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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on of The Pit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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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하늘해
작품등록일 :
2015.12.05 20:19
최근연재일 :
2016.03.05 18:56
연재수 :
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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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767
추천수 :
1,345
글자수 :
284,914

작성
15.12.21 19:21
조회
558
추천
17
글자
11쪽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12

DUMMY

9


미트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건물 내부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그렇지!"


공을 받은 포수는 그 울림에 만족스레 웃으면서 다시 지혁에게 공을 던져 주었다.


그런 포수의 외침에 지혁은 활짝 웃으며 공을 받았다.


"괜찮았습니까?"

"이 정도면 괜찮지. ……경기에서만 안 쓰면!"

"하하……."


그런 정태근(포수)의 말에 지혁은 실망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현재 둘이 있는 곳은 지혁의 집 근처에 있는 태풍 야구 레슨장.


지혁의 아버지 이우진이 지혁에게 소개해준 곳으로 타이푼즈 영광의 시절 주역 중 한 명인 정태근이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정태근은 현역 당시 출중한 장타력으로 이름을 알렸던 포수로, 은퇴 이후 구단의 주선으로 일본과 미국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


허나 바로 현장에 올 줄 알았던 대다수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소식이 없이 공백이 길어졌고, 이후 무슨 일인지 프로팀의 코치가 아닌 이 레슨장을 차리고는 사회인, 학생 등의 아마야구의 질적 향상을 위해 힘쓰고 있다.


본인은 현장과 멀어진지 너무 오래 되어 감각도 남아있질 않아 프로 선수들의 코칭은 힘들다고 말하고 있지만, 선수 시절에 이어 코치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는 우진과 의견을 나누며 교류하는 것을 비롯해 프로팀 선수들도 기회가 되면 꼭 찾아갈 정도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데에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다.


그런 사람이 경기 중에 던지지 말라는 공이다.


태근 본인 말대로 그의 야구가 본인의 선수 시절 당시에 멈춰 있다고 쳐도 그럼 지금 공은 그 시절에도 안 먹힐 공이란 얘기가 된다.


'이것도 안 되면 이제 뭐가 있을까……?'


아버지인 우진도, 타이푼즈의 코치인 강훈도 모두 특별히 건들 필요 없다던 투구폼과 팔 스윙.


거기에 감독인 김수룡이 전지훈련동안 갖지 말라고 당부했던 변화구를 '억지로 변화시키려는' 욕심.


체계적인 훈련은 사실상 프로에 오고 나서야 받고 있는 지혁인 만큼 괜히 어설픈 잔재주를 익혔다가 습관이 되면 늦는다는 우려에서 나온 요구였다.


그런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며 다른, 직구와 슬라이더에 이은 세 번째 공을 찾는다는 것은 제법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에 왔을 때 연습했던 체인지업은 어떻게 했어?"


궁금했던 태근이 그렇게 물었다.


그 'The Pitcher' 이우진이 직접 교정해주려 한 체인지업 아니던가?


"……이번 시즌에선 안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정확하게는, 제대로 연습한 적이 없으니 정말 전의 플레이오프처럼 허를 찌를 작정이 아니라면 썼었단 사실조차 잊자고 한 것이다.


무언가를 골라야 한다면 고르지 말아야 할 1순위.


실전에서 쓸 수 없는 공이란 판정이었다.


올 시즌 리더스 전에서 그것으로 장타만 3번을 얻어맞고 그때마다 직구로 탈출하는 것을 본 강훈이 그 당일 그렇게 말하고, 우진이 다음날 똑같은 판단을 내렸었다.


자신감이 결여된 듯한 모습의 지혁을 보며 태근은 앉아있던 자신의 자세를 바꾸며 다른 질문을 했다.


"지금 던지고 있는 건 뭐야? 싱커야? 슈트 같기도 하고."


지혁에겐 역회전 공이 없다고 알고 있던 태근은 처음 봤을 때 내심 놀랐다.


