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기록장

A Son of The Pitcher

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일반소설

하늘하늘해
작품등록일 :
2015.12.05 20:19
최근연재일 :
2016.03.05 18:56
연재수 :
66 회
조회수 :
58,755
추천수 :
1,345
글자수 :
284,914

작성
15.12.14 23:38
조회
779
추천
21
글자
19쪽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6 (12.15 - 내용 추가)

DUMMY

"……!"


그렇게 싫다고 고개를 저으려니, 진지하게 문아를 바라보던 지혁이 갑자기 문아에게 입을 맞췄다.


문아가 놀라서 가만히 있으려니 지혁이 다시 한 번 부탁해왔다.


"한 번만 더!"

"싫다니깐!"


방금보다 더 붉어진 얼굴로 굴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방금 전부터 진지한 얼굴로 문아를 바라보던 지혁이 다시 한 번 기습을 시도했다.


"틈만 주면 꼭!"


그러나 방금 당한 걸 또다시 허용할 만큼 문아는 무르지 않았다.


지혁의 입을 손바닥으로 눌러 밀어냈다.


하지만, 지혁의 눈빛은 포기를 말하고 있지 않았다.


지혁은 자신의 입을 덮은 문아의 손을 혀로 핥았다.


"하아~! 아, 아냐! 나 아무것도…… 앗!? 하지, 마, 바보, 야…… 아!"


문아는 급히 손을 떼어놓으려 했지만, 이번엔 지혁의 두꺼운 손이 자신의 것과 비교되게 얇은 문아의 손목을 붙잡고는 남은 손으로 그대로 손바닥을 간질이기 시작했다.


언젠가 서로 손으로 장난치다가 알아버린-문아도 몰랐던- 문아의 '약점'이었다.


문아의 들뜬 숨소리에 지혁은 자신도 모르게 그 행위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시, 싫어~ 앗…… 그만…… 해!"

"대체 손바닥에 뭐가 있어서 이렇게 되는 걸까?"


결국 참을 수 없던 문아는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다.


주저앉을 번한 문아를 지혁이 재빠르게 안아 들었다.


그저 지혁에게 안긴 채로 한참을 숨만 몰아쉬던 문아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지혁의 가슴팍을 머리로 밀었다.


"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단 말야!"


하지만 힘이 빠진 것인지 그 행동은 밀어내는 것보단 강아지가 머리를 비비는 것에 가까웠다.


이럴 때는 정말 싫어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귀여웠다.


그러고는 부끄러운 듯 지혁을 밀어낸 문아는, 이내 주춤주춤 한 걸음 한 걸음 현관에서 멀어졌다.


거실로 향하는 그 걸음에 지혁도 거리낌 없이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족과 같이 사는 문아였지만, 오늘은 다들 아직 들어오지 않아 집엔 지혁과 문아 단 둘 뿐이었다.


겨우 거실 소파에 도착해 그대로 앉은 문아는 그 자세로 지혁을 노려보았다.


지혁이 자연스레 옆에 붙어 앉자 옆으로 밀어내려 했지만, 되려 더 가까워졌다.


힘도 쓰고 손바닥까지 다시 간질이는 지혁이 너무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이러려고 부른 거 아닌데……!"


문아는 반쯤은 포기하고 버티던 팔에 힘을 뺐다.


자신이 처음에 큰 실수를 했다는 건 지혁의 상태를 어쩔 수 없이 확인하며 깨달았으니까.


하지만 평소에는 그런 상태여도 자신이 정말로 싫다고 하면 그만두었었는데,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저돌적이다.


아니, 사실은 그 이유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본인이 직접 말하기 전까진 짐작일 뿐이겠지만, 역시 그것 밖에 없었다.


그 정도는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금만…….'


그 생각이 들자 문아는 다가오는 지혁을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문아를 향해 지혁이 그대로 안기고, 그 기대어 오는 무게를 이길 수 없던 문아는 그저 지혁이 이끄는 대로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응?'


