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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실세 왕백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암사
작품등록일 :
2022.06.14 22:05
최근연재일 :
2024.02.25 01:09
연재수 :
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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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768
추천수 :
1,166
글자수 :
581,133

작성
22.09.20 09:00
조회
503
추천
8
글자
9쪽

제대로 훈육할 생각이라면 매를 들어야 한다

안녕하세요.




DUMMY

태선은 자신의 눈 앞에서 반원을 그리는 해명의 검 끝을 조용히 살피며 둘 사이의 거리를 조정했다.


'처음 보는 검법인데 무엇을 노리는 지는 알겠군.

쓸데없는 움직임 같지만 자신의 공격이 닿지 않는 사각을 줄이면서 뒤를 잡히지 않으려는 전술이다. 다양한 움직임이 나올 것 같으니 일단 수비적으로 대응해야겠다.'


태선 또한 점창파의 제자들을 가르치는 총 교두라는 자리를 아빠 힘으로 얻은 게 아니었다.

그는 타고난 재능이 있었으며 어느 정도의 성실함과 열정도 있었다.

다만 그는 정에 굶주렸고, 관심이 필요했던 것 뿐이었다.

검 밖에 모르는 부친은 수련장에서만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라기 보다는 큰 스승에 가까웠다.

잔정이 많고 사람을 좋아하는 태선은 따뜻한 사람의 정을 갈구하다 잘못된 방법을 찾고 만 것이다.

남녀간의 애정 또한 정을 주고받는 건 맞지만, 가족의 정과는 그 성격이 달랐다.

그러나 이미 여인에게서 얻는 애정에 푹 빠져버린 태선의 눈에는 해명의 검에 담긴 의미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뒤에 있는 열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하나로 검을 들고 목숨을 건 결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태선은 계속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만 하는 상대에게 답답함을 느껴 먼저 찌르기로 일 합을 날렸다.

그리 강한 공격은 아니었다. 탐색전이기도 하고 상대의 방어 기술을 엿보려는 시도도 있었다.

해명은 물 흐르듯 움직이던 자신의 검날에 태선의 공격을 실어 원을 그리며 흘려 보냈다. 그와 동시에 먼저 제 자리에 돌아온 자신의 검으로 태선의 어깨를 노렸다.

태선은 아무렇지 않게 해명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목과 무릎을 동시에 노리는 공격을 펼쳤다.

빠른 속도와 팔의 근력의 뒷받침되어야 쓸 수 있는 강력한 검술이었다.

그러나 해명은 공격 방향을 예상한 것처럼 어렵지 않게 막아내고 공격해 들어오는 힘을 이용해 반격을 시도했다.

해명이 좀처럼 공격을 먼저 시도하지 않으니 싸움은 어느 한 쪽의 우세 없이 진행되었다.

두 사람은 거울을 보고 싸우는 사람처럼 상대가 공격하면 방어하고 상대가 움츠려 있으면 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이런 양상은 해명이 공격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이 싸움을 멀리서 지켜보는 열지는 이런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내 산채 안에 들어와서 산적들에 포위되서 싸움을 하면서도 점창파 후계자를 가지고 노는 건가? 저 놈 정체가 뭐야?'


해명은 몇 합을 더 교환한 후, 태선의 무공과 싸움 습관을 거의 다 파악했다.

태선은 자신의 아버지나 점창파의 제자들하고만 검을 수련해 온 우물 안 개구리였다.

명문 정파의 후계자로 살면서 진짜 싸움을 경험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자식을 제대로 키우고자 하는 강호인이라면 자식을 여러 지방으로 수행을 보내거나 산적 토벌에라도 보내야 하지만 점창파의 고명자는 그러지 않았다.

오냐오냐 하면서 자식을 싸고 돌았거나 무신경했거나 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결과로 하나 뿐인 자식은 산적을 퇴치하는 대신 산적 두목의 치마폭에 푹 빠지고 말았다.


'점창파의 미래가 밝지 않구나.'


해명은 슬슬 싸움을 끝내기 위해 천천히 휘두르던 검을 멈췄다.

단주가 큰 부상을 입히지 말라는 명을 내리긴 했지만, 사실 그런 걱정을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두 사람의 기량 차이는 명백했다.

해명은 돌아가신 부친이 전수해 준 목가 검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점창파의 유일한 후계자를 상대하는 데는 그 정도 만으로도 충분했다.

해명은 검의 속도를 서서히 높이며 태선이 막기 좋은 곳만 노리던 공격에서 타점을 바꾸어 관절과 급소를 노리기 시작했다.

아둔한 태선은 자신이 완전히 구석에 몰리고 나서야 전세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자신에게 불리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공격은 시작도 하기 전에 해명에게 제압당했고, 태선이 예측하는 해명의 공격 궤도는 모두 틀렸다.

위기를 느낀 태선은 점창파의 특기인 점혈과 권술을 이용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앞으로 돌진했다.

점창파는 검을 주로 쓰는 문파이면서도 점혈에도 능했다. 그래서 육박전에 되면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적과의 거리를 좁히는 보법과 경공이 필수였다.

태선은 점창파의 비전절기인 뇌광폭암(雷光爆巖) 으로 해명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그야말로 눈 깜박할 새에 벌어진 초신속의 돌진이었다.

태선의 검은 이미 해명의 코 앞에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지만, 해명은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해명의 장검은 이미 바닥에서 태선의 사타구니를 향해 승천하고 있었다.


