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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on of The Pit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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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하늘해
작품등록일 :
2015.12.05 20:19
최근연재일 :
2016.03.05 18:56
연재수 :
66 회
조회수 :
58,736
추천수 :
1,345
글자수 :
284,914

작성
15.12.19 16:08
조회
774
추천
17
글자
10쪽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11

DUMMY

"겨, 결혼?"

"응. 아마도."


자신의 발언에 당황하는 인화에게 희윤은 아무렇지 않게 계속 대답했다.


"일단은 맞선인데…… 그냥 정해졌으니까 얼굴은 봐두라는 거지."

"넌 그걸 그냥 받아들이겠다고?"

"받아들이고 말고 할 게 어디 있겠어?"

"하하……!"


어디서 만든 막장 드라마이냐고, 그렇게 외치고 싶은 것을 인화는 꾹 참았다.


희윤이 어디 기업의 딸이라는 건 들은 적 있었다.


전에 딱 한 번, 본인 입으로 얘기했었다.


아들 없이 딸만 셋인 그 집은, 가업은 무조건 남자가 이어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 점을 굉장히 안타깝게 여겼다고.


그 탓에 어떻게든 유능한 남자를 사위로 들여서 이어가려 한다고.


첫째와 둘째는 집안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자신들이 집안을 물려받겠다고 열심히 하지만, 회장은 무조건 남자만을 바란다.


그래서 집안은 말도 안 듣는 위의 둘은 포기하고 막내인 희윤을 애지중지했지만, 희윤은 대학에 가서는 금새 다른 남자와 눈 맞아선 결혼을 해버렸다.


여대를 갔다고 안심했던 집안은 그대로 뒤집혔다.


그래도 희윤은 그런 자신의 지금이 행복하다고 했었다.


지금은 끝난 행복이겠지만.


"정말 할 생각이야?"

"내가 억지 부렸던 걸 몇 년이나 참아주셨어. 이제 나도 벌써 스물다섯이잖아. 나이도 이런데 몇 년 간 아무 일도 안 하고 살았던, 이혼까지 했던 여자여도 괜찮다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어떻게 또 거절해."


희윤은 그저 포기한 표정이었다.


인화는 자신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갑자기 끝이라고 선고를 받은 이 상황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고민은 됐다.


그냥 다 잊고 야구에나 집중할까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갑자기 이런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였다.


자신의 감정이 2년 동안 제자리였던 동안에도 세상은 계속 바뀌고 있었다.


그래, 그냥 처음부터 가질 수 없었던 거다.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 실패한 것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될까? 괜히 구설수도 만들지 않고 이대로 끝났으니 다행인 거 아닐까?


그러나 받아들일 수 없었다.






8


뻐억, 하고 포수의 미트에서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려왔다.


포수가 그 공에 고개를 끄덕이고 맞은편에 서 있는 투수에게 다시 공을 되던졌다.


하지만 투수는 뭐가 불만인지 그런 포수의 신호에 대응하듯 고개를 눈에 띄게 좌우로 저었다.


현재 타이푼즈 1군의 주전포수 한성구는 그런 인화의 동작에 의문을 느끼며 물었다.


"왜? 방금 거 진짜 좋았는데? 오늘 이러지 말고 내일 이러라고 하고 싶을 정도다."


어제 경기 이후 김광진의 행동이 계속 머릿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성구는 그 모든 게 다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았다.


그런 리드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잠들기 직전까지 자기자신을 책망했다.


아침에 잠에서 깬 후, 그렇다면 앞으로는 은석이 보여줬던 볼배합처럼 절대 타자가 바라는 건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성구는 경기가 없는 날임에도 경기장을 찾았다.


전력분석팀에게 부탁하여 헌터즈에 대한 데이터를 다시 받아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자료를 넘겨받고 돌아가려니 갑자기 인화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것에 구장에 있다고 대답했더니 그럼 거기서 자기 좀 상대해달라며 부탁한 게 지금 이 자리로 이어진다.


인화는 공을 글러브로 받으며 대답했다.


"안 돼. 이 정도로는 안 돼."

"네가 그러면 누가 되냐? 불길한 소리하고 있어!"


성구가 경기 전에 끔찍한 소리하지 말라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런 성구의 모습에도 인화는 사실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헌터즈도 리더스도 그냥 잡기만 해선 안 돼. 완전히 침몰시킬 거야."

"……갑자기 왜 그렇게 독기가 가득 찼어? 뭐가 됐든 올해 끝나면 나갈 거니까 몸 관리만 잘 할 거라고 했잖아?"

"헌터즈나 리더스나 방망이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팀이잖아. 하지만 그런 사람들 가득 있어봤자 일본 투수 한 명 못 이겼어. 그럼 최소한 나도 그 정도는 해야 해."

"거짓말하고 있네."