그러나 여러 가지로 각오했던 문아의 예상과 다르게 이후 지혁은 그대로 누운 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문아를 끌어안은 상태로 소파에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문아 또한 팔로 지혁의 등을 감싸고 있었기에 보기에는 둘이 서로 끌어안고 누워서 그 상황을 만끽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심 지혁을 어린애 같다고 생각하며 받아주려는 문아였기에, 갑자기 이렇게 가만히 있는 지혁의 모습에 정말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는 아이를 위로하는 느낌.


그 생각에, 문아는 움직임 없는 지혁의 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안 해?"

"안 해."

"정말로?"

"응. 이러니까 좋다."


발정기인 동물처럼 문아에게 달라붙다가 받아주니 가만히 있는 게, 발정기가 아닌 그저 외로운 강아지였다.


'강아지는 나구나.'


방금 문아를 보며 강아지를 생각했었던 지혁이지만, 지금 보니 강아지는 자신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지혁은 문아의 손짓을 가만히 느끼고 있었다. 왠지 안심된다.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 들고, 갑자기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래, 그럼."


등에서 손을 더 올려서 문아는 지혁의 뒷통수를 어루만져 주었다.


아까까진 제멋대로에 힘까지 쓰던 자신의 남자치구가 지금은 정말 작게 느껴진다.


"……나말이야."

"응."


지혁이 살짝 몸을 떠는 게 느껴졌다.


우는 걸까?


그러나 문아로선 확신할 수 없었다. 자신의 남자친구는 자기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가끔 그것 비슷하게, 이렇게 약해진 모습만을 보일 뿐이다.


마운드에선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서 있는 지혁이었지만, 이렇게 아주 가끔 문아에게 약해진 듯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아니 요즘은 표현만 안 했을 뿐이지 조금 늘었을지도 모른다-.


문아로선 그게 고마웠다.


무리하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혼자 지낼 바엔 차라리 자신에게 조금이나마 털어놓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내조라고 해봐야 이 정도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문아는 그저 지혁을 꼭 끌어안았다.



**



"바보야……."


문아는 어느새 그렇게 잠들어버린 지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빠져 나갈 수도 있겠지만, 편안해 보이는 얼굴에 혹시 깰까 싶어서 움직이지도 못 했다.


은근슬쩍 가슴에 얼굴을 묻은 듯도 했지만, 이 정도는 봐주자고 생각했다.


평소라면 절대 허락하지 않았겠지만, 마지막으로 작게 내뱉었던 "잘 하고 싶다."는 그 한 마디가 너무 애잔하게 느껴졌다.


그런 소리를 하는 건 반칙이라고 생각하며 지혁의 등을 어루만졌다.


표현한 적은 없지만, 사실 지혁의 몸을 만질 때마다 느껴지는 근육의 탄력은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그래서 요즘 문아는, 만나기만 하면 달라붙으려 하는 지혁의 기분을 알게 모르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역시 아무 때나 그러는 건 받아줄 수 없지만.


그래도 바라는 게 있다면 조금은 상황을 만들고 분위기를 잡으면 좋겠지만, 역시 한창 바쁜 그에게 그런 건 기대 안 하는 게 좋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2년 동안 쉬지도 못하고 있는 지혁한테 괜한 딴생각을 하게하고 싶진 않다.


숨을 고르게 쉬고 있는 지혁을 문아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힘들면 혼자 참지 말란 말야……."


요즘 들어 계속 지쳐 보였다. 본인은 괜찮다고 하지만, 정말로 괜찮을 리가 없다.


본인의 아버지가 끝까지 말렸던 아버지가 갔던 길.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업적을 보고 비교당하며 그동안 자신이 모르는 어떤 고생들을 겪었을지.


문아 자신을 위해 그 모든 길을 각오했다고 했을 땐 솔직하게 감동했다. 평생을 아버지의 이름이 따라 다닐 게 두려워 야구를 피하던 이 남자가 말이다.


조금 소설 같은 내용이었다.


현장은 큰 기대를 안 한다고, 팬들은 아직 잘 못 알아보더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면서 웃지만, 그게 편하고 기뻐서 짓는 웃음일 리가 없었다.


잘 할 땐 'The Pitcher'의 아들이니까 당연하다고. 못 하면 애초에 큰 기대를 안 했으니까, 야구를 피한 이유가 그런 거였겠지, 연줄, 금수저라고.


