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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 님의 서재입니다.

초인의 세상에서 범인이 할 수 있는 것.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ITE
작품등록일 :
2020.05.19 20:08
최근연재일 :
2020.06.30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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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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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3,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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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7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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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범죄조직 (6)

DUMMY

한희그룹이라고 이름을 대는 범죄조직 녀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공권력? 다른 조직?

둘 다 아니다.


공권력엔 뇌물을 먹여 자기들 뜻대로 움직이는 것까진 아니라도 최대한 편의를 봐주는 정도는 되며 내게 습격당해 정보를 술술 불던 녀석이 어느 조직이건 넌 끝장났다고 하는 것을 보아 다른 조직을 성가셔하긴 해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 이 녀석들은 두려운 게 없는가?

그렇지 않다. 적어도 높으신 분들에게 뇌물을 처 먹이고 들키지 않게 조심조심 운영하는 것을 보면 자신들의 행위가 더럽다는 자각과 무언가에 대한 경각심이 있다.

애초 나를 회유하려고 했던 것을 보면 적어도 세상에 자신들이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다.

적어도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물론 불법적인 조직이 자신들을 드러내고 싶지 않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초인들까지 착취할 정도로 담 큰 조직이 고작해야 사람들의 비난을 두려워할까?

일반인들에게 들킨다 해도 한동안 잠적하며 조직이 와해 되었다는 소문을 흘리거나 최악의 경우 거점을 옮기면 된다.

세상에 알려질 경우 수사기관도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겠지만, 찔리는 게 있는 높으신 분들이 이놈들을 순순히 잡히게 두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 놈들이 두려워 하는 건 뭘까.

답은 아주 간단하다.


초인이다.


초인을 착취하는 그들이 제일 두려워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초인인 것이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괴물들.

막말로 용감한 일반인이나 경찰, 형사, 법조계 관련 인물들이 있다고 쳐도 하려고 마음 만 먹으면 어떻게든 처리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초인은 그게 불가능하다.

다수의 폭력이 통하지 않는 것은 물론 역으로 그들 전체를 쓸어버릴 수도 있는 초인.

그 중에서도 돈에 아쉬울 것 하나 없는, 긍지와 신념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상위권의 초인들은 이놈들에게 천적이나 다름없다.

더군다나 좋지 못한 처지의 초인을 착취하고 있는 입장에서야 더욱더 유명 초인들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초인들도 일단은 시민이다.

민간 초인의 경우 공권력을 이용해 어느 정도 제지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초인부의 초인이라면?

높으신 분들의 압력이 통하는 것도 어느 정도의 일이다.

출동허가를 막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만 초인들의 행동을 완전히 제약하기란 불가능하다.

초월적인 힘에다가 높으신 분들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권한마저 가진 것이 초인부의 상급 초인이다.


평소에야 알게 모르게 다른 부서가 초인부가 더 커지지 않도록 압력을 넣겠지만, 초인 측에 명분이 생긴다면.

같은 초인이 착취 당하고 있다는 일이 생긴다면 그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애초 초인부의 설립 목적 자체가 초인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념이 있으니까.

아니, 이념 이전에 갑자기 얻은 강대한 힘으로 배척받고 소외된 초인들이 삶을 되찾기 위해 모인곳이 초인부다.

이런 행위가 들킨다면 절대 가만히 둘 리가 없다.

지금까지는 민간 초인들의 착취 사실을 모르고 낮은 등급의 초인들이 약간 눈치를 챈 정도여서 그냥 넘어갔으나 이천웅 정도의 초인이라면 초인부의 상층부에 속한다.

조직을 뿌리 뽑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말은 길었지만, 요악하자면 성명재를 비롯한 이 깍두기들은 이제 완전히 망한 셈이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 거리며 이천웅에게 눈이 못박혀 있던 성명재가 고장난 기계처럼 끼기긱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초인부의 뱁새라 불릴 정도로 멸시 당하던 놈이 대체 어떻게?"


거기까지 조사했었나.

이런 놈들까지 내 흑역사를 알고 있으니 입맛이 썼다.

어쨌건 대답해줄 의리는 없다.


"앉으시죠."

"......"

"귓구멍 막혔습니까?"

"크윽...이 자식이...!"



불끈하여 화를 내려던 성명재였으나 이천웅이 초인력을 더욱 개방시키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무릎이 꺾였다.

