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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on of The Pit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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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하늘해
작품등록일 :
2015.12.05 20:19
최근연재일 :
2016.03.05 18:56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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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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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4,914

작성
15.12.16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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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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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8

DUMMY

지혁은 침대 정리를 마치고 자기 전에 바닥에 내려놓았던 종이 뭉치를 주워들었다.


어제 경기장을 나서기 전 전력분석팀에게 부탁해서 받은 헌터즈 타자들의 자료였다.


잠자리에 눕기 직전까지 보고보고 또 봤던 탓에 하루도 안 된 종이가 벌써 약간이지만 구겨지기 시작했다.


'그럼 역시 당장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겠지.'


모르는 것보단 알아두는 게 더 편할 것이다.


당장 은석처럼 경우에 따른 볼배합까지 미리미리 구상해둘 순 없겠지만, 적어도 포수의 의도 정도는 알고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빠른 승부' 또한 더 빨라질 수도.


월요일부터 오전 강의가 있어 이미 학교에 간 미연이 차려놓고 간 아침을 모두 처리하고, 지혁은 거실의 소파에 앉아 그렇게 다시 자료를 보는 데에 집중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으려니 방에서 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자료를 더 보고 싶었던 지혁이었던 만큼 월요일 이 시간부터 메시지도 아니고 전화부터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속으로 따지며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시간인 만큼 자고 있었다고 적당히 둘러대자 생각했다.


하지만 혹여 지금 전화하는 사람이 팀 동료들이나 코치면 큰일 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지혁은 벌떡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서 스마트폰을 집었다.


결국 지혁이 막내 아닌가.


확인해보니 지혁의 걱정과 달리 전화를 건 사람은 민정이었다.


아침부터 기자냐고 화낼 법도 한데 지혁은-문아가 알면 큰일 날- 오히려 반가운 기분으로 전화를 받았다.


민정은 항상 기자들은 일단 경계하라고 말했지만, 사실 민정이기에 지혁은 아무런 의심을 안 하는 것이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지혁 씨, 혹시 주무시고 계시던 것 제가 깨웠나요?"


민정은 평소의 활기찼던 것과는 달리 약간 피곤한 목소리였다. 조금 걱정된다.


자신의 목소리도 문아에겐 이렇게 들렸던 거 아닐까 생각하며 지혁은 대답했다.


"아뇨. 그냥 뭐 좀 하고 있었어요."

"다행이네요. 저기 혹시 이따가 인터뷰 가능해요?"

"인터뷰요?"

"네. 그 다음에 점심도 같이 할 겸. 회사가 돈 걱정 말라네요?"


점심?


얼마나 남았는지 시계를 확인해보니 정말 '이따가'다.


지혁은 자신이 그렇게 집중했었나 싶었다. 당장 떠오르는 건 없었지만.


"……역시 안 되겠죠. 너무 뻔하죠?"


지혁의 대답이 늦어지자 민정의 목소리가 조금 초조해졌다.


거부할 셈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지혁도 민정의 예상과 다를 바 없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괜히 했다가 내일 신나게 털리면 어떻게 하지?'


매번 인터넷 좀 보지 말아야지 싶으면서도 결국 보게 되는 지혁인 만큼, 그 경우 물어뜯길 생각을 하면 벌써 식은땀이 날 것 같았다.


지는 것부터 생각나고 걱정이 앞서는 걸 보면 역시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대답할 수가 없어서 시간을 끌기로 했다.


"인터뷰 목적 좀 알 수 있나요?"

"……어제 일 때문이에요."

"아~."


듣자마자 너무한다고 생각했다.


"……뻔뻔하죠. 죄송해요."


하기야 신문사 입장에선 한창 인터넷에서 핫한 만큼 가만 두긴 어려웠을 것이다.


오늘 상벌위원회까지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걸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건 별개의 문제다.


누구는 그게 원인이 되서 결국 여자 친구까지 울렸는데 그걸 돈벌이로 쓰겠다는 건 역시 탐탁지 않았다.


가뜩이나 걱정되고 억울한데.


거절하자.


"……그냥 내일 선발에 집중하고 싶다고 전해주세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저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아마 민정은 어떻게든 한소리 듣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싫은 건 싫은 거다.


이 기분 나쁨이 인터뷰의 목적 탓일지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한다는 그 특유의 느낄 필요 없는 죄책감 탓일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걸 안다고 해도 기분 나쁜 게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기분 나쁘다.


지혁은 그래도 민정이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끊을 준비를 하고 있으려니, 민정은 용건이 끝났을 텐데도 전화를 끊을 기색이 없었다.


먼저 끊는 것도 내키지 않았던 지혁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꽉 쥐어 새빨개진 오른손바닥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민정이 다시 소리를 냈다.


"저, 지혁 씨 편이에요."

"……."

"밖이나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해도 지혁 씨 편이에요."

"고마워요."

"여기는 이러고 있지만……."

"알아요."