5선발, 2년차, 구력도 짧고 하위 라운드.


본인을 그렇게 평가하는 주변의 시선에 지혁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 후회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난 뭘 해줄 수 있지?


그저 이러고 있는 것 말곤 정말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게 너무 안쓰럽고 안타까워서, 문아는 지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음……?"


그것에 반응한 것인지 지혁이 깨어나 버렸다.


보통 이런 전개면 세상모르고 잠들어서 푹 자는 거 아니냐고 문아는 아무에게나 따지고 싶었다.


무심결에 지혁에게 손을 댄 자신도 원망스러웠다.


대체 뭐에 긴장하길래 항상 제대로 자지도 못하는 거야. 난 잠조차 제대로 못 자게 하는구나.


그래도 문아의 생각보단 깊게 잠들었던 건지, 지혁은 눈을 뜨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이윽고 몽롱한 얼굴로 행복한 표정으로 웃으면서-문아의 몸을 베개 삼아 누워있던- 그 상황의 감촉을 즐기듯 얼굴을 잠시 비비더니, 이내 감촉의 정체를 깨닫고는 한 번 움찔하고 그대로 굳었다.


"잘 잤어?"

"……미안."


문아의 물음에 겨우 고개를 돌려 바라보며 그렇게 사과한 지혁은, 직후 자신을 보는 문아의 슬퍼하는 눈빛에 당황해서 바로 누웠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멋대로 혼자 잠들 때마다 화내던 그 모습에 지혁의 마음이 급해졌다.


화내지만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사과했다.


"미안! 진짜 미안! 일부러 한 건 아니야! 왜 갑자기 잠들었는지……!"

"알아. 괜찮아."

"……화 안 났어?"


문아의 눈치를 살피는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럽다.


그런 지혁의 행동에 문아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지혁의 목에 양팔을 감고, 그대로 끌어당겨서 이번엔 자신이 직접 위에 눕혔다.


혹시라도 역시 화가 난 상황에서 자신이 거슬리는 행동이라도 할까봐 조심하는 지혁의 모습에 지혁을 품에 묻은 채로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지혁의 움직임에 조금 간지럽긴 했지만, 지금은 나쁘진 않다.


방금 같은 상황에 보통 다른 연인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부끄러워할까? 행복해할까? 적어도 자신의 남자친구처럼 그렇게 죄 지은 표정은 아니지 않을까? 자신은 항상 자신의 연인을 긴장하게 만들었던 걸까? 마음 놓고 편히 쉴 대상이라곤 생각하지 않는 걸까?


……내가 그렇게 만든 걸까?


힘들어 하는데, 더 힘들게 하는 걸까?


"힘들지?"


지혁이 가만히 있을 때까지 그저 끌어 안고 있다가, 문아는 그렇게 물었다.


지혁은 잠시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안 힘들어."


그런 지혁의 대답에 문아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보이기 싫어, 문아는 지혁의 머리를 더 꼬옥 안았다.


행여나 목소리로 눈치챌까봐, 어떻게든 억누르며 소리를 낸다.


"힘들잖아……."

"아니야."

"힘들잖아!"


그만 소리 지르고 말았다.


그 바람에 감정이 격해져 소리 내서 울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입술을 깨물어 겨우 참으며, 문아는 대답하지 않는 지혁을 향해 어떻게든 말을 이어갔다.


"나, 잘 모르겠어……. 네가 얼마나 힘든지.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소리 내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문아의 상태는 모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혁은 자신의 무능함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 어금니를 깨물 것만 같았다.


문아가 왜 울어야 하는 거지? 못난 건 난데?


지혁은 문아의 품에서 벗어나, 그대로 문아와 시선을 맞췄다.


눈물이 고인 그 눈동자를 보고 있으려니 속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에 대한 분노도, 문아에 대한 슬픔도 어떻게든 속으로 삭히며 지혁은 최대한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 정말로 하나도 안 힘들어. 내가 그 때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너랑 있지 못할 테니까. 난 행복해. 정말로 하나도 안 힘들어."

