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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 님의 서재입니다.

초인의 세상에서 범인이 할 수 있는 것.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ITE
작품등록일 :
2020.05.19 20:08
최근연재일 :
2020.06.30 21:27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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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3,503

작성
20.06.26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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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범죄조직 (5)

DUMMY

안색이 창백해진 사수는 한참이나 침묵하고 있었다.

인내심 있게 놈을 기다린 끝에 나온 말은 이랬다.


"시발놈?"

"......"

"선 넘네?"


한심함에 한숨이 나올 뻔 했다.

이 상황에 나온 말이 고작 선을 넘었냐고?

상황 파악을 했다면 지금 바로 내게 설설 기었어야 했다.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아니, 지금까지 보인 행동으로 보았을 때 자신의 처지를 모를리가 없다.

그저 나를 한없이 얕보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침묵하자 기세에 눌린 것이라고 착각이라고 한 것일까. 한 걸음 앞으로 나선 허수진이 험악한 표정으로 서슬퍼런 목소리로 말했다.


"너 지금 욕했냐? 욕한 거지?"

"......"

"하...입사 때부터 머저리 같았던 놈이 많이 컸네? 응?"


입사 처음에는 확실히 머저리 같긴 했는데, 회귀한 지금은 꽤 빠릿했다고 생각하는데?

이 놈이 날 평소에 어떻게 여겼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얼마나 호구로 본 걸까.


"이 새끼가 내가 좀 기어주니까 만만하게 보이지? 응?"

"하아..."

"한숨? 한숨? 진짜 개 쳐 맞아 볼래? 너 제대로 쳐 맞아 본 적 없지?"


한층 더 기세가 오른 허수진이 이죽댔다.


"너 어디서 뭘 줏어 들었어? 이참에 니가 아는 거 전부 말해 봐 이 새끼야."

"선배님."

"뭐 이 새끼야. 맞기 싫으면 빨리 말하기나.."


짝!


가벼운 스윙.

뺨을 얻어맞은 허수진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듯 뺨을 어루만졌다.


"정신 좀 차리셨습니까?"

"이, 이 새끼가...!!"


허수진이 발작하는 것처럼 내게 달려들었다.

움직임을 보니 초짜중에 생초짜다. 솔직히 나도 제대로 된 놈은 아니지만 이건 숫제 싸움을 해보기나 했을까 싶은 수준이었다.

나는 번개같이 놈의 반대쪽 뺨을 후려쳤다.


"크흑...! 이 자식이...! 죽고 싶어서 환장했! 악!"


정강이를 구두 끝으로 걷어차고 놈의 머리채를 잡은 후 당기자 볼품 없이 넘어진다.

그 자세 그대로 놈의 뺨을 사정 없이 내리쳤다.

어제처럼 모방 스킬은 사용하지 않아 이빨은 나가지 않겠지만 현실적인 수준의 폭력이니만큼 더욱 확실하게 공포심이 와 닿을 테지.


짝!짝!짝!


"컥! 크윽! 크흡!"


말도 제대로 못하고 속절 없이 당하기만 하는 허수진, 이 꼴을 보아하니 이 놈은 어쩌다 우연히 정체 모를 조직에 협력하게 된 거지 원래 더러운 일에 손을 담근 놈은 아닌 듯 했다.

하긴, 그러니까 미래에도 덜미를 잡혀서 꼬리 자르기나 당했겠지.

뺨을 때리는 것을 멈추고 놈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허수진은 이미 전의가 완전히 꺾여 있었다.


"버, 범인 씨...왜 그래..."

"왜?"


짜악!"


"아악!"

"아까처럼 말해보시죠."

"으, 으으..."


짜악!


"컥!"

"말해 보라니까."

"내, 내가 자, 잘못했어...순간 너무 열이 올라서 생각을 잘못 했던 것 같아..."

"내가 니 친구입니까?"


나이도 나보다 어린 게.

짜악!


"아악! 잘, 잘못했습니다!"


