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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on of The Pit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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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하늘해
작품등록일 :
2015.12.05 20:19
최근연재일 :
2016.03.05 18:56
연재수 :
66 회
조회수 :
58,778
추천수 :
1,345
글자수 :
284,914

작성
15.12.13 15:44
조회
800
추천
28
글자
10쪽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5

DUMMY

3


지혁은 운전면허가 없다. 차도 없다.


집은-경기장 앞까진 아니어도- 경기장과 가까웠고 주변 시설들도 잘 갖춰진 편이라 굳이 장만하자는 생각은 아직까지 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럴 시간도 돈도 없는 것이지만.


걷던지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고, 너무 바쁘면 가끔 택시를 탄다. 엄연히 최저 연봉 근처에서 노는 선수인 만큼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 정도가 딱 좋았다.


전화를 끊고 경기장에서 나서는 순간 이미 긴급사태였다. 선택지는 택시뿐이었다.


"잘 했어요, 잘 했어! 그런 놈들은 한 번 제대로 망신을 당해야지. 어딜 남의 땅에 와가지구 행펴여 행패가!"


경기장에서-도중에 한참 붙잡혀 있었지만- 바로 나와 탄 택시의 늙수그레한 택시기사는 연신 지혁을 칭찬하고 있었다. 경기를 봤단다.


오전에 출근할 때까지만 해도 지혁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도중 한두 명은 알아봤을지도 모르지만, 딱히 지혁에게 말을 건다거나 다가오진 않았었다.


그런데 왠지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어느새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방금 팬들도 그렇고 어째서 한순간에 이렇게 됐는지 알 수 없었다.


당장 날아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불가능일이라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안다.


그저 빨리 도착하기만을 바라며 지혁은 택시기사의 말에 짧게 대답만 해줬다.


겨우 목적지에 도착하고 스마트폰을 이용해 계산을 끝냈다.


"경기장도 먼디 차는 없어?"


이 곳이 지혁의 집이라고 생각하는 택시기사는 그렇게 물었다.


"하하. 차가 아니라 돈이 없는 거죠. 운동한다 생각하고 자주 걸어 다녀야죠."


지혁은 그런 대답과 함께 재빨리 택시에서 벗어났다. 제발 빨리 날 좀 놔달라고 외치고 싶은 걸 겨우 참는 데 성공했다.


건물을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지혁 자신과의 집과는 많이 다르게 생긴 아파트다.


매일매일 사랑스럽다고 끝없이 생각하는 그녀가 사는 곳이다.


간만에 만난다고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렇게 웃으면 된다.


정말 바로 와서 장비는 가방 속에 있다.


이것에 대해 화내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지만, 이 정도는 이해해주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지혁은 가방을 둘러메고 최종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호수를 눌러 호출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렸다.


그 '늦었다.'는 무언의 압박에 지혁은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 입장하는 과정에서 다행스럽게도 주변에 사람은 없었다.


설정한 층에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크게 요동친다.


만루에 몰려도 이 정도로 떨리진 않았는데, 그런 상황과는 차원이 다른, 아니 종류가 다른 긴장감이다. 기분 좋다 생각하면 얼마든지 기분 좋아질 수 있는 그런 긴장감이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온몸으로 퍼지는 걸 느끼며 다리를 재촉했다. 심장 박동을 따라잡을 기세로 발이 바빠졌다.


문 앞에 섰다. 잠시 진정하기로 했다.


이 초인종을 누르고 자신이 왔다는 걸 알리면 이제 그녀를 만날 수 있다.


조금-아니 많이- 늦은 건 알지만, 그래도 지금의 두근거림을 행복함으로 바꾸기 위해 잠시 그대로 서 있기로 했다.


좋아, 이제 누르자.


그렇게 생각하며 초인종에 손을 뻗었다.


"애 태우게 하지 마!"

"!?"


그러나 손이 닿기도 전에 문이 먼저 벌컥 열렸다.


더 이상은 못 참는다며 문 뒤에서 나온 하얀 팔과 손이 지혁을 그대로 끌어당기고 문은 알아서 닫혔다.


갑작스런 포옹 이벤트에 놀란 지혁의 심장이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뛰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묻혀 실제로는 아주 잘 들렸을 오토락의 자동 잠금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놀라서 가만히 안겨만 있던 지혁은 겨우 조금 진정하고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을 안으며 그대로 얼굴을 파묻고는 몸을 바들바들 떠는 문아의 사랑스런 머리칼이 보였다. 좋은 냄새가 나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이다.


만지면 그 느낌이 아주 부드러워 언젠가는 질리지도 않고 하루 내내 만지작거리다가 문아가 기어코 화를 낸 적이 있다.


전화할 때 들었던 목소리가 심하게 울먹이고 있어서 우는 게 걱정됐던 얼굴은 절대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맑고 큰 눈동자도, 오똑한 코도, 부드럽고 달달한 붉은 입술도 모두 보고 싶은데 고개를 들지 않는다.


여름이 되어 짧아진 상하의를 통해 보이는 피부는 정말 하얗다. 꼭 빛이 나는 것 같다. 무심결에 손을 향하지만, 혹시라도 화낼까봐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그저 자신도 문아를 두 팔로 살포시 안았다.


아랫배부터 쭉 느껴지는 정체를 알기 쉬운 말랑함에 어딘가가 뻐근해졌지만, 그녀는 애해해줄 거라 믿었다.


한참을 그저 그렇게 안겨 있던 문아가 겨우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왠지 갑자기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더라."


달리 할 말이 없어서 그저 사실만을 얘기한다.


"미연이가 갑자기 너 올라온다고 해서 확인했더니 그건 뭔데……!"


