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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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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133

작성
22.09.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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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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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0쪽

회의 소집(5)

안녕하세요.




DUMMY

정효 사태는 백수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며 그 속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청년은 돈을 벌거나 무림맹을 흔들어서 이름을 알리겠다는 정도의 소소한 목적을 가지고 이런 일을 벌이는 게 아니었다.


'왕 백수라는 녀석은 정말로 무림맹과 한 판 붙으려는 거구나.'


정효 사태는 백수의 면면을 다시 한 번 살폈다. 처음 봤던 때보다 무공이 더욱 강해지고 얼굴에는 여유로움과 함께 굳은 의지가 살짝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 만으로는 무림맹에 대적할 수가 없다.

그건 누구보다 정효가 잘 알고 있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네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는 어느 정도 알겠구나. 그런데 넌 우리 아미파 또한 무림맹에 속해 있다는 걸 알고는 있는 게냐?

이런 무모한 짓을 벌이는 이유를 모르겠구나.

내가 이런 어음 몇 장과 돈 때문에 무림맹에 등을 돌릴 거라 생각하는 것이냐?"


"한 가지는 압니다. 장문인은 아미파의 이익을 무엇보다 우선하신다는 것이지요.

제가 드리는 도움이 무림맹에서 주는 것보다 부족하다 여기신다면 장문인께서는 이미 절 버리셨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셨죠.

아미파의 재산과 훌륭한 무인들을 바쳐가며 승리한 정사 대전 이후, 무림맹은 아미파에게 무엇을 해주었습니까?

지금 무림맹은 동네의 건달들처럼 오히려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가져가고 있지 않습니까?

소수의 문파와 유력 가문들이 무림맹을 장악하고 재물을 긁어모으면서 강해질 때, 아미파처럼 무인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노력한 문파들은 모두 힘을 잃었습니다.

주변에 비옥한 농지가 있고 백성도 많은 점창파나 청성파 같은 문파는 그래도 재건이 가능하겠지만, 아미파는 주변 환경도 척박해서 이대로라면 서서히 약해질 수 밖에 없는 실정이 아닙니까?"


백수의 말에는 강한 분노가 실려 있었다. 정효는 백수가 혹시 무림맹의 횡포에 몰락한 군소 문파의 후계자가 아닐까 추측 해보았다.

중요한 건 백수가 상당히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은 자신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까지 갖추고 나타났다는 점이었다.

어찌 보면 아미파에게 다시 오지 않을 부흥의 기회가 될 수도 있었지만 반대로 아미파의 몰락에 불을 당기는 큰 실수가 될 수도 있었다.

정효는 쉽사리 답을 내리지 못했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백수를 적당히 이용하면서 지원을 얻어내고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 생각되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눈 앞에서 잔을 거침없이 들이키는 저 청년은 호락호락해 보이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청년을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백수가 마음에 들었다거나 그의 야망에 탄복했다거나 하는 단순한 감정은 아니었다.

다만 왠지 백수의 여유가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의 허세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는 정효의 육감 같은 것이 있었다.

현실적으로 힘든 꿈을 꾸고 있긴 하지만 왠지 그 꿈의 근처까지는 갈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정효의 냉철한 판단력을 흔들었다.

지금까지 정효는 기울어져 가는 아미파를 지켜내기 위해 수많은 선택을 해 왔다.

어려서부터 장문인이 될 재목으로 길러진 그녀는 백수의 말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아미파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고, 그것이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할 때도 있었지만 대 아미파의 장문인 정효 사태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돈 때문일까? 아니지, 지금까지 더 많은 돈 앞에서도 흔들린 적이 없었는데, 어째서 지금 저 어린 녀석의 허풍에 이렇게도 마음이 흔들리는 것인가.'


사실 답은 진작부터 나와 있었다. 이미 정효는 백수의 자신감이 허풍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백수의 말에는 틀린 부분이 없었다. 무림맹은 아미파에 점점 더 많은 재물과 인력을 요구했고, 올해도 버거웠지만 내년에는 어떻게 될 지 알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무림맹에 지금과 같은 공납이나 세금을 내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다고 무림맹에 반기를 든다? 정효가 본 백수는 허세에 가까운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중원 전역에 깔려 있는 무림맹의 정보망 사이로 이런 짓들을 벌이면서도 자신의 소재나 정체를 들키지 않는다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백수가 청성파의 내전애 관여했다는 것은 정효도 알고 있었다. 백수는 거대 정파의 싸움에 깊숙이 관여하고서도 일 년 넘게 무림맹의 추적에 걸려들지 않았다.

그것 만으로도 분명 보통 인물은 아닌 것이다.


'일단 협조하는 척 간을 보면서 상황이 안 좋으면 바로 내쳐야 할까?

내가 저 놈에게 지원을 받은 건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고, 내 서명을 남긴 적도 없으니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효는 자신이 무엇을 고민하는 지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에 이러는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효의 고민은 이러했다.


'만약 왕 백수가 그의 목표대로 무림맹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다면, 그 때 어중간한 위치에 있었던 아미파는 이도 저도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아미파는 지금까지 딱 그런 위치를 유지하며 살아 남았다.

이도 저도 아닌 위치... 어떤 선택으로 인해 문파의 존립이 위태로워지는 선택을 피하면서 문파의 명판만은 어떻게든 유지해왔다.