후우. 심호흡을 한 나는 그제야 허수진의 머리채를 놔주었다.

녀석은 내가 또 때리지나 않을까 눈치를 보고 있었다.


"자기 아픈 줄은 알면서 왜 초인들은 그렇게 냅뒀습니까?"

"으, 으으..."

"아까 전 언행을 보건대 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건 잘 했겠지요. 그러면서 자신은 평범한 사람과는 다르다고 자부심이라도 가졌습니까?"


약한 처지의, 반항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자신이 강하다고 착각하는 부류.

조금만 더 큰 폭력을 만나도, 아니, 맞서는 자만 있어도 금방이라도 부스러질 모래성 같은 자존감이다.


"선배님. 오늘 오후에 성명재랑 만나서 일을 진행하기로 되어 있었다면서요?"

"자, 자자자자잠깐만요 범인씨."


오우...말 더듬는 거 잘하네.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거기에 더는 상관하지 맙시다. 네? 우리 둘 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다니까요...?"

"괜찮습니다."

"안 괜찮아!"


저도 모르게 반말로 외쳤다가 자기 입을 가리는 허수진. 내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까딱이니 그제야 안심한 듯 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잘 들어요 범인 씨. 잘 모르는 모양인데..."


근데 어쩌지. 댁 말 들어줄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어차피 이대로면 선배님은 죽습니다."

"어?"

"제가 선배님이 속한 조직에 낌새를 눈치 챘다는 걸 성명재도 알고 있거든요."

"무, 무슨...!!"

"선배님은 제가 당신이 한희그룹에 뒷 돈을 받아 먹은 정도로만 알고 계셨던 듯 한데, 안타깝게도 최근에 그쪽 일에 대해 눈치 채 버려서 모종의 조취를 취했거든요. 그 조취에 대해 성명재가 알고 있습니다."


물론 쌩 구라지만.

알고 있었다면 지금쯤 성명재가 이리 얌전하게 있었을 린 없겠지.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는 허수진을 보며 나는 타이르듯 말했다.


"선배님. 알고 계실 겁니다?"

"뭐, 뭘?"

"선배님이 협력하고 있는 그 조직, 생각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선배님 따위는 언제든지 잘라버릴 수 있다는 걸요."

"......!!"


실제로 허수진은 미래에 처분당했다.

한희그룹에 뒷돈을 먹어 회사에서 짤린 그가 후일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여기서 중요한 건, 회귀 전의 허수진이 실제로 경찰에 불려갔다는 것.

조사받는 중에 조직에 대해 얼마든지 말할 수 있었음에도 그런 소문 하나 나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의 가능성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조직인지 몰라도 공권력을 움직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저를 회유하려고 발악하셨던 거고요."

"아니...그건..."

"선배님.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이제 선배님이 뭘 하든 당신이 조직에 기용될 일은 없습니다. 이미 의심을 산 데다가 무능까지 증명한 당신을요."


내 말에 고개를 떨구는 허수진. 성명재가 내가 그들에 대해 알았다는 것을 눈치챘다고 들은 순간 그도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선배님의 죄목은 화려하죠. 일단 계약 문제에 대해서인데, 이게 계약입니까?"

"......"

"이익분배 9대1. 계약기간이 끝났을 시 그때까지 활동한 초인명은 회사로 넘겨지고 이를 위반했을 시 10억의 위약금...이건 뭐 유아들이 장난으로 쓴 것도 아니고."


특히 초인명을 회사가 가져간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본명으로 활동하는 초인들이라면 모를까. 사람들은 대부분 본명보다는 초인명으로 그 대상을 기억하는데 밥벌이를 빼앗아 가는 거나 마찬가지다.

법도 바보는 아니라 저런 말도 안 되는 불공정 계약이라면 피해자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그걸 모를리도 없을테고, 아마 계약을 한 초인들의 심리를 더욱 압박하기 위해서겠지.