간만에 연락하고 찾아와선 최근 연습하던 공이라며 봐달라고 하더니 제법 날카롭게 좌타자 바깥으로 빠지는 공을 던지는 것이다.


구속도 기존 직구와 별 차이 없어 보였다.


적어도 태근 자신과 연습할 땐 보지 못한 공이었고 던지는 당사자 말로도 최근이라고 했으니 전지훈련 때부터 익혔던 걸까?


지혁은 자신도 확실하진 않다며 말했다.


"델 리오가 던지는 걸 보고 알려 달라고 했어요. 박민섭 형이랑 둘이서."

"이번에 온 그 마무리 용병?"

"네. 물어보니 자기 말로는 노심 패스트볼이라고 하더라고요."

"민섭이 그 녀석이……."


그러고 보면 최근 좌타자 상대로 몸쪽으로 휘어 들어오는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투심을 더 발전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아예 다른 공이었던 모양이다.


정확히는 그 날에 따라 잘 되는 패스트볼을 골랐던 것이지만.


'세상에, 그럼 진짜 몇 달 연습하지도 않았던 걸 불펜투수면서 겁도 없이 던지고 있단 말이고만.'


천재는 과연 천재였다고 태근은 속으로 민섭에 대해 감탄했다.


"이것도 쓰기 어려울까요?"


다시 한 번 역회전 공을 던진 다음 지혁이 자신 없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태근은 자신의 미트 속에 있는 공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지혁에게 다시 던져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코치나 현장 관계자가 아니니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지."

"네……."

"하지만 선발인 만큼 기회가 되면 한두 개씩 섞어보면서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물론 네가 너희 팀과 얘기할 내용이지만 말이다. 너 평소에도 가끔 이상한 거 해보잖아?"

"알고 계셨나요?"

"요즘 방송에서 카메라로 별곳을 다 찍잖아."


그렇다면 상대들도 이미 다 파악하고 있었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지혁이었다.


다시 지혁이 예의 그 공을 몇 번 던졌다.


태근이 마지막 공을 받은 뒤 미트에서 꺼내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일본에 갔을 때 얘기인데 말이야."

"예."

"지금은 많이 줄었는데 옛날에는 그 나라 투수들 슈트 많이 던졌거든. 지금 지혁이 네가 던지는 거랑 비슷하게 움직이는 거야. 오버핸드를 가장 기본으로 가르치다 보니 횡 변화가 적어서 만들었다고 했나. 하하! 그건 지금 너랑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횡 변화가 적어서'라는 부분에서 지혁은 속으로 강하게 공감했다.


자체 청백전과 시범경기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지혁이 델 리오의 노심 패스트볼을 어떻게든 써먹어보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완전한 오버핸드 파워피처인 마크 델 리오가 보여주는 패스트볼의 좌우 현란한 변화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써클 체인지업의 경우처럼 좌타자를 상대로 던질 수 있는 구종이 필요했던 지혁인 만큼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민섭 또한 올 시즌 들어 델 리오에게 배운 노심을 던지며 재미를 보기 시작해 지혁도 어떻게든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졌다.


워낙 생소한 느낌이다 보니 결국 또 제구가 발목을 잡고 있었지만 말이다.


태근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거기 사람들이 말하는 게, 그 사람들은 그 공을 가끔 같은손 타자한테 겁줄 때도 쓴다고 하더라고?"

"겁을 준다는 말씀은……?"

"위협구겠지. 함부로 붙지 말라고."


타자 입장에선 상대 투수가 몸쪽 승부를 즐긴다는 것만 해도 상당한 부담에 움찔할 수밖에 없는데, 그 상황에서 자신을 향해 공이 꺾여 들어오는 것이다.


의식하게 된 타자는 어느 정도 몸을 열게 될 것이다.


"그때 이렇게 빠져나가는 브레이킹볼을 확 던지는 거지!"


오른손으로 공을 쥐고 태근은 그것을 우타자 기준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모양을 흉내냈다.


