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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on of The Pit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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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하늘해
작품등록일 :
2015.12.05 20:19
최근연재일 :
2016.03.05 18:56
연재수 :
66 회
조회수 :
58,773
추천수 :
1,345
글자수 :
284,914

작성
15.12.09 20:31
조회
1,047
추천
29
글자
8쪽

그 투수의 현위치 - 12

DUMMY

그 생각에 몸을 떨고 있으려니 카메라가 갑자기 덕아웃에 앉아 있던 유인화를 비추기 시작했다.


지혁은 방금까지의 괴로운 생각은 잊기로 하고 그저 인화를 바라보았다.


"부럽다~!"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외쳤다.


유인화는 요즘 보기 드문 완투형 에이스다.


데뷔 시즌에 180이닝, 그 후 꾸준히 190이닝쯤을 소화하더니 2년 전부터는 아예 최소 200이닝은 던진다.


그야말로 한 경기를 홀로 던질 수 있는 투수로 올해는 '유인화=퀄리티 스타트'라는 공식을 세우더니 벌써 100이닝을 지척에 두고 있다.


팀은 이제 69번째 경기를 끝내고 있고 지혁은 겨우 60이닝을 소화했는데 말이다.


정말 위대한 투수였다.


"부러워?"


아무도 없다 여기고 홀로 아무렇게나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불쑥 누가 그렇게 말을 걸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투수조의 고참이자 팀에서도 고참인 은석이 웃으면서 지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으, 은석 선…… 아니, 형!"


선배의 '선'자가 들리자마자 은석의 표정이 안 좋아지려 해 곧장 호칭을 바꿨다.


그런 지혁의 재빠른 상황 판단에 은석은 다시 만족한 듯 웃는 얼굴을 보였다.


"그래, 그래. 형이야 형. 호승이 형이 형인데 당연히 나도 형이어야지."


그렇게 말하면서 은석이 지혁의 옆에 앉아 지혁도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대로 TV를 보기 시작해서 지혁도 그저 같은 화면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그러기만 하고 말이 없어서 지혁이 먼저 말을 해볼까 결심했더니 은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는 여자 강사 없니?"


이 고참도 딸바보였다.


"죄송합니다."


유도 인맥을 넓힐 노력을 하지 않은 탓에 오늘만 2번째 같은 문제로 사과를 하게 됐다.


"아니, 그냥 해본 말이니까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비슷한 대화에 비슷한 대답. '그냥 없다고만 툭 말할 순 없지 않느냐.'는 대답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려고 했으나 그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는 자신을 알기에 지혁은 그저 다시 꿀꺽 삼켰다.


다시 대화가 끊기고 TV에선 민섭이 9회초 첫 번째 타자를 투수 땅볼로 잡아내고 있었다.


대승까지 아웃카운트는 이제 2개가 남았다.


화면 속 민섭의 파이팅 넘치는 모습에 은석이 흐뭇한 표정을 하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더 오래 던지고 싶은 거지?"

"네."


잠시 민정의 충고가 떠올랐지만, 기자가 아니니 괜찮을 거라 생각하며 그저 그렇다고 대답했다.


누군가에게 들었을지 아니면 자신이 "부럽다"고 말한 걸 갖고 그렇게 판단한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어느 쪽이든 지혁이 오래 던지고 싶은 건 사실이었다.


경기는 민섭이 2번째 아웃카운트를 몸쪽 삼진으로 잡아내며 종료를 코앞에 두었다.


"……."

"……."


무슨 좋은 조언이라도 해주는 걸까 기대하며 지혁은 은석의 이어질 다음 말을 기대했다.


허나 은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경기 종료까지 남은 건 스트라이크 단 하나였다.


"느낌이 올 거야."

"……어떤 느낌인가요?"


그대로 경기가 끝날 줄 알았더니 갑자기 타구가 불규칙 바운드라고 해야 할 움직임을 보이며 민섭의 발 앞에서 하늘을 향해 튀어 올랐다.


끝낼 수 있던 상황이 그런 불운으로 인해 타자의 출루로 이어지자 민섭은 자책하는 표정으로 마운드를 두들겨 밟았다.