그래도 공정하게 다 비판한다는 소리를 듣던 신문사가 김광진이나 호세 할루 같은 윈즈 선수들이 아닌 자신을 먼저 그 대상으로 삼았다고 생각하니 역시 조금 실망스러웠다.


아니, 사실 자신이 먼저는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미 윈즈쪽에도 붙었을지 모른다. 비판하는 기사도 올라갔을지 모른다.


지혁이 어제 경기부터 지금까지 인터넷을 확인해보지 않아서 확인하지 못 했을 뿐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혼자 멋대로 단정하고 거절한 건 정말 미안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역시 지금은 그냥 기분 나쁜 게 너무 큰 것이다.


혹시라도 이 인터뷰의 목적이 엄연히 정당방위였던 지혁까지 상벌위원회에 올라가게 된 것에 대한 억울함을 주장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지혁은 만일 그렇다면 민정이 그것을 먼저 얘기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 모르겠다. 그냥 인터뷰 거절한 거 가지고 난 어디까지 생각하는 거람.'


그 후 둘은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눈 뒤 통화를 끝냈다.




**




지혁이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자료를 보려고 했더니 그 다음에는 구단 프론트에서 전화가 왔다.


상벌위원회의 결과 등에 대해 전달할 게 있다는 용건이었다.


"아…… 예. 알겠습니다."

"저희도 나쁜 뜻 있어서 이런 결정한 건 아닌 거 아시죠?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아, 제대로 쉬지도 못하셨던 거 3일 동안 그냥 푹 쉬고 있으라고 김수룡 감독님이 전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예."

“그리고 리더스랑 경기할 때 나갈 테니까 알아두시라고…….”


지원팀 소속의 여직원은 이후 지혁에게 필요한 것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지혁은 통화가 종료되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스마트폰을 한동안 들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었다.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단순히 경고 정도가 내려올 거라고 생각했다.


지혁 뿐만 아니라 구단의 선수들 또한 그렇게 예상했었다.


누가 봐도 평범한 플레이를 하고 있던 걸 김광진 쪽에서 멋대로 달려온 거 아닌가?


게다가 혼자 넘어지는 걸, 지혁은 다치지 말라고 스파이크 흙털이까지 겨우 치웠다.


조금만 늦으면 광진에게 발까지 깔리고 발목을 다칠 위험까지 있었는데 말이다.


게다가 그 뒤 할루가 달려왔던 것까지 생각해보면 말 그대로 참사가 발생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


'그걸 어떻게든 다 막아낸 거잖아? 다친 사람도 안 생겼잖아? 내가 가장 위험했잖아?'


그러나 상벌위원회의 판결은 경고를 훨씬 뛰어넘은 출장정지였다.


3경기 출장정지.


실컷 생각하고 있던 헌터즈와의 게임은 이대로 날아갔다. 뭐 했던 건지 싶다.


물론 그 경기에서 같이 퇴장 당한 7명 중에선 가장 약한 판결이었다.


하지만 이게 대학 학점도 아니고 그딴 상대평가가 다 무슨 소용일까?


울컥하는 기분에 왼손으로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내팽개칠 번했던 걸 겨우 참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래도 생각보단 냉정하다고, 지혁은 스스로 그렇게 신기해하며 옆으로 쓰러지듯 소파에 누웠다.


아니 이건 냉정한 게 아니다. 그저 머릿 속이 복잡해서 화낼 순간이 미뤄지고 있을 뿐이다.


'혼자서 여기 누워 있는 게 이렇게 외로운 거였구나.'


지혁은 계속 올라오는 화를 겨우 꾹 눌러 참고 천장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뱉는 그 숨과 함께 몸에 있는 화와 열이 빠져나가는 느낌에 차분해졌던 것도 아주 잠깐. 그 빈자리에 더 큰 화가 들어찼다.


다시 들이마시는 그 공기는 모두 속에서 타오르는 열불의 땔감이 되어 그 세기만 더 키울 뿐이었다.


큰일이었다. 화를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제일 처음엔 억울했다.


다음에는 답답했다.


그 후에는 스스로에 대한 분노. 잠깐은 결심. 그리고 기분 나빠졌고, 이젠 그게 모두 섞여서 화가 됐다.


가슴 속 깊은 곳이 뜨거운 게 불이 난 것 같았다. 녹아내리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이게 위가 아프다는 느낌인가보다.


그래도 어떻게든 이미 결정된 거 받아들여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숨을 내쉬었다. 심호흡 같은 것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의도와는 다르게 속에서 타오르던 불길만 더 거세졌다.


"와…… 아……."


깨달았을 땐 두 손으로 머리를 잔뜩 헝클어뜨리고 있었다.


머리가 뜨거워지고 곳곳이 찌르는 것 같고 쑤시는 기분이라 머리를 강하게 찍어 누르고 있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조금 개운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마사지라도 됐나? 아니다. 생각이 다 정리됐을 뿐이다. 결론은 하나였다.