성구는 인화가 당장은 공을 던질 생각이 없다는 걸 알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도 민섭이처럼 뭐에 화난 거잖아? 자기들끼리만 좋은 선배하기냐. 두고 봐. 나도 리더스 상대로 하나 해줄 테니까. ……추웅이 형이 안 올라오면."

"지혁이 얘기 아니야."


이어지는 인화의 손짓에 성구는 다시 자리에 앉아 자세를 잡았다.


좌타자 낮은 몸쪽이라는 인화의 말에 성구가 조금 위치를 옮겼다.


공이 손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했을 땐 이미 미트로 들어간 다음이었다.


그에 맞춰 다시 한 번 기분 좋은 소리가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그렇지만 성구는 조금 아쉽다며 공을 인화에게 던지고 인화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 공을 받았다.


이번엔 제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공을 던지고 나서 인화는 다시 입을 열었다.


"……성구 너 숭남로지스틱스라고 아냐?"

"거기 모르는 사람 찾는 게 더 빠르겠다."

"하긴 그렇겠네."

"왜?"


독기 품은 눈으로 구장까지 걸어왔던 놈이 공은 안 던지고 계속 딴소리만 해대니 성구는 답답했다.


상황이 어찌 됐든 선발 전 날인데 조금 집중하라고 말할까 고민했다.


인화는 왼손 위에 올려놓은 공을 몇 번 굴리며 대답했다.


"그냥 거기 집이 딸만 셋이라길래. 그 '숭남'이 남성 숭배라서 숭남이라며."

"그거 다 소문이야. 어디 가서 함부로 그렇게 말하다간 큰일난다 너. 왜, 누가 거기 딸 소개해 준대?"

"그냥 그 소문이 진짜라면 딸만 있으니 어떤 상황일까 해서."

"딸들이 잘 해서 기업은 아무 문제없을 거라던데. 나도 주식하는 어른한테 들은 거라 증권가 찌리사 수준이지만. 아, 막내딸이 회사에 관심이 없어서 막내딸 노리고 접근하는 사업가는 조금 된다더라. 생긴 것도 엄청 예쁘다던데. ……근데 그런 얘기를 우리가 왜 신경 쓰냐? 빨리 좀 던지라고!"


'그래. 일단 내일 잘 할 것만 생각하자.'


성구의 재촉에 인화가 미안하다고 웃으며 이내 다시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던지는 공은 꾸준히 투수 기준으로 홈플레이트 왼쪽.


좌타자 기준 몸쪽 낮은 스트라이크였다.


좌타자가 많은 헌터즈를 상대로 활용해야 하는 필수 코스다.


8구 정도 주고 받았을 때 인화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일 어떻게 할 건지 좀 알려주라."

"라인업을 보고 결정하긴 해야 할 건데, 일단 지금 이 코스랑 눈에 보일 높은 직구. 오른손인 용병이랑 한병화 선배한테는 무릎쪽 커터. 거기에 타자별로 애먹어하는 변화구도 몇 개 섞고. 사실 별로 바뀌는 건 없지 나는. 투수가 뭐든 잘 던지면 리드는 그냥 정석대로만 가도 되는 건데."

"꼭 나보고 잘하라는 것처럼 들리는데."

"넌 당연히 잘해야지. 그런데 왜? 뭐 생각해둔 거 있어?"

"아니. 나도 비슷해. 그냥 그러면서 방망이 좀 잘 따라왔으면 좋겠다."

"네가 제구만 잘 해주면 못 할 것도 없지."


유인화하면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생각날 것은 당연 파이어볼러다.


평균 구속 148km/h의 패스트볼을 중심으로 타자를 압도하며 삼진을 잡아내는 강속구 투수다.


그러면서 데뷔 이후 지금까지 최소 180이닝 이상을 꾸준히 소화해주고 있어 그야말로 만화 같은 에이스 투수란 평이다.


다만 유인화 본인은 어느 정도 맞춰 잡는 피칭을 바라고 있었다.


공 3개보단 1개로 끝냈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9회 말의 위기 상황이 와도 최고의 구위를 뽐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은퇴한 팔콘스의 레전드 유진현은 유인화의 롤모델이자 존경의 대상인 것이다.


140 초반대의 구속으로 괜한 힘을 들이지 않고 타자들을 상대하다가 9회말 1점차 상황에서 수비진의 에러로 득점권에 주자 2명을 쌓아놓고 맞이한, 역대 최강의 클린업 중 하나라고 불리는 당시의 타이탄즈 클린업을 상대로 그 경기에서 처음으로 던지기 시작한 시속 150km대의 강속구.


강한 상대를 맞이하여 더 강하게, 이미 9회까지 100구를 넘긴 그 시점에서 갑자기 시작한 150km/h 이상의 강속구 연발.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인화는 그 경기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에이스란 무엇인가, 투수란 무엇인가를 보여줬던 그 경기는 유인화 야구인생의 시발점이었다.


비록 그 경기가 유진현 혼자뿐이던 당시의 팔콘스였기에 유진현이 할 수 밖에 없었던 피칭이라고 말하더라도, 그 피칭이 위대했다는 사실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다.