"뭐, 이건 그렇다 칩시다. 몇 천보 양보해서 말이에요. 그런데 초인들을 조직간 항쟁의 싸움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도 모자라 꽤나 신박한 짓을 하고 있더군요?"

"......"

"설마 초인력이 거래되고 있을 줄이야."



초인력.


초인들의 특수한 능력을 발현하게 해주는 미지의 힘인데 련하의 발화처럼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힘을 뜻하며 능력이 아닌 그 힘만을 끌어내 사용할 수도 있다.


대개 상처가 빨리 회복되게 원기를 불어 넣어주는 식이거나, 또는 성장을 돕는데 쓰인다. 련하도 이걸 했었지. 의도는 좋지 않았지만.


근데 설마 초인력을 팔 생각을 할 줄이야.

같은 초인끼리는 초인력이 반발하는지 고통스러울 뿐이지만, 일반인들은 초인력을 불어넣는 과정에서 설명 못할 고양감이 느껴지는데 이게 중독이 될 만큼 좋은 기분이다. 나도 직접 불어 넣어진 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다.

이른바 안전한 마약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실제로 몸에까지 좋으니 기회만 있다면 대부분 받고 싶어한다.

뭐, 적정량이고 서로 윈윈하는 거래라면 좋겠지만, 문제는 이 조직이 초인력을 한계까지 빨아 먹는다는 것.

높은 등급이면 몰라도 낮은 등급의 초인들은 당연히 초인력에 한계가 있다. 한계 이상으로 초인력을 쓴다면 커다란 피로감과 탈력감은 물론 고통마저 느낄 것이다.


"여기서 멈춘다면 좋겠지만, 좀 알려진 초인들을 매춘에까지 동원한다면서요?"

"뭐, 뭐?"


그건 처음 들었던 사실인지, 아니면 연기인지 몰라도 허수진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것 말고도 입에 담기도 힘든 가혹 행위가 더 있는데, 생략하도록 하지요. 지금 우리가 고려할 것은, 이 모든 범죄를 선배님이 독박쓸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무슨...! 나는 돈 관리밖에 안 했어!"

"네. 납품을 원활하게 해 달라고 뒷돈을 받은 것처럼 꾸몄지요. 실제로는 더 더러운 짓거리들을 해서 번 돈들인데."


나는 허수진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중요한 건 실제 현금들이 선배님에게 있다는 겁니다. 독박쓰기 딱 좋다 이거에요."

"그, 그런..."

"선택하셔야 합니다. 이대로 조직의 손에 처분당할 것인가. 아니면 우릴 도와서 살 길을 도모할 것인가. 정말 아니꼬운 일이지만, 우릴 돕는다면 선배님이 죽지 않게, 철창 신세는 지지 않게 도와드리죠."

"......"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허수진. 아니. 이게 고민할 일이야? 나 같으면 덥석 물 것 같은데.


"아, 안 됩니다."

"네?"

"무리라고요! 범인 씨한테 협력해봤자 그놈들에게 죽을 게 뻔한데...! 그놈들 높은 분들에게 뇌물 좀 먹여서 공권력 움직이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라고요...! 우리들이 고발해봤자 개소리 취급하며 묻어버릴 게 뻔해요!"

"아, 난 또 뭐라고."

"네?"

"그건 걱정 마세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허수진이 발작하듯 외쳤다.


"그건 됐다고 쳐도 걔네들 사람들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놈들이라구요? 범인씨가 만나봤자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에요!"

"거 참 말 많네."


내 말이 사나워지자 허수진이 움찔했다.


"너는 닥치고 안내만 하면 되는거다. 이대로 가면 독박쓰고 죽을 거 구원해 주겠다잖아? 대체 뭐가 문제지?"

"으으..."

"아무 생각도 없이 일 벌인 거 아니니까 믿어보고 빨리 장소나 말해."


잠시 후, 허수진은 입을 열었다.







"오늘 오실 분들은 큰 손들이니 실수 하지 않도록 해."


성명재의 말에 윤정민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처음엔 신사인 척 존대로 일관하던 그는 반말은 물론이고 이제 욕지거리도 서슴지 않았다.


