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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 님의 서재입니다.

초인의 세상에서 범인이 할 수 있는 것.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ITE
작품등록일 :
2020.05.19 20:08
최근연재일 :
2020.06.30 21:27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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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63
추천수 :
485
글자수 :
343,503

작성
20.06.02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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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홍의 마녀 (6)

DUMMY

"그런 조건으로 괜찮았습니까? 원하면 언제든 계약 파기가 가능하다니..."


덕희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이국수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래서 몇 가지의 조건을 걸었잖나?"

"계약금 100억은 커리큘럼을 완수했을 때 지급한다는 조항 말씀입니까?"

"그래."

"하지만 훈련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 겁니다. 중간에 그만 둘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지도 않아. 지금 그 계집애한테 있어서 본인의 상황보다 힘든 건 없을 테니까. 괜히 편의를 제공하는 게 아니지."


이국수는 씨익 웃었다.

내일 쯤이면 홍련하는 예비 초인으로 소문이 나 지금 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대우를 받을 것이다.

힘들었던 주위 환경은 단번에 뒤바뀔 것이며 그로 인해 얻어지는 안정감과 쾌감은 상상 이상이리라.

그리고 그 쾌감을 제공하는 것은 이국수가 계획한 커리큘럼.

아무리 힘들어도 그만 둘 생각은 쉽사리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중간에 커리큘럼을 그만두면 정부 소속의 초인이 될 수 없을 거라고 일러 두었지.'


희망이란 맹독이다.

초인의 신분으로 얻었던 행복감을 두 번 다시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것이 그녀를 옭아맬 것이다.

물론 고행만을 주진 않을 것이다.

때때로 군침을 흘릴만한 포상을 내릴 것이며, 그 주체는 이국수 자신이 되리라.


'나에게 의존하게 만들어야지.'



장차 SSS급 초인이 될지도 모르는 계집의 목에 목줄을 채운다.

곧 엄청난 말이 생길 거라는 생각에 이국수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마이티에겐 연락이 되었나?"

"네. 그런데...정말로 계획대로 진행하실 겁니까?"

"물론이지."


이국수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아무리 강대해봤자 가질 수 없으면 소용없어. 그럴 바엔, 조금 망가지더라도 어떻게든 가져야지."








"계약, 해버렸네..."


련하는 일단 집으로 귀가했다.

애연이 이모 이모부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는지 련하를 보는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시선에서 도망치듯 자신의 방으로 올라온 련하는 계약서를 꼼꼼히 읽었다.


"계약서에 사신을 한 시점부터 예비 정부 초인의 신분을 수여. 6개월 간 커리큘럼을 수행. 전부 수행 시 계약금 100억 지급에 정부 초인 등록. 중간에 언제든 커리큘럼을 그만 두는 게 가능..."


어떻게 봐도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이었다.

커리큘럼을 받으면 등교하지 않아도 학교에 출석한 것으로 인정이 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실력에 진보가 있을 경우 보상이 있었다.

그 중 거주지 제공이라는 항목에서 련하는 눈을 떼질 못했다.

이곳에서 나갈 수 있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련하는 문득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조언을 구하기 위해 문자를 보냈던 련하였지만, 처음 보낸 것도 포함해 답장은 돌아오질 않았다.

련하는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계약을 했으니 자기 할 일은 다 했다 이건가..."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도 포상을 받았으리라.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인연은 유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처음 만났을 때 타산이 느껴지지 않았던 모습은 거짓이었던 걸까?

괜히 연락 하나 없는 그에게 반발심이 들어 덜컥 계약을 해버린 련하였지만, 지금 와서 보니 잘 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열심히 훈련 받고 어엿한 초인이 되어서 나가는 거야.'


그때가 되면 김범인, 그도 련하를 무시한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하리라.

반드시 성과를 내고 말겠다고 결심한 련하는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학교에 한동안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을 하기 위해 등교했다.

초인부에서 연락은 넣어두겠다고 했지만 직접 인시 하는 게 예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크게 기뻐하여 축복해주었다. 자신의 반에서 정부 소속 초인이 나왔다는 건 자랑스러워 할 만한 일이었다.