역시 화난다.


화가 났다는 걸 인정하니 괜히 참으면서 속 아플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지금 집에 혼자라서 정말 다행이다.'


휑하니 혼자 있는 집은 가뜩이나 외로움타기 쉬운 성격에 공허함을 느끼게 하고, 결국 힘들어서 이러고 누워있는 지금은 어제와는 달리 혼자였고 정말로 괴로웠다.


하지만 지금만은 그래도 혼자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누가 있다면 이런 모습은 절대 보일 수 없으니까 말이다.


본인이 각오했다는 길에 서서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는 걸 창피해서 누구한테 보이겠는가?


그러니까 지금, 집에 혼자 있는 지금 딱 한 번만 소리 지르자. 딱 한 번만 속 시원하게 화내자고 생각했다.


배, 가슴 속부터 느껴지기 시작한 그 타는 것 같은 그 뜨거운 화기가 어느새 목을 지나 머리에 도착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간 뇌가 녹아 버릴지도 모른다. 이 열기를 빼내려면 소리라도 질러야 할 것 같았다.


전부 다 토해내야 했다.


"후우……."


왠지 앞이 뿌옇게 보인다 싶은 시야로 천장을 계속 노려봤다.


그 상태로 숨을 몰아쉬며 들이마시며 준비한다.


머리에서 김이 난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거 아닐까 하는, 지혁은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온몸의 화를 한 곳에 꾹꾹 눌러 담았다.


참기 위함이 아닌, 단 한 번에 모두 쏟아내기 위해서.


그런 호흡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이 정도면 침착해질 것도 같은데 안 그러는 거보니 역시 답이 없다고 생각하며 입을 벌렸다.


그리고,


"왜~!"


지혁은 자신이 평생 동안 이렇게 소리를 낼 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큰소리를 내질렀다.


어쩌면 주변에 들렸을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지만, 속 시원했다.






6


「한국야구위원회 상벌위원회 결과」


한국야구위원회(총재 고본성)는 오늘 월요일 오전 10시 30분 야구회관 5층 회의실에서 상벌위원회를 개최하고 지난 69차전 타이푼즈 홈구장에서 열렸던 윈즈와 타이푼즈의 경기에서 발생한 퇴장사건에 대해 심의하였다.


상벌위원회는 타이푼즈 홈경기에서 8회초 그라운드 위에서 같은 구단 소속 선수들끼리 벌어진 폭행시비 등에 대해 리그 규정 벌칙 내규를 적용해 각자에게 그에 따른 처벌을 부과할 것을 결정했다.


오늘 상벌위원회는 이 경기에서 양팀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달려 나와 경기가 중단되는 등 스포츠 정신을 위배한 행동으로 구장 질서를 문란케 하였다고 판단하여 원인이 되는 선수에 대한 제재와 함께 감독과 소속 구단에게도 제재를 부과하였다.


처벌의 대상이 된 선수들의 이름과 부과 내역은 다음과 같다.


김광진(윈즈) : 5경기 출장 정지. 제재금 300만원. 유소년 야구봉사 활동 100시간.


호세 할루(윈즈) : 7경기 출장 정지. 제재금 500만원. 유소년 야구봉사 활동 150시간.


오장훈(윈즈) : 3경기 출장 정지. 제재금 200만원


중략


이지혁(타이푼즈) : 3경기 출장 정지


작가의말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눈이 내리고 점점 추워지는데 모두들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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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너무나 먼 출발선 - 5 +2 15.12.30 584 20 8쪽
30 너무나 먼 출발선 - 4 +2 15.12.29 509 21 16쪽
29 너무나 먼 출발선 - 3 15.12.28 725 23 12쪽
28 너무나 먼 출발선 - 2 15.12.25 569 18 13쪽
27 너무나 먼 출발선 - 1 15.12.24 698 21 11쪽
26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14 15.12.23 579 21 14쪽
25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13 +2 15.12.22 745 20 11쪽
24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12 +2 15.12.21 558 17 11쪽
23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11 15.12.19 774 17 10쪽
22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10 15.12.18 616 19 11쪽
21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9 15.12.17 635 18 12쪽
»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8 +2 15.12.16 660 19 12쪽
19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7 15.12.15 712 22 8쪽
18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6 (12.15 - 내용 추가) +4 15.12.14 779 21 19쪽
17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5 15.12.13 800 28 10쪽
16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4 15.12.12 855 25 8쪽
15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3 15.12.12 791 25 7쪽
14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2 15.12.11 841 28 9쪽
13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1 15.12.10 1,241 31 11쪽
12 그 투수의 현위치 - 12 15.12.09 1,047 29 8쪽
11 그 투수의 현위치 - 11 15.12.08 1,197 30 8쪽
10 그 투수의 현위치 - 10 15.12.07 1,235 31 7쪽
9 그 투수의 현위치 - 9 15.12.06 1,398 36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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