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잔다리 살인사건(1)
중앙일보의 인터뷰 기사가 드디어 지면에 공개되었다. 가장 좋아한 사람은 주연선배였다.
"꺄악! 우리 사장님, 신문에 났어!"
주연선배는 알바생들이 있는 곳에서 기사를 소리 내어 읽으려 했는데, 내가 억지로 저지했다.
"쪽팔리게 왜 그래요."
"뭐가 쪽이 팔려~ 이런 건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녀야.."
형규 선배가 웃으며 주연선배를 저지했다.
"야. 너 촌스럽게 진짜."
"촌스럽다니? 오빠! 말 다했어?"
투닥 거리면서도 주연선배는 기분 좋다고 배시시 웃고 있다.
"야.. 그런데 수연누나가 정말 끗발 좀 있구나."
"그러엄~ 누구 선밴데.."
"아. 난 그 누나 감당 안 돼."
"큭큭~ 오빠가 버벅 거리는 거 진짜 첨 본다."
"버벅 거리는 거 아니거든!"
확실히 대학 레벨 최강자인 형규 선배를 압도 할 만한 사람은 수연 선배 말고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멧돼지 같이 돌진만 한다라.. 큭큭큭'
수연선배가 평가한 형규 선배. 아무리 생각해도 골 때리는 여자다.
"어.. 근데 윗잔다리 공원에서 또 살인사건이 있었네?"
윗잔다리 공원은 동교동 삼거리에서 홍대 방면에 있는 작은 공원을 말한다. 이곳에서 연쇄 살인사건이 있다고, 며칠 전부터 주연선배가 걱정이 태산이다.
알바생들도 걱정이 되는지 함께 수군거렸다.
"요즘 왜 이렇게 연쇄 살인사건이 많아?"
연쇄 살인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하다. 혹자들은 90년대 초중반, 전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살인조직 지존파가 다시 환생해서 전국 조직을 갖춘 게 아니냐고 말할 정도였다. 살인의 방식도 다양했고, 사체는 잔혹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추성수가 말한 살인사건이 이건가..'
아르바이트생들도 한 참 살인사건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 까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정아!"
오늘따라 향긋한 봄날 바캉스라도 갈 것 같은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얼~ 유사장님. 신문에도 나고.. 유명인 되시겠어요?"
고은이가 사랑스럽게 말하자, 형규 선배가 약간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얼씨구. 남자친구 유명인사 된다고, 신나서 달려온 거야?"
"오.. 오빠! 남자친구 아니거든요."
"아니긴 무슨.."
"아! 그런 거 아니에요."
말 하면서, 고은이는 내 눈치를 슬쩍 본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싱긋 웃었다.
"아.. 재미없어."
고은이는 카운터로가서 주문을 했다.
"캐러멜 마키아또에 시럽 듬뿍 넣어주세요."
고은이가 계산을 하러 카드를 꺼내자, 주연선배가 만류한다.
"야야. 됐어. 벼룩이 간을 빼먹지."
"쳇. 저도 커피 정도는 제 돈으로 사먹을 수 있거든요. 매출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
"됐어.. 너한테 돈 받으면 다정이한테 혼나. 큭큭~"
"그.. 그런거 아니라니까요?"
고은이의 입이 샐룩 튀어나왔다.
"그런데 이렇게 단 거 먹어도 괜찮겠어? 살찌겠다."
"뭐 어때요! 봐주는 사람도 없는데."
고은이는 커피를 받아 내 앞에 앉았다. 그리고 주연선배가 그 옆에 같이 앉자, 잠시 걸스톡이 화사하게 피었다. 재잘거리는 두 사람을 앞에 두고, 나는 내가 할 일에 집중을 했다. 주연선배가 뽑아준 언론과 인터넷 모니터링 자료였다.
"형규 선배. <가을동화>는 어제 모니터링 하셨죠?"
"응. 한 3시간 정도 까페에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 꽉 차기 시작하더라."
"드라마 반응이 좋아요. 거기 당분간 자리 없어서 못 들어 갈거에요."
"그래. 지금은 우리가 한가하지만, 다음 주 부터는 우산효과를 충분히 누리겠던데?"
"네. 지금 인터넷과 언론에 약간 작업을 좀 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나는 형규 선배에게 우리 <타임스페이스>를 <가을동화>와 라이벌 구도를 성사시키기 위한 여론전 전략을 설명했다. 한 페이지 기획서로 정리된 인쇄물을 보여줬다. 프레임이라는 단어는 2000년대 중반, 미국에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에서 처음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경영 전략에도 활용되는데, 이 시기에는 아직 관련 용어가 없어서 형규 선배를 설득하는 데 힘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번 중앙일보 기사와 인터넷 언론, 그리고 잡지사, 동호회를 움직여서 '가을동화' vs '타임스페이스' 라이벌 구도를 만들자는 거지?"
"네. 인터넷 검색어를 관리하는 거예요."
"검색어 관리라.. 햐.. 너 이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는 거냐?"
"뭐 하다보면 생각나는 거죠."
검색어 관리는 2000년 대 후반, 웹 마케팅이 체계화되면서 공식화 되는 단어다. 이 역시 2002년에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았기에, 형규 선배에게 낯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능한 사람답게, 직관적으로 이 단어가 가지는 파급력을 눈치 채는 것 같았다.
"주연아. 다정이가 만든 기획안 봐바. 이거 좀 깨는데?"
"응? 뭔데?"
주연선배도 내가 만든 기획안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와.. 이거 괜찮은데 오빠?"
"난 갑갑한게, 개념은 좋은데 ROI(Return on Investment)가 안 나오니까, 갑갑하네."
난 형규 선배에게 난색을 표했다.
"형. ROI를 측정하는 건, 그게 다 비용이에요. 이렇게 작은 투자들은 직관적으로 하되, ROI를 시간 들여서 경험자료로 축적하는 수밖에 없어요."
"무슨 말인지는 아는데, 아.. 갑갑해. 내가 일 하는 스타일이 아니니까 그렇지."
"에이.. 오빠 진짜 성격 급하다니까.."
"야. 이건 성격 급한게 아니고, 확실하게 하는 타입인거야."
"뉘에 뉘에. 어련 하시겠어요."
기본적으로 형규 선배의 말이 맞다. 모든 투자는 투자 대비 수익율, 그러니까 ROI를 근거로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건 모든 조건이 다 갖춰진 대기업에서 긴 시간과 많은 자본을 투자해서 체계적으로 진행 할 수 있는 것이다.
웹 마케팅은 이제 막 태동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효과는 2000년대 초반까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나 같은 경우는 회귀 전에 이미 충분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성공하기 위한 웹마케팅의 조건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이런 경험이 없는 형규 선배의 경우 갑갑하다고 생각 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여하튼 오빠. 이거 괜찮아요. 요즘 잘나가는 까페 정보들, 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까요. <가을동화>랑 엮일 수만 있으면, 우리 대박 날걸요?"
"그래. 일단 시도는 해보자. 하지만 다정아. 너무 기대는 하지마. 새로운 시도라는 게, 성공 확률보다 실패 확률이 더 높은 거잖아."
"네. 선배. 저도 알고 있어요."
우리가 새로운 마케팅 도구를 놓고 토론을 하는 동안, 고은이는 그런 내 모습을 달콤한 캐러멜 마키아또를 마시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 또한 마키아또 위에 오른 크림만큼 달콤했지만, 나는 애써 무시를 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 ' 7