"또 거짓말……!"


그런 지혁의 대답에 문아 또한 속상했다. 다 아는데,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


지혁은 손으로 문아의 눈가를 닦아내며 다시 한 번 말했다.


"정말. 정말이야. 이렇게 문아 너랑 있잖아. 내가 바랬던 대로 된 건데 반대로 행복하지."

"또 말은……."

"정말로 행복해."


결정한 순간 각오했었다. 사람들을 돌아보게 하겠다고, 모두가 이우진이 아닌 이지혁을 보게 하겠다고 결심했었다.


그 모든 각오는 오로지 문아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이제야 깨달은 감정을 이렇게 허무하게 끝내기 싫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아버지든 아버지의 이름이든 주변이 뭐라고 하든 다 상관없다. 모두 얻어내 보이겠다.


그렇게 결심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다.


비록 아직 별 관심과 믿음 없는 5선발일 뿐이지만, 자신은 분명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올라갈 것이다.


오늘은 분명 어이없는 모습에 지금까지 그저 그런 투수였지만, 이대로 끝내지 않을 것이다.


자리는 분명 보장됐다. 어떻게든 보여주자.


"……정말로?"

"응."


문아가 자기 말을 믿는 것인지, 아니면 또 자신의 고집에 못 이겨 이렇게 포기하는 것일지 지혁으로선 알 수 없다.


하지만 일단 오늘은 이렇게 넘어가려는 것 같으니 다행이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혁 스스로 판단할 때 자신에겐 분명 투수의 자질 중 하나인 평정심이 부족했다.


원래 본인은 그렇게 부족하다는 생각은 한 적 없었지만, 최근 들어 문아가 종종 오늘처럼 불안한 눈빛을 보내기 시작하자 아무래도 조금 티가 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역시 작년에 어떻게든 다리에 힘을 줬어야 했다고, 지혁은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후회했다.


그때부터 언론에서 왠지 지혁의 그 모습을 '열정', '노력'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하더니 왠지 못 할 때마다 동정표가 따라붙기 시작한 것이다.


못 했다고 놀리는 기분이라 솔직히 좀 그렇다.


어쨌거나 못 한 경기는 못 한 거니까, 다시는 이런 일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제발 팀원들도 언론들도 사람들도 그런 불쌍한 눈빛 좀 보내지 말라고 생각하며, 그게 더 노력하자고 꼭 성공하자고 다시 한 번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다만, 그런 눈빛은 참을 수 있는데 여자 친구인 문아가 슬퍼하는 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자신이 못났다는 느낌이 들어버려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게다가 왠지 요즘 솔직히 부쩍 지치기 시작했는데, 선수들끼리 서 있을 땐 티가 안 나는 것 같은데 문아는 보기만 하면 그걸 알아버리는 눈치였다.


그럴 때마다 지혁이 혼자 괴로워하는 건 아닐지, 힘들어하는 건 아닐지, 자신 탓에 그런 선택을 한 걸 후회하면 어쩌지 하면서 안타까워하는데…… 이게 남자친구로서, 남자로서 무척 괴로웠다.


엄연히 남자라면 여자 친구인 문아 앞에선 더 강해보이고 싶은 법이니까.


어쨌거나 지금 자신의 생활에 정말 괴로울 만큼 힘든 일은 없고, 지금처럼 문아와 붙어 있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행복과 안도에 지혁이 그렇게 웃으면서 문아를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문아는 별안간 지혁의 목에 팔을 감으며 입가의 미소와 함께 도발적인 시선을 보내왔다.


울음의 흔적은 조금 남아 있었지만, 자신은 그런 적 없다는 것처럼 당당한 모습이었다.


.평소 자신의 연인에게 힘든 모습을 안 보이려고 하는 건 문아도 피차 마찬가지였던지라,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본인이 울었다는 그 사실을 어떻게든 지우고 싶은 것이다.


"정말로 행복해?"


지금의 이 말은 여태까지의 그것들과는 다른, 자신으로 인해 행복하다는 지혁의 그 말을 책임지고 증명해보라는 일종의 명령에 가까웠다.


"물론이지!"