교사들이나 친구들에게만 몰래 인사를 하려 했던 련하였으나 담임은 그녀에게 급우들에게 인사를 하게 시켰다. 이상하게 단호한 태도에 련하는 시키는 대로 했다.

반 친구들의 반응은 놀람 반, 안타까움 반이었다.

특히나 재연은 얼굴이 창백했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번호를 달라며 생떼를 쓰기까지 했다.

교실을 나가며 영미 일행을 흘끗 보자 그녀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굴이 벌개져 있었다.

예비라곤 하지만 정부 소속의 초인이 된 이상, 그녀들이 함부로 할 상대가 못 되었다.

달라진 시선들에 련하는 마음 속으로 만족감을 느꼈다.


'역시 굉장해. 초인이란 건.'


그녀의 마음속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찼다.

교정을 빠져나온 그녀는 들뜬 발걸음으로 교문 앞에 떡하니 세워진 차에 올라탔다.

기분 탓일지도 몰랐지만 교정에서 수백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는 것 같았다.



'열심히 해야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 시키며 련하는 밝게 웃었다.

드디어 초인으로서의 한 발자국을 내딛는 다는 벅참을 느끼면서.



그리고, 2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


초인부 근방에 세워진 이국수 국장 소유의 트레이닝 룸.

련하는 그곳에서 주저앉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고작 2주의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그녀는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어쭈? 누가 쉬래? 안 일어나?!"

"네, 네!!"


실내가 울릴 정도로 크게 대답하며 벌떡 일어난 련하.

기진맥진해서 당장이라도 쓰러지고 싶었지만 눈앞의 사람은 그걸 절대 허용치 않으리라.

펑키한 복장의 소년. 련하보다 한 살밖에 많지 않지만 초인으로서는 수많은 실적을 낸 소년이었다.


전율의 연주자란 초인명을 갖고 있는 이찬혁은 처음엔 상냥했으나 갈수록 사나워져 갔다. 련하는 그런 태도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의 실력은 전혀 성장하지 않았으니까.

련하는 아직도 일반인의 스팩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신체 능력에 절망하고 있었다. 신체스팩 뿐만이 아니라 초인 특유의 초상 능력도 전혀 발현하지 않았다.

이찬혁이 괜히 그녀를 몰아붙이고 있는 게 아니었다.


"달리기 왕복 3바퀴!"

"네!"

"어라? 밥 안 먹었냐? 5바퀴!"

"다, 다섯 바퀴!!"

"하아...어디서 이런 게 와서는...시작!"


허억 허억.

입에서 단내가 나고 토할 것만 같았지만, 육체의 고통보다 이찬혁의 갈굼이 훨씬 두려웠다. 련하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위태한 몸놀림으로 겨우 5바퀴를 완수했다.


"잠시 후 초상능력 발현 훈련을 할 거다. 오늘은 조그만 힘이라도 어떻게든 발현해 보도록."


이찬혁이 방을 나갔고 련하는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온몸에서 흘러내리는 땀이 기분 나빴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하지만 안 된다. 식단마저 관리 받는 그녀였기에 스스로 멋대로 먹을 수도 없었다.

처음의 기대감과 벅참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그녀를 버티게 하는 것은 달라진 주위의 시선.

초인이 될 교육을 받는다는 것만으로도 이모와 이모부는 이제 함부로 자신을 대하지 못했으며 가끔 나가는 학교에서도 스타급 대접을 받았다.

그런 달콤함이 없었으면 그녀는 진작 주저앉아 다시 일어서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련하가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이국수 국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련하양."

"국장님...안녕하세요."

"어이쿠. 괜히 일어서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심으로 련하를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이국수 국장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봉투를 내밀었다. 받고 보니 각종 음료수가 들어 있었다.


"하하. 찬혁군은 스파르타라서 많이 힘들죠? 좀 살살 해달라고 말하긴 했는데..."

"괜찮아요. 국장님."

