들이 자신의 품을 떠나게 했던 것이다.

그런 아들이 강호에 나가 뜻을 펼치고 강대한 문파의 일원이 되어 돌아게 되니 구 맹지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럴 때 집으로 돌아와 내 일을 좀 도와주면 좋으련만... 내가 한 짓이 있으니 내 입으로 그리 말하기는 어렵구나.'


항상 앞에서 말을 하지 못하는 구 맹지의 성격상 이번에도 그의 선택은 다른 자식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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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청무회(2) 22.10.08 447 4 7쪽
111 청무회(1) 22.10.07 360 5 10쪽
110 협객행 22.10.06 374 5 9쪽
» 권력의 달콤한 맛 22.10.05 403 5 9쪽
108 이름을 알리다 22.10.04 407 7 10쪽
107 동상이몽(3) 22.10.01 450 7 10쪽
106 동상이몽(2) 22.09.30 427 5 10쪽
105 동상이몽(1) 22.09.29 452 4 10쪽
104 뿌리가 썩은 나무는 새싹이 돋지 않는다 22.09.28 470 4 11쪽
103 회의 소집(5) 22.09.27 459 6 10쪽
102 회의 소집(4) 22.09.24 482 8 9쪽
101 회의 소집(3) 22.09.24 478 5 10쪽
100 회의 소집(2) 22.09.22 465 7 9쪽
99 회의 소집(1) 22.09.21 521 7 9쪽
98 이름을 알리다. 22.09.20 513 8 9쪽
97 제대로 훈육할 생각이라면 매를 들어야 한다 22.09.20 504 8 9쪽
96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2) 22.09.16 571 8 11쪽
95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1) 22.09.15 552 7 8쪽
94 날아오르려면 땅을 박차야 한다 22.09.14 584 9 10쪽
93 와호장룡(臥虎藏龍) 22.09.13 598 5 14쪽
92 들개 떼의 눈에 띄다 22.09.12 609 6 13쪽
91 와신상담(臥薪嘗膽) 22.09.11 606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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