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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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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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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133

작성
22.09.20 19:00
조회
512
추천
8
글자
9쪽

이름을 알리다.

안녕하세요.




DUMMY

뒤에서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허성과 단원 두 명도 천천히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한 사람은 그리 길지 않은 연검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반질반질하게 광택이 나는 흑갈색의 삼절곤을 양 손에 쥐고 있었다.

해명이 뒤를 돌아보며 손을 내저었다.


"대협들까지 나서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만."


"아니, 우리가 꼭 나서야 할 것 같소. 목 대협은 손속에 자비가 없으니 우리한테 얻어터지는 게 저들에게도 다행한 일이지."


열지는 여유가 넘치는 저들의 대화를 들으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저들은 강호에서 칼 깨나 휘둘러 본 것으로 보이는 무인들이었다.

그런 자들은 상대와 자신의 기량 차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절대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전세가 불리하다 싶으면 허세를 부리기 전에 도망칠 생각을 하는 것이 싸움터의 생존 방식이었다.

저들은 그냥 여유를 부리는 것이다. 허세가 아니라 진짜 여유였다.

해명은 태선을 보며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타이르듯 말했다.


"산채 앞에 날랜 말이 있으니 타고 가시오. 조금 전 말을 험하게 한 것은 내 사죄드리리다. 사태가 시급하여 부득이하게 거친 언행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태선은 아무 말 없이 산채 입구로 향했다. 사내로서 당할 수 있는 치욕은 모두 당한 태선에게 더 이상 내려 놓을 자존심 같은 건 없었다.

그런데 왠지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예전 같이 놀던 친구들은 밖에서 놀다 옷을 더럽히거나 말썽을 피우면 부모님께 두들겨 맞고 벌개진 엉덩이를 보여주며 훈장처럼 자랑을 하곤 했는데, 왠지 사타구니의 고통이 자신에겐 그 때 친구들이 보여주던 어린 날의 훈장 같았다.


'그 때 친구들이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이걸 이제서야 느끼다니...'


산채 입구에 다가서는 태선을 덩치가 큰 산적들이 가로막았다.

태선은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아 손을 저었다.


"이러지 말고 비켜. 내가 싸움에서 졌다고 너희들까지 얕보면 어떡하냐."


그러나 태선이야말로 산적들을 얕보고 있었다. 두목의 명으로 태선에게 굽신거리고 있었을 뿐, 어렸을 적부터 피를 보며 살아온 그들은 절대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물론 그건 지금 기세가 푹 꺾인 점창파의 도련님에게 그렇다는 것이고, 허 성이나 다른 단원들에게까지 부담스러운 상대는 아니었다.

허 성은 두꺼운 장도를 들고 태선을 노려보는 산적 한 명의 뒤로 다가가 뒤통수에 사정 없이 손바닥을 날렸다.

사람의 머리에서 날 수가 없는 뿌악 하는 타격음과 함께 산적이 뒤를 돌아보며 크게 성을 냈다.


"어떤 놈이야!!" 말을 마친 산적은 갑자기 쓰러져 잠이 든 것처럼 혼절했다.


이 장면을 본 산적들은 태선이 산채의 문을 열고 나서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못했다.

허 성은 결국 자신이 일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숨을 쉬면서 앞으로 나섰다.


"너희들이 선택한 결과다. 죽는 것보다는 불구가 되는 게 나을 테니 내게 덤비면 내가 사람 사는 도리를 너희들에게 손수 가르쳐주마."


허 성의 뒤에서 지켜보던 단원들도 앞으로 뛰어 들었다.

이후는 그야말로 피 없는 학살이었다. 허 성과 단원들은 산적들의 팔다리 뼈를 부러뜨리거나 발가락, 손가락을 베어 전투만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짐승같은 포효를 지르며 기세좋게 덤벼들던 산적들은 금세 자신들의 처지를 깨닫고는 아무도 달려들지 않았다. 이미 산채에 담을 넘어 도망가기 시작한 녀석들도 있었다.

열지는 결과를 직감한 듯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모든 건 자신의 과욕이 부른 결과였다.

장 한덕이 녹림채에 들어오라고 할 때 들어갔다면, 태선이 산채를 없애버리려고 왔을 때, 산채를 버리고 후일을 도모했더라면, 조금 전에 태선을 믿고 객기를 부리지 말고 퇴로를 마련해 두었더라면....

모든 만약을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가 오도록 선택한 열지의 책임이었다.


'까짓 거 세상에 무슨 미련이 있다고. 산적처럼 살았으니 산적처럼 죽어야지.'


열지가 도끼를 위로 치켜들었다. 그 모습을 본 해명이 진지한 얼굴로 열지를 보며 말했다.


"너도 하려는 것이냐? 부하들도 다 도망갔으니 너도 가...."


열지가 내리찍은 도끼가 큰 파열음과 함께 땅바닥에 길게 찢어진 자국을 남겼다.

열지는 힘이 센 편이긴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쓰던 도끼는 긴박한 전투에서 쓰기엔 너무 크고 무거웠다.

열지가 다시 도끼를 들어올리기도 전에 해명이 그녀의 눈 앞으로 다가와 이마에 강력한 두타(頭打) 를 날렸다.

방심한 틈에 이마에 번쩍 하는 일격을 당한 열지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코까지 고는 그녀는 마치 편안한게 잠이 든 것 같았다.


"그냥 두고 가도 죽진 않겠죠?"


해명의 말에 허 성은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저렇게 만들어놓고 걱정은 되시는가? 명색이 산적인데 산에서 잠 좀 들었다고 산 귀신이 되면 그것도 웃음거리겠지요.