그렇게 말하며 지혁은 문아를 두 팔로 번쩍 들어올렸다.


그런 지혁의 행동에 문아가 작게 비명소리를 냈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지혁은 지금 이 상황이 가끔 오는 '허락'의 신호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 사랑스런 도발에, 지혁은 기꺼이 걸려들기로 했다.






4


경기가 없는 월요일이지만, 수룡은 오늘도 일찌감치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에는 아침잠이 사라지는 자신의 모습에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이 낯설었지만, 이제는 익숙했다.


어느 날의 기상 때와 같이 똑같은 천장을 잠시 바라보곤 좌우로 몸을 뒤척였다.


혹시나 갑자기 일어나서 발생할지 모르는 각종 참사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수룡만의 기상 습관이었다.


몸이 잘 풀린 것을 느끼며 수룡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고 거실로 나왔다.


집의 구조는 여타 아파트와 비슷하다. 아마 과거 인화가 살았던 집과 지금 지혁이 살고 있는 집, 여타 다른 젊은 선수들이 살고 있는 집과도 비슷한 구조일 것이다.


자식들도 독립하고 아내도 먼저 보내고 나니 더이상 큰집에서 살 필요가 없어 대강 작은 빌라에서 살던 수룡에게, 건설업체를 모기업으로 두는 구단의 감독이 그런 집에서 살게 할 순 없다며 구단 모기업이 직접 마련해준 곳이었다.


기본적으로 여러 채 만드는 아파트다보니 다른 선수들과 다를 바 없는 집 구조였지만, 그 넓이만은 비교할 수 없었다.


그 탓에 별로 놓은 것 없는 이 집이 더욱 휑하게 느껴지는 수룡이었지만, 이제는 그것도 적응됐다.


뭐든 결국 시간이 약인 법이었다.


그런 인생의 간단한 진리를 새삼 떠올리며, 수룡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아직 8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아마 받을 것이다.


역시나 예상처럼 금방 전화를 받은 상대방은 이른 아침인데도 쌩쌩한 목소리였다.


"아이고, 감독님. 무슨 일로 전화하셨습니까?"


반갑게 맞아주는 단장의 목소리가 제법 믿음직했다.


"필요한 것이라기 보단 조금 어려운 부탁이 있습니다. 해주셨으면 하는 거."

"아……, 그 트레이드 건이라면 아직 얘기가 잘 안 된다는 것 같은데……."

"그 쪽은 그저 정말로 해주시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거 없냐고 인사치레로 물었을 때 한 번 장난삼아 뱉었을 뿐인데, 정말 일을 진행시키고 있어서 수룡은 나름 놀라고 있었다.


게다가 더 대단한 건 그 이야기를 그 구단에서 당장 거부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문제이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직접하는 건 아니지만, 직원들 표정을 보아 아마 지금 문제보다 어려운 건 없을 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시죠."


정말 바라고 한 부탁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자신이 입만 다물고 있으면 정말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수룡은 처음의 목적을 말했다.


"하하……!"


수룡의 말을 들은 단장의 허탈해하는 웃음소리가 잠시 수룡의 스마트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수룡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난 다음에는 수룡의 뜻을 이해했다며, 단장은 걱정말라고 당부했다.


"네. 그렇게 하도록 해보겠습니다. 어차피 프론트야 악의 축 아니겠습니까? 다만, 이게 역시 기업의 이미지와도 연관됐다 보니……. 당장 2년 전에 사건 탓에 한 번 이미지 크게 손실돼서……. 아, 저희도 루머인 건 압니다. 물론!"

"그렇다면 뭐 저를 나쁜 놈 만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이젠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아니, 그럴 리가요! 작년 준우승팀 타이푼즈의 감독님 이미지가 어째서 나쁘겠습니까?"


단장은 그런 수룡의 대답에 식겁해서 말을 끊어버렸다.


항상 프론트의 입단속을 철저히 하려하고 직원들에게도 신신당부하는데 대체 어디서 만날 정보가 새는 건지.


자신들의 움직임을 빤히 보고 있는 듯한 수룡의 언행은 가끔 천리안이라도 갖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수룡은 그런 단장에게 다시 한 번 부탁했다.