투수가 7회까지, 셋업이 8회, 클로저가 9회를 틀어막는 현대의 야구도 이상적이고 훌륭한 야구지만, 역시 진정한 에이스라면 한 경기를 통째로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화다.


언제나 자신의 뒤에 누군가가 있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자신 밖에 없다면 자신이 해야 하는 게 진정한 에이스라 생각했다.


"힘을 뺀다는 게 도대체 뭘까?"

"나도 아직 힘을 빼고 밀어치고 그런 게 무슨 소린지 영 모르겠더라."

"밖에 나가면 지금보다 더 말도 안 되는 타자가 득실득실할 텐데. ……잔뜩 힘줘서 던지게 되겠지."

"의욕이 가득한 고민이고만."


성구로선 알 수 없는 경지였다. 성구가 인화의 기준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해 자리를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럼 기회 봐서 조금씩 시험해봐. 미리 신호는 주고."


인화는 고개를 끄덕이고 우타자 무릎 아래쪽의 존으로 공을 꽂았다.


미트와 공이 만들어내는 경쾌한 소리가 듣기 좋게 울려 퍼졌다.


작가의말

류현진 선수가 아직 한화이글스 소속일 때, 당시 롯데의 홍대갈 트리오를 상대로 던졌던 그 공들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정확한 연도와 경기는 기억이 안 나지만, 100구 근처까지 던진 그 상황에서 갑자기 강속구를 뿌리기 시작해서 그 타선과 정면 승부를 들어가던 그 모습은 정말 에이스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 경기를 봐버리니 눈이 높아질 수 밖에.

올시즌 양현종 선수의 완투 경기였는지 완봉 경기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그 경기에서 보였던 눈빛 또한 정말 강렬했습니다. 그야말로 이 경기는 내가 끝낸다라는 그 눈빛.

조금 예전으로 가보면 비공식 노히트노런의 배영수 선수도 있었고, 선발투수는 아니었지만 비 오는 한국시리즈에서 마운드에 당당하게 서서 공을 뿌리던 ‘조라이더’ 조용준 선수도 있었습니다.

어쩌다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다른 사람에게 주목할 때 조용히 에이스의 품격을 보여주던 투수도…….


과거의 영광들이 숱하게 기록했던 연투, 완봉완투 같은 건 그 시대이기에 했어야 했던, 그 시대였기에 나올 수 있던 기록들이지만, 역시 가슴 속을 뜨겁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요즘엔 해선 안 되는 일입니다만.

가장 보기 좋고 말끔한 건 역시 선발 6~7이닝을 던지고 계투와 마무리가 경기를 말끔히 종료시키는 경기입니다. 저도 참 좋아합니다. 다만 역시 완투형 에이스에겐 홈런왕 못지 않은 위엄이 있습니다.

완투완봉의 가치가 높아진 건 요즘 그만큼 보기 힘든 탓이겠죠. 가끔 그런 경기를 보게 되면 정말 득본 기분이 듭니다.


곧 연재주기에 변경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제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사과이자 변명>

갑자기 복선도 없던 캐릭터의 뒷배경이 나오는 건 작가의 역량 부족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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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너무나 먼 출발선 - 8 +2 16.01.04 646 20 14쪽
33 너무나 먼 출발선 - 7 16.01.01 574 18 11쪽
32 너무나 먼 출발선 - 6 +2 15.12.31 547 22 7쪽
31 너무나 먼 출발선 - 5 +2 15.12.30 584 20 8쪽
30 너무나 먼 출발선 - 4 +2 15.12.29 509 21 16쪽
29 너무나 먼 출발선 - 3 15.12.28 725 23 12쪽
28 너무나 먼 출발선 - 2 15.12.25 569 18 13쪽
27 너무나 먼 출발선 - 1 15.12.24 698 21 11쪽
26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14 15.12.23 579 21 14쪽
25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13 +2 15.12.22 746 20 11쪽
24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12 +2 15.12.21 558 17 11쪽
»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11 15.12.19 775 17 10쪽
22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10 15.12.18 617 19 11쪽
21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9 15.12.17 635 18 12쪽
20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8 +2 15.12.16 660 19 12쪽
19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7 15.12.15 712 22 8쪽
18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6 (12.15 - 내용 추가) +4 15.12.14 779 21 19쪽
17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5 15.12.13 800 28 10쪽
16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4 15.12.12 855 25 8쪽
15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3 15.12.12 791 25 7쪽
14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2 15.12.11 841 28 9쪽
13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1 15.12.10 1,241 31 11쪽
12 그 투수의 현위치 - 12 15.12.09 1,047 29 8쪽
11 그 투수의 현위치 - 11 15.12.08 1,197 30 8쪽
10 그 투수의 현위치 - 10 15.12.07 1,235 31 7쪽
9 그 투수의 현위치 - 9 15.12.06 1,398 36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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