우리에겐 할 일이 있으니 이들은 그냥 두고 바로 출발합시다."


해명은 고개를 끄덕이고 산채를 나섰다. 태선은 출발한 지 한참이나 된 듯 말발굽이 만들어내는 흙먼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젠 거의 포기 상태에 놓였던 고명자는 늦게나마 아들이 도착한 것에 크게 기뻐하며 장로들을 모실 준비를 했다.

아들은 약간 어기적 거리는 걸 빼고는 괜찮아 보였다. 아니, 평소보다 더 차분하고 반항적인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고명자는 내심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왠 청년이 찾아와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할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자신을 의협단의 단주 왕 백수라 밝힌 청년은 중원에서 보기 드문 미청년에 내공 또한 상당했다.

최대한 감추고 있는 게 보이는데도 점창파에는 대적할 상대가 없어 보일 정도의 무공의 깊이를 가지고 있었다.

나이가 잘 해야 이십 대 초반이라는 것도 놀라움을 더했다.


'과거 무공을 익히는 데 최적화된 체질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저 청년이 바로 그런 몸을 가지고 태어난 것 같구나.

저런 인재가 여지껏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고명자는 홀연히 나타난 청년 덕분에 위기를 모두 넘겼다. 고명자가 간단히 포권을 하고 연회장으로 가려는데 백수가 그를 붙잡았다.


"장문인께서는 제가 왜 당신을 도왔다고 생각하십니까?"


"뭔가 바라는 게 있으니 그러지 않았겠소? 그런데 지금은 내가 선배들을 대접해야 하니 후에 이야기를 마저 나누면 어떻겠소?

아니, 그냥 연회장으로 같이 갑시다. 선배들께는 내 손님이라 말해 놓겠소."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불편한 자리를 만들고 싶진 않군요.

하지만 연회장에서 꼭 해주셨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뭘 말이오?"


"지금 저 자리에 있는 장로들 중에 무림맹의 밀정이 있습니다."


"뭐라고, 밀정??"


"연회장에 가시면 장문인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겠다고 하십시오. 발표는 나중에 할 것이니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까지 얹어주시면 더 좋겠군요.

그와 동시에 이것을 보여주십시오."


백수가 전한 종이에는 남궁 세가와 모용 세가 등 명문가의 인장이 찍힌 차용증이 적혀 있었다.


"이것을 다음 무림맹 회합 때 받을 예정이라고 말씀해주십시오."


들떠있던 고명자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건 예상도 못했던 진행이었다.


"이 어음들은 못해도 금화로 만 냥은 되는 것 같은데, 돈을 더 긁어가려고 혈안이 된 무림맹에서 이걸 줄 리가 없지 않은가.

지금 자네는 날 사지로 몰아넣으려는 겐가?"


"분명 무림맹은 이 어음을 없에려 들 겁니다. 장문인을 직접 노리는 간 큰 짓을 할 지는 모르겠지만, 장문인 자리를 물려주겠다고 하면 아드님과의 혼인을 통해 일을 해결하려고 들 수도 있지요. 그 쪽이 피를 보지도 않고 향후에도 점창파를 손 안에 둘 수 있으니까요."


"그렇겠지. 실제로 혼담이 온 적도 있었어. 남궁 천율의 다섯째 딸이랬나..."


"광주로 본채를 옮긴 후 나날이 규모가 성장 중인 점창파는 무림맹 입장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먹이입니다.

그런데, 점창파를 노리는 손이 무림맹 말고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손을 찾아낼 생각입니다."


고명자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 청년은 누구이며 왜 그런짓을 하는 것인가.


"이 이야기를 다 믿느냐는 둘째치고, 자네가 점창파에 와서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뭔가? 내가 왜 자네의 말대로 해야 하는 거지?"


"모든 일은 순리대로 하나씩 풀어가면 됩니다. 제가 말한대로 일이 이루어지면 다음에 제가 알려드리는 대로 행동하시면 되고, 제 말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저를 내치시면 됩니다."


"대체 의협단이라는 곳은 뭘 하는 곳인가?"


"강호의 의와 협을 다시 세우기 위해 활동하는 의인들의 모임이라고 해두죠."




행복한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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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청무회(2) 22.10.08 447 4 7쪽
111 청무회(1) 22.10.07 359 5 10쪽
110 협객행 22.10.06 373 5 9쪽
109 권력의 달콤한 맛 22.10.05 402 5 9쪽
108 이름을 알리다 22.10.04 407 7 10쪽
107 동상이몽(3) 22.10.01 450 7 10쪽
106 동상이몽(2) 22.09.30 426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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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뿌리가 썩은 나무는 새싹이 돋지 않는다 22.09.28 469 4 11쪽
103 회의 소집(5) 22.09.27 458 6 10쪽
102 회의 소집(4) 22.09.24 482 8 9쪽
101 회의 소집(3) 22.09.24 478 5 10쪽
100 회의 소집(2) 22.09.22 465 7 9쪽
99 회의 소집(1) 22.09.21 521 7 9쪽
» 이름을 알리다. 22.09.20 513 8 9쪽
97 제대로 훈육할 생각이라면 매를 들어야 한다 22.09.20 504 8 9쪽
96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2) 22.09.16 571 8 11쪽
95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1) 22.09.15 551 7 8쪽
94 날아오르려면 땅을 박차야 한다 22.09.14 583 9 10쪽
93 와호장룡(臥虎藏龍) 22.09.13 598 5 14쪽
92 들개 떼의 눈에 띄다 22.09.12 609 6 13쪽
91 와신상담(臥薪嘗膽) 22.09.11 606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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