'초인부에 들어갔었어야 했어.'


뒤늦은 후회지만 그랬어야 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서는 꿈도 못 꾸는 연봉을 제안 받았지만 그때 당시에 급하게 내야 할 돈이 있었고, 아픈 어머니를 돌보기 어려울 만큼 업무가 과중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사업으로 진 빚이었다.

지긋지긋한 가난, 지긋지긋한 빚쟁이들.

그것들과 빨리 연을 끊고 싶었던 그녀가 봤던 것은 엑설런트 걸이라는 초인.

어느 방송에 출연한 그녀는 자신의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 들이고 있는지, 얼마나 만족스러운 일을 하며 정신적으로 충족 되는지를 말했고 초인부에 들어갈까 고민하던 정민은 그녀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녀처럼 성공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보다 한층 더 여유로운 삶을 원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그녀에게 접근해 온 어떤 남자.

그 남자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했고 행동거지는 이성을 떠나 마음을 휘어잡는 마력이 있었다.

자신들과 함께하면 꼭 성공할 것이라는 말을 믿고, 남자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계약서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계약해버린 대가는 컸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초인이 되었다고 하지만 싸움 한 번 해본 적 없던 그녀가 조직간의 항쟁에서 피 튀기는 싸움을 해야 했고 심지어는 그녀보다 훨씬 약한 일반인들을 압박하는 자리에까지 나가야했다.

뿐만인가.

가지고 있는 빚을 전부 갚아주겠다는 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한희그룹이란 곳에서 벌어 들인 돈들은 거진 다 빼앗겼으며 아프신 어머니를 볼모로 잡혔다.

정민 자신도 안전하지 못했다. 그녀는 초인력을 강탈 당해야 했다.

초인력을 한계 이상으로 쥐어 짜이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었다.

당연히 반항하지 않은 건 아니었고 신고도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절망 뿐. 무슨 수를 썼는지 어떤 기관도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다.


초인으로 각성하여 정신력이 일반인 이상으로 강해지지 않았다면 이미 정신끈을 놔버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점차 강도가 심해지는 대접과 일들 가운데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처지의 사람들 덕분이리라. 아니, 자신보다 더한 처지의 사람들 덕이겠지.

설마 초인들을 성상납에 이용하려는 생각을 품었다니. 윤정민은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차올랐다.

딱히 전투 능력도 없고 실생활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능력을 가진 초인들은 거의 그 더러운 일에 동원됐다. 더욱 역겨운 것은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는 것.

개중에는 오히려 남자를 원하는 변태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 변태적인 일에 윤정민도 동원되려고 했다.



"댁도 참 운이 좋아. 능력이 화려해서 얼음마녀란 별칭도 얻고, 얼굴도 반반해서 그런 분들 눈에 들다니."

"......"




지금까지는 전투능력을 인정받아 거기까지 나락으로 빠지지 않았던 그녀였으나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는 자들이 생겼다.

온갖 인맥을 가진 이 조직으로서도 큰 손들이었는지 그들은 망설임 없이 윤정민을 팔아넘기려 했다. 물론 그녀도 반항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노모와 빚을 들먹이지만 않았다면.


"이번 일을 하면, 반드시 모든 빚을 없애주시는 거죠?"

"말은 똑바로 해야지. 네가 그 분들을 제대로 만족시키면이다."


어머니를 풀어 달라는 말은 들어주지 않았으나 빚은 확실히 없애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마저도 어기면 윤정민도 더는 참을 생각이 없었다.


'엄마를 인질로 잡힌 상황에서 뭘 얼마나 반항할 수 있겠냐 싶지만...'



씁쓸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왜 자신에겐 불행한 일들만 일어나냐고 신을 원망했다.

초인이라는 것은 신의 선물인 줄로만 알았지만, 알고 보니 신의 농간일 뿐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독실한 신자였는데 그 보답이 이건가 싶었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으면 지금 당장 자신을 구해보라고 쓰게 웃었다.