수치심에 이를 악무는 성명재. 그래봤자 니가 어쩔건데?

하지만 어딜가도 사태 파악을 못하는 멍청이는 꼭 있는 법이다.

아까 쓰러진 깍두기들 중 한 명이 주섬주섬 일어나더니 권총을 뽑은 것이다. 아니, 이 시기의 한국에서 이렇게 쉽게 나올만한 물건이 아닌데?

황당해서 쳐다보는데 이천웅이 나섰다.


"총기 불법 소유 죄목 추가군.."

"사태파악이 안 되냐? 덩치?"


아니...그건 너 같은데.

지금껏 초인들을 마음껏 부리고 하대한 탓일까.

초인들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망각한 것 같았다.



"총 내려놔."

"지랄! 바람구멍 나기 싫으면 엎드려 새꺄!"


후우. 이천웅이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예전에 같은 초인부라서 아는 건데, 저 인간이 저러는 것은 꼭지가 돌았다는 뜻이다.

순간 저 깍두기의 머리와 몸이 분리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천웅은 가까스로 참는 듯 싶었다.



"쏴 봐라."

"뭐?"

"한 번 기회를 주마. 쏴 봐."



어벙벙한 표정을 짓던 깍두기의 표정이 이내 사나워졌다.


"이 새끼가 미쳤나! 그래! 원한다면야!"

"야! 총 내려놔!"


그제야 성명재가 다급히 나섰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타앙!

소음기도 없어서 고막을 찢을 듯한 총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팅. 데구르르.


그리고 이천웅에게 맞은 탄환은 찌그러져 바닥에 아무렇게나 구르고 있었다.


"......"

"간지러운 수준조차 아니군."


이천웅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실제로도 간지러운 수준조차 아니겠지. 그는 딱히 허세를 부리거나 하는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자신의 특수 능력도 발휘하지 않은 순수 육체만으로 저 지경이다. 내가 알기로 총알 세례와 미사일을 맞아도 끄떡없는 인간이 저 인간이다.


"총 내려놔라."

"으아아아아!!"


겁 먹은 걸까. 총을 마구 난사하려는지 다시 이천웅에게 총을 겨누는 깍두기. 이천웅은 쯧 혀를 차더니 손을 뻗어 번개같이 총을 뺏은 후 아무렇게나 구겨버렸다.

그리고 보디블로우.

대번에 허리와 무릎을 꺾어 엎드린 깍두기가 꺼억 꺼억 토했다.


"난 지금 기분이 좋지 않아. 더 한다면 목숨은 없을 줄 알아라."


말끝에 초인력을 한없이 끌어올린 탓에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분노가 향하고 있지 않는 나도 이런 압박을 느끼는데 깍두기들은 오죽하랴 싶었다.

권총 믿고 까불던 놈은 죄송합니다 형님...이러고 있고 나머지는 안색이 창백해진 채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상대로 군림해왔던 그들이 이렇게 아이처럼 다뤄진 게 얼마만이랴?


"범인 씨. 일 보십시오."


갑자기 나한테 화살이 돌려져 깜짝 놀랐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나도 쫄린다.


"그럼 성명재씨. 우리 들어야 할 게 많은 것 같군요."

"...후우. 어쩔 수 없군요."


다 포기한 듯한 어투로 성명재가 소파에 앉았다.

그와 거의 동시에 나는 모방스킬로 송혁진의 힘을 카피했다.

송혁진은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모방할 수 있었기에 매우 편리한 모방 대상이다.

이제부터 거짓말을 하면 감지스킬로 얼마든지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우선 당신들이 감금한 초인들의 위치를 알려주시죠."


성명재가 장소를 말했고 이천웅이 전화를 걸어 그 장소로 가도록 지시했다.

장소는 거짓말이 아니다.


"당신네, 한희그룹의 규모와 지금까지 했던 불공정 계약, 그리고 초인들을 어떻게 착취했는지에 대해 말씀해 보시죠. 하는 김에 일반인들 대상으로 한 범죄행위도."


이번에도 성명재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개중에는 이거 완전 사기꾼이다. 쌍놈들이다 싶은 대목이 있었다.

특히 초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엔 좀 떨어져 있는데도 이천웅이 열불이 터진 게 느껴져서 무서웠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이 놈이 하는 말에 아직까지도 거짓이 전혀 없단 점이었다.