"힘들면 언제든 말하세요. 지금은 보는 눈도 없으니 얼른 들이켜요."



둘만의 비밀이라는 듯 검지 손가락으로 입가를 가리는 이국수 국장. 련하는 그를 보며 활짝 웃었다.


"감사합니다!"

'빌어먹을 개자식.'


겉과는 상반되게 속으로는 맹렬한 혐오감을 품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국수는 련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려고 했지만,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주변의 등쌀에 밀려왔던 련하의 눈치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

그녀는 물증은 없었지만, 이국수에게서 불온한 의도를 느꼈다.

초반의 잘생긴 외모와 능력 있는 모습으로 땄던 점수는 련하 안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련하는 그에게 함부로 굴 수가 없었다.

그나마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인 일상 생활을 유지하게 해 주는것이 바로 그였으니까.


"그럼 잠시 후에 뵙죠."

"네. 음료수 잘 마실게요!"


마지막까지 활발함을 연기한 련하는 이국수가 나가고 나서야 얼굴에 힘을 뺄 수 있었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여전히, 답장은 없었다.


'있을리가 없지.'


으드득. 그녀는 이를 갈았다.

어차피 그 아저씨도, 김범인 그 개자식도 이국수와 한패였던 것이다.

처음의 만남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련하는 생각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걸 보면 자신을 차단한 게 분명했다.

이국수에게 자신을 넘기고 뭔가의 대가를 받고 잠적한 것이다.

왜 믿었던 걸까.

또 이렇게 아프기만 할 텐데.

한참이나 미동도 않던 련하는 신경질적으로 스마트폰을 집어던지고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그만두고 싶어.'




그리고.

아무도 지켜보지 않았을 줄 알았던 그녀의 모습은 TV를 통해 송출되고 있었다.


"허. 고년 성깔봐라."



찬혁이 혀를 차며 옆에 서 있는 이국수를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강도좀 줄일까요?"

"아니."


이국수가 입꼬리를 올렸다.


"육체 훈련과 지식 훈련 강도는 그대로 유지하고, 초상 발현 훈련의 강도를 두 단계 높여라."

"국장님. 아직 어린애입니다. 버티지 못할 겁니다."


덕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고 찬혁은 코웃음을 쳤다.


"뭐야? 저 계집애한테 감정이입이라도 한 거야?"

"그럴리가. 난 국장님의 대외적 평가가 걱정 될 뿐이다."

"괜찮다."


이국수는 자신의 허벅지를 톡톡 두드리며 덧붙였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이 정도로 벌써 망가지면 곤란하지."



익숙해지도록 해야 해. 무감정하게 말하는 그를 보며 찬혁은 속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불쌍한 년. 걸려도 이 사람한테 걸려 가지고.'







또 다시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젠 육체훈련도, 각종 지식을 습득하는 공부도 어떻게든 해내게 된 련하였지만 이 훈련 앞에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야. 몸 떨지마. 가만히 있어."

"네, 네."


찬혁의 으르렁거림에 입을 꾹 다무는 련하.

그는 련하의 등에 손을 얹고 뭔가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으윽!!"


초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미지의 힘. 그걸 초인력이라 하는데 초상 훈련이란 그 초인력을 주입해 잠들어 있는 능력을 억지로 깨우는 훈련이었다.

문제는, 고통.


"아아악...!!"


말이 훈련이지 이건 숫제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성인 남성도 버거워하는 고통에서 련하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초인이 되고 싶다는 갈망 덕분이리라.

하지만 그것도 점점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고통쯤은 어떻게든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초인력을 주입하며 은근히 자신의 몸을 다듬는 이 손길은 생리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어느 정도 그런 낌새는 있었지만, 이제 찬혁은 대놓고 끈적한 눈길로 련하의 몸을 훝어 보았다.


'이럼 재연이 자식과 다를 게 없잖아...!'


아니, 그보다 더 나쁘다.

적어도 재연은 자신에게 강압적으로 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찬혁은 교관이라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멋대로 굴었다.


"아으악...!"