예를 들어 저 문이 열리고, 구원자가 들어온다던가.

하지만 그럴 리가 없겠지. 저 문이 열릴 땐 정민이 더러운 놈들을 만족시키러 나갈 때일 것이다.


끼이익.


그때.

문이 열렸다.

올 것이 온 건가 체념하고 들어오는 남자를 지켜보는 정민.

한 사람이었는데, 의외로 평범하게 생겼다. 도저히 큰 손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리고 신기하게도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조금 생각하던 정민은 겨우 그를 떠올렸다.


'분명, 얼마 전 뉴스에서 나왔던...'


"김범인씨?"


성명재가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의아한 기색이었다.

김범인이 활짝 웃었다.


"네. 안녕하세요."








건물이 쓸데없이 외관이 좋아서 쫄았다.

잘못 찾아온 건가 싶었잖아...

허수진이 말해준 장소는 가까웠다. 하긴 서울이 노른자 지역이니 거기서 벗어나겠냐만은.

여기저기서 낄낄거리고 있던 깍두기들이 위협적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태연하게 걸어가 윤정민이라 추정되는 초인의 옆에 털썩 앉았다.

영상으로 보았을 땐 화질이 구려서 잘 몰랐는데 꽤 미인이다. 련하나 검후처럼 초월적인 미인은 아니지만 평범하게 예쁘다.



"여긴 어쩐 일이시죠?"

"짐작하면서 왜 그러십니까."


사람 좋게 웃길래 나도 사람 좋게 웃어주었다. 그런데 표정이 왜 썩냐.


"허수진. 그 멍청한 새끼가..."


얼씨구. 대번에 나쁜 말 나온다.



"아뇨, 솔직히 그 사람보단 당신이 너무 수상했거든요."

"내가?"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게, 허수진이랑 달리 범죄적인 냄새가 뚝뚝 묻어났거든요."

"큭큭큭큭."


재미있다는 듯이 웃은 성명재가 담배를 물었다.

후우. 연기를 뱉어난 그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봐. 오해하게.


"뭘 믿고 여기에 온 거지? 경찰?"

"공권력 움직이시는 분들을 상대로 경찰이라뇨."


경찰이라면 애당초 내 말도 안 들어줬을 것 같다.



"아. 맞아 맞아. 당신 지금 영웅이었지? 어중이 떠중이 초인들 몇 알고 있나 봐?"

"...아무리 어중이떠중이라도 당신만 하진 않을 텐데."


그가 초인을 무시하는 말에 미래가 생각났다.

그래서 한 말이었는데 울컥해서 한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성명재가 낄낄거렸다.



"말해두는데. 당신이 상상하는 걸 훌쩍 뛰어넘는 수준의 초인 아니면 우린 꿈쩍도 하지 않아."

"흐음."

"지금 내가 상당히 열 받았거든?"

"그래서요?"

"응. 그러니 당신은 우리 일 좀 도와줘야겠어. 당신 지명도는 쓸만하거든."

"허어...싫다면?"

"그럼 죽어야지. 여기서."


완전 진심이다.

그래서 우습다.


"그럼 더 열 받게 해 드릴까요?"

"뭐?"


나는 더는 대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옆의 윤정민을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나를 보던 윤정민이 움찔했다.


"당신의 어머니는 구출했습니다."

"......!!"

"하하, 거짓말은."


역시 허수진과는 다르다.

윤정민의 어머니가 사라졌다는 연락은 성명재도 받았을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들은 말에 동요하고 화났을 법한데 윤정민을 속이기 위해 평정을 가장하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주었다. 오늘 아침 찍은 따끈따끈한 사진.

거기엔 윤정민의 노모가 진하씨와 함께 찍혀 있었다.


"유진하?!"


사진을 본 성명재가 이번에야말로 놀란 목소리를 냈다. 어라? 진하씨에게 놀라? 유명한가?


"하. 믿는 구석은 있었구만. 근데 그거 알아?"