정말 다 자포자기라도 한 듯이 질문하는 것에 성실히 대답하는 것도 모자라 묻지 않은 것까지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상당히 협조적이군요? 혹 거짓말 아닙니까?"

"초인중에서는 거짓말을 간파하는 초인도 있지요. 어차피 나중에 걸릴 짓거리 하지 않습니다."

"흐음...그럼 이번엔 중요한 질문을 하겠는데요, 당신네들 보스와, 곧 여기로 오겠다는 큰손들이 누군지도 알려 주시죠."

"큰 손들은 제가 연락만 하면 여기로 찾아올 겁니다."

"당신의 뭘 믿고 전화를 하게 해 달라는 거죠?"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제가 연락하지 않으면 이곳에 오지 말라고 언질해 두었으니 그들을 잡고 싶으면 지금이 기회라는 말만 해두고 싶군요."


이번에도 거짓은 없었다. 일이 성사되기 직전의 직전까지 안정장치를 걸어두다니, 성명재란 인간이 평소에 얼마나 보안을 철두철미하게 지켰는지 알만했다.

하지만 나는 어떤 위화감을 느끼며 질문했다.


"그래서. 당신들의 보스는?"

"모릅니다."


그 말에 이천웅이 위협적으로 몸짓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런 그를 제지하고 물었다.


"당신도 하위 조직원에 불과하다는 겁니까?"

"하위라...적어도 관리자 급인 건 맞습니다만, 우리들은 보스의 얼굴을 본 적도 없습니다. 그저 시키는 대로 할 뿐."


이번에도 진실이었다. 이쯤되면 속내를 숨기는 아티팩트라도 있는 거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럼 큰 손들에게 전화할까요?"

"제가 말하긴 뭣 하지만,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성명재씨."

"어차피 이대로는 제가 모두 뒤집어 쓰고 갇히지 않겠습니까? 협조적으로 나갈 테니 형량이라도 좀 줄여 달라 이거지요."


뻔뻔한 발언에 이천웅이 허 실소를 내뱉었다.



사실 여기서 뻐팅기며 입을 열지 않아봤자 열 받을 대로 받은 이천웅에게 얻어 터지는 결말이 확연하다. 그럴 바에는 어차피 입 열거 다 불어버리고 나중에 본격적으로 조사받을 때도 협조적으로 나가 형량을 줄이겠다는 말인가.

하지만 나는 그의 속내가 다른 것이라고 여겨졌다.

거짓말은 하고 있지 않지만, 뭔가를 감추는 꺼림칙한 기분.

그래서 나는 물었다.

별 것 아니지만, 중요한 질문을.


"당신네 조직의 규모는 어찌 됩니까?"

"대략 백 명 쯤 되겠군요. 자잘한 심부름꾼까지 합치면 수백 명 되겠지만요."

"아뇨, 제가 묻는 건, 한희그룹 말고, 그 이상 말입니다."



성명재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그의 눈에서 나에 대한 살심이 느껴졌으나 나는 아무렇게 않게 마주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이내 고개를 돌린 성명재가 그렇게 말했고-.

나는 거짓을 감지했다.


"좋습니다. 나머지는 초인부에서 조사를 받으시죠."



지금은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옆의 윤정민을 바라보았다.


"윤정민씨? 실례지만 저와 함께 가실 수 있으실까요?"

"저..."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윽고 윤정민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강화된 초인의 정신으로도 울먹일 정도면 그간 고생이 얼마나 심했다는 걸까.


"그럼 천웅 씨. 여길 부탁드립니다."

"맡겨 주십시오."


...내게 최대한 협력하라고 보내져서 내 권위를 세워주기 위한 연기라지만 저 인간이 나한테 이렇게 예의 바르게 나오니까 기분이 참 기묘하다.

그때였다.

윤정민이 멈칫하더니 성명재를 노려보았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싶어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그 사람. 누구죠?"

"누굴 말하는 거지?"

"절 계약하게 했을 때. 저와 만났던 그 남자요."

"그게 왜 궁금하지?"

"...그도 초인이었으니까요."


사무실이 잠깐 정적에 휩싸였다.


"그땐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확실해요. 그 목소리...초인력이 깃든 능력이었어요. 누구죠?"