"아아아악!!!!!"


화려하게 돌진한 기세와는 달리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진 건 다름아닌 태선이었다.

태선은 등나무 덩굴처럼 배배 꼬인 상태로 바닥에 엎드려 일어날 줄을 몰랐다.

해명은 아무런 후속 공격을 하지 않고 태선이 입에서 흘린 거품을 닦고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태선에게는 자신을 지켜봐주는 해명의 안타까운 표정이 결투의 패배보다 몇 배나 더 가슴을 후비는 치욕이었다.

게다가 곁에는 열지와 그녀의 부하들이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으니, 명예에 목숨 거는 무사라면 바로 자결을 해도 모자랄 인생 최악의 수치였다.

남자가 가장 소중히 해야 할 중요 부위에 큰 충격을 받은 태선은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바닥을 구르고 입에서 거품이 흘러나오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건드려 본 적도 없는 그가 더러운 산채의 흙바닥을 기어다니며 바닥에 날리는 흙먼지를 삼켰다.

서서히 고통이 줄어들면서 온몸을 휘감는 수치심은 더욱 커졌다.

일어나지 않고 이대로 죽고 싶었다.

하지만 이대로 바닥에 계속 누워있는다는 것도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었다.

결국 태선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주섬주섬 일어설 수 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여전히 안타까운 얼굴로 지켜보던 해명은 바닥에 떨어진 태선의 검을 주워 주인에게 던져 주었다.

태선이 검을 받지 않아서 점창파의 명검은 바닥에 다시 고꾸라졌다.

다 큰 남자의 토라진 모습에 열지는 물론 의협단 단원들과 산적들까지 혀를 찼다.

해명은 어린 아이를 너무 놀렸나 싶어 후회가 되었지만, 어차피 좋게 말해서 들을 꼬라지도 아니었기에, 계속 말을 안 들으면 기절시켜서라도 데려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싸움은 이만하면 된 것 같으니 신궁(점창파의 본채)로 돌아가는 게 어떠냐.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너희 아버님이 장로들에게 약점을 잡히는 일도 없을 것이고, 그러면 빨리 너한테 장문인을 물려주고 운남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도 한동안 안할 테니 네게도 손해보는 일이 아닐 것이다."


"아버님이...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다고...?"


"검 밖에 모르는 분이라 들었는데 이런 큰 문파 운영이 신경 쓸 게 한 둘이 아니잖나.

힘들어하시는 것 같던데 하나 있는 아들이 그런 것도 못 알아주니 서운하시겠다."


태선은 고민에 빠졌다. 어려서부터 혼자 있는 자신을 내버려두고 수련만 하는 아버지가 못내 서운했던 태선이지만, 자신의 힘든 부분만 떠들 줄 알았지 정파의 거대 문파를 떠맡은 아버지의 고민은 보려 들지 않았다.

태선에게 조금 전과는 다른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가 이제 돌아가야겠다 말하려 하는데 열지가 선수를 쳤다.


"두 대장부의, 아니 한 대장부와 한 졸부인가? 아무튼 결투는 잘 봤는데 여기는 내 집이야. 별 것도 아닌 것들이 맘대로 나갔다 들어왔다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열지의 대부가 공중에서 빛을 발했다. 손질이 잘 된 훌륭한 강철 도끼였다.


'커다란 무기로 겁만 주려는 녀석들과는 다르군. 모두 덤비면 곤란한데...'


해명은 태선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일 때 조용히 그를 신궁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시간이 촉박하기도 하고, 더 싸움이 지속되면 자신도 모르게 손속에 실수가 생길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차피 광주 유일한 명문 정파인 점창파의 차기 장문인을 건드리진 않을 거라 생각해서 기세 좋게 침입한 것이었는데, 산적 두목의 열지의 반응은 해명이 기대한 것과는 달랐다. 죽더라도 한 판 붙겠다는 피에 굶주린 투기가 느껴졌다.


"너희들이 점창파와 사생 결단의 전쟁을 벌이려는 게 아니라면 이 쯤에서 물러서는 게 어떠하냐.

내 평소에 너희같은 놈들을 그 냥 놔두는 사람이 아니다면 오늘은 사정이 급해서 특별히 봐주는 것이니 목숨을 건질 기회를 놓치지 마라."


보통은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 바로 비웃어줘야 하지만, 이번엔 열지를 비롯한 산적들 아무도 웃지 않았다.

해명의 눈에 이전까지 없던 살기가 비치며 거의 검 또한 조금 전까지와는 다른 빛을 뿜어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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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협객행 22.10.06 373 5 9쪽
109 권력의 달콤한 맛 22.10.05 402 5 9쪽
108 이름을 알리다 22.10.04 407 7 10쪽
107 동상이몽(3) 22.10.01 450 7 10쪽
106 동상이몽(2) 22.09.30 426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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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이름을 알리다. 22.09.20 512 8 9쪽
» 제대로 훈육할 생각이라면 매를 들어야 한다 22.09.20 504 8 9쪽
96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2) 22.09.16 571 8 11쪽
95 진창에 발을 들였으면 더러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1) 22.09.15 551 7 8쪽
94 날아오르려면 땅을 박차야 한다 22.09.14 583 9 10쪽
93 와호장룡(臥虎藏龍) 22.09.13 598 5 14쪽
92 들개 떼의 눈에 띄다 22.09.12 609 6 13쪽
91 와신상담(臥薪嘗膽) 22.09.11 606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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