그렇게 외치는 문아의 팔 힘이 조금 강해졌다.


느낌은 더 선명해진다. 미칠 것 같다.


그런 생각 밖에 들지 않는 자신 스스로가 너무 부끄럽다.


자신이 있는 곳은 작년 한국시리즈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지혁은 최선을 다 해 냉정해지려 노력했다.


"나도 놀랐어. 처음부터 작정하고 있던 것 같은데 그냥 당했네. 미안해."

"아냐, 괜찮아. ……그……."

"……?"


문아의 그런 대답에 지혁은 이해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고마워하고, 문아가 뭔가 달리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여 다음 대답을 기다렸다.


"그…… 러니, 까……."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망설이는 건지 지혁의 감싸고 있던 두 팔, 이어지는 손의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하며 연신 말을 늘리고 있었다.


이거 분명 알고서 이러는 거라고 생각하며, 지혁은 이젠 그저 즐기기로 하며 문아의 말을 기다렸다.


겨우 결심한 듯 말하는 문아의 목소리는 조금 커져 있었다.


"자, 자기 잘못 아닌 거 아니까!"

"……자기?"

"……."


지금 뭐라고 한 거지?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분명 지혁의 얼굴만 그러는 건 아닐 것이다.


그건 지혁이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호칭이었다.


문아의 입에서는 평생 나올 일 없다고 생각했던 단어였다.


그런 단어의 오묘한 울림이 뭔가 귀엽고, 달다.


"……이상해?"


불안한 표정으로 문아는 그렇게 물으며 겨우 시선을 올려 지혁을 쳐다보았다.


지혁의 얼굴은 어딘지 한 대 얻어맞듯 했다. 퇴장 당할 때조차 이런 얼굴은 아니었다.


문아는 역시 이런 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다시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기다리는 시간이 계속 길어지고, 오는 연락도 없고 전화도 받지 않아 문아는 혹시라도 지혁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됐다.


하도 불안해서 SNS에 혹시 목격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지혁의 이름을 검색해보니, 작년 한국시리즈가 생각날 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게시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닌가?


게다가 글의 '질'은 그 때보다 훨씬 올라간 상태로 말이다.


한국시리즈 당시가 경기 관람하는 관중들과 TV를 통해 시청하는 시청자들의 짧은 감상문 정도였다면, 오늘 올라오는 글들은 무슨 유적 답사기처럼 죄다 지혁과 같이 찍은 사진 투성이었다.


같이 찍는 사람 중 열에 아홉이 여성인.


그건 문제없었다.


지혁이, 자신의 남자친구가 프로선수인 이상 언젠가는 팬들과 이런 상황도 생길 수 있을 거라 예상했던 문아다.


조금 허세를 부리자면 분명 여성팬을 몰고 다닐 수도 있을 거라 각오했었다. 절대 불안하지 않았다.


그런데 올라온 여자들의 글을 하나둘씩 읽어보니 별 대화가 다 담겨 있는 거다.


다가가니 얼굴이 빨개졌다든지, 붙으니까 소스라치게 놀랐다든지, 지혁이 애교에 익숙하지 않다고 직접 말했다는 글까지!


'이 여자들이 대체 지혁이 잡고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넌 뭘 대답하고 있어!'


미연이나 자신의 동생, 지혁과 문아를 알고 있는 친구들에게 문아 자신이 애교가 없다는 건 질리도록 들어왔다. 문아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서로 그러고 지냈는데 갑자기 애교라니.


주변에선 알고 지낸 것만 따지면 5년이나 됐으니 가끔은 새로운 것도 필요한 거라며 부추겼지만, 문아로선 받아들일 수 없었다.


둘은 졸업 직전에서야 겨우 사귀기 시작했으나, 지혁이 해가 바뀌자마자 바로 선수생활을 시작했기에 만나는 일은 되려 사귀기기 이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그래서 문아는 언제나 익숙한 모습으로 기다리는 게 좋을 거라고 주변과 스스로에게 그렇게 변명해왔다. 지혁도 별로 그런 걸 바라진 않는다고 해왔고.


그랬으면서 자신이 보지도 않는 곳에서 그런 말을 해버리면 어쩌라는 건가?


그런 글들을 보고 있자니 결국 문아는 여태껏 무시해왔던 그것들에게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고민은 길어지고 결심은 직전까지 가서야 겨우 섰다. 허나 지혁의 반응을 보니 실패였나 보다.


'으으~~! 괜히 했어 바보야!'

"한 번만 더!"

"응?"


역시 이런 건 자신과 안 어울린다고 문아가 그렇게 후회하고 있으려니, 갑자기 지혁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외쳤다.


"……시, 싫어. 다신 안 해!"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죄를 지은 기분이었다.


자신을 떼어내더니 양어깨를 단단히 붙잡고는 그렇게 간절하게 부탁해오는 지혁을 향해 문아는 고개를 세차게 좌우로 휘저으며 강하게 거절했다.


뭔가 좋아해 하는 것 같으니 다행이다 싶었지만, 역시 그런 '짓'을 다시 하긴 싫었다.


"제발!"

"싫어!"


뭐가 이렇게 진지한지 문아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평소에 그렇게 둥글둥글하지만, 역시 남자라고, 프로운동선수라고 역시 마음만 먹으면……, 같은 이상한 생각까지 다 머릿속에서 털어낼 심산으로 문아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너무 강하게 했더니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작가의말

수정 : 2015.12.13 23:50

써놓고 보니 왠지 앞으로 그 부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적당히 쓰진 않을까 해서 공지는 잠갔습니다. 죄송합니다.

비슷한 이유로 선수 소개도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니면 줄이자고 생각했습니다.


봐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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