자신의 인생을 나락으로 빠뜨릴 뻔한 작자의 이름. 윤정민은 기대했지만, 성명재는 훗 웃을 뿐이었다.


"조직원은 허구한 날 바뀐다. 그 전부를 내가 기억할 리도 없어."

"......"

"적어도, 그가 누군지는 나도 모른다."


그 말은 진짜였다.

기억 못하고 있다는 건 거짓말 이었지만.

목소리로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는 타입의 초인이라...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일단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윤정민을 시혁씨의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시혁씨의 현관을 두드리자 헐레벌떡 뛰어나온 것은 초로의 여성. 그녀는 내 옆에 서 있던 윤정민을 보더니 금새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아이고 정민아!!"

"엄마...!!"


부둥켜안고 우는 두 모녀.

그간 얼마나 서럽고 힘들었을까.

마음이 착잡했다.

그건 저 둘의 사정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나 자신의 기억 때문이었지만.


우리 어머니도 살아만 계셨다면...


"아...진짜 좋은 일 했네요. 그쵸? 범인 씨."


나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심란한 날이 지나갔다.








그로부터 3일 후. 나는 누군가와 통화를 나누고 있었다.

전화 상대는 에르츠 대장이다.

얼마 전, 나는 내가 알아낸 범죄 조직에 대한 정보를 전부 에르츠 대장에게 말했다.

처음엔 장난이 심하다며 믿지 않았던 대장도 증거가 있다는 발언과 거듭되는 설득에 심각해지고 이내 이천웅을 파견해주었다.

몬스터 퇴치로 한창 바쁠 때였을 텐데 그만한 전력을 보내준 것은 내 말을 그만큼 진지하게 들어주었다는 뜻이니 고마웠다.



"바쁘세요?"

[자네 정돈 아니지.]


의례적인 말을 나눈 것도 잠시, 대장이 먼저 본론에 들어갔다.


[한희그룹은 뿌리 뽑았어.]

"그렇군요."

[그들이 지금까지 저지른 짓은 결코 용서되지 않는 일이지...모두 최대한 높은 형을 받게 여러가지로 손을 쓸 생각이야. 초인들은 물론 억지 채무 관계에 붙잡혀 있던 일반인들도 구출했어.]

"흐음."

[말로도 할 수 없는 역겨운 짓을 당한 우리 동료들은 일단 대부분 초인부에 받아들이기로 했어. 초인부에 속하지 않기로 한 이들도 지속적인 지원을 해주기로 했고]

"그거 잘 된 일이군요."



그간 있었던 경과에 대한 말들. 하지만 이것조차 진짜 본론이 아니었다.

에르츠 대장은 말하기를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다.


"대장."

[......]

"어땠나요?"

[...성명재란 자가 유인해낸 큰 손이란 자들은, 대게 사업자들이었지. 뒤에서 그들의 뒤를 봐주던 중직에 앉은 자들은 아직 솎아 내지 못했어. 그리고...자네 생각이 옳았던 것 같군.]

"......"

[구출해 낸 초인들의 말을 들어본 결과. 그들 말고도 초인들이 더 있었던 게 분명한데 발견되지 않고 있어. 그것도 하나같이 전투계열에 재능 있는 초인들이...]

"그건..."

[윤정민 초인도 어쩌면 나중엔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지도 모르겠군. 인질과 거짓 계약만으로 붙잡아 둘 만큼 윤정민 초인은 약하지 않았어. 아직 뭔가 행동을 제약할 만한 힘이 더 있다고는 생각했는데, 큰 손들을 취조한 결과. 접대를 받으러 가는 날엔 항상 어떤 남자가 같이 온다고 했었어.]

"어떤 남자."

[하지만 함께 오기 전 볼일이 생겼다며 사라져 버렸다고 하더군. 아마 그 녀석이 윤정민 초인에게 확실한 족쇄를 걸려던 진짜배기일 거야.]



기분 나쁘다는 듯이 침묵하던 에르츠 대장이 말했다.


[한희그룹이란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세력이, 정부의 요직에 앉은 몇을 등에 업고 숨어 있어.]


우리의 동료들을 억지로 붙들어 매면서 말이야. 에르츠 대장이 이를 갈았다.

초인지상주의인 그가 지금 얼마나 화가 나 있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심지어는 같은 초인이 그런 세력에 자의로 가담하고 있을 거라는 것이 거의 확실시되었으니까.