"어쭈? 어디 엄살이야? 강도 더 높인다?"

"......!!"


련하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팔로 찬혁의 팔을 뿌리쳤다.


"...뭐 하는 짓?"


스산해진 찬혁의 얼굴에도 련하는 겁먹지 않고 마주 노려보았다.


"...이제 못 하겠어요."

"하아? 뭔 소릴 지껄이냐. 너."

"그만두겠다는 말이에요. 아무리 해도 능력이 발현되지 않잖아요? 이 훈련은 쓸데 없는 짓이에요."


커리큘럼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에도 찬혁은 혀만 찰 뿐이었다.


"아니. 니가 무능해서 발현하지 못하는 걸 누구 탓으로 달려?"

"......그러니까 그만두겠어요."

"이런 이런. 무슨 일입니까?"


대치한 두 사람 사이로 느긋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이젠 혐오를 넘어 공포까지 느껴지는 그 목소리의 주인은 이국수였다.



"무슨 일입니까?"

"...저, 그만둘래요."

"그만둔다니? 훈련을요?"


어리둥절한 표정마저 가증스러웠다.



"지금까지 챙겨주신 건 감사하지만...이젠 못 하겠어요"

"언제든 계약 파기가 가능하다고 말한 건 저입니다. 당신의 권리이죠."


사람 좋은 웃음. 이대로 쉽게 놔주는 걸까? 자신에겐 그만큼 재능이 없다는 걸까.

하지만 지금은 그게 다행으로 여겨졌다.


"다만, 그렇게 되면 앞으로 정부소속 초인이 되긴 어렵겠군요."

"...그거, 거짓말이죠?"

"거짓이라뇨?"

"초인을 필사적으로 발굴하려 하는 정부가 그런 아까운 짓을 할 리가 없어요."


지금까지 공부한 게 헛된 것은 아니었다.

련하는 그의 말이 그저 협박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국수는 여유만만하게 웃었다.


"물론 법적으로야 그렇지요."

"그럼..."

"하지만 말입니다. 간과하고 있는 게 있군요?"

"네?"

"예비 초인 훈련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둔 사람을 다른 정부 소속의 초인이 좋게 볼까요?"

"......?"

"못 알아듣는 것 같군요. 뭐...지금 당신이 학교에서 겪고 있는 일. 은근한 따돌림보다 더 심한 따돌림이라고 보면 됩니다. 거기에 더불어 다른 초인들과는 다른 파격적인 계약에 시기심을 갖는 사람도 많겠죠."

"......!"


련하는 기가 막혔다.

이제 대놓고 협박인가?


"무슨 소리예요? 국장님이 말하는 대로 계약한 것 뿐인데...!!"

"네. 하지만 당신이 특혜를 받은 것도 사실이죠. 뿐만 아니라...아직까지 제대로 된 초상능력도 발현시키지 못하는 초인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줄 거라 생각합니까?"

"......!!"


련하가 결국 폭발했다.



"이 천하의 쓰레기...!! 잘해주는 척 하면서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찬혁이 쯧 혀를 차며 나섰다.


"어이. 계집애. 말을 조심..."

"당신도 당신이야. 언제까지 내 몸이나 더듬을 거야? 변태자식!"

"하, 너 같은 추녀를 내가 왜 만져? 자의식 쩌는 거 봐라."

"자자. 그만 그만."


련하의 발작 같은 분노에도 이국수는 전혀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저 어린애의 앙탈에 불과했으니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벗어나면, 당신은 두 번 다시 정부의 초인이, 아니. 민간 초인마저 될 수 없으리란 것을."

"뭐예요? 무슨 근거로 그런..."

"제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요."

"......!!"


이미 좋은 사람이 되기에 글렀다면, 그렇다면 공포로 지배해주마.

이국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당신 미쳤어. 여기서 나가면 다 얘기할 거야."


이국수가 련하의 말을 끊어버렸다.


"얘기하는 건 좋은데 누가 믿어줍니까? 당신을 짐덩이로 여기는 가족이? 아니면 당신이 그토록 가기 싫어하는 학교의 친구들?"