그러나 직후 무언가에 놀란 듯 급히 주위를 둘러보더니 갑자기 밝게 웃고는 왼손에서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펴 주변을 향해 무어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2아웃의 사인은 확실했다.


"그렇지, 그거야."


은석은 민섭의 그 모습을 칭찬하고 말을 이었다.


"야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지만, 팀끼리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거?"

"그럼……?"


'팀이 있다.'는 말은 종종 듣곤 했지만, 이런 말은 처음이었다.


이해 못한 지혁이 그 의미를 물으려 했지만, 은석은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듯 일어서서 가봐야겠다며 라커룸을 나섰다.


"어쨌든 무리하지 말고!"


TV에선 민섭이 후속 타자를 또다시 몸쪽 삼진으로 돌려 세우고 마운드 위에서 포효하며 경기를 끝내고 있었다.


그 경기는 타이푼즈의 40승, 은석의 5승, 1위와의 게임차를 3게임으로 줄이며 대승으로 끝났다.


MVP는 3홈런 6타점의 박호승. 홀드와 세이브는 없었다.




15


경기 종료 이후 갖는 짧은 승장 인터뷰.


타이푼즈의 감독 김수룡은 카메라 앞에 섰다. 방송팀이 건네주는 헤드셋을 착용하고 아나운서가 옆에 서서 마이크를 수룡의 가까이 들었다.


중계진과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먼저 스윕과 4연승 축하드립니다.]

"예. 감사합니다."

[2위 헌터즈와 1위 리더스가 오늘 모두 패하면서 타이푼즈와 리더스의 게임차가 3게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다음 주에 있을 헌터즈와 리더스, 두 팀과의 경기가 기대되는데요.]

"예. 좋은 결과를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연승이 시작됐습니다. 혹시 오늘의 4연승이 다음 주 저녁엔 10연승이 될 수 있을까요?]


해설위원의 그 질문을 인터넷 방송을 통해 들었는지, 가지 않고 남아서 인터뷰를 지켜보는 팬들의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그 질문과 팬들의 반응에 수룡은 사람 좋게 웃고 어려운 얘기라고 대답했다.


"아직 시즌 반도 안 지났습니다. 너무 무리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그래도 1위가 가시권에 들어왔는데 선수들의 의욕은 상당할 것 같은데요? 잠시 후 인터뷰하겠습니다만, 오늘 MVP로 선정된 박호승 선수는 대단한 타격감을 선보였습니다. 고참으로서 주장으로서 훌륭한 모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하, 위원님 그건 박호승 선수에게 해주셔야…….]

"다음 주에 무리해서 이긴다고 정규시즌을 우승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정말 제대로 걸어야 할 경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수룡의 대답에 팬들이 괜히 또 그런다며 너나 할 것 없이 곧바로 “에이~!" 하는 반응을 보였다.


모두들 경기 중 해설위원의 말도 있었으니 감독 또한 분명 의욕이 있는데 드러내지만 않는 것이라 여기고 있는 것이다.


허나 수룡은 진지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럼…… 다음 주 첫 경기 선발로 예상됐던 이지혁 선수를 오늘 8회에 내보낸 이유는 무엇인지 여쭤도 될런지요?]


다시 관중들이 환호했다.


그들은 그걸 분명 다음 주 경기에 유인화를 2번 기용해 더 많은 승을 챙기려는 의도였다 믿고 있었기에.


수룡의 의도 또한 그것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다고 대답할 순 없었다.


그 의도로 인해 오늘 만들지 않아도 될 상황을 한 번 만들고 말았다.


만일 자신이 민섭을 믿고 민섭을 기용했다면 절대 그따위 얄팍한 수에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다음 경기 선발을 위해 구위 점검 차원에서 같이 던지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7회가 끝나고 이은석 선수로는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다 판단했습니다. 만루에서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준비 시켰던 게 박민섭 선수였지만, 당장 이은석 선수가 알아서 위기를 넘기고 나니 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선수를 제대로 믿고 기용하지 못한 제 불찰입니다. 오늘 김광진 선수가 몸쪽 공에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박민섭 선수를 믿고 기용했다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던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이 선수를 믿어주지 않아 팬분들에게 오늘 안 좋은 모습을 보이게 되어 굉장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예…….]