나도 같은 의견이다.

한희그룹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성명재가 미주알 고주알 다 떠든 이유는 자신이 한 짓이라고 주장하기 위함일 것이다.

본 조직에 피해를 가지 않게, 사람들의 시선을 자기에게 집중하려는 생각.

조직의 정체도 모르면서 그 정도의 충성심을 가지게 할 정도로 강력하다는 걸까.

지금 에르츠 대장이 정부의 중요한 요인 몇을 등에 업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보건대, 더 깊게 수사하려다가 윗선에서 막힌 것 같았다.


[맹세하건대, 조만간 숨어있는 쥐새끼들을 전부 박멸할 생각이야. 그런 조직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으니까.]

"그렇군요."

[그래서 말인데 범인...]

"아. 대장. 죄송한데 나중에 전화할게요. 손님이 오셨네요."

[...그래. 반드시 전화하지. 꼭.]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요.

전화가 끊어졌다. 아무튼 에르츠 대장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까.

초인부를 대표하는 자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거겠지.

믿을 수 있는 심복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방금 전에 나 따위에도 도와 달라고 부탁하려던 것 같고.

일단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는 제쳐두고, 나는 초인부에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다.

정부기관의 한계는 이미 증명되었다. 들어가 봤자 할 수 있는 일엔 제약이 있을 것이다.

회귀할 때의 나는 초인이 지배하는 암울한 미래를 바꿀 거라고 다짐했었다.

나는 커다란 사건들만 해결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사건 같은 일들이 하나씩 쌓여 초인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 아닐까.

내가 모든 것을 바꿀수는 없겠지만, 커다란 분기점이 될 사건이 오기 전까지 사소한 거라도 해결해두면 좋지 않을까.

윤정민처럼 억울한 상황에 처한 초인들을 돕는 그런 회사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대장에게 한 말은 대충 둘러댄 말이었는데.

인터폰을 보았다. 여느때처럼 련하와 진하 씨가 보였다.

문을 열기 위해 걸어가면서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좋아. 회사나 설립하자."



얼마 전에 고민하던 100억의 사용처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어둑어둑하지만 주위 사물이 분간되는 신비한 장소.

그 중심부에서 한 남자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면목 없습니다."

"아하하하. 그럴 것 없어. 나로서도 예상 외였거든."


천재지변같은 거지. 대답하면서 뭔가를 매만지는 자는 앳된 소년이었다.

변성기도 오지 않은 목소리로 웃은 소년은 뭔가를 떠올리고 아깝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윤정민 이랬던가. 재능을 싹 틔우려고 작업을 좀 미뤄놨었는데...욕심이 과했어."

"지금이라도 잡아오겠습니다."

"됐어 됐어. 초인부에서 눈에 불을 켜고 있을 텐데. 에르츠는 무섭다고?"


아하하하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소년은 뭔가를 매만지는 것을 멈추었다.


"응. 작업 끝."

"아으...어..."


소년이 만지고 있던 것은, 사람의 머리였다.

머리를 박박 민 여성은 눈이 풀려있었고 입가엔 침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서 발현되는 기운은 분명 초인력이었다.

그녀 하나만이 아니었다.

이 넓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누워있었다. 마치 죽은 것처럼.



"한동안은 몸 좀 사리자고."

"알겠습니다. 성명재는 어떻게 할까요?."

"아. 걔 나름 쓸만했는데...에르츠가 심문하고 있으니까 냅둬. 한동안 눈 돌리기는 되겠지. 그나저나 말이야..."


소년이 등을 돌렸다.

그 입가에는 아이다운, 흥미가 깃든 웃음이 걸려 있었다.


"이번에 닥친 천재지변 이름이 김범인이라고 했지?"

"예."

"한동안 지켜봐. 그 놈한텐 뭔가가 있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뭔가가..."


소년의 말에 남자가 더욱 고개를 깊게 숙였다.


"알겠습니다 대술사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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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몬스터 게이트 (5) +2 20.06.13 163 8 20쪽
29 몬스터 게이트 (4) +6 20.06.12 164 8 12쪽
28 몬스터 게이트 (3) +5 20.06.11 165 9 21쪽
27 몬스터 게이트 (2) +2 20.06.10 187 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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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홍의 마녀 (6) +2 20.06.02 209 1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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