"......"

"초인부 국장과 외모가 반반할 뿐인 어린 여자애. 누구의 말을 신뢰할까요?"

"그, 그건...."

"게다가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의 생활을 잃으면, 다시 한 달 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갈 뿐입니다. 아! 지금껏 초인의 신분으로서 누렸던 기간이 있으니 더 심해질지도 모르겠군요."


련하가 고개를 떨구었다.

틀렸다.

처음부터 이 남자의 눈에 띈 게 잘못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어요. 당신 좋은 일은 절대 안 할 거야."

"...하아."


이국수가 과장되게 한숨을 쉬고 그녀 몰래 찬혁에게 눈짓했다.


"이 계집애. 듣자듣자 하니까 우리가 호구로 보여? 죽고 싶냐?"

"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서슬 퍼런 기세에 련하가 겁을 먹었고 이국수가 눈을 가늘게 뜨며 씨익 웃었다


'말로 알아듣지 못한다면, 공포로 다스려 줄 수밖에.'


이국수의 뜻을 받아 이찬혁은 위협적으로 말했다.


"여자라고 못 때릴 줄 알지?"


찬혁이 천천히 다가왔고, 련하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그녀는 호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을 꽉 쥐었다.


'...바보같아.'


스스로 생각했지 않은가? 그도 한 패라고.

하지만, 그 어수룩하고 착한 아저씨가 이런 사람들 과 한 패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바보 같게도 련하는 이런 순간마저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

동경하던 초인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새로운 자신이 될 수 있을거라 믿었는데.

아아.

진짜, 이런 세상. 멸망하지 않으려나.



띠리링.


"......?"


갑자기 들린 문자 소리에 이국수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만두세요 찬혁. 겁을 주면 안 되죠 . 그보다 련하 양 메시지가 온 것 같은데 받아보세요."


아직도 의지할 수 있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은 이국수의 부드러운 말. 역겨웠으나, 지금만은 고마웠다.

직감이 들었다. 이 문자는 반드시 봐야 한다고.

그리고 스마트폰을 키고 보인 글자.



[어디야?]


그 사람이다.

순간 멍해진 련하에게 이국수가 뭐라고 말을 걸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멍하니 물었다.


"국장님."

"네?"

"그 아저씨요...그 아저씨도 국장님 부하예요?"

"그 아저씨...?"

"처음에 저 데려왔던 그 아저씨. 김번인 이라는 사람이요."

"...그건 왜 묻죠?"

"대답해 주세요."


찬혁이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 그를 제지하며 이국수가 빙그레 웃었다.


"물론입니다. 당신을 데려온 것도, 제 명령으로 인한..."

"제가 언제부터 당신 부하였습니까."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정장 차림의 남자가 숨을 고르고 있었다.


"...아저씨."


련하가 멍하니 중얼거리자 그는 힘들어하면서도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그런 그를 입구에 서 있던 이덕희가 제지했다.


"아니, 내버려 둬."


이국수의 말에 팔을 치우는 덕희. 그는 고마움도 표하지 않고 련하 옆에 와서 한참 동안 숨을 골랐다. 폼 나게 등장해 놓고 꼴불견인 모습이었지만, 련하는 꼴사납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 왔어? 아저씨."


그 말에 그가 련하의 손을 덥석 잡았다. 당혹하는 그녀를 강하게 이끈다.


"가자."

"어, 어디로?"


그런 그를 찬혁과 덕희가 가로막았다.


"...무슨 짓입니까? 김범인 씨."


이국수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싸늘해져 있었다.

그런 그에게 그는, 김범인은 말했다.


"다시 데려가야 할 것 같아서요. 죄송합니다."

"누구 마음대로?"



후우. 그제야 숨을 다 고른 김범인이 이국수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제 마음대로요."

"...뭐라고요?"

"아. 귀가 안 좋으신가 보군요."


그가, 김범인이 빙그레 웃었다.


"내 꼴리는 대로 데려가겠다고. 이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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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의 마녀 (6) +2 20.06.02 209 1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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