"뭐요?"

"그 여자가 한 계약. 여길 빠져나간 순간 얼마를 물어야 할지 아냐고?"

"10억?"


성명재가 히죽 웃었다.


"그건 옛 계약이고. 못해도 그 수배는 물어야 한다고. 법적 계약이니까 이건 어쩔 수 없..."

"불공정 계약으로 허세가 심하시군요. 원하시면 법정 재판 갈까요?"


내 말에 성명재의 표정이 사라졌다.

음, 날 죽이려는 표정이다.

주위 깍두기들도 하나 둘 씩 일어서고 있었다.


"절 죽이려는 겁니까?"

"그래. 그러니 기도해. 지금이라도 수준 높은 초인이 오기를 말이야. 바쁘고 바쁜 그들이 이딴 일을 알 리가 없겠지만."

"진하씨가 안 무서운가?"

"만난 적 없다고 발뺌하면 지가 어쩔건데?"

"잠깐...그만해요!"


그때 옆에 가만히 앉아 있던 윤정민이 일어났다. 용감한데?


"빠져라 윤정민."

"당신이나 그만둬요. 어머니가 인질로 잡히지 않았다면 당신들 따위 내 알바 아니니까."

"하. 초인력 다 빠져서 후들거리는 년이 뭘 하겠다고?"


음...오늘 더러운 일을 하러 간다고 했었지.

혹시 열 받아서 저도 모르게 초인의 힘을 뿜을지 모르니까 초인력을 뺴 놓은 건가. 철두철미하군.



뭐, 성명재의 말대로다.

높은 등급의 초인은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만 하다.

그들은 몬스터의 처리등 굵직한 일을 처리하지 거리를 다니며 자경단 일을 하진 않으니까. 도심 내에서 사람들의 일을 해결하는 낮은 등급의 초인들이 어렴풋이 눈치채는 정도겠지. 그나마도 소수다. 최근에 초인부에서 낌새를 눈치 챘다는 것도 그런 소수가 탄원서라도 내서일 것이다.

이놈들은 자신이 있다.

높은 등급의 초인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무마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래서 내가 일러바쳤지롱.

그 높은 등급의 초인에게 말이다.


콰앙!


문이 거칠게 열렸다.

내게 다가오던 깍두기들이 뭔고 하는 표정으로 문을 바라보았고, 그곳엔 2m가 훌쩍 넘는 거구의 남자가 서 있었다.

성명재는 얼음처럼 굳었다.



"철인 이천웅?!"


에르츠 대장의 팀, 그 일원 중 하나인 이천웅.

등급은 A등급. 그야말로 높은 수준의 초인이다.

그가 기운을 내뿜은 순간 깍두기들이 후들후들 떨더니 무릎이 꺾였다.

초인력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리라.

성명재도 마찬가지로 무릎을 덜덜 떨었다. 넘어지지 않는 것만으로 용하네.

그런 그를 보고 나는 이죽거렸다.


"어쩌죠? 데려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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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몬스터 게이트 (6) +4 20.06.14 152 7 15쪽
30 몬스터 게이트 (5) +2 20.06.13 164 8 20쪽
29 몬스터 게이트 (4) +6 20.06.12 164 8 12쪽
28 몬스터 게이트 (3) +5 20.06.11 166 9 21쪽
27 몬스터 게이트 (2) +2 20.06.10 187 8 15쪽
26 몬스터 게이트 (1) +4 20.06.09 201 12 12쪽
25 홍의 마녀 (12) 20.06.08 202 9 12쪽
24 홍의 마녀 (11) 20.06.07 203 10 21쪽
23 홍의 마녀 (10) 20.06.06 208 8 14쪽
22 홍의 마녀 (9) +2 20.06.05 195 8 13쪽
21 홍의 마녀 (8) +2 20.06.04 210 11 12쪽
20 홍의 마녀 (7) +2 20.06.03 207 10 18쪽
19 홍의 마녀 (6) +2 20.06.02 209 1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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