그렇게 함으로서 강력한 권력들 사이에서 명맥은 지켜냈지만, 이제 이름 뿐인 구파 일방의 아미파는 제자들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작금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선배들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


그녀는 불현듯 스승이었던 연원(然遠) 사태가 떠올랐다. 스승은 항상 입버릇처럼 정효에게 하던 말이 있었다.


[네 마음 속에서 세 번 물어 같은 답이 나오면 그대로 하면 된다. 네가 바른 뜻과 곧은 수양 상태를 유지한다면 네 심중에서 내리는 답이 틀릴 수가 없느니라.]


스승의 말대로라면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정효는 결정을 내렸다. 자신이 목숨 바쳐 지켜 온 아미파와 그 아래 몸 담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을 위한 결정이었다.

정효는 아무 말 없이 백수의 빈 잔을 채워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잔도 채운 후 백수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미파는 앞으로 그대와 뜻을 함께 하겠소. 내 결정은 곧 아미파의 결정이니 앞으로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아미파가 그대와의 신의를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오."


정효의 엄중한 한 마디에 백수 또한 진지한 얼굴이 되어 정효르 보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든 백수의 얼굴엔 짖궂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대 아미파의 장문인께서 고민이 많으셨군요. 고고한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아미파의 명맥이 여기서 끊기는 건 저도 원치 않습니다.

장문인께서는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해주시면 됩니다. 굳이 무림맹과 등을 돌릴 필요도 없고, 쓸데없이 피를 흘리실 필요도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다급해진 그들이 실력 행사로 나서도록 아미파에서 적당한 압박을 해주시는 겁니다.

물론 아미파가 저를 도와주신다면 그보다 더 큰 힘은 없겠지만, 수 많은 사람들의 안위를 생각하셔야 하는 입장에서 그런 결정을 하시기 힘들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썩을 대로 썩어 빠진 무림맹의 더러운 곰팡이들과 싸우는 것은 저와 의협단이 맡을 생각입니다.

정효 사태는 앞으로 새롭게 태어날 무림의 기둥이 되어주셔야 합니다. 힘 없는 백성을 쥐어 짜고 자신들이 물욕을 위해 약자를 거침없이 밟던 자들을 모두 걷어내고 나면 당신 같은 의로운 사람들이 무림의 기둥이 되어 정의로운 뿌리를 내려주셔야 하는 겁니다."


정효의 머리 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한 놀라운 충격이 엄습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청량감과 함께 아주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감정이 가슴속에서 솟구쳤다.

그것은 정효가 가지고 있으나 어딘가에 묻어두었던 무인으로서의 의협심이었다.

정효는 백수와 함께 강호를 누비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

아미파의 미래까지 걱정해주는 백수와 함께라면 지금까지 자신을 옭아맸던 장문인의 책임감도 나누어 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십 대 초반에 아미파의 장문인이 되어 아미파만 생각하면서 살아온 정효에게 드디어 무림 출수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정효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정효는 한 번 꺼낸 말을 다시 주워 담지 않는다. 장문인의 자격으로 아미파는 자네의 의협단과 뜻을 함께 하기로 결정했으니, 지금부터 우리는 한 배를 탔다 여기고 모든 위험을 함게 나누도록 하자."


백수는 아직 서른도 안 된 아름다운 여인이 보여주는 배포와 결단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아미파의 전통은 이름 값으로 유지되던 것이 아니었다.

전통을 지키고 사람들을 지키는 자애로운 마음과 함께 정의를 지키는 데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바위와 같은 단호함이 아미파의 장문인에게 있었다.

청성파와 점창파의 도움을 어느정도 약속받은 사태긴 하지만 그들은 언제든 마음을 바꿀 수 있고 백수 또한 그들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그러나 왠지 지금 백수의 눈 앞에 있는 도도한 눈매를 가진 여인은 의협단의 단원들 만큼이나, 아니면 그보다도 더 자신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 같다는 묘한 믿음이 들었다.

그 여인이 바로 아미파의 장문인이자 현 무림 팔 대 고수 중 한 명이라 불리우는 청안공(晴眼塨) 정효였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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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협객행 22.10.06 373 5 9쪽
109 권력의 달콤한 맛 22.10.05 402 5 9쪽
108 이름을 알리다 22.10.04 407 7 10쪽
107 동상이몽(3) 22.10.01 450 7 10쪽
106 동상이몽(2) 22.09.30 426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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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뿌리가 썩은 나무는 새싹이 돋지 않는다 22.09.28 469 4 11쪽
» 회의 소집(5) 22.09.27 459 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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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회의 소집(3) 22.09.24 478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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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회의 소집(1) 22.09.21 521 7 9쪽
98 이름을 알리다. 22.09.20 513 8 9쪽
97 제대로 훈육할 생각이라면 매를 들어야 한다 22.09.20 504 8 9쪽
96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2) 22.09.16 571 8 11쪽
95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1) 22.09.15 552 7 8쪽
94 날아오르려면 땅을 박차야 한다 22.09.14 584 9 10쪽
93 와호장룡(臥虎藏龍) 22.09.13 598 5 14쪽
92 들개 떼의 눈에 띄다 22.09.12 609 6 13쪽
91 와신상담(臥薪嘗膽) 22.09.11 606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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