과연, 하고 지혁은 눈을 빛냈다.


지혁의 그 모습에 태근이 어떠냐며 웃고는 공을 지혁에게 던졌다.


"제구만 되면 당연히 못 써먹을 게 어디 있겠느냐만. 너 요즘 타자들이 죄다 붙어서 서잖아? 초반에는 다들 가만히 기다리고, 파울로 걷어내기만 하고. 지금보다 오래 던지기 위해서는 그것들 다 멀리 떨어뜨리고 방망이 나오게 만들면서 게임을 네가 주도할 줄 알아야 해."

"네!"


공을 받은 지혁이 다시금 그립을 확인하는 것을 보며 태근은 말을 이었다.


"이 공을 지금 당장 결정구로는 못 쓰더라도 타자들 머릿속 복잡하게 만들 수는 있을 걸? 몸만 안 맞출 수 있으면 생각도 안 하고 있을 타자한테 못 써볼 것도 없겠지. 난 던지라고 할 거다."

"결국 컨트롤이 관건이네요."

"근데 너 만날 그렇게 몸쪽 들어가면서 혹시 맞출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기는 했어?"

"거기서 고민해봤자 던져야 하는 거니까 사실…… 안 해본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맞추게 되더라도 그 생각을 꼭 유지해야 한다."


지혁은 자신의 제구가 뛰어난 편은 아니라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볼이 많은 투수는 아니었다.


사사구가 많은 것도 아니라, 특히 몸에 맞춘 것 없이 탈삼진 67개 동안 볼넷은 19개 뿐이었다.


다만 본인이 말하는 것은 사사구 같은 것이 아닌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게 되지 않으니 스스로 답답한 것이다.


사실 강력한 구위를 시종일관 유지하며 원하는 곳에 제구를, 그러면서도 긴 이닝까지 소화할 수 있는 투수는 몇 없고 그렇기에 대다수 투수들의 목표일 것이다.


지혁만의 고민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지혁의 입장에선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태어나보니 아버지가 이우진이라는 거지.'


태근으로서는 평생 알 수 없을 느낌이었다.


그런 모두의 목표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자란 만큼 그것은 지혁이 달성해야 할 최소한의 목표였다.


'뛰어 넘겠다'거나 '하고 싶은 것'이 아닌, '그 정도는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벌써 이 정도까지 올라온 것은 재능이 있더라도 정말 어마어마한 노력을 한 게 분명하겠지만, 아쉽게도 'The Pitcher'가 기준이라면 아직은 그 노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위기 순간에 한가운데에 전력을 다한 공을 던질 수 있는 배짱이 있지만, 이 아이가 선발인 이상 애초에 그런 위기를 만들지 않아야 하는 게 우선이지.'


그런 점에선 차라리 마무리 투수로서 대성할 재목일지도 모른다.


다만 본인의 목표도 팀의 바람도 그 곳에 있지 않았다.


그리고 목표로 하고 있는 선발투수라면 그런 피칭만으로는 되기 힘들다.


아무리 좋은 구위라도 코스가 나쁘다면 프로타자들은 맞출 수 있다.


이미 그걸 위해 상대팀의 타자들은 지혁을 상대할 때마다 계속해서 타석에 붙어서며 지혁을 압박하고, 쉽게 던질 수 있는 코스가 줄어드는 만큼 노림수를 좁히고 간결하게 때리는 전술을 활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선발 2경기, 점점 더 좋아지는 구위에도 불구하고 지혁은 무너졌다.


더 이상 그냥 빠른 직구만으로는 안 된다.


친다고 다 안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더 제대로 노려서 치면 안타가 될 확률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치기 어렵게 해야 한다.


태근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결정은 가서 그 사람들이랑 하겠지만, 네가 정말 쓰고 싶다면 제대로 익혀야지."

"네!"


실내 레슨장 안은 다시 우렁찬 소리로 가득 찼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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