"어쨌거나 될 수 있으면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예. ……말씀하셨던 두 가지 방법 중 한 쪽으론 어떻게든 될 겁니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예. 이번 주 건승 기원하겠습니다."


작가의말

물론 이제 2년차에 막 키우기 시작한 신인에게 당장 성적을 기대할 리는 없습니다. 그것에 관해선 ‘그 투수의 현위치’에서도 언급했었죠. 그걸 선수가 어떻게 이해하는지도.

물론 이것 모두 지혁이 스스로 벌인 일입니다. 이제 프로니까요.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만일 정말 힘들어도, 힘들다고 포기하면 붙잡아줄까요? 물론 활용도가 있기에 코치진은 아까워하면서 어떻게든 다시 쓸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선수들 입장에선 어디까지나 갑툭튀니까요.

어쩌면 제대로 야구하지도 않던 선수가 갑자기 강속구를 뿌리고 1군에 들어가버리는 걸 보고 자신의 모습에 의욕이 꺾이는 선수도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정도 멘탈이면 프로는 그만둬야겠지만 말입니다. 재능이건 뭐건 실력 아니겠습니까. 요즘 노력이란 말이 많이 퇴색되고 비꼬아지고 있긴 하지만, 사실 10:1의 경쟁률을 뚫은 드래프트의 ‘선택받은’ 선수들은 모두 재능과 실력, 천재성을 따졌을 때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들일 겁니다. 야구에서 모두들 한가닥한다는 사람들이었겠죠.


이지혁도 억울할 겁니다. 자신의 모든 노력이 그저 아버지 ‘The Pitcher’ 이우진의 이름에 가려 물려받은 재능이라고 폄하 당하니까요. 못하면 망신이고 잘 해봐야 아무도 박수쳐주지 않는.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는 이미지가 있기에 당장은 몇 번 까방권을 갖고 있습니다만, 이게 길어지면 그냥 한 때의 플루크 취급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유전자가 아깝다는 말까지 나올지도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A Son of The Pitcher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8 너무나 먼 출발선 - 12 +2 16.01.08 632 16 9쪽
37 너무나 먼 출발선 - 11 +2 16.01.07 638 18 11쪽
36 너무나 먼 출발선 - 10 +4 16.01.06 513 17 12쪽
35 너무나 먼 출발선 - 9 +4 16.01.05 536 17 9쪽
34 너무나 먼 출발선 - 8 +2 16.01.04 646 20 14쪽
33 너무나 먼 출발선 - 7 16.01.01 574 18 11쪽
32 너무나 먼 출발선 - 6 +2 15.12.31 547 22 7쪽
31 너무나 먼 출발선 - 5 +2 15.12.30 584 20 8쪽
30 너무나 먼 출발선 - 4 +2 15.12.29 510 21 16쪽
29 너무나 먼 출발선 - 3 15.12.28 725 23 12쪽
28 너무나 먼 출발선 - 2 15.12.25 569 18 13쪽
27 너무나 먼 출발선 - 1 15.12.24 698 21 11쪽
26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14 15.12.23 579 21 14쪽
25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13 +2 15.12.22 746 20 11쪽
24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12 +2 15.12.21 558 17 11쪽
23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11 15.12.19 775 17 10쪽
22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10 15.12.18 617 19 11쪽
21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9 15.12.17 635 18 12쪽
20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8 +2 15.12.16 660 19 12쪽
19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7 15.12.15 712 22 8쪽
»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6 (12.15 - 내용 추가) +4 15.12.14 780 21 19쪽
17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5 15.12.13 800 28 10쪽
16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4 15.12.12 855 25 8쪽
15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3 15.12.12 792 25 7쪽
14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2 15.12.11 842 28 9쪽
13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1 15.12.10 1,241 31 11쪽
12 그 투수의 현위치 - 12 15.12.09 1,047 29 8쪽
11 그 투수의 현위치 - 11 15.12.08 1,197 30 8쪽
10 그 투수의 현위치 - 10 15.12.07 1,236 31 7쪽
9 그 투수의 현위치 - 9 15.12.06 1,399 36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