팬들이 조용해졌다.

긴대답이었다.

묻지도 않았던 부분까지 알아서 대답했다.


허나 시간상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경기 후의 생방송이었지만, 그 누구도 그 대답을 끊지 않았다.


진심이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꼭 필요했던 대답이었다.


슬슬 박호승의 인터뷰로 넘어가야 한다는 방송팀의 사인에, 해설위원은 마지막이라며 질문했다.


[그럼 다음 주 화요일 경기 선발은 누구입니까?]


수룡은 목소리에 또박또박 힘을 주어 대답했다.


"이지혁 선수입니다."


작가의말

 <인물 소개 ─ 이태화>

 나이 : 28

 포지션 : 외야수(주로 중견수) (우투좌타)

 신체 : 190cm, 85kg

 소속 : GJ 타이푼즈

 등번호 : 7


 올해 FA로 타이푼즈로 이적한 전 헌터즈 소속 외야수. 리그 정상급의 주루 센스와 더불어 경이로운 수비 범위를 자랑한다. 어깨 또한 강견. 

 공격에선 3할의 타율과 20홈런의 파워를 겸비하며 지금까지 4시즌 동안 20-20을 달성했다. 주력에 비해 확실하게 필요한 상황이 아닐 경우 무작정 뛰는 타입이 아니라 도루 개수는 그렇게 많지 않으나 압도적인 성공률로 인해 출루를 허용해선 안 될 타자 중 1순위로 손꼽힌다.


 헌터즈 시절부터 팀을 이끄는 돌격대장으로서 국가대표의 경험도 있다. 최근 아시안게임의 우승으로 병역을 면제 받았다.


 작년 타이푼즈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헌터즈 소속으로 경기에서 패하고,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된 순간 보인 헌터즈 선수들의 아무렇지 않아 하는 모습에 이적을 결심했다. 언론과의 인터뷰상에선 그저 타이푼즈의 기백에 반했다고만 밝혔다.

 그렇기에 우승을 매우 갈망하는 타자 중 한 명으로 올시즌 가장 일을 낼 것 같은 선수를 선택하라고 하면 타이푼즈의 선수들은 다들 주저 않고 이태화를 지목한다. 우승을 코앞에서 놓친 자신들보다 더 우승하고 싶어 하는 태화의 모습에 덩달아 다시 힘을 내는 선수들도 늘어 여러모로 긍정적인 FA 사례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이다.


 조금 잘 놀 것 같은─잘 생긴─ 외모에,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신다는 목격담이 심심하면 올라오곤 해서 종종 선수로서의 자세에 문제가 있다는 질타를 받곤 한다. 허나 본인은 술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사고를 친 적은 없으며 그렇게까지 마시는 건 다음 날 경기가 없을 경우라고 밝히며 억울해한다.

 본인은 그런 이미지 탓에 솔로 생활이 길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으나, 사실 정말 술 마시는 것 말곤 야구 밖에 안 하는 탓에 인간 관계가 좁은 게 원인이다. 술을 마신 날이면 자기 전 홀로 스윙 연습을 하고 자는 의외의 연습 벌레.


 알게 모르게 지혁의 여동생인 미영에게 마음이 있으나 나이 차이가 있어서 표현하진 않는다. 또한 마음을 표현한다고 해도 당장 아버지인 이우진이 술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기에 반 이상 포기하고 있는 편.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투수의 현위치 편은 이것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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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3 15.12.12 792 25 7쪽
14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2 15.12.11 842 28 9쪽
13 누구를 위한 함성인가 - 1 15.12.10 1,241 31 11쪽
» 그 투수의 현위치 - 12 15.12.09 1,048 29 8쪽
11 그 투수의 현위치 - 11 15.12.08 1,198 30 8쪽
10 그 투수의 현위치 - 10 15.12.07 1,236 3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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